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1. 개요
이집트와 아프리카교회의 수장. 현재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는 교회별로 3명이고, 그 중 두 명이 "'''교황'''(Παπας, Ⲡⲁⲡⲁ)이자 총대주교"이다. 제13대 총대주교 헤라클레우스 때부터 교황의 명칭을 사용했으며, 로마 교황청 또한 이 칭호를 인정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교회가 정교회와 콥트 정교회로 분리된 건 이 이후의 일인데 둘 다 교황이라는 명칭은 고스란히 가져갔다. 그러나 정교회나 콥트 정교회 내에서도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들이 가톨릭의 교황처럼 특별히 주교들의 으뜸가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Παπας'/'Ⲡⲁⲡⲁ'를 교황이라는 말보다는 '아버지'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맞다고 볼 수 있다.
2. 위상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를 기준으로 할 때, 전체 교회에서 로마 다음가는 주교좌(곧, 동방에서 가장 대우 받는 주교좌)가 바로 알렉산드리아였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좌가 동로마의 도성에 있다는 이점을 통해 부상하면서 교회정치적으로 알렉산드리아와 충돌하게 되며, 여기서 로마는 대체로 친알렉산드리아 노선을 타는데[1] 바로 이 관계가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칼케돈 공의회까지 4차레 세계 공의회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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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교회는 기원후 69년 복음사가 성 마르코에 의해 세워졌다는 전승에 따라 초대 주교의 이름에 마르코를 올려두었다. 한편 마르코가 자신의 제자를 초대 주교로 임명했다는 설도 있다. 전승에 의하면 마르코는 베드로와 바오로가 순교한 뒤 로마를 떠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현지 주교로서 교회를 발전시켰지만,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일면서 체포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마르코는 목에 줄을 매 읍내를 돌게 되고 참살당하게 된다. 사후 마르코의 유해는 알렉산드리아에 매장되었지만, 나중에 이집트가 이슬람권에 편입되면서 그의 무덤이 훼손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다행히 당시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베네치아 상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 성 마르코의 유해를 옮길 계획을 세우게 된다. 밀수과정에서 세관에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슬림이 만지지도 못하는 돼지고기로 유해를 덮어 세관을 통과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성인의 유해는 별 탈 없이 배에 오르고 베네치아를 향해 무난한 항해를 해 오늘날 산 마르코 대성당에 모셔질 수 있었다. 서기 827년의 일이다.
13대 헤라클라스 총대주교(재임 227~240) 때에 교황(Παπας[파파스], 사실 어원적으로 교황보다는 "아버지"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으며, 25대 디오스코루스 1세를 시작으로 알렉산드리아의 합성론파들이 칼케돈 신조에 반발하자 칼케돈파 총대주교와 비칼케돈파 총대주교가 양립과 통합을 반복하는 등 극심한 혼란기를 겪었다. 그러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황제권을 이용하여 비칼케돈파를 완전히 축출한 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알렉산드리아의 정교회 총대주교구이다.
하지만 7세기 들어 이슬람 세력이 동로마 제국을 격파하고 이집트를 차지하게 되면서, 일명 '황제파'(멜키트)라 불리우던 칼케돈파 정교회를 엄청나게 탄압했다. 이후로 이집트는 쭉 이슬람 세력권에 있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정교회 총대주교구는 10세기 가까이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는 안습한 상태로 전락한다.
이후 19세기 들어 그리스인들의 이집트 이민이 대거 급증하면서[2] 알렉산드리아 교회 또한 크게 성장하게 되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2년 새로이 착좌한 콥트 교회의 총대주교 이름이 '타와드로스 2세', 즉 그리스식으로 명명하면 '테오도로스 2세'인데, 현재 정교회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의 이름 역시 '테오도로스 2세'이다. 각기 역사적 이유로 갈라져 동일하게 복음사가 성 마르코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두 교회 수장이 공교롭게도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미 착좌해 있던 정교회 테오도로스 2세도 타와드로스 2세에게 보내는 축전에 '이름이 같은 우리 두 사람이 같이 잘해보자'는 식으로 축전을 보내기까지 했다.
4. 정교회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교황)
정식 직함은 '위대한 도시 알렉산드리아와 리비아, 펜타폴리스, 에티오피아, 전 이집트 및 전 아프리카의 교황(또는 아버지)이자 총대주교...'가 끝이 아니고 여기에 뭐가 많이 붙어도 엄청 많이 붙는다.
- 거룩한 신부이자 최고 목자
- 위대한 도시 알렉산드리아, 리비아, 펜타폴리스, 에티오피아, 전 이집트 그리고 전 아프리카의 아버지-총대주교
- 신부 중의 신부
- 목자 중의 목자
- 대사제 중의 대사제
- 13번째 사도
- 보편교회의 재판관(Ecumenical Judge)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는 이집트 내에서 25만~30만 명, 그 외 아프리카 대륙 내에 135만 명 정도의 신자를 거느린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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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총대주교직은 그리스 크레타 태생인 129대 총대주교 테오도로스 2세(2004–)가 맡고 있다. 총대주교좌는 7세기부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위치한 '성모 희보 대성당'에 있다.
4.1. 관할 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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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좌가 소재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성모 희보 대성당
말 그대로 '''아프리카 전역'''을 관할 구역으로 두고 있다. 이하는 산하 교구 목록이며,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교구는 제한다. 괄호 안은 교구의 관할권이며, 괄호가 없는 교구는 국가 이름이거나 이집트 내의 지역들이다. 교구 명칭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청 홈페이지에서 발췌했다.
- 악숨 대교구(아프리카의 뿔)
- 멤피스 대교구
- 펠루시움 대교구
- 케냐 대교구
- 캄팔라와 모든 우간다 대교구
- 짐바브웨와 앙골라 대교구
- 나이지리아 대교구(나이지리아, 니제르, 베냉, 토고)
- 트리폴리 대교구(리비아)
- 희망봉 대교구(동케이프주(州)·북케이프주·서케이프주·쿠아줄루-나탈주·자유주 등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부분 지방, 레소토, 나미비아, 스와질란드)
- 키레네 대교구
- 현 키레네 대주교는 모스크바에 소재.
- 카르타고 대교구(알제리, 모리타니, 모로코, 튀니지)
- 므완자 대교구(탄자니아 서부)
- 프톨레마이스 대교구(상(上)이집트[3] )
- 기니 대교구(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기니, 기니비사우, 감비아, 세네갈, 카보베르데)
- 헤르모폴리스 대교구(이집트의 아랍어를 사용하는 정교회인들)
- 이리누폴리스 대교구(탄자니아, 세이셸)
- 잠비아와 말라위 대교구
- 요하네스버그와 프리토리아 대교구(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북동부 지방)
- 마다가스카르 대교구(코모로, 마다가스카르, 마요트, 모리셔스, 마요트, 레위니옹)[4]
- 카메룬 대교구(카메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차드, 적도 기니, 가봉, 상투메 프린시페)
- 레온토폴리스 대교구(이집트 북동부)
- 아크라 대교구(가나, 코트디부아르, 부르키나파소, 말리)
- 카르툼 대교구(수단, 남수단)
- 중앙 아프리카 대교구(콩고민주공화국)
5. 콥트 정교회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교황)
정식 직함은 '위대한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교황이자 대주교이자 복음사가 성 마르코의 거룩한 정통 사도좌로서 이집트, 리비아, 펜타폴리스, 누비아, 수단,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와 전 아프리카의 총대주교'. 이 역시 끝이 아니고 1의 인물 보다도 뭐가 더 많이 붙는다.
- 위대한 도시 알렉산드리아 교구, 대 카이로 관구의 아버지-대주교
- 복음사가 성 마르코의 거룩한 정통 사도좌로써 이집트, 리비아, 펜타폴리스, 누비아, 수단,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와 전 아프리카의 총대주교[7]
- 이집트관구의 수도대주교
- 북아메리카의 수도대주교
- 이집트, 펜타폴리스, 누비아, 수단의 수석주교
- 복음사가이며 사도 순교자인 성 마르코의 후계자
- 신부 중의 신부
- 목자 중의 목자
- 모든 대사제들의 대사제
- 알렉산드리아 신학교 학장
- 사도 중의 13번째
-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오는 교회의 보편 재판관
-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오는 교회와 정통 신앙의 기둥이자 수호자
총대주교좌는 이집트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의 '성 마르코 대성당'에 있다. 두 도시에 이름이 똑같은 총대주교좌 성당이 하나씩 있는 것. 본래 알렉산드리아에만 있었으나, 총대주교 관저를 카이로로 옮기면서 카이로에 제2의 총대주교좌 성당을 세웠다. 물론 다른 기관들은 다 알렉산드리아에 그대로 남겼다.
이집트 내에서만도 대략 600만~1200만 가량의 신자가 있는 걸로 추정되므로 1에 비하면 교세가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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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총대주교직은 타와드로스 2세인데, 저 타와드로스를 그리스어로 번역하면 테오도로스로, 현직 1의 인물과 '''이름이며 2세가 붙은 것까지 똑같다.''' 그래서 타와드로스 2세가 2012년 11월 취임할 당시 2004년부터 재임 중이던 1의 테오도로스 2세가 '이름이 똑같은 우리끼리 잘해보자'라는 식으로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콥트 정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방법은 꽤 특이하다. 일단 주교들 중 교황 후보들이 나타나고, 주교들은 후보들 중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투표 종이에 적는다. 이 중 많은 표를 얻은 후보들의 이름을 골라 성작에 넣고, 일요일 의식으로 어린아이가 눈을 가린 상태에서 성작에서 후보들 중 한 명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꺼낸다. 그러면 그 종이에 써 있는 주교가 바로 교황이 되는 식이다.
다만 선출 과정에서 현재 문제는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이다. 콥트 정교회 규정에는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및 다른 아프리카의 합성론파 기독교가 따르는 콥트 정교회 교황 선출에는 에티오피아 황제 및 황제가 선출한 20명의 에티오피아인이 참가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서 문제는 마지막 에티오피아 황제인 하일레 셀리시에 1세는 1974년에 폐위되었다는 것이다. 선출방식의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 콥트 정교회 교황 선출에는 선출된 인물에 대한 이집트 대통령의 동의서도 필요하다. 이집트 대통령의 동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콥트 정교회 교황으로 승인되기 전까지는 교회협의회가 교회 공동체를 지도한다.
자세한 역사는 콥트 정교회 문서 참고.
6. 콥트 가톨릭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정식 직함은 '알렉산드리아의 콥트 가톨릭 총대주교'. 콥트 가톨릭은 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원으로서, 콥트 가톨릭 교회 내 회의를 통해 투표로 선출하면 이를 로마 교황이 추인하는 형식으로 임명된다. 같은 전례인 콥트 정교회와 달리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므로, 콥트 정교회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와 달리 교황 칭호는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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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총대주교는 이브라힘 이사악 시드락(إبراهيم إسحاق سدراك)이다. 총대주교좌는 이집트 카이로에 위치해있다.
1824년 알렉산드리아에 총대주교좌가 설정되었으며, 1895년 키릴로스 마카이오스가 첫 번째 총대주교로 임명되었다.
2010년 기준으로 16만 명 정도의 신자를 거느린 것으로 알려졌다.
[1] 왜냐하면 도시의 정치적 위상이 주교좌의 위상을 좌우한다는 식의 콘스탄티노폴리스식 전제가 로마의 이해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로마의 이해에 의하면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는, 비록 알렉산드리아는 마르코를 통해서 간접적 방식일 순 있으나, 베드로 사도에게 연결되므로 콘스탄티노폴리스와는 케이스가 다르다.[2] 1940년대에는 이집트 내 그리스인들의 숫자는 25만 명에 달하기도 했다. 이후 1953년 혁명의 여파로 많은 수가 이집트를 떠났지만, 여전히 이집트 내에서 그리스인은 주요 소수민족들 중 하나이다.[3] 이집트 남부를 말한다. 나일강 상류라서 上[4] 현 마다가스카르 대주교인 이냐시오스의 프로필에는 특이사항으로 한국어를 구사한다고 나와 있다. 사실 이냐시오스 대주교가 사제 시절인 1970년대 중반에 2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사제로 봉직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인연으로 2015년 11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과 인천의 정교회 성당에서 성찬예배를 집전한 적이 있다.[5] 콩고민주공화국의 주(州)중 하나.[6] 콩고의 수도.[7] 다만,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교회는 현대에 들어 알렉산드리아에서 따로 독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