레이싱 포인트/2008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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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조던으로부터 레이싱 포인트까지 이어지는 팀 역사상, 다시는 들어보기 힘든 그랑프리 우승 트로피를 든 에디 조던. 에디를 받치고 있는 두 드라이버는 왼쪽부터 데이먼 힐과 랄프 슈마허.
1. 조던 그랑프리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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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조던은 아일랜드의 사업가이자 전직 레이서였다. 그가 레이서로서의 직업을 포기할뻔 하게 만든 건 1976년에 일어난 사고인데, 포뮬러 3에서 선수로 활동하다가 왼쪽 다리가 부러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회복한 뒤, 미국으로 넘어가 포뮬러 애틀랜틱을 우승한 뒤, 79년 다시 영국에서 활동하다가 돈이 부족해지자, 자신의 이름을 딴 '에디 조던 레이싱'을 창단하게 된다. 그 후로 포뮬러 3이나 포뮬러 3000 같은 곳에서 팀을 운영하다가, 89년 팀이 포뮬러 3000을 지배할 정도로 커지자, 팀은 90년 2월 포뮬러 원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2. 수많은 드라이버들의 요람
조던 팀은 포뮬러 3000시절부터 많은 드라이버들의 요람이었는데, 포뮬러 1에서는 대표적으로 '''미하엘 슈마허''', '''데이먼 힐''', '''루벤스 바리첼로''', 에디 어바인, 랄프 슈마허, 마틴 브런들 등 많은 드라이버들이 거쳐갔다고 한다.
3. 비밀번호, 그리고 벤슨 & 헤지스의 시대
포뮬러 원의 신생팀이 으레 그랬듯, 처음은 비밀번호로 시작했다. 하지만 여럿 팀처럼 밑바닥을 긴것도 아닌데, 1991년 당시 포뮬러 원 팀들은 상위권 팀들이나 하위권 팀들이나 너나 할것없이 리타이어가 빈번하게 일어났었기 때문에, 페라리나 맥라렌 같은 차들이 부품 문제로 리타이어 할때마다 쏠쏠하게 포인트를 벌어갔다. 창단 첫해에는 안드레아 데 체사리스[5] 의 활약 덕분에 컨스트럭터 부문 5위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뒤론 바닥을 기었다. 한 시즌에 드라이버를 2번 넘게 교체한 적도 있었으니...이 팀이 본격적으로 날개를 달기 시작했던 때는 바로 96년, 영국의 담배회사인 벤슨 & 헤지스(Benson & Hedges)와 손을 잡고난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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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사의 막대한 자금력 덕분에, 조던 그랑프리는 상승세를 타게 된다. 푸조보다 좀 더 나은 무겐-혼다엔진을 쓰기 시작하고, 엄청난 거금을 들여 데이먼 힐을 영입하면서, 문서의 시작에 있는 98년 스파에서의 우승을 시작으로, 포디움에 오르는 횟수가 점차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99년, 랄프가 윌리엄스로 간 후[7] 조던은 윌리엄스에서 방출된 프렌젠을 영입하게 되는데, 이는 '''신의 한수'''가 된다. 힐의 폼은 떨어졌지만 레이스 외적으로 크게 기여했으며, 이 힘을 받아 프렌젠은 자신의 커리어 2번째로 드라이버 챔피언쉽 우승경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때는 플라잉 핀이 우승을 휩쓸던 때였고, 맥라렌이나 페라리에 비해 2% 부족한 성능때문에 결국 3위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컨스트럭터 3위란 성적은 무시못할 엄청난 성적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다음해부터였다. 혼다가 2000년 부터 BAR 팀에도 엔진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더 좋은 성능의 엔진을 받기위해 BAR과의 경쟁이 붙었다. 이를 위해 에디는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썼다고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프렌젠을 방출하고 사토 타쿠마를 뛰게 한 것.[8][9][10] 아무튼 팀은 프렌젠을 방출하고 난 뒤, 엔진이 터진 비행기 마냥 추락하기 시작했다. 야심차게 영입한 야르노 트룰리가 망한 것을 시작으로, B&H사로부터 오는 자금이 줄어들면서 차의 개발에도 큰 지장이 생기고 말았다. 결국 조던은 2002시즌 부로 B&H와 결별하게 된다.
4. 끝없는 추락
사토 타쿠마를 영입하여 혼다의 마음을 사는 것도 실패한 조던은 끝없는 추락을 하게 된다. 그와중에도 2003년엔 마지막으로 '''그랑프리 우승'''을 하긴 했는데, 이 경기가 바로 빗속의 대혈전이었던 인터라고스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 내용은 인터라고스 문서 항목을 참조할 것.
아무튼 2003년 우승 이후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조던은 재정난에 빠지게 되었는데, 이것에 결정타를 날린 사건은 바로 03년 6월 보다폰과의 법적 분쟁이었다. 에디는 보다폰이 자신들과 그 당시 1억 5천만 파운드 규모의 스폰서 구두 계약을 합의했지만, 보다폰이 뒤퉁수를 치고 페라리에게 갔다고 주장했다. 허나, 그로부터 2달 후인 8월, 갑자기 조던은 고소를 취하하더니 보다폰에게 보상을 지불한다고 발표했다. 기사에 따르면, 조던의 소송은 '기반도 없던 거짓' 이었고, 이 소송을 담당했던 당시 한 대법관은 증인으로 출석한 에디와 상업이사 이안 필립스를 두고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증인들' 이라고 묘사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재정난 문제는 더블로 가게되었고, 결국 2005년, 팀은 다국적 그룹이었던 미들랜드 그룹에 팔리게 된다.
5. 미들랜드 F1
미들랜드의 시작은 좋아보였다. 팀을 인수받고 난 뒤 05년은 이른바 '배우는 해' 라고 선언하며, 슈나이더는 자신의 팀에 러시아인 드라이버를 뛰게 한다는 위업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허나 현실은 시궁창이었으며[11] , 미들랜드는 신생팀이 으레 그랬듯이 06시즌에서 포인트를 하나도 따내지 못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12] 더군다나 시즌중 팀을 또 매각한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결국 06년 이탈리아 그랑프리 하루전, 네덜란드의 자동차 회사인 스파이커로 팔려가게 된다.
6. 스파이커 F1
스파이커나 미들랜드나 거기서 거기였지만, 그래도 스포츠카를 만들던 회사 답게 시즌이 나아질 수록 기록도 중위권 팀이랑 비벼가는 정도였다.[13] 그리고 후술할 '''대형 사고를 칠 뻔하기도 했다.'''
6.1. 2007년 유럽 그랑프리
크리스티안 앨버스가 팀에서 나간 뒤, 스파이커는 잠시 대타를 뛰기 위해 DTM에서 뛰고 있었던 테스트 드라이버 마르쿠스를 불러들여 뉘르부르크 링에서 달리게 했다. 마르쿠스는 22대의 차들 중 맨 뒤에서 출발했지만, 갑자기 팀은 포메이션 랩 중이던 마르쿠스를 피트로 부르더니 젖은 노면용 타이어를, 그것도 '''웨트 타이어'''를 끼우게 한다. 사람들이 이 판단을 의아해 하고 팀의 바보같은 판단에 비웃음을 던지던 찰나,
'''갑자기 첫 바퀴가 끝나고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다.'''
다른 팀들이 부랴부랴 자기네 차들을 불러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동안, 서킷을 신나게 달리던 차가 한대 있었으니, 바로 미리 타이어를 갈아둔 마르쿠스의 스파이커 였다. 마르쿠스는 서킷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피트인에 실패한 키미[14] 를 비웃듯 앞서나가며, 2위와의 차이를 벌려나갔다[15] . 4바퀴째엔 2등인 마싸와의 차이가 무려 '''33초'''. 이대로 가면 스파이커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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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장난인지 차들이 계속 미끄러져 사고가 났다.'''
레이스 담당측에선 결국 레이스를 '''중단'''하기에 이르렀고, 비가 그칠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마르쿠스와 팀은 다시 레이스가 시작되었을때, 또 비가 올것이라고 판단하였고, 다시 한번 도박수를 던지며 웨트 타이어를 끼고 나갔지만.....비는 오지 않았고, 15바퀴째에 마르쿠스의 차에서 불꽃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파이커와 마르쿠스의 달콤한 꿈은 산산조각 났다.'''
미국의 포뮬러원 해설자인 밥 바르샤에 따르면, 마르쿠스는 포뮬러원 그랑프리 역사상 맨 뒤에서 시작해 리드를 차지한 드라이버였으며, 레이스의 재시작으로 인해 맨 뒤와 맨 앞에서 두번 다 시작해본 유일한 드라이버였다고 한다. 이런 데뷔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쿠스는 스폰서 문제로 결국 야마모토 사콘에게 자리를 내주고 다시 DTM으로 돌아가게 된다.
7. 또 매각이야?
07년 터키 그랑프리 며칠 전인 8월 14일, 스파이커 사(社)는 모기업에서 팀이 분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결국 팀을 또 팔기로 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사하라 포스 인디아로 이어진다.
[1] 남아공의 정유 및 화학회사[2] 필립 모리스가 소유한 영국계 담배 브랜드[3] B&H와의 타이틀 스폰서 계약이 시즌 중간에 종료되었고, 남은 시즌동안 DHL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4] 현재는 가끔씩 F1 중계 방송에 나가거나 탑기어 MC로 나가기도 하였고, BBC Four F1프로그램에서 활동중이다.[5] 굉장히 빠르지만 거친 드라이빙으로 유명했다. 당장 유튜브에 Andrea de Cesaris 만 쳐도 바로 crash 라고 뜬다. 슬프게도 안드레아는 2014년 오토바이 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었다.[6] 담배 광고가 법적으로 금지된 레이스에서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고이다.[7] 원래는 97년부터 조던과의 3년계약이었지만, 힐을 밀어주는 팀 오더와 충돌한 그는 99년 시즌 중 윌리엄스와 2년 계약을 덜컥 맺고 떠나버린다.[8] 하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9] 프렌젠을 방출한 뒷이야기는 여럿 소문들이 있는데, 폼의 하락도 있고, 부상에, 기술팀과의 불화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10] 보도에 따르면, 프렌젠은 팀으로부터 차의 수리비용을 내라고 통보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프렌젠의 조던과의 관계가 틀어진 이유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만큼 조던이 돈에 쪼들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11] 정작 러시아인 최초의 포뮬러원 드라이버인 비탈리 페트로프는 2010년에서야 데뷔했다...[12] 그래도 기록적인 측면에선 나아지기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시즌 초기엔 상위팀과의 기록이 '''4초'''가량 차이가 났는데, 이를 '''2초'''까지 줄였다. 소규모 팀으로서는 엄청난 성과다.[13] 미들랜드와는 다르게 일본에서 귀중한 1점을 따내기도 했다![14] 피트인 입구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15] '''19초'''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