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현역

 


礪峴驛 / Ryŏhyŏn Station
'''려현역'''

'''다국어 표기'''
영어
Ryŏhyŏn
한자
礪峴
중국어
砺岘
일본어
リョヒョン
'''주소'''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려현리
'''관리역 등급'''
불명
(평양철도총국)
'''운영 기관'''
평부선

'''개업일'''
경의선
1923년 7월 1일
'''철도거리표'''
평양 방면
계 정
← 7.2 ㎞
'''평부선'''
려 현
도라산 방면
개 풍
7.8 ㎞ →
1. 개요
2. 역 정보
3. 남북 우편물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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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평부선의 철도역.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려현리[1] 인근에 소재.
역사 1동, 플랫폼 2개, 창고 1동, 구내선 4개로 이루어져 있다.
두음 법칙 적용시 여현역이 된다.
경의선에서 이 역부터 북위 38도선 이북에 속한다.

2. 역 정보


'礪'라는 한자는 돌 석(石)변이 민엄호 옆에 붙었고 민엄호 안에는 만(萬)이 들어가 있는 형태... 전체 20획. '숫돌 려'라고 읽는다.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경기도 개풍군 북면에 속해 있었고, 경의선의 경기도 구간의 마지막 역이었다.
이 려현역 인근은 교통편이 철도 외에는 거의 없다.
여담으로 전 경의선 구간 - 평의선, 평부선 및 대한민국의 경의선을 모두 합친 구간 - 의 모든 역 중에서 마지막으로 작성되었다.
평양역 기점 169.3km, 개성역 기점 17.2km.

3. 남북 우편물 교환


북위 38도선 바로 위쪽에 자리잡아, 6.25 전쟁 전에는 남북한 간의 접촉 창구 및 우편물을 교환하는 장소로써의 역할을 했다.
1946년 1월 미-소 공동위원회 합의로 그 해 3월 15일 개성역에서 첫 우편물 교환이 있었다. 그러나 2차부터는 개성우편국으로 바뀌었고, 북측 인원들이 남측 지역 물(?)이 들 것을 꺼린 소련군정의 의도 때문에 1947년 1월 11일(21차)부터는 북측 지역인 이 역에서 우편물 교환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우편물 교환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역에서는 감시 때문에 자유로운 편지의 의사표시에 제약을 받았다. 아무튼 이 우편교환은 1948년 4월부터는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되어, 1950년 6월 22일(165차) 6.25 전쟁 사흘 전까지 계속되었다. 이 기간 중 북쪽으로 192만 통, 남쪽으로 96만 통의 우편물이 보내졌다.

[1] 1945년 8월 16일 당시 경기도 개풍군 북면 여현리(이때는 두음법칙을 인정하는 38선 이북 지역이었다.)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