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상

 

1. 정의
2. 사례
2.1. 한국-일본
2.2. 한국-중국
2.3. 유럽
3. 문제점
4. 한계
5. 기타
6. 관련 문서


1. 정의


보따리상은 법이나 세금의 규제를 받지 않고 은밀히 이동하면서 소규모로 상품을 거래하는 상인을 말한다.

2. 사례



2.1. 한국-일본


현대사, 즉 광복 이후 기준으로는 늦게 잡아도 1970년대가 그 시작으로 추정된다.
당시 박정희 제3공화국에서 제4공화국의 한국 경제는 국민의 생활이 좋지 않아서 수출에 목매던 실정이었다. 지리상으로 가까운 일본이 한국전쟁과 냉전 특수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터라 일본제품이 더욱 우수하므로 일본산 제품이 쏟아지면 수출 경제에 지장이 생길 수 있기에 수입선다변화라고 쓰고 대일 수입품 규제법이라 읽는 경제 규제법을 실시한다. 물론 일본제품들이 100% 막힌 건 아니었다. 원료나 부품은 이미 한일기본조약 이래 차관으로 일본기업에서 한국으로 부품을 보내면, 한국 공장에서 일본 부품을 조립한 '국내산' 완제품이 나와서 한국 시장에 합법으로 유통되었다. 물론 품질은 한국 공업의 당시 기술상 한계 탓에 같은 부품을 쓴 일본산보다 낮았다.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제조되고 유통되는 제품의 우수성이 소문나면서 한일 보따리상이 일본 전자제품을 수입하기 시작한 것이 한일보따리상 중흥의 시작으로 추정된다. 그 대표로 코끼리표(죠지루시) 전기밥솥이나 소니 워크맨이 있다.
그리고 한국 하위문화의 한 축이기도 했는데 농담이 아니라 이 사람들에게는 1세대에서 1.5세대 코어 오타쿠들의 수요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유통되는 매체에는 한계가 있기에 우연히 어떤 루트로 접한 일본 만화의 한 단편을 보고 그러다 원서나 원본을 보려는 사람들의 수요로 보따리상이 일본에서 각종 하위문화 매체와 기호품을 직수입하기도 했다. 거기다 보따리상들은 당시 법률 탓에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거나 법률상으로 수입이 금지되어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1, 드림캐스트 같은 콘솔과 일본 내수용 게임 소프트를 직수입한 것도 기존 일본 전자제품을 향한 욕구가 이점과 맞아떨어진 결과다. 더해서 일본발 야동, AV성인물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한일보따리상은 90년대 중후반 이후로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우선 외환위기가 닥쳐온 데다가 이것과 비슷한 시기에 수입선다변화제도 폐지되고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시작된 게 큰 원인이다. 그 후로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에 점차 개방되고 정식으로 수입되는 MADE IN JAPAN 완제품이 늘어날수록 보따리상의 수요는 급감했으며 극소수 한일 노선을 이용하는 보따리상이[1] 명맥을 이어갈 뿐이다.
반대로 한→일의 수요도 있었는데 바로 재일 한국인들이 필요로 하는 한국산 식자재와 식가공품 등이 해당된다. 2010년대 들어서는 현지 일본인들도 한국산 김이나 고추장 등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원래 VHS 비디오가 보급되어있고, 위성방송이라 하더라도 한국 방송 소개/한류 방송 채널인 위성채널 KNTV가 설립되기 전에는 한국 지상파방송 비디오 녹화본을 보따리상들이 들고가서 교포나 주재원 가족들에게 팔았었다.[2]
대표적으로 부산광역시깡통시장국제시장은 연안여객터미널과 밀접해 있어서 보따리상들이 가져온 잡화, 식품, 담배, 공산품 등이 많이 팔리고 있다. 대부분의 노점상 및 가게에도 일본에서 건너온 물품들이 비치되어 있으며, 이를 잘 아는 상인회에서는 일본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한다.

2.2. 한국-중국


주로 한국중국을 오가는 화객선에 탑승해 면세점에서 구매한 상품[3]과 중국의 농산물[4]을 한국에 가져오거나 한국산 공산품[5]을 중국에 반입하는 상인들을 뜻한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 이후로 한중 노선이 사실상 대다수다 보니 중국과 가까운 인천항, 평택·당진항, 군산항에 가보면 보따리상이 그야말로 바글바글하다.
한국 보따리상은 대부분이 나이가 중장년층이나 노인이지만 중국 보따리상은 젊은 사람도 많다. 중국 보따리상들은 의외로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어 젊은 사람들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어로는 '대신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따이공[代工]이라고도 한다. 최근에는 '소무역상'이라는 용어로써 순화하여 사용하기도 하는데 언론이나 관공서에서는 여전히 보따리상을 쓴다.

2.3. 유럽


솅겐조약으로 인해서 국경 검사가 느슨해지고 유럽연합으로 인해서 경제권이 이어지면서 EU 국가간 국경 주변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상인 찾기가 어렵지 않다. 반면 한 번 상품이 EU 역내로 들어 오면 검사가 느슨해진다는 점 때문에 EU 외부 국경을 오가는 국제열차가 보따리상의 주 활동 무대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 폴란드간 국제열차를 타다 보면 담배와 같이 EU 내에서 비싸게 팔 수 있는 물건을 들고 들어오는 보따리상을 종종 볼 수 있다. 역시 세금 때문에 가격 차가 크다는 걸 이용하고 있다. 비록 예시로 담배를 들기는 했지만, 담배는 국가마다 원료 배합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게다가 담배갑에 적힌 경고 문구로 원래 유통하려고 했던 시장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보따리상이 EU 역내로 가지고 들어온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산 담배가 항상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3. 문제점


보따리상 무역은 불법이다.
국내법에서는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자가소비목적'''에 한하여 농산물 50kg, 주류 1병(1L이하, 400달러 이하), 담배 1보루(200개비)의 면세 반입을 허용하나, 보따리상들이 이 허점을 뚫고 들여온 물건들은 '노반'이라고 불리는 중간 수집상에게 전달되고 시중에 영리목적으로 유통된다. 즉 관세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또한 보따리상들이 마약이나 금괴 밀수의 운반책으로 이용되다가 적발되는 사례도 잦다.

4. 한계


한국 국적의 보따리상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중노년층이고, 이 사람들이 보따리상을 그만두어 소득이 끊기면 십중팔구는 기초생활수급자로 굴러 떨어질 판이다. 오히려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 사람들이 노숙자가 되어 길바닥에 나앉아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보따리상으로서 활동해 돈을 벌고 생업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관리하기 쉽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사실상 한-중 경제 무역의 한 요소로 이미 자리를 잡은 측면도 있다. 보따리상을 이용해 중국으로 수출되는 국산 공산품의 양이 상당하기에 보따리상이 없어지면 국내 기업에도 타격이 갈 수밖에 없는 데다가 한중을 왕래하는 여러 화객선사 측에도 보따리상은 이미 중요한 수익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라서 선사에도 큰 타격이다.

5. 기타


영화 〈공모자들〉에서 한-중 보따리상을 다룬 묘사가 일부 나온다.
다른 의미지만 멸칭으로 사용되는데, 엄연히 합법적으로 판매하지만 판매량이 극도로 적거나 서비스가 부실해서 이용하는데 불편함을 느끼는 사례가 많다면 사람들로부터 '''보따리상 같다'''고 야유를 받는다.

6. 관련 문서



[1] 부산 쪽에서는 속칭 '20,000원 할머니'라고도 부른다[2] 여담으로 일본인이 아카이빙한 70~80년대 한국광고들이 유튜브에 간혹 목격되는데, 이들 광고자료의 소스는 VHS테이프로, 한국어 학습 목적에서 한국 방송을 녹화한 VHS가 흘러들어간 경우도 있고, 재일 한국인들의 한국 매체 수요로 인해 밀유통된 VHS가 흘러들어간 경우도 있다.[3] 주로 술과 담배나 명품.[4] 주로 팥, 메밀, 콩, 마늘, 깨 등 고관세 품목들 위주.[5] 화장품, 가전제품, 의류 등이며 가전제품은 특히 전기 밥솥을 많이 가져가는 편이다. 전기밥솥 문서에서 보다시피 국산 전기밥솥은 중국에서 대단히 인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