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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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해설자. 2015년부터 2016년까지 건국대학교 축구부 감독을 맡았다.
성남 일화 천마의 레전드 선수. MBC SPORTS+ 해설위원과 아프리카 TV에서 소대수 캐스터와 함께 EPL 등 축구해설을 하고 있다. 이른바 '막걸리 해설'이라는 독특한 해설을 하여 인기를 얻었다.
유튜브 '가레스TV'를 2019년 8월 말부터 시작해 다양한 컨텐츠로 축구팬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2020년 5월 24일 기준 구독자 1,650명.
2. 선수 경력
선수 시절은, 빠른 발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오른쪽 윙어 혹은 측면 미드필더였다. 저돌적인 클래식 윙어들밖에 없었던 당시에는 '''희귀한 기교파 테크니션 윙어'''로서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이른바 이영표의 특기로 유명한 '헛다리 짚기'를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였던 축구선수이며, 상대를 등졌다가 턴을 해서 돌아나오는 페인트 모션을 쓸 때마다 큰 화제를 불렀다. 단순한 피지컬과 주력을 이용한 돌파와 치고 달리기 일색이였던 윙어들 틈바구니에서 화려한 기술과 테크닉으로 K리그를 3연속 제패하고 태극전사까지 승선한 근성가이다.
같은 시기 대표팀과 리그에서 한솥밥을 먹은 고정운과 비교하면 선명하게 나타나는데, 축구선수 치고는 피지컬이 약간 부족했다. 178cm에 체중은 68kg였다고 하는데, 그나마 평상시 체중은 훈련을 하고 65kg, 시합을 뛰고 나면 62kg까지 떨어졌다니...
그래도 신태용, 김도훈, 박남열, 안익수, 고정운 등과 같이 성남 일화 천마의 3연패를 이끈 레전드 선수로 축구 팬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A매치 29경기 12골을 기록한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A매치 출전경력이 다소 적어보이지만 득점률이 40%에 달했다는 이야기다. 특히, 큰 경기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었던 장면이 많아서 '''골든 보이''' 이미지가 있다. 지금은 황선홍의 골키퍼 앞에서 몸을 누운 모양으로 공중으로 띄워 차 넣은 결승골만이 기억되는 1998년 4월 1일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 완전 구석에 꽂히는 절묘한 헤딩슛으로 선제골을 넣은 선수가 바로 이상윤이다.
선수 생활을 은퇴한 이후, 틈틈히 축구 해설자로 활동했으며, 특유의 가래 끓는 걸걸한 목소리가 마치 막걸리를 마시고 해설을 하는 것 같다고 해서 이른바 '막걸리 해설'로 불리면서 더욱 유명해졌으며,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이상윤 어록'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이상윤은 술을 전혀 못 마신다고 한다.#
2.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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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일화 천마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며, 특히 1993 시즌부터 1995 시즌까지 일화가 K리그 3연패를 하는데 주역으로 활약했다. 지금도 성남 일화 천마 레전드로 인정받고 있다.
1993년 '''K리그 MVP'''를, 1996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95년 20-20 클럽에 가입한 것을 시작으로, 1996년 30-30, 2001년 40-40 클럽에 가입했다. 이 스탯만 봐도 알겠지만 리그에서 수위권을 다툴 만한 공격력을 가진 미드필더였다. 선수 시절 통산기록은 262경기 출전에 64득점.
여담으로 성남 일화 천마 문서를 보면 나오지만, 팀의 연고이전의 역사가 좀 복잡하다.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1990년 서울 시절에 데뷔해서, 천마 시절에 리그 3연패 위업을 달성했고, 성남 일화 천마에서 활약하던 시절부터 개인적인 리즈시절을 맞는다.
다만, 한창 절정을 달리던 시기 뜻밖의 풍파를 겪는데, 1995년 팀내 최다 득점자였지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여겨서 이적을 요청했다가 박종환 감독에게 찍혀서 '''임의탈퇴''' 신분이 된다. 결국 3개월 동안 잉여취급을 받다가 박종환 감독에게 싹싹 빌어서 팀에 복귀했지만, 이 경험은 상당한 상처가 된 듯 하다.[2]
이후, 박종환 감독이 팀과 불화를 겪고 해임된 뒤 1997년 벨기에인 레네 감독이 부임하면서 이상윤을 중용했고, 이때 활약을 눈여겨 봤는지 차범근 감독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에 부른다. 훗날 은퇴 한 뒤 인터뷰를 보면 레네, 차범근 두 감독에게 고마운 감정을 숨기지 않지만 박종환 감독에 대한 말은 딱히 없다(...). [3]
1999년 프랑스 르 샹피오나의 FC 로리앙에 입단하였으며 진출 초반만해도 큰 기대를 받았으나 내성적인 성격에 문화적인 차이까지 극복하지 못해 4경기 출전 0골 0 어시스트라는 기록을 남기고 2000년 원래 소속 팀인 성남 일화로 복귀했다.
2001년 많은 기대를 받고 부천 SK로 이적했으나[4] 시즌을 앞두고 출발 드림팀 촬영에서 왼쪽 팔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 시즌 초를 통채로 아웃, 시즌 중반 복귀했으나 이전과 같은 활얄을 보이지 못한 채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고, 새 소속팀을 구하지 못한 채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2.2.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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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노르웨이전을 통해 대표팀에 데뷔했는데,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 골'''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재미있게도 이 날, 같이 A매치를 데뷔했던 선수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이후 황선홍, 홍명보와 함께 차세대 유망주로 꼽히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에 뽑혔다. 그러나, 황선홍, 홍명보 두 사람은 본선 경기에 출장했지만 이상윤은 벤치를 지켜야만 했다.
K리그에서 보여준 뛰어난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1992년 다이너스티컵을 끝으로 한동안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었다. 지금은 좀 쇠퇴한 감이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국가대표팀은 전통적으로 뛰어난 윙어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고정운, 서정원 말고도 노정윤, 하석주 등등 쟁쟁한 선수들과 포지션 경쟁을 벌여야 했으니... 지못미...
그러다 전술한 바와 같이, 빠따박이 식스투 참사로 경질되고 난 뒤 차범근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대표팀의 개혁을 추진했고 이상윤을 대표팀으로 다시 부르게 된다.[5] 그리고 1998 프랑스 월드컵의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일약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특히 월드컵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에서 1:1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기 직전 후반 42분 극적인 역전골을 넣으면서 대표팀의 에이스로 대접을 받는다. "그저 한 골 넣은 게 뭐가 대단한가?" 궁금하실 분들도 계실 텐데,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해야 한다. 1996년 아시안컵 씩스투 참패 이후로 대중들은 국가대표팀에 대한 불신의 시각을 갖고 있었고,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국으로서 납득할 만한 성적을 내야했다. 또한, 소련 붕괴 이후 새롭게 등장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구소련의 축구실력을 어느 정도 이어받은 경계대상이었다. 지금이야 꿀대진표 소리를 듣지만, 당시엔 그런 암울한 분위기가 은근히 깔려있었다.
그런데, 이 극적인 역전승 덕분에 기분 좋은 2연승으로 승점을 따내면서 최종예선에서 한발 앞선 국가대표팀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원정을 떠나는데... '''이렇게 도쿄 대첩의 서막이 올랐다!'''
결국 대표팀은 일찌감치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고, 예선 내내 최용수, 서정원, 이상윤의 눈부신 활약 덕분에 대중들은 잔뜩 고무되어 있었다. 본선 직전 한중 친선전에서 황선홍이 불의의 부상을 입고 전력에서 이탈하며 대표팀은 순식간에 초상집 분위기가 됐지만 그래도 '황선홍이 없어도 최용수, 이상윤이 골 넣어서 이길거임.' 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본선 첫 경기 멕시코 전에서 이상윤은 '''정줄을 놓았다.''' 좋게 말하면 컨디션 난조겠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플레이를 연발하면서 삽질이란 표현조차 아까울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이날 이상윤은 비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정줄을 놓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결국 하석주의 백태클 퇴장으로 더욱 상황이 악화되었고 멕시코전을 결국 1-3으로 참패를 하게 된다.
훗날, 이상윤이 그 때의 사정을 자세히 밝혔는데..... 1990년대 한국축구의 후진성을 여실해 드러낸 씁쓸한 해프닝이었다. 경기 직전 몸을 풀고 세트피스를 연습하던 도중, 이상윤은 '''김태영이 슈팅한 공에 얼굴을 맞고 기절'''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킥 오프. 이랬으니 '''진짜로 정줄을 놓았을 수 밖에'''.[6] 이상윤 본인도 역시 이 때의 사명감 때문에 억지로 경기를 뛸 것이 아니라 팀닥터에게 상태를 말하고 빠졌어야 했다고 후회스럽다고.
결국 대표팀은 1무 2패로 프랑스 월드컵에서 탈락하고, 이상윤의 영광스러운 시대도 이렇게 아쉽게 끝을 맺었다. 선수시절 A매치 통산 기록은 29경기 12골로 A매치 경력이 적은 것을 감안하면 꽤나 준수한 편.
3. 축구 해설위원
3.1. MBC 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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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프랑스 월드컵 시절 감독이었던 차범근 눈에 들었는지 은퇴 후에 차범근 축구교실의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7]
이후 MBC ESPN의 축구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며 '''특유의 막걸리 해설'''로 주목을 받았다.
해설자로서의 평가는 호불호가 굉장히 갈리는 편인데, 유럽축구만을 주로 보는 사람들은 이상윤 위원 스타일에 부정적이다. 물론 이런저런 잡학이나 유쾌한 농담을 늘어놓으며 재미있게 해설하려 한다는데는 다들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갈수록 그게 심해져서 해설의 깊이가 부족하다. 그가 해설을 맡으면 내용이 없다며 소리를 끄고보는 사람도 있다. 자주 웃으며 하는 해설도 호불호가 갈리는데 재미있다는 옹호론도 있지만, 집중해서 경기를 보고 있을 때 결정적인 상황마다 크게 웃으며 여러가지 말을 늘어놓는 그의 해설을 들으면 맥이 끊긴다는 사람도 있다. 발전을 더 바라는 평이 많다.
하지만 그가 가진 장점도 적지 않은데, 실제로 현장에서 직접 뛰어본 축구선수가 아니면 알기 힘든 미묘한 부분을 제대로 짚어주는 면모도 많다.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 톤은 그의 해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요소로 꼽힌다. 사실 해설이라는 것이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핵심인데 그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친근하고 유머스러운 모습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을 많은 사람이 좋게 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문성 부족은 유럽 축구 한정이며 본인이 현직에 있어봐서 잘 아는 한국 축구를 해설하는 경우 전문적 지식이 가미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남 FC 수석코치와 감독대행도 역임했고 건국대 감독도 2016년 현재 맡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 축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안다. 의외로 해설 위원 중에서 K리그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은데 사실상 한준희, 장지현, 박찬하, 김대길, 김환 등과 더불어 K리그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해설 위원 중 한 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K리그 팬들은 자주 흥분하는 모습에서 호불호를 가지지만 설사 그것때문에 싫다고 하더라도 대체적으로 이상윤 해설에 매우 호의적인 분위기다.
이와 별도로 MBC가 EPL를 중계했을 때부터 들었던 사람들 역시 이상윤을 알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불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해설은 주로 MBC SPORTS+에서 축구 중계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신승대 캐스터와 하고 있으며 신승대 캐스터와 조합은 좋다는 평이 많다. 처음에 신승대 캐스터가 이상윤 해설위원의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요즘 들어선 오히려 신승대 캐스터가 이에 동조하며 가끔 이상윤 해설위원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다.
선수시절에도 꽤나 유쾌한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이미지와 다르게 의외로 해외 축구 지식에도 해박하여 아스날 FC를 굉장히 좋아한다. MBC ESPN시절 중계를 하다가 아스날 팬이 된 모양. '''자타공인 아스날의 팬'''이기 때문에 아스날 FC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데, 그래서인지 2009-2010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마라도나의 재림이라 불리는 선수에게 4골을 얻어맞으며 아스날이 침몰하자... 나중에는 하라는 해설은 안 하고 거의 흐느끼듯 실소만 남겼다. 덕분에 리오넬 메시를 제치고, 그 날 검색어 순위를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ESPN 시절, 아스날이 대승을 거두자 기쁨을 금치 못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캡쳐되면서 첼지현과 함께 '상윤날'이라는 별명도 한 때 있었다. 12-13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는 포돌스키가 추가골을 넣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빠심에서 우러나온 각종 효과음들을 쏟아내었다!! 또다른 별명인 '사냐 아빠'도 아스날 FC 선수인 바카리 사냐를 좋아하기 때문에 붙었다. 자기 아들도 축구를 하는데, 포지션이 라이트백인데 바카리 사냐같은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스날 뿐만 아니라, 기술축구를 하는 팀에게 호의적인 해설을 하는 편이고 자신의 현역시절 스타일 같은 빠르고 기술적인 축구가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린다(...).
2014년 10월 26일 전북:수원 경기부터 MBC SPORTS+의 해설자로 다시 복귀했다.
2015년 AFC 아시안컵 8강 일본:UAE 해설을 맡았는데, 이날 경기에서 UAE를 응원하는 편파하는 해설을 거듭했다. 물론 이상윤의 이미지 때문에 편파해설 하더라도 다들 웃고 넘어간다. 연장전을 거쳐 승부차기까자 일본이 골을 넣자 아쉬워하고 UAE가 골을 넣자 어린아이 처럼 좋아하며 환호하여 '''명예 아랍국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5년 5월 13일 축구전문지 베스트일레븐의 기사에 의하면 건국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내정되었다고 한다. ### 건대 축구부의 명성을 다시 잇겠다고 밝혔을 정도[8] . 해설도 계속해 주겠다고 했으니... 우리는 앞으로도 이분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2016년 MBC SPORTS+ 2에서 신승대 캐스터와 함께 매주 K리그 클래식을 중계하고 있다. 많은 K리그 팬들이 이상윤 해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K리그 팬들은 쌍수들고 환영하는 분위기.
유로 2016을 MBC에서 중계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해외축구를 SBS, KBS, SPOTV, JTBC 등으로만 접하던 시청자들은 뭐 이런 해설이 다 있냐는 컬쳐쇼크와 함께 점점 익숙해져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6년 6월 17일 있었던 유로 2016 E조 이탈리아:스웨덴 경기에서 완전히 맥이 풀린 해설을 하면서 댓글창에 '악플에 상처받았냐' '힘을 내요 샤나아빠 같은 응원 댓글이 줄줄이 달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런데 '''후반 43분''' 이탈리아가 극적인 결승골을 넣자 언제 그랬냐는듯 "에데우![9] 남바완이에요!" 신바람을 내며 해설했다. 시청자들은 '''하긴 천하의 이상윤조차 침묵시킬만큼 경기가 지루하긴 했지'''하며 다들 수긍하고 넘어가는 분위기(...).
2017년 MBC SPORTS+ 2에서 K리그 챌린지 중계도 하고 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도 MBC의 메인 해설진이 참여하지 않는 몇몇 경기에서 중계를 맡았다.
2019년 10월 6일 K리그1 파이널 라운드를 앞둔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인 33라운드 슈퍼매치에 다시 엠스플 중계를 맡았다.
3.2. 아프리카TV B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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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경부터 '''가레스이상윤'''이라는 이름으로 아프리카TV에서 개인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목표는 베스트BJ, 아프리카TV 파트너BJ라고. 주로 본인+캐스터 1인 체제[10] 로 방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1명의 게스트가 추가되기도 한다. K리그, EPL, 국가대표팀 경기 등 다양한 축구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
2019년 2월 11일 기준으로 애청자 5,154명, 팬클럽 1,456명, 서포터 수 37명, 구독자 수 10명, 누적방송시간 677시간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생방송은 평균 100~200명 정도가 시청한다.
방송에서 보여주던 특유의 '''막걸리해설''', 선수와 전술에 대한 설명에 더해, 시청자들과의 소통으로 재밌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 중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프사이드는 기가 막히게 잡아내고 있다. 경기가 지루해지면 369 게임( )을 진행하기도. 인맥을 활용해 장지현 해설위원, 신승대 캐스터 등 지인과 전화통화를 하기도 한다.
2019 아시안컵 전경기 중계 공약을 실현하였다.
2019년 1월 18일 아시안컵 북한:레바논 경기에서 최고 시청자 수 기록을 경신하였다. (869명, 전체 시청자 수 18위, 스포츠 2위) 김병지 노이어에 빙의된 리명국의 대활약 그리고 웃겨 쓰러지는 이상윤 위원의 모습은 덤. 경기 하이라이트
2019년 1월 24일 아시안컵 8강 베트남:일본 경기에서 역대 최고 시청자 수 기록(합방 제외)을 갈아치웠다. (1,026명)
2019년 2월 9일, 감스트와 챔스 16강 1차전 예상, 리버풀:본머스 중계 컨텐츠 등의 합방을 진행하였다. 감스트 팬들이 몰려와 방송 시작 2분여 만에 기존 최고 시청자 수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최고 시청자 수 10,163명을 기록하였다.
3.3. 기타
과거에는 풋볼N토크 땜빵 전문(...)이기도 했고 내심 고정패널 자리를 노리기도 했다. 그만큼 자주 나오기도 했고. 2013년엔 또 다른 축덕용 인터넷 방송 한준희, 장지현의 원투펀치의 1주년 특집 공개방송에 특별 게스트로 초대되어 '''"이청용보단 제가 더 월드클래스였죠!"''' 등의 거침없는 드립으로 의외의 꿀재미를 선사하였으며, 역시나 고정출연에 대한 생각을 거리낌없이 드러냈다.
이후 아프리카TV에서 소대수 캐스터와 함께 축구 해설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주로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중계하면서, 역시나 아스날에 대한 무한 빠심을 드러내고 있다. 연말 아프리카대상에서 석주일, 이병훈 등과 함께 특별상을 수상하여 상금 100만원을 받았다.
지금은 아프리카TV에서 감스트, 강은비 등과 비정기적으로 합동방송을 진행한다. 특별히 감스트와의 합방은 아프리카TV 방송 시작 이전부터 여러 번 진행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익숙한 풍경이다.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 등)
YTN 라디오 알레올레사커 (일 오후 3:10~4:00)에 정기 출연 중이며, 이외 팟캐스트나 방송에 비정기적으로 출연한다.
2019년부터 프로축구연맹에서 제작하는 K리그2 중계의 해설을 맡고 있으며 유튜브에 가레스TV로 활동중이다.
2020년부터 프로축구연맹의 K리그 중계 제작이 K리그1으로도 확대되면서 K리그1 중계의 해설도 맡게 됐다.
4. 지도자
4.1. 코치
2011년 부산 아이파크의 코치로 재직하다가 6개월도 안 되어서 사퇴하였으며, 2012년 여자축구 WK리그의 충남 일화 천마의 감독으로 선임이 되었으나, 구단 운영주체인 통일스포츠의 갑작스런 팀 해체 결정으로 인해서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안습(...) 이후 다시 엠스플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13년에는 엠스플뿐만 아니라 tbs 교통방송에서도 K리그 클래식의 해설을 맡으며 해설위원으로만 활동하는 듯 했다.
제대로된 사냐 아빠 인증(...)
박종환 감독 부임 이후 2013년 12월부터 성남 FC의 수석코치로 선정되었다. 이에 축구팬들은 "더 이상 해설을 듣지 못하게 되는것 아니냐?"면서 아쉬워했다.#
4.2. 성남 FC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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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2일부터 성남 FC의 박종환 감독의 선수 구타 파문으로 인해 자진사퇴로[11] 감독대행직에 올랐다.#
월드컵 휴식기 동안 감독대행으로서 이상윤은 분위기를 추스르고자 선수단을 엄하게 단속하기 보다는 자유롭고 프로페셔널한 원칙을 강조하며 선수단을 다잡았고, 전반기 성남의 문제점이 었던 좋은 수비력을 못살리는 빈약한 공격축구를 보안하고자 일대일에 강하고 패싱게임을 통해 콤펙트하면서도 수비도 공격수처럼 골을 넣고 공격수도 전방에서 수비를 펼치는 공격 축구를 펼칠 것임을 밝혔고, 경남 FC와의 리그 17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6경기만의 승리이자 감독대행 부임 후 첫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팀의 성적 부진이 계속되면서 강등권까지로 추락하자 결국 2014년 8월 26일 부로 감독 대행직에서 경질당했다.
대행 해임하고 또 대행...성남 파행 운영 감행
이상윤이 성남에서의 부진한 데에는 여려 요인을 들 수 있는데, 일단 이상윤은 어디까지나 '''감독이 아닌 감독 대행이였는데 그걸 정작 본인은 몰랐다.'''
이상윤은 과거 해설위원 시절부터 공격 위주의 축구, 아스널과 FC 바르셀로나식의 짧은 패스를 활용한 점유율 위주의 축구를 추구해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성남 감독대행 시절에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티키타카는 본래 성남이 보여주던 플레이 스타일과는 정반대의 특징을 가지고 있던 전술이었다. 기존의 성남은 크게 선 수비-후 역습의 플레이 스타일을 가져가며 선수단 대부분이 자기 진영에서 수비 대형을 갖춰 안정적인 수비에 나선 뒤, 측면의 김태환과 김동희, 이창훈 등의 선수들을 최대한 활용해 빠른 역습에 나서 상대 골문을 두드리는 팀이었는데, 이런 성남을 이상윤은 무리해가며 자신이 추구하는 티키타카로 전술을 바꿔나갔고, 확실히 득점이 많아지면서 재밌는 경기를 펼치긴 했지만, 안정적이었던 수비가 지나친 공격 중심의 밸런스로 인해 완전히 망가져버리는 부작용을 낳아버렸으며, 성남 수비는 선수들끼리 서로 볼 처리를 미루다 어이없이 동점 골을 내준 경우, 세트피스 상황에서 대인 방어에 실패한 경우, 역습을 내준 상황에서 자기 위치를 잡지 못하고 어이없이 실점을 내주는 등 사실상 붕괴 수준에까지 이르렀으며, 이상윤 부임 전 성남이 시도했던 득점 방식이었던 상대 팀이 허용한 뒷공간을 노려 역습으로 연달아 골을 성공시키는 방식대로 대량 실점을 해버리는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감독 대행은 성적 부진을 비롯한 안좋은 일로 감독이 물러나면서 '대행'으로서 팀의 급한 위기와 문제 해결하고, 당장 낼 수 있는 성과를 거두어 어떻게든 가장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임무인데, 이상윤은 이를 망각한 채 현실을 외면하게 무리하게 지도자로서의 야망과 이상만을 실현하겠다는 욕심만 부렸던 것이였다.
뭐가 어찌됐든 성남 FC 감독 대행 생활 중의 이상윤의 행보는 얻는 것보단 잃은 것이 더 많았을 것이다.
4.3. 건국대학교
2015년 자신의 모교인 건국대학교 축구부 감독 공개모집에 응시하였으며, 건국대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로 복귀하였으며, 5월 배재대학교전에서 감독 부임 후 첫승을 거두었고, 건국대에서도 공격과 수비가 콤팩트해야 하는 축구를 강조했으며, 기존의 스리백 위주의 선 굵은 축구라는 단조로운 패턴에서 벗어나 짧고 세밀한 축구를 통해 플레이의 효율성 등을 끌어올렸다.
또한 선수들과 활발한 스킨십을 통해 '긍정 바이러스' 이식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개인주의 성향이 짙었던 과거의 모습을 개선하기 위해 '원 팀'으로 뭉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뜯어고쳤다고 한다.
하지만 2016년 춘계대회 이후 개인 사정으로 감독직에서 사임하였다.
5. 수상기록
6. 어록
6.1. 일반
'''"이게 축구예요!"'''[12]
"'''남바완'''이에요!"
"이야아아~ 우오오오~ 즈아아아~"
" 찬스죠!"
"(이기는 팀) 완~ (지는 팀) 제로~ 완 제롭니다~"
(진 팀)~ 무너집니다!!! [13]
라이브 사커 뽀윱니다! 살아 있는 축구를 보여 주고 있는 함식입니다!
아이 라이크 싸컵니다!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욱! 하고 있습니다!
마무리까지 완벽해써요!
6.2. 아프리카TV 한정
"원투쓰리! '''남바완'''이죠!" [16]
"무주공산! 추풍낙엽! 유비무환! 진퇴양난! 아비규환!" [19]
"여기'''까지↗'''죠~" [21]
"'''마세이'''죠~!" [22]
"'''세모'''죠~!" [23]
"걸리면 죽죠~!"
"이게 축구죠~!"
7. 여담
- 2002년 월드컵 때 폴란드와의 예선전 첫경기 1,2호골은 당시 건국대 선후배 황선홍과 유상철이 넣었다. 이때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는데 그들의 뒤에는 건국대학교 정종덕 감독이 있었다. 정감독이 이끌던 당시에는 대학축구의 정상을 이끌었다. 당시의 주축이 황선홍, 유상철, 이영표, 현영민, 고정운, 유승관, 이상윤, 공문배, 유영록, 권우진[24] , 신병호, 노규영[25] 등이 국가대표였다.
8. 관련 문서
[1] 윙어[2] 박종환이 2014년에 폭행사건을 '또' 일으켜서 성남 감독에서 사퇴한 이후 임명된 감독이 이상윤이라는게 아이러니하다. 이때는 앙금이 좀 풀린 건지 아니면 상황이 너무 엄중해서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이었던지, "감독님을 잘 보필하지 못해 죄송하다" 는 이야기를 남겼다.[3] 하지만, 박종환 감독의 지도방식이 너무 후진적이라, 지금보다 똥군기가 훨씬 심하던 옛날에도 선수들과의 마찰이 엄청나게 많았다. 딱히 이상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심지어 2014년에도 선수 폭행으로 물의를 일으켜 사퇴한 것을 보면...[4] 이전 시즌에 성남 일화에서 36경기 13골 6어시스트라는 훌륭한 활약을 했기 때문에 구단, 팬들 모두 기대가 많았다.[5] 공교롭게도 이상윤의 소속팀 동료 신태용은 1997년 상반기 이후로는 더 이상 대표팀 선수로 뽑히지 않게 되었다.[6] 2011년 한일전에서 부상당한 수비수 김영권 대신 투입한 박원재마저 슈팅을 얻어맞고 쓰러지자, 재차 박주호로 교체했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당시 박원재가 일시적으로 '맛이 간'게 또렷이 영상으로 잡혔다.[7] 2007년 날아라 슛돌이 3기때 슛돌이 vs 차범근 축구교실 경기에서 차범근 축구교실의 감독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때 소속 선수들을 큰목소리로 독려하거나 골이 나오는 순간 오버액션으로 환호하고 심지어 심판에게 판정에 대해 어필하기까지 하는 모습으로 인해 상대팀인 슛돌이의 감독 유상철이 “내 선배지만 참...ㅋㅋ”이라며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8] 이상윤 감독은 건국대학교 무역학과 86학번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건국대 출신 선수들에 대한 진한 애정을 드러내곤 하였다.[9] 에데르 마르틴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이름도 틀리게 외쳤다(...)[10] 2019년 2월 현재 김상래 일요신문 기자, 남상훈 캐스터, 이민재 캐스터, 이수열 축구칼럼리스트, 정욱진 캐스터, 최다훈 캐스터, 최형진 아나운서(가나다순)[11] 우리나라 스포츠계에서 논란이 일어난 후의 "자진사퇴"는 사실상 짤렸다고 보는게 맞다. 구단 윗선에서 "너 경질 당하고 개망신 당할래? 아니면 미리 자진사퇴하고 체면치레라도 할래?"라는 선택지를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12] 2013년 K리그 클래식 울산 현대 vs 포항 스틸러스의 시즌 최종전에서 포항이 경기 종료 10초 전 김원일이 팀의 역전 우승을 결정짓는 결승골을 성공시킨 직후[13] 토너먼트 대회에서 팀이 주로 연장/승부차기까지 가서 패배할 때 하는 멘트이다.[14] 전광판에 뜬 이벤트 상품 'VIPS 식사권'을 보고 저렇게 말을 했다. 나중에 주간 서형욱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VIPS에서 공교롭게 S가 안 보였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을 듣기를 원하는 분들은 이걸 보시길.[15] 요즘에는 그냥 배추(폭탄)머리 스타일을 가진 선수를 다 '양질의 배추머리'라고 한다. '''살빠진 윤택이'''라고 하기도 한다.[16] 별풍선 100개 당 남바완 1번이다. 소량의 별풍선을 여러 번 선물해서 100개를 채웠을 때도 이러한 리액션을 볼 수 있다.[17] 특별한 의미 없이 그냥 아무 때나 하는 말이다...;;[18] 별풍선 18개를 받았을 때. 진짜로 식빵이라고 말한다. 경기가 답답할 때 욕 대신 별풍 18개로 대체해달라고 언급하였다.[19] 그냥 하는 말이다...;;[20] 옐로 카드는 치즈, 단무지라고 한다. [21] 답답한 경기를 보여주는 팀에게 찬스가 왔을 때 (그 팀을 까는 의도로) 많이 말한다. [22] 당구 은어가 아니라 프리미어 리그에서 부심으로 활동중인 여성 심판을 말한다. 마세이를 닮은 선수가 있을 때(꽁지머리), 혹은 마세이가 심판으로 출장하는 경기가 있을 때 자주 언급한다.[23] 헤딩 득점 기회에서 볼이 빗나갔을 때[24] 고양 KB 출신 선수로 1997년 외환위기로 팀이 해체되자 국민은행 은행원으로 전업했다. [25] 2002년 성남 일화 천마에 입단했고 실업팀인 고양 KB 축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근황은 2013년 초등리그에서 우승한 계남초등학교 축구부 감독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