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지
符都誌
환단고기보다 앞서 발표된 한국의 대표적인 '''저서'''. 신라 시절 박제상(朴提上)이 저술했다는 사서인 《징심록(澄心錄)》의 일부라고 한다. 1953년에 그 후손인 박금(朴錦)이 그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일반에 공개되었고, 1986년 번역본이 출간되어 널리 알려졌다. 조선 시대에 김시습에 의해 번역되었고, 그 필사본이 보관되고 있었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현존하는 《부도지》의 내용은 원본의 내용을 연구했던 기억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박금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만보산 사건을 취재한 기자라고 한다. 6.25 전쟁으로 홀몸으로 피난가게 되었고, 1953년 울산의 피난소에서 과거에 징심록을 번역하였고, 연구하던 기억을 되살려 거의 원문에 가깝게 되살려 낸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음신지, 역시지 등 다른 부분들도 출간해내려했다는 얘기만 전한다. 그런데 부도지 전승과정이 어째 환단고기 원문을 분실해 기억력에 의존해 살렸다고 허풍친 환단고기의 실제 저자인 이유립의 얘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부도지(符都誌)라는 말은 "하늘의 뜻 (天符)을 받드는 도읍(都)에 관한 기록(誌)"이라는 뜻이다. 이 책에 따르면 '부도'의 지역은 곧 현재의 한반도를 뜻한다.
《징심록(澄心錄)》은 3교(敎) 15지(誌)로 되어 있다.
시대는 짐세, 선천, 후천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선천(先天)의 시대가 열리기 이전에 짐세(朕世)라는 시대가 있었으며, 후천의 말기에 임검씨(단군)가 등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각 지방의 전설로 남아 있는 ‘마고’가 민족의 시조로서 등장하고 있으며, 소리에 의해 세상이 창조되고, “오미의 화”로 말미암아 12부족이 나뉘게 되는 과정, 대홍수, 황궁·유인·환인·환웅씨의 계승과, 요와 순 임금에 의해 동방(단군조선)과 화하(하나라)가 분리되는 과정이 서술되었다. 단군조선의 치세는 1천 년 간이며, 1천 년에 걸쳐 각 부족이 자리잡은 이후로 ‘단군조선을 포함한 치세’가 7천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부도지》에 기록된 한민족의 기원은 1만 1천 년보다 이전이 된다.
책 전반에 도교적 색채가 깔려있고 한국 신화를 정리하려고 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창세신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내용은 성경과 무속의 전승들을 적절히 짬뽕시켜놓은 것 같은 느낌이 상당히 강하다. 선악과인 양 사람들이 포도열매를 먹고 그 맛에 욕망과 같은 감정을 깨닫는다거나 왕을 세울 것이냐 말 것이냐 논의하는 장면이 사무엘 상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든지. 마고성은 에덴동산을 연상케 하고 마고성이라는 명칭과 그에 대한 이야기는 국내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마고성이라는 성터나 지명, 마고성 지방에 있던 소국이 단군에게 귀화했다거나, 마고할미가 거느리는 마고족이 단군이 거느리는 박달족에게 패해 복종했다는 전설[1] 과 매우 닮아 있는 등, 내용만 보면 훌륭한 동서양 퓨전 판타지소설이다.
한민족이 파미르 고원에서 기원했다고 서술되어 있어서 소위 파미르기원설의 원류가 된다. 그 외에도 무한한 떡밥을 양산할 수 있는 능력은 있으나 전반의 신화 포스에 밀려 후반부 내용은 잘 언급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 책도 환단고기처럼 원본이 없으며 구술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것. 부도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징심록도 실존했는지의 여부가 불분명하다. 구술에 의해 작성된 것은 그렇다 쳐도 내용이(...). '완전히 신화일 뿐 별 관계는 없구나'라고 하면 괜찮을 리가 없다. 내용을 읽어가다 보면 점점 더 환빠적 색채가 묻어나오고 있다.
확실히 위서이지만 일단 뭔가 몽환적으로 쓰인 데다 그다지 주목도가 높지 않아서 학계에서는 까지도 않는다. 환단고기처럼 대놓고 경전이나 진서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에서 인용하거나 언급하는 수준이라 그냥 '''무시할 뿐.''' 한편, 단월드 등 환단고기 활용 일색이던 이쪽 종교 계열에서는 유독 부도지를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미국 세도나에 거대한 마고상을 세웠다가 철거당하기도 했다.(...)
아무튼 중요한 문제는 서적 내용의 진실성과 저자(로 주장되는 사람)와 저서의 연관성이 확실한가의 여부인데, 환빠들은 난데없이 박제상을 시조로 하는 영해 박씨(寧海 朴氏) 족보를 들고 와서는 박제상이 있었으니 이 책도 진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단 영해 박씨 문중에는 박금이 복원한(또는 제작한) 초안 복사본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부도지 고찰 '''훌륭하게 논점을 빗나가고 있다.''' [2]
부도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이 한국 무속의 신화소를 서구 신화에 섞어 오염시켰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마고 신앙만 해도 각종 지역 무속 등의 마고 신화와가 짬뽕되어 있고, 이는 마고 신앙 자체가 오염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후술할 영화 마고처럼 부도지의 창세신화를 기반으로 창작물이 나오는 등의 부작용이 있어 경계가 필요하다.
근대 중국의 정치학자 및 근대화론자인 량치차오가 주장한 위서를 판단하는 법[3] 에 따르면, 이 책은 확실한 위서이다. 량치차오의 위서 판단법 중 제 1번인 "그 책이 전대(과거)에는 저서 속에 보이지 않거나 혹은 결코 다른 사람이 인용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것은 10중 9는 거짓이다."에 따르면, 한국사에 남겨진, '진서'로 취급받는 그 어떤 문헌에서도 부도지라는 책을 인용한 바가 없다. 1950년대에 박금이 자기 조상님이 쓴 책이라며 '기억에 따라 내용을 복원'해서 내놓기 전에는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쐐기가 바로 삼국유사에 부도지가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금의 '주장'에 따르면, 김시습이 부도지를 읽고 그것을 '당시의 한문'으로 해석하였다고 하는데[4][5] , 그 말은 김시습 이전, 일연이 삼국유사를 쓸 때도 부도지가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삼국유사에는 단군 신화를 포함해 한반도에서 있었다는 수많은 초자연적, 신화적 행적들을 총망라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정작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김제상'[6] 이 왕족인 미사흔을 구하러 일본으로 갔다가, 고문을 당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만 해놓았을 뿐 박제상/김제상의 부도지라는 책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부도지가 존재했다면 일연이 그 책의 내용을 인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영화 마고가 부도지의 마고신앙을 영화한 것이다.
2014년에 한국의 한 여고생이 부도지를 해설한 강의를 유튜브에 올리고 책으로 펴내서 화제가 되었고,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선정한 '2014년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사. 해당 책은 단순히 유사과학 팔이에 불과하며 '인재상' 따위를 수상할 것이 전혀 아니다. 본인은 '위서라고 해서 가치가 없지 않다' 라는 변론을 '''당당하게''' 하고 있으나, 애초에 박제상이 쓰지 않은 책에 대해 해설한다고 해 봐야, 그 해석에는 가치가 있을 리가 없다. 환단고기를 제 아무리 해석한다고 해 봐야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이다. 물론 위서도 때에 따라서는 역사적 분석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가령 환단고기를 분석하면 '환단고기의 날조자 이유립이 무슨 생각을 하였는가, 그의 사상은 무엇인가' 정도의 해석이 가능하며. 대표적인 서양의 위서인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서'(무려 교황청이 날조한 저술)은 중세 교황권의 형성 및 정당화 과정을 추적하기 위한 단서로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유튜브 영상 및 저작이 그런 수준의 분석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일 뿐.
애초에 그 부도지 해설이라는 것의 영상을 아무렇게나 펼쳐 봐도 전형적인 음양오행 주역 유사과학수준의 내용에 불과하다. 이것이 박제상이 실제로 저술한 것이라면야, 유사과학이라고 조롱하기 이전에 고대 한반도인들의 형이상학적 관점을 분석하는 귀중한 사상사적 사료이겠지만[7] 애초에 '1950년대 박금이라는 사람이 조상의 이름을 팔아 쓴 위서'의 형이상학적 의미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껏해야 그 사람의 오컬트 책일 뿐.
1. 개요
환단고기보다 앞서 발표된 한국의 대표적인 '''저서'''. 신라 시절 박제상(朴提上)이 저술했다는 사서인 《징심록(澄心錄)》의 일부라고 한다. 1953년에 그 후손인 박금(朴錦)이 그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일반에 공개되었고, 1986년 번역본이 출간되어 널리 알려졌다. 조선 시대에 김시습에 의해 번역되었고, 그 필사본이 보관되고 있었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현존하는 《부도지》의 내용은 원본의 내용을 연구했던 기억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박금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만보산 사건을 취재한 기자라고 한다. 6.25 전쟁으로 홀몸으로 피난가게 되었고, 1953년 울산의 피난소에서 과거에 징심록을 번역하였고, 연구하던 기억을 되살려 거의 원문에 가깝게 되살려 낸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음신지, 역시지 등 다른 부분들도 출간해내려했다는 얘기만 전한다. 그런데 부도지 전승과정이 어째 환단고기 원문을 분실해 기억력에 의존해 살렸다고 허풍친 환단고기의 실제 저자인 이유립의 얘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부도지(符都誌)라는 말은 "하늘의 뜻 (天符)을 받드는 도읍(都)에 관한 기록(誌)"이라는 뜻이다. 이 책에 따르면 '부도'의 지역은 곧 현재의 한반도를 뜻한다.
2. 내용과 구성
《징심록(澄心錄)》은 3교(敎) 15지(誌)로 되어 있다.
- 상교 - 부도지(符都誌), 음신지(音信誌), 역시지(曆時誌), 천웅지(天雄誌), 성신지(星辰誌)
- 중교 - 사해지(四海誌), 계불지(禊祓誌), 물명지(物名誌), 가악지(歌樂誌), 의약지(醫藥誌)
- 하교 - 농상지(農桑誌), 도인지(陶人誌), 식화지(食火誌), 궁성지(宮城誌), 의관지(衣冠誌)
- 금척지
- 징심록추기
- 요정징심록연의추기
시대는 짐세, 선천, 후천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선천(先天)의 시대가 열리기 이전에 짐세(朕世)라는 시대가 있었으며, 후천의 말기에 임검씨(단군)가 등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각 지방의 전설로 남아 있는 ‘마고’가 민족의 시조로서 등장하고 있으며, 소리에 의해 세상이 창조되고, “오미의 화”로 말미암아 12부족이 나뉘게 되는 과정, 대홍수, 황궁·유인·환인·환웅씨의 계승과, 요와 순 임금에 의해 동방(단군조선)과 화하(하나라)가 분리되는 과정이 서술되었다. 단군조선의 치세는 1천 년 간이며, 1천 년에 걸쳐 각 부족이 자리잡은 이후로 ‘단군조선을 포함한 치세’가 7천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부도지》에 기록된 한민족의 기원은 1만 1천 년보다 이전이 된다.
3. 평가
책 전반에 도교적 색채가 깔려있고 한국 신화를 정리하려고 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창세신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내용은 성경과 무속의 전승들을 적절히 짬뽕시켜놓은 것 같은 느낌이 상당히 강하다. 선악과인 양 사람들이 포도열매를 먹고 그 맛에 욕망과 같은 감정을 깨닫는다거나 왕을 세울 것이냐 말 것이냐 논의하는 장면이 사무엘 상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든지. 마고성은 에덴동산을 연상케 하고 마고성이라는 명칭과 그에 대한 이야기는 국내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마고성이라는 성터나 지명, 마고성 지방에 있던 소국이 단군에게 귀화했다거나, 마고할미가 거느리는 마고족이 단군이 거느리는 박달족에게 패해 복종했다는 전설[1] 과 매우 닮아 있는 등, 내용만 보면 훌륭한 동서양 퓨전 판타지소설이다.
한민족이 파미르 고원에서 기원했다고 서술되어 있어서 소위 파미르기원설의 원류가 된다. 그 외에도 무한한 떡밥을 양산할 수 있는 능력은 있으나 전반의 신화 포스에 밀려 후반부 내용은 잘 언급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 책도 환단고기처럼 원본이 없으며 구술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것. 부도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징심록도 실존했는지의 여부가 불분명하다. 구술에 의해 작성된 것은 그렇다 쳐도 내용이(...). '완전히 신화일 뿐 별 관계는 없구나'라고 하면 괜찮을 리가 없다. 내용을 읽어가다 보면 점점 더 환빠적 색채가 묻어나오고 있다.
확실히 위서이지만 일단 뭔가 몽환적으로 쓰인 데다 그다지 주목도가 높지 않아서 학계에서는 까지도 않는다. 환단고기처럼 대놓고 경전이나 진서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에서 인용하거나 언급하는 수준이라 그냥 '''무시할 뿐.''' 한편, 단월드 등 환단고기 활용 일색이던 이쪽 종교 계열에서는 유독 부도지를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미국 세도나에 거대한 마고상을 세웠다가 철거당하기도 했다.(...)
아무튼 중요한 문제는 서적 내용의 진실성과 저자(로 주장되는 사람)와 저서의 연관성이 확실한가의 여부인데, 환빠들은 난데없이 박제상을 시조로 하는 영해 박씨(寧海 朴氏) 족보를 들고 와서는 박제상이 있었으니 이 책도 진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단 영해 박씨 문중에는 박금이 복원한(또는 제작한) 초안 복사본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부도지 고찰 '''훌륭하게 논점을 빗나가고 있다.''' [2]
부도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이 한국 무속의 신화소를 서구 신화에 섞어 오염시켰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마고 신앙만 해도 각종 지역 무속 등의 마고 신화와가 짬뽕되어 있고, 이는 마고 신앙 자체가 오염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후술할 영화 마고처럼 부도지의 창세신화를 기반으로 창작물이 나오는 등의 부작용이 있어 경계가 필요하다.
근대 중국의 정치학자 및 근대화론자인 량치차오가 주장한 위서를 판단하는 법[3] 에 따르면, 이 책은 확실한 위서이다. 량치차오의 위서 판단법 중 제 1번인 "그 책이 전대(과거)에는 저서 속에 보이지 않거나 혹은 결코 다른 사람이 인용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것은 10중 9는 거짓이다."에 따르면, 한국사에 남겨진, '진서'로 취급받는 그 어떤 문헌에서도 부도지라는 책을 인용한 바가 없다. 1950년대에 박금이 자기 조상님이 쓴 책이라며 '기억에 따라 내용을 복원'해서 내놓기 전에는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쐐기가 바로 삼국유사에 부도지가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금의 '주장'에 따르면, 김시습이 부도지를 읽고 그것을 '당시의 한문'으로 해석하였다고 하는데[4][5] , 그 말은 김시습 이전, 일연이 삼국유사를 쓸 때도 부도지가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삼국유사에는 단군 신화를 포함해 한반도에서 있었다는 수많은 초자연적, 신화적 행적들을 총망라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정작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김제상'[6] 이 왕족인 미사흔을 구하러 일본으로 갔다가, 고문을 당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만 해놓았을 뿐 박제상/김제상의 부도지라는 책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부도지가 존재했다면 일연이 그 책의 내용을 인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영화 마고가 부도지의 마고신앙을 영화한 것이다.
2014년에 한국의 한 여고생이 부도지를 해설한 강의를 유튜브에 올리고 책으로 펴내서 화제가 되었고,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선정한 '2014년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사. 해당 책은 단순히 유사과학 팔이에 불과하며 '인재상' 따위를 수상할 것이 전혀 아니다. 본인은 '위서라고 해서 가치가 없지 않다' 라는 변론을 '''당당하게''' 하고 있으나, 애초에 박제상이 쓰지 않은 책에 대해 해설한다고 해 봐야, 그 해석에는 가치가 있을 리가 없다. 환단고기를 제 아무리 해석한다고 해 봐야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이다. 물론 위서도 때에 따라서는 역사적 분석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가령 환단고기를 분석하면 '환단고기의 날조자 이유립이 무슨 생각을 하였는가, 그의 사상은 무엇인가' 정도의 해석이 가능하며. 대표적인 서양의 위서인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서'(무려 교황청이 날조한 저술)은 중세 교황권의 형성 및 정당화 과정을 추적하기 위한 단서로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유튜브 영상 및 저작이 그런 수준의 분석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일 뿐.
애초에 그 부도지 해설이라는 것의 영상을 아무렇게나 펼쳐 봐도 전형적인 음양오행 주역 유사과학수준의 내용에 불과하다. 이것이 박제상이 실제로 저술한 것이라면야, 유사과학이라고 조롱하기 이전에 고대 한반도인들의 형이상학적 관점을 분석하는 귀중한 사상사적 사료이겠지만[7] 애초에 '1950년대 박금이라는 사람이 조상의 이름을 팔아 쓴 위서'의 형이상학적 의미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껏해야 그 사람의 오컬트 책일 뿐.
[1] 북한에서 채집된 전설로 <우리신화의 수수께끼>에 수록되어 있고, 마고할미 문서에 개략적인 내용이 나와 있다.[2] 러브크래프트가 쓴 '네크로노미콘의 역사'에는 네크로노미콘 1228년 중세 시대에 덴마크의 올라우스 워미우스가 라틴어 번역본을 만들었고, 1232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이들은 둘 다 실존 인물이지만 네크로노미콘과 관련된 것은 어디까지나 크툴루 신화의 설정에 불과할 뿐 역사적 사실은 결코 아니다. 고로, 박제상이 실존인물이라는 것을 근거로 부도지를 진서라고 주장하는 건 훌륭한 논점 이탈이자 억지주장이다.[3] 위서문서에도 량치차오의 위서 감별법이 모두 인용되어 있다.[4] 물론, 김시습이 부도지를 해석했다는 것도 박금의 유사역사학적 설정에 불과하다. 김시습을 언급하는 그 어떤 신뢰받는 문헌에서도 금오사화 저술 이외의 행적을 기록하지 않기 때문이다.[5] 위 각주에 첨언하자면, 홍길동전이 허균의 저술이라고 인정받는 이유는, '이식' 이라는 사람의 '택당집'이라는 저술에 허균이 홍길동전이라는 책을 썼다고 기록했다는 문헌적 증거가 있기 때문이며, 설공찬전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소실된 줄 알았다가 극적으로 어느 집의 책 뒷면에서 부분적으로 발견되었다고 하기에 위서일 가능성이 있지만, 채수가 이 책을 써서 조정으로부터 제재받았다는 확실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으며, 무엇보다 설공찬전이 발견된 것이 당대 사람이 남긴 묵재일기 책의 뒷면이었기에 진서라는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이다.[6] 삼국유사에는 박제상을 김제상이라고 일컫고 있다.[7] 가령,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는 오늘날의 자연과학에 비추어 수많은 오류이자 유사과학이라 볼 만한 내용들이 넘쳐나지만, 그것들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서로 인정받기 때문에 그러한 오류조차도 당시 사람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자료로서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