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인민 공화국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
'''Белару́ская Наро́дная Рэспу́бліка'''
'''Belarusian People's Republic'''

미승인국(1918-19), 망명 정부(1919-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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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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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 ~ 1919년, 1991 ~ 1995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
'''소비에트 벨로루시(1919)'''
'''폴란드 제2공화국'''
'''벨라루스'''[1]
<colbgcolor=#fff> '''위치'''
동유럽
'''수도'''
민스크
'''국가'''
병사들의 행진
'''정치체제'''
공화정, 인민공화국
'''국가원수'''
대통령
'''언어'''
벨라루스어
'''주요사건'''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조약
(1918)
'''통화'''
루블
1. 개요
2. 역사
2.1. 인민 공화국 성립 이전까지
2.2. 러시아 혁명과 인민 공화국 성립
3. 기타
4. 참고 문헌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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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은 1918년부터 1919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동유럽 지역에 존속했던 공화국이다. 1919년 소비에트 러시아에 의해 붕괴된 이후 망명 정부를 구성하여 현재까지도 존속하고 있다. 그리고 1991년에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고 1995년에 루카셴카가 현재의 벨라루스를 만들었다.

2. 역사



2.1. 인민 공화국 성립 이전까지


20세기 이전까지 벨라루스인들의 민족 의식은 매우 희박했다. 교육받은 지식인 계층은 벨라루스 민족의 독립을 희망했지만 다수의 농민 계층은 러시아정교회에 대한 애착과 동질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독립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1902년 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하던 벨라루스 학생들이 호몬(Гомон)이라는 혁명 집단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벨라루스어로 작성된 민주주의 관련 전단을 배포하여 벨라루스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1906년 러시아에서 농업개혁을 실시하자 벨라루스 민족주의 운동은 기세가 꺾이게 되었다. 수많은 벨라루스 농민들이 농업개혁의 일환으로 시베리아에 이주되었다. 또한 러시아 정부는 반정부 운동을 무마시키고자 다수의 노동조합을 해체하고 24000명 가량의 혁명가들을 체포하거나 투옥, 시베리아 유형을 내렸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벨라루스는 전선에 포함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의 개혁정책과 대규모 전쟁은 벨라루스의 민족 정체성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벨라루스 민족운동을 전개하던 혁명가들은 군대에 징집되거나 러시아행을 택했고 독립 단체, 조직들은 대부분 해체되었다. 독일 제국 점령 시기에는 벨라루스어 사용이 장려되고 벨라루스어 교과서나 신문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2.2. 러시아 혁명과 인민 공화국 성립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 이후 벨라루스 지역은 볼셰비키 정권의 소비에트화가 진행되었다. 1918년 독일군이 벨라루스에 들어왔고,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볼셰비키 정권과 독일 제국을 위시한 동맹국 사이에 체결되자, 벨라루스 민족주의자들은 1918년 3월 25일 민스크에서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 건국을 선포하였다. 독일도 이 정부를 후원하고 뒤에서 밀어주었다.
1918년 11월 13일, 제1차 세계 대전이 동맹국의 패배로 종결되자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은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되었다.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은 독일 제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성립됐으므로, 독일군이 벨라루스 영토에서 철수할 때까지만 존속하였다. 그해 12월 1일에는 독일군이 방을 빼 버렸다.
1919년 1월 5일, 볼셰비키 정권이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을 침공하였다. 볼셰비키 정권은 수도 민스크를 점령하고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였다.[2]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은 이로써 붕괴하고 정부는 국외로 망명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자신들이 점령한 벨라루스 지역에 벨라루스 중앙 라다라는 괴뢰 정권을 설립했다. 이는 독일의 도움을 받아 벨라루스 민족 국가를 재건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 망명 정부는 1938년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합하자 나치에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상태였고, 중앙 라다 정권도 승인하지 않았다. 만약 자신들이 독일에 협력해서 벨라루스에 국가를 건설해도 그 국가는 독일의 괴뢰 정권일 것이고, 독일군이 벨라루스에 저지른 짓도 있기 때문이다.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 망명 정부는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벨라루스가 독립하자 자진 해체할 예정이었으나,[3] 벨라루스 망명정부에서 초대 대통령 선거와 제헌의회 선거가 치러지면 해체한다고 하면서 해체를 미뤘는데, 막상 벨라루스의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카였고 루카셴카가 러시아와의 통합을 목적으로 국장과 국가를 다시 변경했기에, 벨라루스 망명정부의 해산은 없던일이 되었고, 루카셴카 정권의 반대파 단체가 되었다. 망명 정부는 현재 뉴욕을 망명 정부 수도로 하여 존속하고 있다.[4]

3. 기타



폴란드볼로 보는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의 성립과 소멸 과정[5]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의 국가로 루카셴카 집권 이전의 벨라루스 공화국에서도 사용된 국가인데 이는 벨라루스 공화국이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을 계승했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1995년 국기와 국가가 변경 된 이후에도 벨라루스 내에서 반 루카셴코 시위 때 간간히 사용되고 있는 국가이다. 비록 4년뿐이기는 했어도 엄연히 이전에 사용되어왔던 국가이기에 딱히 금지곡으로 지정되어있는것은 아니지만 반정부 시위의 상징물이 되었기 때문에 정권차원에서 불온하게 보는것은 있다고 한다.
벨라루스 정부 상태가 상태인지라,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의 복귀를 진지하게 원하는 반응도 종종 있다. 독재자 알략산드르 루카셴카에 반발하는 시위 때마다 이 깃발이 등장하고, 아예 백군이 승리한 러시아 마냥, 만약의 경우를 가정한 대체역사물도 있을 정도.

4. 참고 문헌


  • 우준모, 김종헌 (2013).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민족주의와 국가형성과정 비교고찰. 국제지역연 구, 17(1), 141-162.

5. 관련 문서



[1] 1995년[2]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건국 선포 자체는 이미 동년 1월 1일 이루어짐.[3] 벨라루스 이외에도 우크라이나와 발트3국에서도 망명정부가 있었는데 이들 망명정부는 해당국가가 독립한 뒤에 자진해체했다.[4] 비슷한 경우로 폴란드 망명 정부가 있다. 다만 폴란드 망명 정부는 1990년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 민주화되어 폴란드 제3공화국이 수립되자 국새, 국장, 대통령기 등을 제3공화국 정부에게 물려주고 자진 해체하였다.[5] 이 영상 제작자폴란드공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유튜버로 현재 벨라루스에서 독재정치를 펼치고 있는 알략산드르 루카셴카를 풍자하는 영상들을 여럿 제작했다. 다행히도 검열에는 안 걸리는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