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리투아니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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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리투아니아'''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2.2. 20세기
2.3. 21세기
3. 관련 문서


1. 개요


벨라루스리투아니아의 관계. 벨라루스와 리투아니아는 소련 시절이나 지금도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다만 국민들간의 감정으로 따진다면 리투아니아보다는 사실 라트비아나 에스토니아가 더 나쁘기는 하다.[1]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리투아니아 대공국 당시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는 한 나라였다. 리투아니아인과 중세 루테니아인들은 언어와 종교가 달랐지만 둘 다 공통의 적인 타타르인과 튜튼 기사단에 대항해 협력하는 사이였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성문법에는 "리투아니아인사모기티아인과 루테니아인은 상호간의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보장한다."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으며, 벨라루스 민족주의자들의 성웅 프란시스크 스카리나는 빌뉴스에서 인쇄소를 차렸다. 중세 리투아니아 역사와 벨라루스 역사는 거의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역사마냥 상당부분 겹친다.
하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당시에 귀족들의 권한이 커지고 벨라루스 지역에 대해 농민들을 탄압하다보니 벨라루스에서도 반발하게 되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쇠퇴하면서 벨라루스 지역은 러시아의 영향을 받았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몰락 이후, 벨라루스 지역은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2.2. 20세기


1918년에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몰락한 이후, 벨라루스는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소련의 공화국으로 편입된 반면, 리투아니아 지역은 독립했다. 제2차 세계대전도중에 리투아니아 지역과 벨라루스 지역이 나치 독일의 지배를 잠시 받았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벨라루스 지역과 리투아니아 지역은 소련의 공화국으로 편입되었다. 80년대에 리투아니아 지역에서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벨라루스 지역은 소련 해체에 반대했다. 91년에 소련이 해체된 뒤에 벨라루스와 리투아니아는 각각 독립국이 되었다.

2.3. 21세기


근대 이후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는 남남이 되었고, 오늘날 기준으로는 벨라루스와도 러시아와 폴란드 다음으로 나쁘다. 리투아니아가 반러정책을 추진하면서 유럽연합,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한 반면, 벨라루스는 지금도 루카셴카 대통령이 친러정책을 펼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다.. 물론 리투아니아가 반러, 벨라루스가 친러인 것도 있지만 원자력 발전소 건설 문제를 가지고 리투아니아가 항의한 적도 있다. 그리고 벨라루스가 러시아 지원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자 반발했고 훈련도 시작했다.# 다만 최근 벨라루스가 러시아와 갈등이 생긴것으로 보아 관계는 어느정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벨라루스 대선 야권 후보 스뱌틀라나 치하노우스카야가 대선 결과에서 루카셴카가 승리한 것으로 나온 이후 야당의 부정선거 논란 및 살인 협박을 피해 리투아니아로 망명했다. # 벨라루스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리투아니아 정부는 벨라루스 야권과 시위대를 지지했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정치 망명 받아들이기 위해 벨라루스쪽 국경은 개방하였다.# 그리고 루카셴카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리투아니아 국민들이 벨라루스 시위 연대를 위해 인간 사슬 퍼레이드를 실시했다.# 벨라루스 알략산드르 루카셴카는 나토 가입국인 폴란드, 리투아니아와의 국경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
벨라루스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건설한 첫 번째 원전이 전력 공급을 시작하자 리투아니아측은 반발했다.#

3. 관련 문서


[1] 이유인 즉슥, 리투아니아는 타민족에게도 공평하게 시민권을 부여했지만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가 독립했을때 자민족이 아닌 타민족의 경우에는 라트비아어와 에스토니아어 시험에 통과해야만 시민권을 주었는데 러시아인들을 견제하려고 시행한 조치이지만 문제는 벨라루스인들도 꼽싸리 끼어서 졸지에 무국적자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차별에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 때문에 많은 벨라루스인들이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에서 빠져나와서 벨라루스로 귀환하든지 러시아로 많이 이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