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오(킹덤)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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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누가 범장이냐?'''라고 한다. 첫째 가이드북에서는 팔이 잘린 능력치가 반영되지 않았다.
킹덤의 등장인물. 진나라의 명장 몽무의 부친이자 몽념, 몽의의 조부. 몽무를 연상케 하는 거구와 인자한 외모를 갖춘 대장군. 일명 백로 (白老) 장군. 성우는 이토 카즈아키.
2. 상세
자타공인 범재다. 산양 함락전 개막과 동시에 진시황의 질문에 답하는 창문군은 범용한 장군이라고 평했고, 심심하면 몽오와 싸우라는 왕의의 조언을 염파로부터 전해들은 강연은 몽오가 그럴 만한 재능이 있었냐며 의아해 했다. 아들과 손자인 몽무와 몽념보다도 각각 군재가 떨어진다. 몽오의 무공은 대부분 환의와 왕전 덕에 쌓은 것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산양 함락전 도중에는 환의가 다섯, 왕전이 여덞 성을 함락하는 동안 본인은 세 군데만 함락하고도 둘보다 늦게 산양에 도착했다. 또한 염파를 이기기 위해 구상한 요새를 염파에게 선보이는데, 몇십 년이라는 시간과 재산을 투자하며 만든 요새임에도 불구하고 염파에게 격파당했다. 본인도 유언을 남기던 중에 영웅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되지 못했다며, 자신이 지니지 못한 재능을 지닌 육대장군을 시샘하다 못해 빨리 죽기를 내심 바랐다고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백할 정도였다.
하지만 범재라고 까일지언정 (?)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실력이 없었다면 험난한 전국 시대에 이국인이 전국칠웅중 최강인 진나라에서 대장군이라는 직위에까지 오르는 것도 모자라 천수를 누리고 죽지는 못했을 것이고[1] , 실제로 산양 함락전 막바지에 염파는 몽오가 제나라를 떠나기 전까지 죽이지 못한 적은 몽오 단 한 명 뿐이었다고 말하며 몽오의 실력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염파 왈 불리해지면 바로 도망쳤다고.[2][3]
애초에 까이는 것도 작중 미친 수준의 천재들과 비교되며 어딘가에 특화된 재능이 없기에 범재라 평가절하되는 것이지 무능하다고 평가받지는 않는다. 범재라 불리는 존재가 말도 안 되는 천재들과 비교되는 시점에서 그의 능력 자체가 수준급임은 충분히 알 수 있다.[4] 또한 육대장군보다 오래 살며 대장군이 되게 해 준 관록은 결코 허투루 쌓은 것이 아니다. 몽오 본인이 본진에서 버티는 동안 왕전과 환의가 전장을 휩쓰는 필승 전략을 고수하는데, 이런 망치와 모루 전술도 모루의 실력이 부족하면 성립하지 못한다.
범용하다는 냉혹하기까지 한 평가를 받아도 어느 의미로는 가장 중요한 산양 함락전의 지휘관으로까지 임명되었는데, 이는 정석에 충실하기에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는 약해도 약한 상대에게는 절대로 지지 않는 실력은 갖추었고, 따라서 전국칠웅 중 약국에 속하는 한나라와 위나라를 상대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장군이었기 때문이다. 약자가 강자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강자의 방심을 유도하거나 약점을 찔러야하는데 창평군이나 창문군이 범장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러한 경우를 걱정하지 않는것을 생각하면 일체의 방심도 약점도 없는 장군인 듯.
전투법은 자신의 무용이나 기책에 의존하지 않는 정석중에 정석으로 시간이 걸려도 병사들을 무리시키지 않고 차근차근 진행하는 편. 그렇다고 기책 자체를 부정하는 우장도 아닌지라 필요하면 그것을 채용하는 유연함도 겸비하고 있다. 성격 더럽기론 진군 제일인 환의조차 예를 표하는 덕장. 약한 적에게 강하다는건 의외의 상태에 빠지지 않는 우수한 장군이라는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작중에서 몽오와 비교해 모든 면에서 위인 염파는 천적중에 천적이라는 소리가 된다. 실제 젊은 시절 염파와 몇번이나 겨루고도 불리해지면 바로 철수했다고 하며 제를 떠나 진에 사관한후 수십년간 단 한번도 전장에서 마주치지 않았음에도 염파를 연구하는 집요함과 노력을 겸비힌다. 자신이 싸우는 일이 거의 없어서 오죽하면 직접 창을 들고 싸운게 마지막으로 염파랑 싸울때뿐으로 수십년간 같이 해온 직속부하들도 몽오장군이 이렇게 강했나하고 깜짝 놀랬다. 그리고 가진자가 적다는 축성의 기능도 가져서 대 염파용 진지를 구축하기도 했다.
합종군 방어전 때는 관록 덕에 장당과 더불어 함곡관을 방어하는 중심점이 되었고, 장당의 중독사 후에는 실질적으로 진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함곡관 공방전 당시 장당과 함께 성에 틀어박혀 싸우는 역을 맡은 것은 백전노장의 중량감 때문이라고 하며, 환의는 특유의 임기응변으로 배치된 것이라고 한다.
아들인 몽무가 공언했듯이 군재가 떨어지는 만큼 인재를 보는 안목은 귀신 같으며, 인재를 등용할 때는 출신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여씨 사주라는 직위에도 불구하고 진시황의 측근인 신에게 왕의의 창이 벅차면 자신에게 넘겨도 된다며 농담을 건넨 몽무의 부친이자, 신을 처음 만났을 때는 말에서 내려 대등한 눈높이에서 대화를 나누던 몽념의 조부다운 면모. 음지를 전전하던 왕전과 환의를 부장으로 삼았는데, 왕전은 명문가의 큰어른이지만 잠재적 반역자 취급을 받으며, 환의는 중범죄자다. 작품이 진행되며 둘이 전부 육대장군급 재능이라고 인증받는 걸 감안하면, 인재를 판별하는 눈이 귀신 같다는 말은 전혀 허풍이 아니다. 본래는 노비 출신이던 곽비도 몽오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천인장도 모자라 몽오의 측근이 되었으며, 역시 육대장군급 인재로 성장하는 신도 몽오 덕에 몽념, 왕분과 맞춰서 천인장이라는 중요한 계단을 밟았다.
백로라는 별명과 인지한 외모에 걸맞는, 주위를 감복시키는 인자한 성품을 지녔다. 성격이 지랄맞기까지 해도 나름대로 깍듯이 받든 환의가 좋은 예.[5] 산양 함락전 도중에는 자신의 전략을 밝히며 자신의 군대에게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다독이며 말단병들까지 아울러 자신의 형제이자 전우, 자식이라고 불렀는데, 몽오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사망 직후에 빈객과 하인들이 몽오의 자택 안팎을 빼곡히 채우고 통곡하며 흐느낀 모습을 보면, 평소에도 꽤나 부드러운 성격으로 아랫사람들을 잘 대해 주었던 것 같다.
인자한 성품과는 달리,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도 가지고 있다. 무공을 쌓기 위해 몽오 본인의 평가마저 깎이는 단점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장에서는 악귀와도 같은 환의를 등용했다. 산양 공략전 당시에는 염파를 이기기 위해 염파의 전법을 연구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투자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염파가 출진한 전장터에까지 몸소 달려가면서 몰래 염파를 약 40년 동안 관찰한 집요함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것도 제를 떠난 이래로 전장에서 단 한번도 마주친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애초에 영웅이 되고자 소유한 자산을 전부 처분하고 조국을 떠나, 밤에는 생면부지의 천민에게 머리를 숙여 잠자리를 비는 고된 방랑길에 오르는 건 어지간한 각오와 근성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자신에게 마지막에 이기고 도망치면 된다고 조언을 해준 답례로 예정에 없던 임시 천인장에 신을 임명하면서도 신에게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오장으로 강등시키겠다는 단서를 달고, 윤호의 목을 노리며 멋대로 행동한 몽염이 자신의 부장들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부장들에게 화를 내기는 커녕 웃으며 넘긴 것을 보면, 공과 사는 칼같이 구별하는 성격이다.
3. 작중 행적
3.1. 산양 공략전
첫 등장부터 대장군으로 등장한다. 조진 동맹이 성사된 기회를 틈타 중화통일의 첫 걸음을 딛으려는 진나라가 위나라의 요충지 산양을 함락시키기 위해 몽오를 출진시킨다. 부장인 환의, 왕전과 함께 20여 군데의 성을 함락시키며 전진하였고, 정석대로만 성을 공략하였기에 환의와 왕전보다 늦게 산양에 도착한다. 도중에 염파 사천왕의 일원 윤호가 유능한 부장들을 베어넘기는 바람에 인선에 차질을 겪었지만, 왕분, 몽념, 이신을 임시 천인장으로 발탁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 재정비한다.
산양으로 진군하던 도중 염파가 위군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듣고 손을 떨 정도로 내심 크게 동요한다. 염파는 오장으로서 데뷔하고 계급이 오를 때마다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 상대였으며, 연패를 기록하던 몽오가 결국 조국인 제나라를 떠나 고된 방랑길에 오르게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몽무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몽오는 노병으로 변장한 채 풀밭에 누워서 고민하다가 , 몽오의 정체를 모르는 이신의 충고[6] 를 듣고 호쾌하게 웃으며 고민을 덜고, 이튿날 충고에 대한 보답인지 특별히 신을 특정 조건[7] 하에 임시 천인장으로 승급시킨다.
이후 전투에서 왕전과 환의를 위해 위군의 공세를 방어하고, 마지막 날에는 염파가 본진으로 쳐들어오자 도망치지 않고 일기토를 치루며 몽무의 부친다운 괴력을 보인다. 비록 염파에게 왼팔을 잃기는 했지만, 몽오가 시간을 끈 사이에 염파의 한쪽 팔인 윤호가 이신에게 죽고, 위군의 본진도 환의에게 함락당한다. 자신이 외통에 몰렸으며, 벽이 부대를 이끌고 몽오를 구출하러 오는 걸 본 염파의 화친 요청을 수락하고 승리를 거둔다.[8]
결국 마지막까지 염파를 상대로 한 전투에선 승리하지 못했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하여, 자존심 강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염파조차 깨끗하게 인정한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3.2. 합종군 방어전
함곡관 방위전에선 합종군을 상대로 하는 진군의 중심으로서 톡톡히 그 역할을 수행한다. 함곡관 방위를 맡은 무장 중 장당과 몽오를 빼면 모두 비교적 젊은 무장이었고, 유일하게 둘의 동기뻘인 표공은 전선에서 직접 싸우는 데 더 적합했기에 사령관의 역할은 장당과 몽오가 맡을 수밖에 없었다. 장당이 중독사한 후에는 실질적으로 총사령관이 되어 진군을 지휘한다. 장당 님이라며 존대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장당 또한 몽오에게 존칭을 쓴다. 젊은 시절 잘나가던 육대장군이 매우 싫었다며 투덜거리다 오래 사는 것도 재능이라면 그 쪽에서는 우리들이 이겼다면서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킬킬거리기도 했다.
합종군이 해산한 지 약 1년 후에 사망한다. 임종을 앞두고 찾아온 몽념과 이신에게 회한에 찬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제나라 출신이지만 영웅이 되기 위해 조국을 떠나 여기저기 떠돌은 끝에 간신히 진나라에서 대장군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간신히 도착한 진나라에서도 육대장군이 있어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며 괴로운 표정을 짓고 한을 털어놓는다. 이후 유언[9] 을 남기고 앉은 자세 그대로 미소를 지은 채 편하게 사망한다.
몽염은 몽오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있어서 천하 제일의 대장군은 육대장군이 아니라 몽오였다고 슬퍼한다. 최전방에 주둔해있던 몽무는 전방의 적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는 바람에 몽오의 임종을 지킬 수 없었다. 몽무는 몽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무표정하게 알았다고 했지만, 홀로 술을 마시며 몽오와 함께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 떠돌며 고생하던 시절을 떠올리고, 지독히도 긴 여정이었다고 독백하며 술잔을 들어올려 몽오의 명복을 빈다.
환의는 몽오 사후에 함락시킨 성의 포로들을 산 채로 묶은 후, 몽오에게 바치는 공물이랍시고 전부 화형시켜 몽오에게 나름대로 예를 표했다.
몽오의 죽음은 킹덤 이야기에서 나름대로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데, 왕기가 마지막 육대장군이라면, 몽오는 왕기, 장당, 표공을 비롯한 진나라의 대장군 중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즉, 몽오의 죽음으로 기존 진나라의 대장군들이 모두 퇴장하고, 새로운 진나라의 대장군, 새로운 육대장군이 등장할 시대임을 암시한다.
3.3. 외전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몽무가 장군으로서 실적을 쌓아갈 때 몽오보다 빠르다는 식으로 언급된다. 또한 혈기가 넘치던 몽무가 싸움만 하고 다니는 걸 금지시켰다고 하는데, 행인이 몽무는 부친 이상으로 혈기왕성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본편과는 달리 상당히 드센 성격으로 설정된 듯하다.
[1] 사망장면이 나온 장수중 유일하게 천수를 누리며 죽었다[2] 물론 일기토가 아닌 전쟁에서는 '''잘 도망치는 것도 실력'''이다. 단순히 도망치는 걸로는 군세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후방의 적들에게 금방 따라잡히고 다 죽기 때문.[3] 작중 직접적으로 묘사된 바는 없지만 이 시기 제나라는 전토가 유린되어 성 2개만이 남아 간신히 유지되던 시절이다. 이 시절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다는것 자체가 평범한 인물은 아님을 증명한다.[4] 공식능력치만 보면 조나라의 삼대천 후보 경사와 동일한 수준이다. 물론 경사는 한창 성장 중인 젊은 장수지만, 적어도 평범한 장군이나 몽오를 범용하다고 평가한 창문군보다는 몽오의 군재가 훨씬 위임을 보여준다.[5] 산양 함락전에는 몽오가 없는 자리에서는 노친네라고 부르긴 했지만 몽오를 맞이할 때는 정중히 절을 하며 존댓말까지 했다. 합종군 방어전 때 중독된 장당이 몽오를 들먹이며 환의를 몰래 호출했는데, 호출에 응한 환의는 몽오가 없다는 사실을 알자 정색하고 그대로 떠나려고 했다. 상관이자 선배인 장당은 반말을 쓰며 무시해도 몽오의 명은 기꺼이 응할 정도로 몽오를 존중하고 따른 셈이다.[6] 산양 함락전이야말로 최후의 역전을 이룰 기회이며, 이번에 이기고 도망치면 몽오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것.[7] 전투가 끝나기 전에 천인장 셋 혹은 장군 하나의 목을 벨 것.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오장으로 강등시키겠다고 했지만, 신이 자진하여 병졸로 내렸다.[8] 염파가 필패하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개자방과 염파 자신의 부대로 싸우면 몽오, 몽염, 신을 모두 죽일 수 있었기에 몽오가 화친 요청을 수락하였다.[9] 왕분, 몽념, 이신이 서로 경쟁하고 어울리며 함께 성장하여 영웅이 되라는 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