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엔케

 

''' 독일의 前 축구선수 '''
'''이름'''
'''로베르트 엥케
Robert Enke'''
'''출생'''
1977년 8월 24일 /
동독, 튀링겐예나
'''사망'''
2009년 11월 10일 (32세) /
독일, 니더작센하노버
'''국적'''
독일 [image]
'''신체'''
186cmㅣ84kg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소속 '''
''' 선수 '''
BSG 예나파름 (1985 / 유스)
FC 카를 차이스 예나 (1986~1995 / 유스)
FC 카를 차이스 예나 (1995~1996)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96~1999)
SL 벤피카 (1999~2002)
FC 바르셀로나 (2002~2004)
페네르바흐체 SK (2003, 임대)
CD 테네리페 (2004, 임대)
'''하노버 96''' (2004~2009)
'''국가대표'''
8경기 (독일 / 2007~2009)
1. 소개
2. 선수 경력
2.1. 사망
3.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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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그는 저와 함께한 첫 번째 골키퍼였습니다. 저는 그의 침착함과 동정심과 배우려는 자세와 프로다운 자세, 그리고 그의 사회에 대한 헌신과 기여 행위를 기억합니다. 저는 엔케가 리스본 길바닥에 버려진 강아지들을 자신의 집에 데려다 기른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과 경력에 있어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에 저 역시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디 평화로이 잠들기를 바랍니다.'''

주제 무리뉴, 엔케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고 나서

'''우리의 행진에는 항상 엔케가 함께 한다.'''

요아힘 뢰프, 월드컵 호주전 이후

독일의 전 축구선수.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초기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으나 뒤늦게 그 진가를 인정받은 대기만성형 선수. 뛰어난 골키퍼가 유난히 많이 배출된 독일 내에서도 올리버 칸, 옌스 레만의 뒤를 잇는 차기 독일 국가대표 골키퍼 유망주로 불리고 있었으며 인품도 매우 훌륭했다고 한다.

2. 선수 경력


동독의 예나에서 태어나 FC 카를 차이스 예나에서 프로데뷔했고, 얼마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로 이적해 분데스리가를 경험하게 된다. 이후 21세 때 포르투갈 SL 벤피카로 이적, 본격적으로 경력을 쌓아갔다. 2002년도 FC 바르셀로나 이적 후에는 바르사의 제1 골키퍼로서 많은 경기에서 활약했으나, 이후 바르사의 또다른 골키퍼 발데스와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복잡한 입장이 되었다.[1] 이 당시 약체팀들과의 경기에서 3실점을 기록, 스페인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기에 이르렀고 그는 결국 주전경쟁에서 밀려 벤치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이를 감당하지 못한 엔케는 다음해 페네르바흐체 SK로 옮겨갔지만 이적 후 첫경기에서 또 3실점을 기록하는 바람에 사실상 이름만 남은 선수로 전락했고, 2부 리그로 밀려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심한 좌절감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린 끝에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이후 이런저런 악재를 이겨내고 다시 1부 리그로 복귀했다.
2004년 하노버 96으로 이적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다시 일어서게 된다. 하지만 희소 심장질환을 앓고 있던 라라가 두 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딸을 잃은 슬픔으로 인해 우울증이 극심해졌다. 축구팬들은 엔케가 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흔들리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이런 팬들의 걱정을 불식시키듯 그는 뛰어난 경기력을 발휘했다. 그런 엔케를 본 구단주와 감독은 그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드디어 2007년, 평소 엔케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요아힘 뢰프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 마크를 달게 되었다. '''그런데...'''

2.1. 사망


[image]

'''나는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미하엘 발락, 엔케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고 나서

2009년 11월 10일, 엔케는 하노버 인근의 철로 건널목에서 달려오는 열차몸을 던지며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그동안 언론에는 엔케가 우울증을 극복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사실 그는 지속적인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 또한 딸을 잃은 뒤 입양해 온 딸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2] 때문에 자신의 우울증 치료 사실을 철저히 숨겨왔다고 한다.

3. 사후


당시 엔케의 자살 소식이 알려지자 독일 전역은 큰 충격에 휘말렸다. 그가 생전에 뛰었던 하노버의 홈 구장인 AWD 아레나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팀 동료들뿐 아니라 수많은 축구팬들이 몰려와 그를 애도했다. 장례식 영상.[3]
[image]
라라 무덤에 남긴 마지막 글.
훗날 엔케가 자살하기 바로 전날 딸의 무덤에 남긴 'Lara, papa kommt(라라야, 아빠가 간다)'라는 글도 함께 알려지면서 많은 축구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image]
이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경기 중 독일 대표팀의 벤치에 선수번호 1번이 쓰여진 엔케의 유니폼이 놓여 있는 모습이 알려지면서[4] 이 유니폼에 얽힌 사연도 함께 드러나게 되어 다시금 큰 관심을 모았다.
하노버 96의 홈구장인 HDI 아레나 바로 앞에는 엔케의 이름을 붙인 길이 있다.
2017년 9월 22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아버지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로베르트 엔케가 자살한지 10년이 되는 해인 2019년 11월엔 그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인 Robert Enke - Auch Helden Haben Depression (로베르트 엔케 - 영웅도 우울함을 갖고 있다)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2019년 11월 10일 엔케의 10주기에 치뤄진 분데스리가 11라운드 모든 경기에서 경기 시작전 추모행사가 진행되었다.
엔케 사망 이후 독일 국대에서는 레네 아들러를 2010 월드컵 예선에서 주전으로 발탁하였고, 아들러는 2008년 러시아전에서 데뷔를 시작으로 2010년 FIFA 월드컵의 주전 골키퍼로 명단에 올랐지만, 갈비뼈 골절 부상으로 남아공행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옌스 레만의 은퇴와 로베르트 엔케의 죽음으로 인해 마땅한 골키퍼가 없는 상황인데다가 아들러까지 부상으로 낙마해버리자, 어쩔 수 없이 NO.2에 있었던 '''마누엘 노이어'''에게 골문을 맡긴다. 이후 노이어는 '''독일을 대표하는 수문장으로 거듭나게 된다.'''
[1] 당시 바르셀로나의 경우 한 선수가 지속적으로 골키퍼를 맡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돌아가면서 골키퍼를 보는 특이한 로테이션이 있었다.[2] 독일의 입양제한법 규정상 우울증 환자에게는 입양이 허용되지 않는다. 독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입양을 할 때 양부모의 인적 사항에 있어서 꼼꼼히 따지도록 한다. 그리고 우울증을 비롯하여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다면 입양이 허가되기 어려운데, 이는 대한민국도 별 차이 없다.[3] 영상 속에 나오는 음악은 미국의 가수 리앤 라임스가 부른 The Rose(원곡은 벳 미들러)이다.[4]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2009년 11월 10일에 열린 독일과 코트디부아르의 평가전 때도 20년지기 친구인 발락이 직접 엔케의 마지막 경기 유니폼을 가져와 벤치에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