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아얄라
1. 소개
아르헨티나의 前 축구선수로 1990년대 중반 부터 2000년대 중반을 풍미한 남미 최고이자 세계 최고의 센터백 중 한명이었다.
2. 클럽 커리어
아르헨티나 페로 카릴 오에스테에서 데뷔했고 이내 아르헨티나의 명문인 리베르 플라테로 이적한다. 여기서 단 한 시즌 만의 활약으로 당시 세계 최고의 리그였던 세리에의 나폴리로 이적하였고 얼마 후 유럽 최고 명문 중 하나인 AC 밀란으로 이적하지만 당시 밀란은 밀란 제네레이션의 해체 이후에 여러가지로 흔들리는 엄청난 진통을 겪는 과도기적인 상황이었고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출장기회도 제대로 들쭉 날쭉했던 아얄라는 라리가의 박쥐구단 발렌시아로 이적한다.
그리고 발렌시아 CF에서 그의 전설이 시작된다. 이미 99-00시즌에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발렌시아는 막대한 자금을 풀어 여러 스타 선수들을 영입했고, 아얄라는 수비라인의 중심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였고 그것은 바로 효과가 나타난다. 발렌시아는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해서 바이에른 뮌헨을 만났다. 결국 치열한 접전 끝에 승부차기로 웃은 것은 뮌헨이었지만 박쥐군단 발렌시아는 더 이상 8,90년대 심각한 암흑기를 겪었던 클럽이 아니라 당당한 라 리가의 강팀으로 돌아오게 된다. 물론 거기에는 아얄라를 중심으로 뭉친 단단한 4백이 있었던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발렌시아의 순항은 01-02시즌에 꽃을 피게 되었다. 00-01시즌 라리가 마지막 경기에서 히바우두에게 극적인 오버헤드 킥 버져비터로 5위로 밀린 발렌시아는 팀의 모든 여력을 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는데 결국 그것이 31년만의 리그 우승의 발판이 되었다. 특히나 리그 38라운드 말라가와의 원정에서 아얄라는 경기 결승골이자 선제골을 전반 이른 시간에 뽑아내며 발렌시아의 우승을 이끈다.
이후에도 아얄라는 발렌시아에 헌신하며 발렌시아에 레전드가 되는가 싶었지만 06-07시즌 단장과의 불화로 비야레알로 이적, 하지만 바로 사라고사로 이적했다. 이후로는 아얄라는 노쇠화로 인해 예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고, 사라고사의 강등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사라고사와 함께 다시 라 리가로 돌아왔고, 이후 고국으로 돌아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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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후반부터 국가대표 커리어를 시작한 대부분의 아르헨티나의 선수들이 다들 그렇지만 지독한 메이저 대회 불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우승을 맛본 것이라면 와일드 카드로 출전한 2004 아테네 올림픽 축구 종목 금메달. 이것을 제외하면 월드컵, 코파 아메리카 우승도 없다. 대부분 준우승 언저리나 8강이 끝, 게다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8강 네덜란드전에서는 1:1로 비기고 있는 상황에서 데니스 베르흐캄프를 마크하고 있었지만 결국 뚤리며 베르흐캄프에게 결승골을 내줬다. [3] 심지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는 예선탈락까지 하기도. 아얄라가 참여한 월드컵들 당시 아르헨티나의 스쿼드는 언제나 탄탄했고, 2002년에는 남미 예선 1위로 손쉽게 진출하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2006년에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말그대로 도륙내는 엄청난 포스를 자랑했지만 오심, 승부차기 불운 등으로 언제나 우승 언저리에서 좌절하였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홈팀 독일을 상대로 헤딩 선제골을, 미로슬라브 클로제와의 공중볼 경합에서 이겼지만 그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아얄라의 코 앞에서 헤딩 동점골을 기록해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승부차기에서 안타깝게 실축했다.
2004년과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라이벌인 브라질에 연속으로 우승을 내주면서 준우승을 거두었다. 2004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서는 2-2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에서 브라질에 우승을 내줬고, 특히 아얄라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된 2007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서는 0-1로 뒤진 전반 40분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며 자책골을 기록하면서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루지 못한 채 국가대표를 떠나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당대에 파비오 칸나바로와 함께 단신이지만 월드 클래스 센터백으로 비교되었다. 단신답지 않게 엄청난 점프력으로 제공권을 장악했고,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파이팅 넘치는 수비를 보였다. 또한 교묘한 파울도 상당히 잘해서 공격수 입장에서 상당히 짜증을 넘어서 분노를 치밀어오르게 하는 플레이도 잘했다. 생쥐라는 별명은 이런 지능적인 플레이에서 나왔다. 또한 서술했다시피 뛰어난 점프력으로 가끔씩 헤더를 성공 시켰는데 그것이 또 정말 결정적인 순간이었던 적이 많았다. 아얄라가 전성기였던 00년대 초반에 칸나바로가 당시에 인테르에서 클래스에 비해 부진했던 시기라 06 독일 월드컵 직전 까지만 해도 둘의 비교우위에서 아얄라의 우세를 점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았다. 물론 독일 월드컵 우승 이후 모든 상을 휩쓴 칸나바로이기 때문에 후에 회자되는 건 칸나바로겠지만 커리어가 부족할 뿐이지 아얄라는 분명 남미 최고의 센터백을 넘어 세계 최고의 센터백 중 한명이었다. 동세대에서는 칸나바로와 비교되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반세대 정도 아래인 카를레스 푸욜과 비교되는 듯하다. 결정적인 헤더도 그렇고...
[1] 스페인어 발음: [roˈβeɾto faˈβjan aˈʒala\]. 스페인어에서 y는 /j/로 발음되지만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y는 /ʒ/로 발음된다. 그러나 이런 지역적 특색(방언)은, 표기법에서는 브라질 포르투갈어를 제외하고 무시한다. 한편 영어를 제외한 로망어와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2] 아르헨티나 A매치 역사상 최다 주장 출전 기록(63경기) 보유자이기도 하다.[3] 이 골은 월드컵 역대 최고의 골 중 하나라고 불리우며 아얄라가 뚫린것도 베르흐캄프의 터치가 미쳤던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