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총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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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정교회의 예루살렘 총대주교
3.1. 관할 교구
4.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예루살렘 총대주교
4.1. 개요
4.2. 역사


1. 개요


성지 관리를 담당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 현재 예루살렘 총대주교는 교회별로 3명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교회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으며, 복음이 이곳에서 전세계로 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마 제국과 유대인들의 분쟁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는 쇠락해갔고, 초대 교회 5대 관구 중 로마 교황좌,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좌,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좌,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가 각각 가톨릭, 정교회, 콥트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반면 예루살렘은 특정 교파의 구심점 역할은 못하고 현재 성지 관리만 하는 상태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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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이나 바울로 서간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첫 번째 지도자는 '의인 야고보'이리라는 정황이 드러난다.[1] 또한 초기 기독교 교부 에우세비오(Eusebius)는 '교회사'에서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주교였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가톨릭은 예수의 사촌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소(小)야고보를 동일인물로 보지만, 정교회는 두 사람을 별개의 인물로 여긴다는 것. 이 문서는 어느 정도 정교회의 입장에서 작성되었으며, 이 야고보는 예수의 사촌 야고보로 간주한다.
예루살렘은 초창기 기독교의 총본산이자 중심지였지만, 이내 인접한 대도시 안티오키아에서 교회가 급성장하고 뒤이어 2차에 걸친 유대-로마 전쟁을 통해 예루살렘 도시 자체가 몰락함에 따라 예루살렘 교회의 세력도 줄어들었다.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된 후 로마와 비잔티움 제국 치세 아래 그럭저럭 무난한 포지션을 잡았다. 이후 예루살렘은 카이사리아 관구에 속했다가 451년 칼케돈에서 소집된 칼케돈 공의회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함께 총대주교좌 교회로 설정되었다. 하지만 총대주교좌로 정해진 후 쏜살같이 서열 2위까지 올라간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달리 예루살렘은 계속 5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단성론에 관해서 아예 교회가 반토막난 알렉산드리아안티오키아에 비하면 홍역을 좀 덜 치른 편이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의 와중에는 콘스탄티노플로 총대주교좌가 피난가기도 하고... 1187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3. 정교회의 예루살렘 총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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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총대주교의 문장.
공식 직함은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강 너머 갈릴래아의 카나와 거룩한 시온의 총대주교'. 일반적으로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과 전 팔레스타인의 총대주교' 정도로 일컫는다.
상징적인 의미로만 설치된 총대주교는 아니고 현재도 그리스 정교회에 소속된 아랍계 기독교인 인구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중심으로 많이 남아있다. 1922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시행한 인구조사에서 팔레스타인 내 기독교인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 말고 비잔틴 예법을 따르는 정교회만) 신도로 나왔고, 시리아 바트당 사상가 중 미카일 아플라크도 정교회 신도였다. 다른 아랍계 기독교인들과 다르게, 그리스 정교회를 믿는 아랍인들은 자신들이 아랍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한 편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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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총대주교는 그리스 태생의 142대 총대주교 테오필로스 3세(재임 2005–)이다. 전임 총대주교 이레나이오스가 예루살렘 내 정교회 소유 부지를 유대인 투자자들에게 팔아넘긴 혐의로(...) 교구의회 투표로 파면당한 뒤 새 총대주교로 선출되었다. 전임 총대주교 이레나이오스 총대주교는 평사제로 강등당했는데, 결백을 주장하며 매매계약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계약 당시 측근이 그를 대신해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밝혀졌다. 총대주교좌는 이스라엘 예루살렘부활 기념 성당에 있다. 예루살렘 총대주교 관하의 신자는 13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3.1. 관할 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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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정교회 관구들
'''예루살렘 총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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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는 구분을 위해 Metropolis를 관구로, Archdiocese를 대교구로 번역했으나, 한국 정교회에서는 Metropolis 또한 대교구로 번역한다. 교구명은 예루살렘 총대주교청 홈페이지위키백과에서 발췌했다.
  • 카이사레아 관구
  • 스키토폴리스 관구
  • 페트라 관구
  • 나자렛 관구
  • 네아폴리스 관구[3]
  • 카피톨리아스 관구
  • 보츠라 관구
  • 엘레우테로폴리스 관구
  • 필라델피아 관구[4]
  • 게라사 대교구
  • 티베리아스 대교구
  • 아빌라 대교구
  • 요파 대교구
  • 콘스탄티나 대교구
  • 타보르 대교구
  • 요르단 대교구
  • 세바스티아 대교구
  • 아스칼론 대교구

4.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예루살렘 총대주교



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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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직함은 '예루살렘의 아르메니아인들의 총대주교'. 현 총대주교는 누르앙 마누기앙이다. 총대주교좌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아르메니아인 구역에 위치해 있다.

4.2. 역사


638년, 예루살렘 총대주교직은 불명의 이유로 공석이 되었다. 이 틈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르메니아인들이 정착해있던 성지 예루살렘에 총대주교구를 설치하고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관하의 신자는 7천 명 정도이다.

5. 가톨릭의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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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좌는 프란치스코회 출신의 이탈리아 고위 성직자인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Pierbattista Pizzaballa)가 2020년 10월 24일부로 사임한 푸와트 트왈 이후 공석 상태였던 총대주교직을 이어 받았다. 성지관리처장이던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신부는 전임자 트왈의 은퇴로 대주교로 임명되어 예루살렘 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었다. 다른 지역 총대교구와 달리 지역적으로 두드러지는 동방 정교회 또는 오리엔트 정교회도 없고, 동방 가톨릭 교단 내에도 예루살렘 총대주교를 칭하는 주교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4년 가까이 공석은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게다가 임명된 피자발라는 34년만에 비 팔레스타인인이 임명된 경우이다. 중동 지역의 최고위 성직자로 이탈리아인이 임명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들이 주로 봉사하는 민족 집단의 구성원에게 배정되는 관습에 따르면 역시 이례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그의 직계 전임자는 팔레스타인 인과 요르단 인이었음을 고려하면 전통을 깨뜨렸다고 볼수 있다. 참고로 피자발라는 아랍어는 물론 모국어 이탈리아어와 영어, 히브리어, 심지어 아람어까지 구사 할 수 있는 먼치킨이다.
1965년을 끝으로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의 라틴 총대주교직은 폐지되었으나 예루살렘의 경우는 팔레스타인 지역 일대의 사목을 위해 총대주교직을 존속시켰다.[5] 현재는 관구 관할 없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키프로스 4개국의 로마 가톨릭 신자를 관할하고 있다.

[1] 사도행전 15장[2] 자세한 내용은 아랍계 기독교인 문서 참조. 대표적으로 마론파는 자신들을 아랍인으로 간주하는 것보다는 고대 페니키아인의 자랑스러운 직계 후예로 생각하는 것을 더 선호하며, 이라크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을 고대 아시리아인의 후손으로 정의하는 편이다.[3] 구약성서에 '셰켐'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다. 나블루스라고도 한다.[4] 미국의 필라델피아와는 전혀 다른 지명이다. 현재 지명은 터키의 알라셰히르.[5] 예루살렘 성지 관리의 경우, 별도 설치된 교황청 직속의 성지관리처가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