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환(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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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時煥. 1953년생. 인하대학교,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 교수. 전(前) 대법관.
1953년 부산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박영도도 부산지법 판사를 지내고 변호사로 활동한 법조인이었다. 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사법시험에 연거푸 낙방한 후 해군 군법무관으로 복무했다. 이때 사법시험에 합격해 단기로 복무하는 법무관을 보며 열등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판결을 바꾸라는 상부의 지시에 순응하는 그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박시환은 지시를 거부하다 곤란을 겪기도 했다.[1]
법무관 복무 중인 1979년 2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12기)이기도 하다(사법시험은 1년 먼저 합격). 고등학교 선배였던 조영래와 자주 어울리며 영향을 받았다.[2] 이때 조영래에게 "좋은 재판을 할 자신은 없지만 나쁜 재판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1985년 인천지방법원에서 민주화 시위로 기소된 대학생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다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박시환의 인사는 정치 쟁점이 돼 대법원장 유태흥에게 책임을 묻는 탄핵안이 발의되기도 했다.[3]
1994년에 서울고법에 근무하면서는 사노맹 사건으로 기소된 조국에게 반국가단체 단체를 적용한 원심을 깨고 그보다 형량이 낮은 이적단체 가입 혐의를 적용해 판결했다.[4]
2002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병역법에 대해 사상 처음으로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2003년 대법원장 최종영이 연공서열에 따라 대법관 임명 제청을 하자 항의하며 판사직을 사직했다. 박시환의 사직은 4차 사법 파동으로 이어져 사법 개혁의 기폭제가 됐다. 사직 후 변호사로 개업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당시 문재인과 함께 탄핵 피청구인 대리인단으로 활동했다.
이후 2005년 11월에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김영란, 전수안, 이홍훈, 김지형 등과 함께 대법원 내 진보 소수파, '독수리 5남매'로 불렸다. 2011년 11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고, 2019년 현재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과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2020년 법무법인 YK 고문 및 사단법인 옳음의 이사장을 맡게 되었다.


[1] 해군 법무감은 보복으로 박시환을 백령도로 보내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주변의 만류로 백령도행은 면했다.[2] 조영래는 1971년 사시에 합격했지만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를 받느라 사법연수원엔 늦게 입소했다.[3] 탄핵안은 부결됐다.[4] 원심 재판장은 후에 같이 대법관을 지낸 김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