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망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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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e du Mans'''[1]
'''르망역'''

[image] '''TGV'''
브레스트,
렌,
라니옹,
생 말로 방면
라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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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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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몽파르나스) 방면
파리 몽파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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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사블 돌론,
낭트,
앙제 방면
사블레 쉬르 사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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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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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몽파르나스) 방면
파리 몽파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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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페르,
렌 방면
라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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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플랑드르),
릴(유럽)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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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트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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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플랑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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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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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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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페라슈),
마르세유,
몽펠리에(생 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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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시 T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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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몽파르나스)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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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선 열차 노선 보기

TER

낭트 방면
사블레 쉬르 사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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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중서부에 위치한 르망시의 철도역이다. 도시의 위치가 파리에서도 가까운데다가 서쪽의 페이드라루아르 지방에서 동쪽에 위치하다 보니 다수의 TGV 노선 뿐 아니라 페이드라루아르, 노르망디, 상트르발드루아르 3개 지방의 TER이 운행한다. 2018년 기준 490만명이 이용하고 있다.

2. 역사


르망역은 시의 흥망과 함께 부침을 거듭해왔다.
철도의 사회경제적 효과에 주목한 프랑스 제2제국은 1848년 파리와 을 잇는 철로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두 도시간에 중간 정차할 역으로 오른군(郡)의 알랑송과 사르트군의 르망, 두 후보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 때 사르트군의 국회의원이 자기 지역의 실업자들을 철로 건설 현장에 투입할 목적으로 40만 프랑을 지출하였고, 이것이 후보지 선정에서 르망에 유리하게 작용한 결과 르망에 정차역이 세워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1854년에 첫 열차가 르망역에 도착할 때 시민들은 3일간의 축제로 이에 화답했다. 르망역은 산업화가 시작된 사르트 지역의 경제에 큰 동력이 되었고, 5년만에 르망시의 인구는 두 배로 늘어난다.
증기기관차와 전기열차가 시내의 다리를 가로지르는 광경은 산업화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었고, 이는 2차대전 승전 이후 영광의 30년 내내 이어진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장기 경기침체에 이은 실업률 악화에서 르망시도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 르망시의 인구는 반토막이 나버리고, 르망역의 화물 운송량도 격감한다.
이때 1981년에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TGV 계획을 발표하고, 그 다음해에 SNCF가 대서양 고속선(LGV Atlantique)의 계획을 발표하는데, 당시 발표한 최초 계획안에에 따르면 고속선은 르망과 앙제를 우회하기로 되어 있었다. 2년간의 교섭 끝에 TGV의 시내 정차를 관철시키고 TGV를 수용하기에 부족한 역의 제반시설의 확장 공사 및 역의 배후지 Novaxis 지역을 새로 개발한다. 마침내 르망은 서부의 도시들 중 최초로 TGV를 맞이하게 되었다.

3. 역 구조


8개의 선로에 4개의 섬식 승강장의 구조로 되어있다. 출입구는 남, 북에 하나씩 있는데 남쪽 출입구는 TGV 운행에 맞춰 건설된 신역사와 신시가지 Novaxis로 이어지고, 북쪽 출입구는 재래선 구역사와 구시가지로 이어진다.

[1] 전치사(de)와 관사(le)를 붙여 du로 쓰는 프랑스어 문법에 따라 프랑스어로는 갸르 드 르망이 아니라 '''갸르 뒤망'''으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