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 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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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미와 일본 프로레슬링 무대에서 활동했던 미국의 전 프로레슬러. 텍사스 주 출신으로 카우보이 모자, 소치기용 올가미, 씹는 담배 등 전형적인 거칠고 호전적인 텍사스 카우보이의 이미지를 살리는 기믹으로 북미와 일본 프로레슬링계에 이름을 남겼다. 나아가 일본 프로레슬링 역사에서는 베이더와 함께 '''최고의 외국인 용병 프로레슬러'''로 인식될 정도로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한국 프로레슬링 커뮤니티에서 미국식 발음인 '스탠 핸슨'이 아닌 일본 가타카나 발음인 ''''스탄 한센', '스턴 한센'''' 같은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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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에서 가장 대중적인 기술 중 하나인 래리어트를 창시한 전설적인 인물로, 이 기술을 널리 보급시킨 주인공으로도 이름이 높다. 참고
2. 프로레슬링 커리어
2.1. 미국 커리어
1990년대 이전 북미 프로레슬링계의 3대 단체라고 할 만한 WWWF, AWA, WCW 각각에서 모두 큰 활약을 펼쳤지만 결정적인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WWWF에서는 신인 시절이던 1976년, WWWF 헤비급 챔피언인 브루노 삼마르티노와 타이틀전을 가지는 푸쉬를 받았지만, 해당 경기에서 삼마르티노가 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벌어지고 만다. 브루노 삼마르티노 본인 및 WWWF 측에서는 스탠 핸슨을 용서해주었지만 당시 뉴욕 팬들에게 목숨의 위협까지 받게 되어 결국 스탠은 WWWF를 떠나게 된다. 스탠 한센의 회고. 이후 1980년대 초 다시 WWF에 복귀하여 브루노 삼마르티노, 안드레 더 자이언트, 밥 백런드 등과 대립을 갖기도 했다.
AWA에서는 릭 마텔을 꺾고 1985년부터 1986년까지 AWA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을 방어했다. 하지만 당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함께 참전하던 스탠 핸슨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방어전을 갖지 못하고 번 가니에와의 사업상 갈등으로 인해 챔피언을 박탈당하는데, 번 가니에를 비롯한 AWA 수뇌부는 덩치 큰 프로레슬러보다는 번 가니에 본인과 비슷한 테크니컬 프로레슬러들을 선호했기 때문이다.전 어릴 적에 부기맨이건 킹콩이건 고질라건 무섭지 않았습니다. 무서운건 스탠 핸슨이었죠. 왜냐구요? 브루노 삼마르티노의 목을 부러뜨린 사람이었다구요. 그 브루노 삼마르티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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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W에서도 전일본 프로레슬링 활동을 겸업해 1991년까지 출전하며 NWA US 헤비급 챔피언을 둔 렉스 루거와 대립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수뇌부와의 이견으로 인해 오래 출전하지는 않는다. 일본 프로레슬링 계의 주요 흥행 스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면서 북미 프로레슬링 계에는 점차 게스트 출연만 하게 되는 등 상대적으로 북미 프로레슬링 계에서는 활약이 저조했지만[2] 북미에서도 공적을 인정받아 2016년에 WWE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입성 소감 영상.
2.2. 일본 커리어
일본 프로레슬링 계에선 '불침함'이란 영예로운 별칭을 얻었으며, 베이더와 함께 최고의 외국인 용병이었다. 또 안토니오 이노키와 자이언트 바바를 싱글 챔피언 결정전에서 모두 꺾은 유일한 인물이란 상징성까지 얻었다.
일본에 본격적으로 참전을 하게 된 계기는 1977년에 WWWF를 경유하여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참전한 것이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안토니오 이노키, 앙드레 더 자이언트 등과 대립을 가지면서 단체 내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성장했고, 신인이었던 헐크 호건의 태그 파트너이자 라이벌로 활동하기도 했다.[3] 하지만 1981년에 벌어진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전일본 프로레슬링 간의 스카웃 전쟁 끝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이적한다.
이후 스탠 핸슨은 자이언트 바바, 점보 츠루타, 텐류 겐이치로 등을 상대하던 1980년대부터 미사와 미츠하루를 필두로 한 '''전일본 4천왕'''의 1990년대 왕도 프로레슬링 시기에 이르기까지 20여년 가까이 단체 내 탑 외국인 프로레슬러로서 전설적인 커리어를 남긴다. 또 스티브 윌리엄스, 쟈니 에이스 등 후배 북미 프로레슬러들이 일본 프로레슬링계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1990년 2월 10일,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합동 흥행이 도쿄돔에서 개최되면서 베이더와의 외국인 용병 정상결전을 가져 이름값에 걸맞는 명경기를 만들었다. 경기 도중 스탠 핸슨이 실수로 베이더의 눈을 손으로 찔렀고, 이에 베이더는 가면을 벗고 퉁퉁 부은 눈을 한 채 10여분간 더 경기를 속행하면서 둘의 장외 난투로 더블 카운트아웃 무승부를 기록한다. 이때 베이더의 안구가 튀어나와 베이더가 다시 안구를 원 위치시키고 경기를 속행했다는 황당한 루머가 진실인양 떠돌았으며, 화제가 된 둘의 경기는 WCW에서도 리매치로 잡혔지만 도쿄돔만큼의 명경기가 되지는 못했다.
자이언트 바바 사후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벌어지고 프로레슬링 NOAH가 발족하는 상황에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남았지만 다음 해인 2001년 도쿄 돔에서 프로레슬러 은퇴식을 가졌다.
3. 기타
- 왼손잡이이다. 그래서 그의 피니쉬 무브인 래리어트의 폼을 보면 항상 왼손으로 상대를 타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심한 근시라고 한다. 거칠고 저돌적인 경기 스타일이 된 것은 이러한 근시 까닭도 있었다고 한다.
- 무수한 후배 레슬러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북미 레슬링 계에서는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가 핸슨의 팬인 것으로 유명하며, 일본에서는 전일본 프로레슬링과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넘나드며 활동하는 코지마 사토시가 핸슨의 웨스턴 래리어트를 이어받은 계승 웨스턴 래리어트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참고
- 60대가 되었을때부터 집에서 요리를 시작했는데, 주로 야채가 들어간 파스타등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또한 고기는 일주일에 한번밖에 안먹고, 어려서부터 아침은 샐러드를 먹었다고.
4. 둘러보기
[1] WWE에서 스탠 핸슨의 WWE 명예의 전당 입성을 기념하는 자체 제작 영상에서 나온 것. 참고[2] 그와 비슷한 커리어를 겪은 베이더도 북미에서 활동이 저조하긴 했지만 그래도 NWA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고 당시 북미 양대 단체였던 WCW와 WWF(현 WWE)에서도 활동하는 등 챔피언만 되지 못했지 메인 이벤터로서는 나름 활약을 했다.[3] 프로레슬링 해체신서 45 -9년만의 꿈의 리매치. 간판 외국인 선수 각각의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