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
仁川港 / Incheon 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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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만공사 홈페이지
1. 개요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무역항으로, 부산항, 부산신항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무역항이다. 인천항만공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관문항이며 수도 서울의 외항(外港)이다[2] . 물론 인천 토박이들은 이 표현을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지방이나 외국 등 비수도권에서 볼때 엄연히 인천항이 서울로 들어오는 현관이라 이를 부인하기는 힘들다.
비슷한 포지션은 대만의 지룽 항[3] 및 일본의 요코하마 항이 있다.
전술했듯 기본적으로 해외에서는 인천시를 서울과 쌍둥이 도시로 놓고 본다. 조금 내륙에 속한 수도의 해안선 부분이며 국제공항이 있기 때문이다. 대게 댈러스-포트워스, 시애틀-타코마, 뉴욕-뉴어크, 다롄-뤼순, 블라디보스토크-나홋카의 관계로 본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뉴어크와 타코마는 항만시설이 있고 공항이 있으며, 내륙에 속한 포트워스도 공항이 있단 점에서 비슷하다.
2014년 기준으로 컨테이너 물동량이 233.5만 TEU[4] 를 기록하고 있다.
해가 지날수록 물동량이 늘면서 2017년 개항 134년 만에 300만 TEU를 기록하였다. 물동량 기준 대한민국 2위의 항구지만 1위인 부산항과의 격차는 7배에 이른다.[5] 2018년에는 312.1만 TEU를 기록하였다. 다만 신항 건설에만 10조원 이상이 투자되는 부산항과 달리 인천항의 경우 수요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해운 경쟁력을 키울 정부지원이 없는 항구이며 그로 인해 물류비용이 상승, 경쟁력을 정부가 약화시키고 있으며 이면에는 부산항 중심 정책으로 인한 뿌리깊은 인천항 홀대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준설 못하는'인천 신항'홀대 심하다
가까운 인천항 놔두고 언제까지 부산항으로?
또 다시 불거진 인천항 홀대론 "항만 균형발전 특별법 제정" 절실
인천신항 물동량 증가하는데 정부 정책은 '거꾸로'
인천항 처리시설 포화, 2025년까지 대책 없어
또한 인천항은 서해안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지만, 서해의 특성상 얕은 수심으로 인해 큰 선박들이 드나들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송도국제도시에 인천신항을 건설하여 이제는 대형 선박도 정박할 수 있게 되었다.
군사적으로 이 항만의 경계책임은 대한민국 해군 2함대 소속 인천해역방어사령부에 있다. 해안선 경비를 위해 항만경비정과 참수리급 고속정을 보유하고 육지에도 경계군사경찰들이 배치되는 해안초소를 둔다. 이는 목포항이나 부산항도 똑같다. 원래 외국에서는 이런 민항 경계는 해안경비대가 전담하나 한국은 분단국가라 정규 해군이 들어가는 것이다.[6]
2. 역사
조선 초기에도 제물포로 불리며 항구로 이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인천항이 본격적으로 항구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강화도 조약 체결로 부산항, 원산항에 이어 세 번째로 개항되면서부터이다. 수심이 얕고 조수 간만의 차이가 커 항만을 건설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한성과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 때문에 개항지로 낙점되었다.
1883년 일본인 거류지가 설치되고, 1884년 청나라 거류지, 기타 각국 거류지가 설치되었다. 교역량이 증가하면서 일본인 거류지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일본인 거류민회의 주도로 앞바다를 매립하였다(1889~1899). 이를 시작으로 인천역, 인천세관, 만석동 일대 등에서 대대적인 매립이 개시되었다.(인천은)물길을 이용하여 경성으로 왕래하기에 입구의 역할을 하므로 선박이 정박해야 하는 곳이다. 먼저 이 지역을 당분간 통상을 행하는 지역으로 삼고 별도로 다른 좋은 항구를 얻어 옮기는 것을 기약할 것.
일본외교문서, 외무성, 1949
인천항의 본격적인 정비는 러일전쟁 이후 불경기가 찾아오고, 경부선(1905)과 경의선(1906)이 개통하면서 시작되었다. 부산항에서 경부선으로 환적하는 새로운 화물 운송 루트가 만들어지자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차가 커 외항에서 쪽배를 이용해 화물 하역을 하던 인천항의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을사조약으로 일본이 사실상 한반도를 차지하게 되면서 인프라 투자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
1908년 인천 거류 일본인들은 인천축항기성회를 세우고, 대한제국 정부와 한국통감부에 적극적으로 청원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처음에는 비용 문제 때문에 이를 꺼렸지만, 한일합방이 가시화되면서 이토 히로부미 통감이 이에 호응하여 축항 계획이 구체화되었다. 이는 인천항을 만주 철도로 연결되는 거점으로 삼고자 하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과 일본 정부의 협의 끝에 1911년 6월 인천항 축항 공사가 시작되었다.
1918년 10월 인천항의 이중갑문식 독이 완공되었는데, 동양에서는 최초로 건설된 이중갑문식 독이었다(현 내항 1부두 일대). 비록 갑문을 통과하는데 30분이나 소요되기는 했지만, 이전보다 하역 작업이 훨씬 간편해지면서 하역 수수료도 절반이 되었다. 또한 경인선과 항만이 직접 연결되면서 수출입액이 부산항 다음가는 대외무역항으로 거듭났다.
1974년 월미도와 소월미도를 잇는 현대식 갑문이 신설되면서 현재의 내항 전체에 선박이 접안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여러번 얼어붙은 적은 있지만 이로 인해 폐항된 적은 없었지만, 1963년 기록적인 한파로 인해 개항이래 80년만에 폐항된 적이 있다. #.
2017년 한진해운 파산에도 중소 선사 중심의 인천항은 거의 타격을 입지 않았다.
3. 시설
세부적으로 북항, 내항, 남항, 신항 등으로 나뉘는데 동시에 126척까지 접안이 가능하다.
3.1. 북항
목재, 철, 잡화 등 산업 원자재 화물을 취급하는 항만으로 동구 송현동과 서구 원창동 지역에 있다.
송현동에 공장을 보유한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등이 이 항구에서 전기로에 넣을 고철(철스크랩)을 받고 있으며 목재부두에서 받은 원목은 가좌동 일대나 남동공단 일대의 목재가구공단으로 옮겨진다. 2014년부터 SK이노베이션의 SK인천석유화학 돌핀 부두가 건설됨으로써, 최대 10만 톤가량의 유조선 접안도 가능해졌다.
3.2. 내항
컨테이너 전용부두와 자동차, 양곡, 잡화를 취급하는 항만으로 인천항 갑문을 통해 들어간다. 인천과 중국 남부 지역을 오가는 여객선의 행선지인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도 내항 안에 있다. 항구의 소재지는 중구 항동 일대.
특히 갑문이 있어서 파도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 발생 시 선박들의 피항처가 되기도 한다. 다만 인천의 원도심과 붙어있고 수심이 얕은 것이 흠이어서 가장 오래 된 항구이면서도 활용성은 가장 떨어지는 편이다. 인천시 측에서 신포역 인근의 1부두와 월미도 입구 인근 8부두를 개방했으며 추후 원도심 재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개발될 예정이다[7] .
3.2.1. 갑문
서해안의 미친듯한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하기 위해 기계식 갑문을 이용해 항구 내부의 수위를 조절한다. 갑문은 이중으로 설치돼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내항 입항을 원하는 선박은 내항 밖 해역에서 대기하다가 항구 바깥쪽 첫 번째 갑문이 열리면 도크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항구 밖의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갑문과 갑문 사이의 수위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수위가 높아지면 바깥쪽 갑문을 닫는다. 이후 안쪽 갑문이 열려 내항과 같은 수위가 유지돼 안전하게 내항으로 이동해 하역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원리의 수문식 도크가 완공된 덕분에 대형 선박도 인천항 내항에 입항할 수 있게 됐다. 1974년에 완공됐으며 완공 당시부터 현재까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문식 도크'''라는 별칭이 알려져 있다. 갑문 입구는 월미도 남쪽 인천해사고등학교 인근에 있다. 갑문 관리는 인천항만공사가 하고 있다.
3.3. 남항
중소형급 컨테이너선이 접안 가능한 항만으로 3000TEU급 선박이 접안 가능하다. 아울러 바다낚시를 이용할 수 있는 배들도 보통 남항부두에서 출발한다.
3.4. 인천신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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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인천항의 기능 분담과 항만 재배치, 대형 컨테이너선의 입항을 위해 송도국제도시에 건설된 항구이다. 수심은 14m이며 16m로 증심하고 있으나 정부는 증심 계획에 뜨뜨미지근한 상태. 참고로 부산항의 경우 18m까지 증심해놓고 대대적 정부 투자가 들어간 상태이다. 추후 확장 계획이 있다. 인천대학교 끝부분인 27,28,29호관, 기숙사에서 날씨가 맑으면 항만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수출입관련 업체인 포딩, 선사, 관세사, 창고, 운송사 등이 기존 항구지역에 사무실이 몰려있다. 신항과 거리가 있어 실제로 신항을 가야되는 업무를 하는 업종은 좀 불편해 하는 편이다. 추후 신항쪽 물량이 많아진다면 관련업체들이 그 근처로 많이 옮겨 갈것으로 보여진다 지금도 송도국제도시에 이런 업체들이 옮겨가고 있다.
3.5. 여객터미널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5도와 덕적도 등지를 오가는 여객선이 연안부두에 있으며, 같은 곳에 있던 인천국제여객터미널은 2020년 6월 15일부터 송도로 이전되었다.
[1] 인천항 중 갑문을 통해 진입하는 내항의 모습이다.[2] 인천항은 외국에서 수도 서울의 항구로 소개되기도 하나 이는 행정구역, 생활권의 구분이 아닌 인천이 속한 한국 수도권을 대표하는 도시가 당연히 수도 서울특별시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수도 1000만 인구에 바로 인접한 도시의 인구가 300만에 달하는 곳도 거의 없으며, 그나마 유사한 도쿄도-요코하마시도 요코하마가 광역자치단체가 아닌 카나가와현 산하 자치시라는 점에도 별개의 도시로 인식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뉴욕과 뉴어크 관계, 댈러스와 포트워스의 관계를 빗대 쌍둥이 도시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게 이 때문이다. 홍콩에서 출발하는 화물선도 목적지를 서울(인천) 및 부산(진해)로 표기한다. 여기서 진해는 부산신항으로 해당 항구는 진해-부산에 걸쳐 있다.[3] 원래 타이완에서 인천항과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은 단수이였다. 그러나 단수이 항이 단수이 강의 하구에 있던 탓에 모래의 퇴적 현상이 유독 심해 대형 선박의 접안이 어렵게 됐고, 20세기 초반부터 타이완 중심부의 관문항으로서의 역할이 지룽으로 넘어갔다. 현재 단수이는 항구라기보다는 타이베이에서 가까운 해양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다.[4] TEU는 컨테이너 물동량의 단위로 1TEU당 20피트(약 6.1m) 길이의 컨테이너 하나를 뜻한다.[5] 부산항의 물동량은 2017년 기준 2000만 TEU를 넘어섰다.[6] 미국의 경우 민항은 미 해안경비대 및 항만경찰이 경계를 서고 군항은 미합중국 해병대 경비대대가 지대함 미사일과 장갑차 등까지 보유해 경계한다.[7] 인천역 뒷편 월미도 입구 쪽(정확히는 대한제분 입구가 있는 월미도 입구 삼거리 앞)에 있는 8부두는 2016년 6월 현재 임시방편의 일환으로 무료주차장을 만들어 개방하고 있다. 월미도나 송월동 동화마을, 차이나타운에 차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은 이 곳에 차를 대고 걸어가거나 대중교통으로 각 목적지를 찾아가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