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크루트 사건
1. 개요
'''リクルート事件'''
'''Recruit scandal'''
1988년에 일본에서 발생한 정치 스캔들. 록히드 사건(1976), 교와 스캔들 및 사가와 규빈 스캔들(1992)와 더불어 일본 4대 정경유착 비리로 손꼽힌다.
일본 리크루트사가 아직 공개전인 계열사주식을 공개직전에 정치, 관료, 경제, 언론계 유력 인사들에게 싸게 양도하고 공개후 주가가 폭등하면 거액을 챙기게 함으로써 사실상 뇌물을 공여한 내부자거래 사건.
당시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이던 다케시타 노보루뿐만 아니라 전임자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아베 신타로[1] 외무대신, 와타나베 미치오[2] 자민당 정조회장, 미야자와 기이치 대장대신 , 이부키 분메이 후생정무차관 등 76명이 연루되어 사임하거나 처벌받아 큰 파장을 일으켰다.
2. 경과
1988년 3월 23일 아사히 신문 요코하마시지국은 가와사키시 경찰이 시청 부패사건을 다루는데 의외로 수사가 쉽지 않자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파고들기 시작했다.
3개월간의 취재끝에 어느 가와사키 시청 간부가 리쿠르트 빌딩을 가와사키역 앞 금싸라기 땅에 유치해주는 대가로 부동산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았는데, 바로 리크루트 자회사 주식을 내부자거래로 양도받은 것. 이를 처분하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힌 것이다. 아사히 신문은 이 사실을 1988년 6월 18일 보도하였다.
해당 간부는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하자 총리, 총리 후보를 포함한 유력 정재계 거물들도 같이 뇌물을 받았다는 폭탄선언을 함으로서 겉잡을 수 없이 큰 사건으로 확장되었다.
다케시타(1988년 당시 총리), 아베, 나카소네, 요미우리 신문 부사장, NTT 중역, 노동성 차관 등 정계 거물들의 관련 사실이 폭로되면서 의혹이 확산되자 차기 총리 후보였던 미야자와 대장상은 관련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다가 그해 12월에 사임하였다.
헤가 바뀌고 1989년 2월에는 에조에 히로마사 리크루트 회장이 구속되고 동년 4월 여론의 줄기찬 비판을 받은 다케시다 수상이 사임하며 정계 막후 실력자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도 자유민주당을 탈당하기에 이르렀다.
리크루트 사건 이후 일본 정계의 정경유착을 끊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중의원 선거제도를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바뀌었던것도 이 시기로, 정치 헌금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치자금 규정법 개정이 잇따라 1994년 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일부 정치인들은 처벌을 받았으나 나머지 정치인들은 사건이 잠잠해지자 슬그머니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