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호주군

 



1. 개요
2. 참전 명분
3. 터무니없이 높은 교환비
4. 자주적 군사 운영
5. 사용장비
6. 미디어에서


1. 개요


베트남 전쟁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연합군. 즉, ANZAC군은 남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하여 1965년부터 약 8천 여명의 전투병력을 파병보낸다.

2. 참전 명분


당시 호주 역시 도미노 이론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반공 국가였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만약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근처 동남아 국가들도 전부 공산화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물론, 그 공산주의 물결이 동남아시아를 넘어 오세아니아 대륙에까지 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미국과의 동맹 조약을 지키기 위함은 덤. 1965년, 결국 로버트 멘지스 총리는 최종적으로 호주군을 베트남에 파병할 것을 결정하였고 뉴질랜드의 키스 홀리오크 총리도 곧바로 이에 동의하여 8천 여명의 ANZAC군이 베트남에 파병되게 된다. 뉴질랜드 같은 경우, 보병은 보내지 않았고 포병부대,헬리콥터 파일럿만 소수 보냈다.

3. 터무니없이 높은 교환비


이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 지원국군들 가운데 북베트남군베트콩을 상대로 가장 높은 교환비를 자랑했던 군대이다. 어느 정도냐면 평균 1:50. 호주군의 교환비가 이토록 엄청났던 이유는 당시 호주가 정예 중에서도 최정예, 가장 전투능력과 체력이 뛰어난 악바리 같은 군인들만 골라서 베트남에 파병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고 부사관이고 장교고 60년대에 시퍼렇게 어린 청년들로만 뽑은 미국과는 달리 호주는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정글전을 펼친 경험이 있던 노련한 간부들을 최정예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베트남에 파병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전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그런 엄청난 교환비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1966년 롱탄 전투 당시, 호주군은 푸옥 투이 성의 롱탄이라는 지역에서 베트콩 부대에게 완전히 포위당한 상태였고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베트콩들의 숫자는 호주군의 수 십배는 되었고 누가봐도 호주군이 처참하게 무너질 상황이였고 다들 그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호주군은 겨우 하루만에 245명 이상의 베트콩들을 전멸시켜서 위기를 극복했고 호주군 전사자는 겨우 18명에 불과했다.[1]물론 호주군은 미공군 지원과 APC 장갑부대 그리고 포병지원까지 포함하여 롱탄 전투에서 투입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투입시켰다.
다른 예로는 호주의 특수부대 SASR와 뉴질랜드의 NZSAS는 1966년에서 1971년에 이르기까지 1200여번의 정찰 임무를 수행해냈고 492회의 확인된 사살, 106회의 추정된 사살을 이뤄냈다. 그 과정에서 사상자는 33명, 그 중 전사자는 4명이었다. 그들은 월맹군이나 베트콩과 전투하면서 전사자가 단 1명도 없는 경우조차 수두룩했다.

4. 자주적 군사 운영


한국군과 마찬가지로 호주군도 미군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주월사령부 운영과 군사 운용을 했다.[2] 오히려 호주군이 한국군보다도 더 자주적인 주월 군사운용을 했는데 한국군은 미군에게 M16A1을 받아서 썼고 주월 한국군사령부는 주월 미군사령부에 "제발 M16 좀 주세요. 현기증난단 말이예요" 수준으로 매우 간절히 M16A1의 지원을 원한 반면, 호주군은 베트남 철수 그 날까지 자국에서 FN FAL을 개량해서 만든 L1A1을 주력소총으로 고집했다. 심지어 L1A1는 반자동소총이였는데 이는 사실 AK-47을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월맹군, 베트콩과 맞서 싸우기는 상당히 불리한 일이였다. 오죽하면 미군이 호주군을 걱정하여 M16A1을 지원해줄테니 M16A1으로 좀 싸우라고 했을 정도. 하지만 놀랍게도 호주군은 한사코 M16A1을 거부하고 자국의 L1A1 반자동소총을 고집하면서 미군이나 한국군보다도 더 우월한 교환비를 내고 다녔다.[3]
그리고 남베트남군, 미군과 함께 유일하게 자체적으로 공군을 대량으로 군사 작전에 써먹은 군대다.[4] 대표적으로 호주군이 대량 운용한 기체가 바로 잉글리시 일렉트릭 캔버라 폭격기. 그리고 UH-1H을 개조하여 'Bushranger' 이라는 공격, 수송 겸용 헬기를 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군과 함께 특수부대를 베트남에 파병보낸 군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5] 오히려 미군 특수부대보다도 더 큰 활약을 펼쳤다. 호주군 SASR이나 뉴질랜드군 SAS은 1 : 100 정도의 교환비로써 북베트남을 떡실신시키므로써 임무를 완료하였다.

5. 사용장비




6. 미디어에서


호주 내에서는 포크 밴드 Redgum의 I was only 19라는 노래가 매우 유명하다. PTSD를 묘사한 상당히 우울한 내용의 곡. 번역가사
그리고 1966년에 있던 호주군의 대표적인 전투인 롱탄 전투를 다룬 영화가 2019년에 개봉을 했다! 영화 이름은 DANGER CLOSE. 트레일러는여기에 다만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않았다.
라이징 스톰 2: 베트남에서도 주요 팩션 중 하나로 등장한다.
[1] 물론 이 전과 통계는 호주군 측의 주장이며, 베트남 측의 주장으로는 50명 전사, 100명 부상이다. 베트남 전쟁 특성상 바디카운트가 매우 정확하지 못하므로 실제 손실은 둘 사이의 어딘가 쯤일 것이다.[2] 단, 뉴질랜드군은 주월호주군사령부 측에 소속되어 있었다.[3] 다만 SASRNZSAS를 위시한 특수부대 및 기타 일부 부대에서 M16A1이나 이의 15인치 단축형 바리에이션인 M605를 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4] 한국군, 태국군, 필리핀군 등도 공군을 베트남에 데려오긴 했지만 기지방어 정도의 임무만 수행했지 큰 규모로 작전에 참여한 적은 없다[5] 이전에는 미군과 함께 유이하게 특수부대를 보낸 나라라고 했는데, 이는 틀린 설명이다. 당장 육군특수전사령부 문서의 역사 항목을 들어가 보면 베트남 지역에서 특수작전을 벌이는 제 1공수특전단(일명 제 1공수)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특수작전이 와닿지 않는 이유는 한국군이 주로 지역 평정 및 안정화 임무들을 수행했고, 국군의 특수부대들도 그에 맞춰 각 사단에 배속되어 특수정찰 등의 특수임무로 현지 안정화를 수행하는 각 사단들을 조력하는 임무들을 담당했기 때문인 듯 하다. 만약에 국군이 미군이나 호주군처럼 월경 임무에 더 집중했으면 이들에 준하는 교환비 성적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