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규(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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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


朴承圭
1932년 ~ 2012년 5월 25일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정치인이다.

2. 생애


1932년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1954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여 1959년 졸업하였다.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이던 1958년 투포환 국가대표를 지냈고 대한체육회 이사를 맡기도 했다.
이후 동 대학교 조교수, 부교수, 학생처장을 역임하였다.
1975년 대통령비서실 사정(司正) 비서관으로 발탁된 뒤 민정수석비서관을 역임하였다. 민정수석비서관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 박근혜최태민과의 부적절한 문제를 처리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김재규의 말( 김재규의 항소이유보충서)에 따르면 천하의 민정수석비서관이 직속 상관인 대통령비서실장이 아니라 중앙정보부장인 자신에게 와서 어떻게 해달라고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박근혜를 이용한 최태민의 전행이 얼마나 도를 넘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민정수석비서관 문서에 나오듯이, 민정수석이란 직위 자체는 민주화가 된 현대에도 청와대 내에서 손꼽히는 실세 요직이다. 하물며 유신 독재 시절인 당시라면 그 위세와 권력은 더더욱 컸다. 그런데 그런 민정수석인 박승규조차도 쉽게 손을 댈 수가 없어서, 직속 상관인 대통령 비서실장도 아닌 중앙정보부장이자 권력 2인자인 김재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뜻이다. 사안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김재규는 차지철과 갈등이 생기고 권력계에서 밀려나고 박정희의 태만한 대처 등으로 충성심이 날아가서 10.26 사건이 일어나는 동기의 기폭제가 되는 등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렀다.
1980년 1월 환경청 발족 때 초대 청장(현 환경부장관)으로 부임했으나 그해 7월 스스로 사임했다.
1990년대 한보그룹 회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5월 25일 사망하였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진(재미사업) 성진(재미사업)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