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야교
1. 개요
만다야교는 영지주의적인 교리를 가진 아브라함 계통의 유일신교이다. 전세계의 신도 수는 6, 7만 명 정도가 되며 본거지는 이라크이다. 만다야어(Mandaic language)로 알려진 아람어의 방언을 사용한다.
2.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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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야교는 급진적인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졌다.
이들은 신이 보낸 여러 예언자 중에 세례자 요한이 가장 으뜸이라고 말하며, 예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따라한 예언자라고 본다. 이들은 아브라함, 예수, 모세를 믿지 않으며 대신 아담과 에녹, 노아를 예언자로 공경한다. 현재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중 드루즈파(드루즈교)와 더불어 가장 알려진 것이 없는 종교이다.
일단 만다야교의 신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야훼와 같다고 한다. 종교의 교리나 가르침을 어떠한 문서나 기록으로 구체적으로 남기지 않고 암호화된 방식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만다야교도가 아닌 외부인은 이들의 교리를 알기는 매우 어렵다고 한다. 신약 성서는 적어도 예수 사후 30~50년 이후에나 쓰였고, 세례자 요한이 예수와 동시대의 인물이었음을 감안하자.
일부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성스러운 장소에서 요단(Yardana)이라 불리는 흐르는 물로 제사장이 집례하는 세례의식을 행한다.[1]
3. 역사
초기 유대교적인 원-영지주의 기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 종파의 이름은 어근 yd'에서 온것으로 '아는 자들(knowers)'을 의미한다.[2] 만다야교에서는 세례를 중시하는 대신 할례가 금지되는데 이를 근거로 만다야교가 초창기 기독교 교리와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만다야교 관련한 사료가 부족하고 만다야교의 세례와 기독교의 세례가 다른 이유로 해당 주장은 논란이 많다.
만다야교 전승에 따르면 만다야교도들은 서기 1세기 무렵 예루살렘 근교와 요르단 강 일대에서 거주하고 있었으나 후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한다. 그러나 만다야교도들이 사용하는 만다야어는 바빌로니아 탈무드에 사용된 아람어와 마찬가지로 메소포타미아 동남부 아람어 방언에 아카드어의 영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들이 팔레스타인 일대에서 이주해온 것이 아닌, 바빌로니아 일대의 유대인에서 바로 갈라져 나왔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슬람 초창기 무슬림들이 사산 왕조 페르시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이라크 일대를 장악하자 만다야교 장로들은 무슬림들에게 자신들이 꾸란에 언급된 성서의 백성 중 하나인 사비교인[3] 이라고 주장하면서 어느 정도 권리를 인정받았다. 이들이 근거로 내세운 것은 만다야교의 성서 긴자 랍바(Ginza Rabba)에 나온 요한과 관련한 내용이었는데 요한은 이슬람에서도 존경받은 예언자였다.[4] 이슬람 제국에서는 조로아스터교도들보다는 기독교인, 유대인 같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신도들을 우대하는 편이었다.
서구인들에게 만다야교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6세기 중반 포르투갈인 선교사들을 통해서였다. 포르투갈인 선교사들은 처음에 이들을 세례 요한을 믿는 기독교인으로 생각했으나 한 세기가 지나고 나서야 이들이 기독교와 별개의 종교를 믿는다는 것을 파악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구인들이 이들에게 관심을 가질 무렵 18세기 말 이란의 카자르 왕조에서 만다야교도들을 대거 학살하고 박해하면서 인구 절반이 사망하면서 이들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묻혀버렸다. 당시 카자르 왕조의 학살과 파괴로 만다야교 유물과 전승 상당수가 실전되었다고 한다.
근현대 이라크에서 바트당 아랍 민족주의가 부흥하면서 상당수의 만다야인들도 자신들에게도 일정 수준의 권리와 의무를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보수적인 만다야교 사회 내에서도 바트당의 영향으로 세속주의가 퍼졌다고 한다. 만다야교 교리는 군인이 되는 것과 머리를 이발하는 것을 엄금하지만 당시 세속화되고 아랍 민족주의에 경도된 만다야교도들은 상당수가 군대에 자진해서 입대한 후 만다야교도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 내전으로 국내 상황이 어지러워지자 이슬람 극단주의의 발호로 이라크내 소수 종파들이 위협받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급속하게 대부분의 교도들이 탈출해서 본거지인 이라크에는 극소수(약 3~7천 명)만이 남았다. 그나마 주요 근거지가 이라크 중남부 지역이라 다에시의 독수(毒手)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 이웃나라인 시리아, 이란으로 주로 망명했으며, 시리아 내전 전후 많은 수는 이 나라를 거쳐 유럽이나 호주, 북미에도 도피하였다. 오늘날 이라크 원주지에 남아있는 만다야교 인구보다는 유럽, 호주,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난민 인구가 더 많다.[5] 이란에서는 기독교의 종파로 인정받기 때문에 망명이 허용된다고 한다. 다만 이란에서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횡포가 없는 게 아니라서, 만다야교에서 할례가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노리고 만다야교 남성 신도를 납치해서 강제로 포경수술(!)을 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강제로 포경 수술을 당한 만다야교도들은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더 이상 만다야교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울며겨자먹기로 시아파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도 이라크 국회에서는 만다야교 신자 몫으로 1석을 무조건 보장받는다. 마찬가지로 아시리아인 기독교 신자는 5석, 야지디교와 샤바크교도는 각각 1석씩을 보장받는다.
[1] 레스터 L. 그래비, '제2성전기 유대교', 컨콜디아사, 2017, 211p[2] 레스터 L 그래비, 위의 책 211~212p[3] 원래는 특정 종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다신교 신자들 입장에서 본 종교가 없는 사람들 즉 유일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출처는 이븐 카시르의 꾸란 주해서[4] 만다야교도들만 이런 건 아니고 동로마 제국의 이교 철학자 박해를 피해 사산조 페르시아로 이주한 이교 철학자들도 상당수가 자신들이 사비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탄압을 피하고 권리를 보장받은 것으로 추정된다.[5] 오늘날 만다야교 신도들이 제일 많이 거주하는 국가는 스웨덴이라고 한다. 만다야교 신도 8,500여 명 이상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