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록(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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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永祿
1922년 3월 25일 ~ 2019년 5월 22일 (향년 97세)
대한민국의 전 관료, 정치인이다.
1922년 강원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김대중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가까웠다.
1960년 초대 민선 강원도지사에 선출되어 일하였다.
5.16 군사정변 후인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강원도 원주시-원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강원도 선거구의 유일한 야당 당선자가 되었다. 1970년 독일 베를린을 방문하여서 야간에 베를린 올림픽 기념관에 불법 침입하여 기념비에 새겨져 있던 손기정의 국적을 훼손하여 불법침입, '''절도''' 및 공공재산파손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으나 체포되기 전에 한국으로 도망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박의원이 무엇을 훔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서독경찰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재팬'''이라는 글자를..." 국적을 한국(KOREA)으로 고치기 위해 이 5개문자를 다른 우승비에서 떼어모았으며 그가 도려낸 일본(JAPAN)의 문자는 가지고 갔다고 한다. 인터넷 등지에선 이 일화가 영웅담처럼 소개되지만 공공재산을 훼손하면 안된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용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0월 유신 선포 이후 치러진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강원도 원주시-원성군-횡성군-홍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김용호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신민당 정무위원에 임명되었다. 1974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영삼이 총재로 선출되자 진행된 당직 개편에서 정치훈련원장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부터 정일형 등 김대중과 가까운 사람들과는 당내에서 화요회라는 계보에 속하여 활동하였다. 1978년 신민당 중앙상무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역시 민주공화당 김용호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총재로 출마하려다가 포기하고 김영삼을 지지하였고, 이듬해에 이루어진 당직 개편에서 부총재로 임명되었다.
1980년 5.17 내란 이후 모처에 끌려가서 폭행을 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풀렸지만 이듬해 치러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이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부터 3연속 출마(평화민주당, 민주당, 무당파국민연합)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신군부에 의한 재산 몰수 등 여러 이유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