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타로

 



'''일본 외무대신'''
'''제111대'''
사쿠라우치 요시오

'''제112~113대
아베 신타로'''

'''제114대'''
구라나리 다다시

'''일본국 제112~113대 외무대신
아베 신타로
安倍晋太郎 | Abe Shintarō
'''
<colbgcolor=#003366><colcolor=#fff> '''출생'''
1924년 4월 29일
도쿄부 도쿄시 요츠야구
(現 도쿄도 신주쿠구)
'''사망'''
1991년 5월 15일 (향년 67세)
도쿄도 분쿄구
'''학력'''
도쿄대학 (정치학 / 학사)
'''정당'''

'''지역구'''
야마구치 1구[1]
'''의원 선수'''
'''11''' (중)
'''의원 대수'''
28, 29, 31, 32, 33, 34, 35, 36, 37, 38, 39
[ 펼치기 · 접기 ]
<colbgcolor=#003366><colcolor=#fff> '''부모'''
아버지 아베 간
'''배우자'''
아베 요코
'''자녀'''
장남 아베 히로노부[12]
차남 '''아베 신조'''
삼남 기시 노부오[13]
'''친인척'''
백부 아베 신타로[14]
장인 기시 노부스케
처숙부 사토 에이사쿠
며느리 아베 아키에
'''약력'''
마이니치 신문 기자
기시 노부스케 비서관
중의원 의원
제46대 농림대신
제41대 내각관방장관
제29대 자유민주당 정무조사회장
제42대 통상산업대신
제112-113대 외무대신
제29대 자유민주당 총무회장
제24대 자유민주당 간사장

1. 개요
2. 생애
3. 한국계 도래인 후손 설
4. 기타
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총리를 지낸 아베 신조와 중의원 기시 노부오의 부친이다.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했으며, 1980년대 일본 외무상을 역임하였다.
친한파로, 아들 아베 신조와는 상반되는 정치 성향을 나타냈다. 아베 신조자유민주당강경 우파인 반면, 아베 신타로는 자유민주당중도우파에 해당된다.[2]
아베 신타로는 시모노세키재일 한국인들과 한국계 일본인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고, 그들의 얘기에 귀기울였다고 한다. 그래서 시모노세키재일 한국인들과 한국계 일본인들은 자신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아베 신타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 생애


1924년에 도쿄도 신주쿠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의 고향인 야마구치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아버지 아베 간(安倍寛)은 중의원 의원을 역임하기도 했던 정치인이었다.[3]
2차대전 기간 중이던 1944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해군의 비행학교에 입대했다. 전쟁 막바지에 가미카제 자살 특공 임무를 위한 훈련을 받기도 했지만, 훈련을 수료하기 전에 일본이 항복하여 화를 면했다.[4]
2차 대전이 끝나기 전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입학하였고, 재학 중 종전이 되어 전후인 1948년 졸업했다. 재학 중에 본토 제국대학들의 교명에서 '제국'이 전면 삭제되어 졸업은 '도쿄대학'이라는 이름으로 했다. 마이니치 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당시 상사가 전 민주당 대표 가이에다 반리의 아버지였다. 3년 후인 1951년에는 기시 노부스케의 딸 기시 요코와 결혼했다.
[image]
▲ 결혼 생활 초기. 부인 요코와 함께. 아베 신타로가 안고 있는 아이가 장남 아베 히로노부, 부인이 안고 있는 아이가 차남 아베 신조이다.
기자 생활 8년 후 기자를 그만두고 외무성에 들어가 비서관이 되었고, 1년 후인 1957년부터 총리실 비서가 되어 당시 총리가 된 장인 기시 노부스케를 직접 보좌했다. 역시 1년이 지난 1958년에는 처음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현직 총리였던 장인의 후광을 업고 무난히 당선되었다. 다만 이 때문에 기시의 데릴사위 아니냐는 말이 많았는데 본인은 스스로는 아베 간의 아들이지 기시의 데릴사위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정치 성향도 기시 노부스케와 정반대였고, 아베 신타로는 아버지를 따라 평화주의자였으며, 친한파 기조를 가졌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 제국주의, 일본의 피해자 행세, 일본의 전쟁범죄 등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도 한국 등 피해국에게 사죄하자는 연설을 한 적도 있고, 재일외국인 인권 증진 등에도 큰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다.[5][6]
이후 1967년 농림성 정무관, 1974년 미키 다케오 내각에서 농림대신,[7] 1977년 후쿠다 다케오 내각에서 관방장관, 그리고 1977~81년 집권 자민당의 정조회장 등의 요직을 지냈다.
[image]
▲ 1980년대 외무대신 시절. UN 총회에서의 연설 모습
특히 1982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취임 후, 외무대신으로 임명되어 4년 동안 재직했다. 이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미국 정부와 동맹 관계 강화를 비롯한 1980년대 일본의 외교정책을 실무적으로 주도했다. 외무대신을 물러난 1986년에도 자민당의 총무회장을 역임했고, 1년 후 나카소네의 후임 타케시타 노보루 내각에서는 자민당의 2인자인 간사장에 올랐다.
이처럼 착실히 주요 요직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의 차기 총리까지 노릴 수 있는 유력 정치인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그러나 1년 후인 1988년 리쿠르트 사건으로 인해 타케시타 내각이 붕괴하자 본인도 자민당 간사장을 물러나야 했다. 이 사건으로 '부패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정치 경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1990년 8월에는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입원했는데, 1개월 후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1년 5월 15일, 향년 6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8]

3. 한국계 도래인 후손 설




<조건>
  • 토론 관리 방침의 신뢰성 판단 기준 7순위 이상의 근거자료 위주로 서술하고, 그 외 한국계 도래인 설에 대한 주관적 의견은 최소화하여 서술한다.
  • 사토 에이사쿠와 아베 신타로, 아베 신조가 공개 석상에서 한국계 도래인인지 아닌지를 직접 발언한 내용이 없음을 서술한다.
  • 사토, 아베 가문이 도래인 후손이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 일본 내 역사학적 기록이 확인되지 않음을 서술한다.

  • 2006년 주간 아사히는 10월6일자 커버스토리에서 '아베 신조 연구-가정부가 본 아베.기시 3대'라는 제목으로 아베 총리 가문의 내력을 특집 보도하였고 한국 언론에서도 이를 인용해 보도하였다.
>기시와 아베 가문에서 가정부로 40여년을 지냈던 구보 우메(80)는 슈칸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의 부친 아베 전 외상이 고백한 집안 내력을 비교적 상세히 전했다. 구보는 "파파(아베 전 외상)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내게는 말해줬다"면서 "(아베 전 외상 사망 직후) 입관될 때 이 사람의 골격을 보면서 정말 일본인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자로 잰 듯이 반듯이 누워 있었는데, 완전히 한국(인)의 체형이다. (아베 전 외상) 스스로도 '나는 조선(인)이다. 조선'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 사람은 조선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
>그는 또 "(정치인으로서 주변에서) 인기가 높았으며 따라서 좀더 건강하게 활동할 시간이 있었더라면 북한 문제도 해결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베 전 외상의 죽음은 나라의 손해였다"면서 애석해했다.
>
>이 잡지는 아베 전 외상은 생전에 아베가(家)의 기원은 10세기쯤까지 한반도 북쪽에서 중국대륙에 걸쳐 존재했던 발해국에서 시작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일본에서의 아베가의 기원은 분명치 않다고 보도했다.
>
>아베가의 기원에 대해 구보는 "아베가의 본류는 아오모리현이다. 아베 전 외상이 조선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는 지금의 북한이 아니라 그 북쪽과 길림성 아래쪽에 있었던 발해"라면서 "11세기 헤이안(平安) 시대의 무장이었던 아베가 지금 아베가의 선조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
>아베 신조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도 아베 총리를 끔찍히 아꼈다고 그는 덧붙였다. 구보는 아베 총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도쿄의 기시 전 총리의 자택에서 가정부로 지냈으며, 지금은 따로 나와 도쿄에서 살고 있다.아베 일본 총리 부친, "나는 조선인이다''
  • 14대 심수관[9]은 아베 신타로의 장인인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인 사토 에이사쿠(둘다 기시 가문에 양자로 들어감)가 자신에게 본인의 집안이 1600년대 이후에 건너온 조선인 출신이라고 말해줬다.고 주장했다.#
  • 이와 관련해 사토 에이사쿠와 아베 신타로가 생전에 공개 석상에서 자신이 한국계 도래인 후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직접 발언한 적은 없다.
  • 2006년 주간 아사히가 구보 우메의 증언에 대해서 보도한 이후 아베 신조가 공식 기자회견 등 공개 석상에서 주간 아사히의 보도 내용에 대해서 긍정을 하거나 부정을 한 적은 없다. 다만 아베 신조가 주간 아사히의 보도 내용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 현존하는 일본 내 사료(史料) 중에서 사토 가문과 아베 가문의 시조가 도래인이라고 기록된 사료가 발견된 적은 없다.

4. 기타


[image]
▲ 좌측 하단의 아이가 바로 아베 신조 전 총리이다. 맨 위쪽의 안경쓴 남자는 부친인 아베 신타로.
  • 상술했듯이 그의 장인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이고, 그의 아들은 아베 신조 전 총리이다.[10] 때문에 그 자신도 외무상, 자민당 간사장 등의 요직을 지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이 없지 않다.

  • 아베 신타로가 태어난 지 80일 만에 부모님이 이혼했다. 그 후 신타로의 어머니 혼도 시즈코(本堂静子)는 재혼했는데[11], 훗날 신타로가 이 사실을 알고 상경 후 어머니의 거처를 찾았지만 결국 만나지는 못했다고 한다.
  • 아버지 아베 간과 생일(4월 29일)이 같다.

5. 둘러보기




[1]시모노세키, 나가토를 관할하는 곳이며 기시 노부스케와 아베 간의 선거구였다. 아베 신타로가 현역 국회의원인 시절에는 중선거구를 택했고, 현 야마구치 4구가 당시에는 야마구치 1구였다.[2] 이 점은 본인의 소신뿐만 아니라, 그가 정계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아직 일본에서 '경제 발전에 집중하고, 외교/군사적 세력화는 지양한다'는 요시다 시게루 전 수상의 노선이 주류였던 점도 작용했다. 일본이 소위 '보통국가'라는 이름으로 정치/군사대국화에 관심을 나타낸 것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1990년대이며, 실행은 2000년대에 가서야 이루어졌다.[3] 아베 간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에 도조 히데키 등 군부의 전횡에 반대하는 활동에 나서기도 했지만,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에 타계했다. 그의 아들 신타로도 그의 뜻에 따랐으며 2차대전 당시 군국주의 정권의 일원이긴 했으나 딱히 적극적인 동참자는 아니었다. 이후에도 친한파로 분류되는 정치 성향을 가졌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손자인 아베 신조는 친할아버지보다 외할아버지 기시의 노선을 이어받아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이 되었다.[4] 훗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 총리에게 이를 대홧거리로 쓰기도 했는데, 아베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감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5] 다만 아들 아베 신조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아버지 신타로와 정치 성향이 반대가 되었다. 신타로의 전담 기자였던 노가미 다다오키가 아베 신조의 여러 지인들과 인터뷰하여, 신조의 생애를 다룬 인터뷰와 아베 신조에 대해 기록한 작가인 노가미와의 인터뷰에 따르자면 아베 신조와 아베 신타로와의 관계는 좋지 않은 편이었다고 한다. 아베 신타로는 장인어른인 기시 노부스케, 아버지인 아베 간과 같이 아들인 아베 신조도쿄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였고, 그래서 아베 신조에게 학업과 관련해서 압박하였다. 게다가 아베 신타로는 도쿄시모노세키를 왕복하면서 국회의원 활동을 한데다 그 조차도 아버지인 아베 간이 아들에게 큰 관심을 주지 못했고, 빨리 사망한 탓에 아베 신조에게 차갑게 대하였다. 반대로 기시 노부스케아베 신조를 키웠고, 항상 아베 신조에게 애정을 많이 표현한 편이었다고 한다.### 즉 아베 신타로가 아베 신조를 차갑게 대했고 이에 대해 부자간 갈등이 존재하였고, 반대로 기시 노부스케아베 신조와 같이 있으면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고 한다.[6] 다만 1984년 외무대신 시절 한국독도 영유권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이 점은 일본 정부각료로서 그의 한계였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아들인 아베 신조의 당내 경쟁자인 이시바 시게루자유민주당 내에서 친한파에 속하지만 독도 관련 논쟁에서는 아베 신타로의 견해와 비슷하다.[7] 미키 당시 총리는 2차 대전 당시 아베의 부친이 참여했던 반전, 반군부 활동을 도운 인연이 있었다.[8] 훗날 아들인 아베 신조가 2007년과 2020년에 수상직을 그만두었던 것도 지병인 췌장 관련 질환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유전일 가능성도 제기된다.[9] 1598년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일본으로 납치된 도공 심당길(沈當吉)의 후손이다.[10] 만약 아베 신타로가 좀 더 오래 살아서 총리까지 지냈다면, 후쿠다 다케오-후쿠다 야스오 부자(父子)보다 앞선, 일본 최초로 아버지-아들의 2대(代) 출신 총리로 기록될 수 있었다.[11] 반면 신타로의 아버지 아베 간은 재혼하지 않고 여생을 독신으로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