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플레어
1. 프로필
2. 소개
3. 커리어
3.1. 초창기(1972~1974)
3.2. 일본 활동기
3.3. Nature Boy가 되다(1974~1981)
3.5. WCW(1986~1991)
3.6. WWF(1991~1993)
3.7. WCW로 복귀(1993~1996)
3.8. vs nWo 그리고 고난(1996~2001)
3.9. RAW의 소유주(2001~2002)
3.10. 에볼루션(2003~2005)
3.11. 이후
3.12. ROH와 헐카매니아 투어(2009)
3.13. TNA(2010~2012)
3.14. WWE로의 귀환
4. 그의 상징
5. 경기 운영 방식
6. 광란의 귀공자?
7. 레슬링 외 활동
8. 그 외
9. 둘러보기
1. 프로필
2.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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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ylin'& profilin', limousine riding, jet flying, kiss-stealing, wheelin' n' dealin' son of a gun!"'''
'''"To be 'The Man', You gotta beat the man!"'''
사나이가 되려면, 사나이를 꺾어야지!
'''"Woooooooㅡ!!!"'''[3]
미국의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나 샬럿에서 자랐다. 피니쉬 무브는 피겨 포 레그락(4자 꺾기)[5] . 별명은 '''네이처 보이(Nature Boy)'''[6] 이다.'''"16 Times World Champion"'''[4]
프로레슬링은 1972년도부터 시작하였으며, '''메이저 단체 최다 월드 챔피언십 획득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월드 챔피언쉽 커리어는 기록하는 주체에 따라 들쭉날쭉한데, 오로지 WWE 챔피언쉽 & WCW 챔피언쉽 & NWA 챔피언쉽 세 개만으로도 '''최대 24회 월드 챔피언으로까지 인정될 수 있다고 한다'''. WWE를 비롯한 대부분의 매체에서는 8회 NWA 월드 챔피언, 6회 WCW 월드 챔피언[7] , 2회 WWE 월드 챔피언으로서 '''16회 챔피언'''으로만 인정한다.[8]
현재는 딸 샬럿 플레어가 그의 뒤를 이어 WWE에서 활동중. 본인은 은퇴 이후 딸의 사이드에 서 주는 매니저 역할을 종종 수행하곤 한다.
3. 커리어
3.1. 초창기(1972~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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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프레드였던 플레어는 독일계 미국인 양부모에게 입양된다. 고등학생 시절 미식축구와 트랙 운동, 아마추어 레슬링을 했고, 대학에도 이걸로 장학금을 받고 갔을 정도였다. 허나 그는 대학교를 그만두고 나이트클럽 바운서로 일했고, 거기서 올림픽 역도 선수 켄 패테라를 만나 그가 활동하던 번 가니에의 도장에 들어가 레슬링을 배운다. 1971년 겨울 본격적으로 데뷔 준비를 가져 1972년 릭 플레어란 이름으로 10분간 경기를 가지며 데뷔를 한다.
3.2. 일본 활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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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부터 릭 플레어는 AWA가 일본과 맺은 협업 관계 덕분에 용병으로 참전했고, 1980년대 NWA 월드 챔피언에 올라있을 때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텐류 겐이치로, 리키 초슈, 점보 츠루타 등과 대결을 한다. 또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며 무토 케이지, 후지나미 타츠미와 대결을 갖기도 한다.[9] 1990년대에는 WWF가 SWS와 제휴를 맺었기에 그때도 일본에서 활동했고, 2000년대에도 몇 차례 일본에서 모습을 비춘다.
3.3. Nature Boy가 되다(1974~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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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릭 플레어는 NWA 산하의 짐 크로켓의 단체로 이적한다. 뛰어난 실력과 쇼맨십으로 이내 첫 타이틀 획득에도 성공했지만 재앙과도 같은 사고를 당하는데 26살의 나이로 비행기 사고를 당해 의사로부터 결코 레슬링을 하지 못 할 거라는 청천벽력 소식을 듣게 된다. 하지만 플레어는 3개월 만에 다시 복귀를 했고, 이때부터 기존의 테크니션적인 레슬링 스타일에서 지금도 잘 알려진 치사하고 더럽기 그지없는 브롤링 스타일로 변모한다. 또한 자신이 존경하던 버디 로저스의 별멍이었던 '네이쳐 보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1977년 NWA 전체에서 2위급 벨트라 할 수 있는 US 챔피언에 올랐고, 1978년에는 자신의 우상 버디 로저스를 꺾는데 성공한다.
이렇게 그의 상승세는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3.4. NWA 챔피언 그리고 포 호스맨(1981~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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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당시 NWA 월드 챔피언이었던 할레 레이스를 꺾음으로써 첫 월드 챔피언에 등극한다. 그의 높은 인기 덕분에 당시 WWF의 확장에 고전하던 NWA는 그를 연합의 얼굴로 삼아 WWF에 맞서기로 한다. 플레어는 여기에 맞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 그의 상징적인 캐치프레이즈 "WOO~"와 "남자가 되고 싶다면 진짜 남자와 싸워라."를 사용하고, 그리고 북미 찹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플레어 찹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다. 그러다 1983년 6월 다시 할리 레이스에게 타이틀을 넘겨주지만,[10] 5개월 만에 NWA 스타케이드(1983)에서 스틸 케이지 매치를 통해 다시 뺐어왔고, 텍사스의 폰 에릭 가문 레슬러들과 대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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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85년 NWA는 대형 스테이블 포 호스맨을 발족시킨다. 이 스테이블의 리더는 당연히 릭 플레어였고, 이후 몇 차례 멤버들이 바뀌긴 했지만 NWA 월드 챔피언 릭 플레어, US 챔피언 툴리 불랜차드, 태그팀 챔피언 안 앤더슨과 배리 윈덤 그리고 매니저 JJ 딜런은 NWA를 지배했으며 비록 악역이었을지 언정 NWA의 모든 팬들은 포 호스맨을 동경하며 따라 했다.
3.5. WCW(1986~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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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플레어는 여전히 NWA 최고의 선수였고, 당시 더스티 로즈, 로디 파이퍼, 리키 스팀보트 등과 대결을 한다. 특히 1989년 리키 스팀보트와 여러 차례에 걸쳐서 대결했는데, 이때의 대결들은 하나도 버릴게 없는 명경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데이브 멜처는 릭 플레어 VS 리키 스팀보트의 경기 3연전 모두에 5성을 부여했을 정도로 높게 평가했다. 여기에 훗날 멜처가 언급한 메릴랜드에서의 하우스쇼 경기는 '''5.5에서 6성이 걸맞다'''는 평가를 내렸다. 비록 그가 있는 동안 NWA와 WCW는 어느 정도 세력을 유지했지만 이미 판도는 WWF로 넘어왔었고, 릭 플레어의 높은 몸값을 감당하지 못했던 WCW는 월드 챔피언이었던 그를 해고 처리해버린다.
3.6. WWF(1991~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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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릭 플레어는 WWF와 계약을 맺었는데 첫 등장 당시 NWA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갖고 등장하는 패기를 발휘하며 NWA를 자극한다.[11] 릭 플레어는 여러 선수들과 대립을 가졌는데 특히 당대 WWF 챔피언이었던 헐크 호건과 대립을 하고,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1)에서 있었던 WWF 챔피언십에서 언더테이커가 챔피언이 되도록 도왔다.
WWF 로얄럼블(1992)에서 우승하면서 WWF 챔피언이 되었으며,[12] 랜디 새비지와 대립을 갖기 시작한다. 릭 플레어는 새비지의 아내인 엘리자베스가 부정한 여자라고 말했고, 레슬매니아 8에서 랜디 새비지에게 패해 타이틀을 잃었지만 5개월 만에 되찾아온다.
하지만 한 달 뒤인 10월 브렛 하트에게 패하면서 타이틀을 내주게 되고,[13] 얼마 안가 WWF를 나가게 된다.
3.7. WCW로 복귀(1993~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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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WWF를 떠난 플레어는 다시 WCW로 돌아온다. 당시 WCW는 베이더의 시대였고, 그는 베이더와 수차례 경기를 가졌지만 괴수 중의 괴수였던 베이더를 제대로 꺾기란 불가능했었다. 한편 1980년대부터 함께 해오던 스팅이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오를 때가 되었었고, 릭 플레어는 그의 성장을 돕기 위해 WCW 인터내셔널 벨트[14] 를 두고 여러 차례 격돌한다.
한편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WCW의 제휴 관계로 인해 1995년 평양의 능라도 경기장에서 안토니오 이노키와 경기를 갖기도 한다.[15][16]
3.8. vs nWo 그리고 고난(1996~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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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96년 nWo가 결성되자 릭 플레어는 포 호스맨을 이끌고, 그들에게 맞섰지만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그들을 이기지는 못하고, 결국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된다. 그런데 릭 플레어 인생의 최대의 위기가 닥쳐오는데 그것은 바로 WCW의 부사장 에릭 비숍과의 갈등이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격해졌고, 마침내 플레어가 회사에 통보하고 결근했음에도 비숍은 이를 빌미로 그를 해고해버린다.[17] 그러나 수많은 관중들은 릭 플레어의 부재에 크게 분노했고, 마침내 1998년 포 호스맨의 재결성 세그먼트를 통해 WCW로 복귀한다. 이후 각종 역할을 수행을했으며 1999년 3월 PPV인 WCW 언센서드(1999)에서 할리우드 호건을 꺽고 WCW 월드 챔피언에 오르기도한다.
2000년 초반에는 렉스 루거와 팀 패키지라는 팀을 이루어 헐크 호건, 스팅과 대립을 하였다 이후 2000년 04월부터 밀리어네어즈 클럽을 이끌며 뉴 블러즈와 대립을 하였고 이 시기 제프 제럿을 꺾고 두 차례 WCW 월드 챔피언에 올랐다.
2000년 5월 29일 나이트로에서 제프 제럿과 WCW 월드 타이틀 매치를 했는데 이 경기에서 제프 제럿의 반칙과 빈스 루소와 아들 데이비드 플레어의 난입으로 패하여 타이틀을 잃는다.
이후 긴 휴식을 가진후 다시 복귀하여 각본상 WCW 회장직을 맡으며 활동하다 2001년 1월 PPV WCW 신(2001) 다음날인 나이트로에서 스캇 스타이너, 제프 제럿, 로드 워리어 애니멀, 렉스 루거, 버프 베그웰과 연합하여 매그니피센트 세븐 이라는 스테이블을 형성하여 케빈 내시가 이끄는 업 스타츠 스테이블과 대립한다.
3월 PPV WCW 그리드(2001)에서는 제프 제럿과 연합하여 로즈 부자와 태그팀매치를 가지지만 결국 패배하고 2001년 3월 WCW는 종말을 맞았고, WCW의 마지막 이벤트인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스팅과 마지막 경기를 갖는다.
3.9. RAW의 소유주(2001~2002)
WCW가 사라진 뒤 WCW와 ECW 연합군의 인베이전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플레어는 참여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인베이전 스토리가 끝이 난 서바이버 시리즈 2001 이후 플레어는 RAW에 등장하며 다시 한번 WWF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 맡은 역할은 WCW의 오너였던 기믹의 연장선인 WWF의 공동 소유주였다.[18] 당연지사 빈스 맥마흔은 이걸 가만히 두지 않았고, WWF 로얄럼블(2002)에서 빈스 맥마흔과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를 가졌고 플레어는 빈스에게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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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대립 뒤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쳐오는데 바로 언더테이커와의 대립이었다.WWF 노 웨이 아웃(2002)에서 플레어는 더 락과 경기를 갖던 언더테이커를 방해해 그에게 패배를 안겨줬고 언더테이커는 릭 플레어의 옛 동료 안 앤더슨과 아들 데이비드 플레어를 박살낸다. 결국 레슬매니아 18에서 언더테이커와 NO DQ 매치를 치루는데, 플레어는 피투성이가 되고, 안 앤더슨의 도움도 받았지만 결국 언더테이커에게 패배했다. 이후, WWF는 로스터를 RAW와 스맥다운으로 이분할하면서 빈스를 스맥다운의 소유주, 플레어를 RAW의 소유주로 임명했다.
이후 WWF 백 래쉬(2002)에서 언더테이커와 스티브 오스틴의 WWF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십 도전자 자리를 건 경기에서 특별심판을 맡았지만 플레어의 오심으로[19] 오스틴이 패하며 둘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결국 플레어는 당시 nWo와 대립하던 오스틴을 배신한다. WWE 저지먼트 데이(2002)에서 오스틴과 경기를 가져 패했다.
그러다가 2002년 6월 10일 RAW에서 빈스 맥맨과의 경기에서 패배해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WWE 섬머슬램(2002)에서 크리스 제리코에게 승리했고, WWE 언포기븐(2002)에서 크리스 제리코와 WWE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을 가졌으나 패배했다.
3.10. 에볼루션(2003~2005)
WWE 언포기븐(2002)에서 트리플 H는 랍 밴 댐을 이기고,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지켰는데 이때부터 플레어는 트리플 H의 옆에서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 때를 계기로 WWE 노 머시(2002)에서 RVD와 경기를 치뤄 패배했다. 그 후 플레어는 스맥다운에서 RAW로 막 넘어온 괴물 신인 바티스타를 높이사 그와도 동행하게 되고, 2003년 1월에는 트리플 H와 대립하던 스캇 스타이너에게 공격을 당한 랜디 오턴이 세 사람과 함께 스타이너를 박살내고 그들과 함께할 것을 알리면서 에볼루션이 결성된다.
이후 WWE 아마겟돈(2003)에서 바티스타와 팀을 이뤄 더들리 보이즈와 월드 태그팀 챔피언쉽 매치를 치뤄 승리했고, 에볼루션은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과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태그팀 챔피언을 모조리 차지해 RAW를 지배했다.
이후 WWE 로얄럼블(2004)에서 바티스타와 함께 더들리 보이즈를 상대로 월드 태그팀 챔피언쉽 테이블 매치를 가져 승리했으며, 레슬매니아 20에서 바티스타와 랜디 오턴과 함께 락 앤 싹 커넥션(더 락&믹 폴리)를 상대로 핸디캡 태그팀 매치를 가져 승리했다.
이후 WWE 섬머슬램(2004)에서 랜디 오턴이 크리스 벤와를 이기며 최연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르자 트리플 H는 벨트를 내놓으라며 랜디 오턴을 공격했고, 오턴은 이를 거부한 뒤 에볼루션을 탈퇴한다. 거기다 바티스타가 WWE 로얄럼블(2005)에서 존 시나마저 탈락시켜 우승하게 되고, 챔피언십을 놓고 갈등을 하게 되는데 바티스타를 버거워 한 트리플 H와 릭 플레어는 그가 스맥다운으로 향하기 위해 설득하고, 바티스타도 이에 찬동하는 듯하지만 전설적인 명장면인 엄지 내리기를 보이며 트리플 H와 릭 플레어를 공격한다. 타이틀을 잃은 트리플 H는 바티스타에게 연거푸 도전하지만 계속 패했고, 결국 더 이상 에볼루션은 없다며 릭 플레어에게 슬레치 해머로 내려찍은 뒤 배신해 버린다.
3.11. 이후
에볼루션에서 나간 뒤 플레어는 믹 폴리와 I Quit 매치를 치르며 혈전을 벌이기도 하고, 옛 동료 로디 파이퍼와 함께 스피릿 스쿼드를 무찌르고, 월드 태그팀 챔피언에도 오르기도 한다. 2007년에는 드래프트 로터리를 통해 스맥다운 소속으로 경기를 가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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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에게도 은퇴의 시간은 다가오게 되었고 빈스 맥마흔은 2008년, 릭 플레어에게 이제부터 그가 치르는 1대1 경기에서 단 한 번이라도 지면 은퇴를 해야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WWE 로얄럼블(2008)에서는 MVP를 상대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WWE 노 웨이 아웃(2008)에서는 미스터 케네디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결국 2008년 WWE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나, WWE 레슬매니아 24에서 그의 커리어가 걸린 경기의 상대 숀 마이클스에게 패하여 3월 31일 자로 은퇴하였다.[21]
3.12. ROH와 헐카매니아 투어(2009)
하지만 플레어는 과거 이혼 경력때문에 돈이 필요했고, 결국 ROH에 참여한다. 그리고 헐크 호건의 투어 행사인 헐카매니아 투어에도 참여해 경기를 가졌고, 이러한 모습은 감동적인 은퇴를 기억하던 팬들에겐 그다지 좋은 모습이 되지는 못했다.
3.13. TNA(2010~2012)
2010년 1월 4일 릭 플레어는 TNA에 데뷔한다. 플레어는 AJ를 차세대 네이쳐 보이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AJ 스타일스의 매니저를 맡게 된다. 덤으로 비어 머니 INC와 데즈먼드 울프, 카자리안을 영입해 TNA 버전의 포 호스맨 스테이블 포튠을 이끈다. 그러면서 헐크 호건의 스테이블인 이모탈과 대립을 했고, 본인은 잠시 제이 리설과 대릅을 갖기도 한다. 한편 이 대립에서 더글라스 윌리엄스와 맷 모건도 함께 하게 되고, 호스맨은 ECW 오리지널 멤버들의 스테이블인 EV 2.0과 대립을 한다.
2010년 들면서 잠시 대립했던 이모탈과 포튠은 연합 전선을 구축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맷 모건과 더글라스 윌리엄스가 축출 당하고, 잠깐 대립하지만 이내 끝나게 된다. 하지만 이모탈의 악행이 계속되자 포튠은 이들에 맞서 턴 페이스를 하게 되지만 정작 플레어가 포튠을 배신하며 이모탈에 붙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릭 플레어가 WWE의 행사에 참여했다가 술에 취해 된통 사고를 치고, 이 때문에 릭 플레어가 계약 위반으로 WWE 행사에 뛰었다는 이유로 법정 싸움으로 벌어질 위기에 처하고, 결국 TNA는 릭 플레어를 해고 처리해버린다.
3.14. WWE로의 귀환
그러다 RAW에 복귀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만 아직은 모른다. 만약 컴백한다면 RAW 단장직과 관련해서 돌아온다는 말도 있다. 그러던 차에 슬래미 어워즈에서 수상을 위해 깜짝 출연. 이후 2013년 1월 RAW에서 미즈의 미즈 TV에 출연. 조롱하며 나온 안토니오 세자로에게 찹을 먹이고, 미즈에게 피겨 포 레그락을 물려준다.
이후 2014년 5월, 에볼루션이 재결합하자 응원의 의미로 한번 더 등장. 문제는 응원한 상대가 에볼루션이 아니라 그들과 대립중인 쉴드였다는 점.
얼마 뒤엔 그의 딸 샬럿이 NXT 위민스 챔피언십 매치를 갖게 되자 매니저로 등장, 격렬한 경기 끝에 챔피언이 된 딸을 안아주며 눈물을 흘렸다.
2014년 7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하우스쇼 매치에서 벌어진 럼버잭 매치에선 선역팀의 리더로 등장했다. 악역팀의 리더는 트리플 H. 출혈을 하는 접전끝에 승리한뒤 같은 팀이었던 존 시나에게 챔피언 벨트를 넘겨준다. 이를 두고 시나를 후계자로 인정하는 제스처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딸 샬럿 플레어의 매니저를 맡기도 했다.
이후 2018년 10월 16일 스맥다운 1000회 특집 때 에볼루션 멤버들과 링 세크먼트를 가졌고, 트리플 H와 바티스타가 신경전을 벌이자 중재하기도 했다.
이후 2019년 2월 25일 RAW에서 자신의 생일 파티가 열렸는데, 바티스타에게 공격당했다. 이후 WWE 레슬매니아 35 트리플 H와 바티스타의 경기에서 트리플 H에게 슬래지 해머를 건네주며 그의 승리를 도왔다.
2019년 9월 30일 RAW에서 미즈 TV에 출연해 헐크 호건과 신경전을 벌였고, WWE 크라운 주얼(2019)에서 팀 헐크 호건 VS 팀 릭플레어의 5:5 태그팀 매치를 가졌으나 결국 패했다.
2020년 6월 15일 러에 오랜만에 모습을 비춰 딸인 샬럿 플레어와도 만나는 등 여러 부분에서 계속 얼굴을 비추다가 당일 랜디 오턴과 오랜만에 레슬링 매치를 뛰게된 크리스찬에게 경기를 뛰지 말라고 설득하지만 그는 결국 강행한다. 그리고 경기에 등장해 크리스찬에게 로 블로를 선사하고는 쿨하게 퇴장하였고, 이로 인해 크리스찬은 랜디에게 펀트 킥을 얻어맞고 곧바로 패하고 말았다.
일주일 후인 6월 22일 러에서도 모습을 비추면서 랜디가 에지와 크리스찬을 24시간 이내에 은퇴시켰으며 그만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극찬한다. 이후 랜디가 등장하자 계속 그와 연합할 모습을 비추는데 이 때 빅 쇼가 등장해 에지와 크리스찬을 공격한 것을 따지며 자신과 싸우자고 하자 랜디와 함께 경고를 날린 뒤 퇴장한다.
크리스찬을 공격한 것을 계기로 자연스레 예전 에볼루션 시절의 동료였던 랜디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랜디가 출연하지 않았던 때에도 그 대신 나와 마이크웍으로 어그로를 끌고 있다. 6월 29일 러에서도 빅 쇼가 랜디에게 경고를 보내자 대신 나와 빅 쇼에게 어그로를 끄는 한편 안드라데 & 엔젤 가르자에게 백 스테이지에서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랜디 오턴의 매니저를 맡지만 랜디 오턴은 레전드 킬러의 본능을 버리지 못하고, 아버지와도 같았던 스승 릭 플레어를 배신하게 되고, 플레어는 랜디 오턴에게 로우 블로우를 맞은 다음 펀트 킥에 당한다. [22] 이 날 보여준 세그먼트는 랜디 오턴이 다시 한번 릭 플레어의 아픈 상처인 아들의 요절을 건드리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WWE가 또?'라는 고인드립 역반응이 우려되기도 했지만, 이어지는 플레어의 진솔함이 느껴지는 모습에서 역시 레전설이라는 호평이 이어지기도 했다.'''"네 말대로, 네가 알고 있던 2000년대의 릭 플레어는 죽었다. 여기 있는 나는, 그저 샬럿의 아비이면서 네 곁에서 널 도와주고 싶은 노인일 뿐이야."'''
WWE 클래시 오브 챔피언스(2020)에서 드류 맥킨타이어와 랜디 오턴의 WWE 챔피언십 매치에 드류가 랜디를 앰뷸런스 안에에 밀어 넣어 승리한 후 앰뷸런스를 운전하며 떠난다.
이후 다음 날 RAW에서 청소부로 분장한 랜디에게 크리스찬, 숀 마이클스, 빅 쇼와 함께 철제 의자로 공격당해 쓰러진다. [23]
10월 19일 RAW에선 JBL을 비롯한 다른 WWE 레전드들과 함께 랜선 관중으로 출연했다. 릭옹이 비춰진 모니터는 TV 카메라 기준으로 정중앙이라 나름 특등석이었던 셈.
WWE TLC(2020)에서 딸인 샬럿 플레어가 복귀하면서 백스테이지에서 지켜보며 위민스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자신도 WWE에서 이루지 못한 업적인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샬럿을 보며 기뻐한다.
2021년 1월 4일에 랜디 오턴과 마주치는데 랜디 오턴에게 샬럿이 더 낫다고 말을 듣고, 랜디 오턴과 만나기 전 샬럿 플레어 & 아스카 VS 레이시 에반스 & 페이튼 로이스 경기에서 딸 샬럿을 응원하기 위해 같이 등장하지만 경기 도중 레이시 에반스가 유혹을 하면서 딸 샬럿 플레어를 방해해 패하게 만들고 11일에 샬럿과 레이시 에반스의 경기에서도 또다시 딸을 방해해 패하게 만들고, 18일에도 등장해서 레이시 에반스와 같이 샬럿을 방해하지만 샬럿은 페이튼 로이스를 꺾는다.
4. 그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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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쉬 무브 피겨 포 레그락(figure 4 leglock).[24] 반칙으로 로프를 잡고 버텨 고통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땐 반칙기인 눈 찌르기를 시전하여 분위기를 가져오며, 반칙 기술인 로블로를 엄청 자연스럽게 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가 막히게 로블로를 쓰는 모습은 사실상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덕분에 로블로가 진 피니쉬 취급받기도.
주력 타격기로는 찹을 사용했는데, 매우 찰진 걸로 유명했다. 그리고 릭 플레어의 영향으로 인해 북미권에서는 릭 플레어가 아니어도 찹이 나올때 마다 관중들이 "WOOOOOOOOOOO!!!"를 외치곤 한다.
기술 외에도 섹슈얼 스텝이라는 특유의 스텝도 릭 플레어의 상징.[25] 상대가 몰아치고 있을 때 한 번쯤 나오는, 무릎 꿇고 뒤로 물러서며 읍소(...)하는 동작[26] 이나, 비틀거리다가 앞으로 픽 쓰러지는 동작 역시 플레어의 전매특허.
또한 쓰는 기술과 당하는 기술이 모두 일품인 선수다. 화려한 기술도 없고 사용하는 기술의 폭도 넓지 않지만, 특유의 만화적이고 과장된 액션을 기가 막히게 해내서 경기의 몰입도가 대단한 편. 특이하게도 그의 기술 중에는 백 바디 드랍 당하기나 3단 로프 위에서 바디슬램을 맞는 것이 포함되는데, 기술 구사가 아니고 당하는 쪽이 특기인 것은 특이한 경우. 고령의 나이에도 고공에서 완벽한 낙법을 구사, 최고의 접수[27] 를 보여준다.
5. 경기 운영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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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플레이의 달인'''
그의 경기 스타일은 전형적인 올드 스쿨 타입이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전성기 때부터 특유의 '다리 지옥' 스타일과 함께 급소 때리기, 눈찌르기 등등의 온갖 반칙으로 경기를 이끌어나갔고 선역일 때 조차 이 스타일을 고수했다. 찹 블록, 정강이 후려차기, 로우 드롭킥, 꿇어앉은 채 뒷다리에 래리어트, 신 브레이커[28] , 누워 있는 상대의 다리를 들어 바닥에 팽개치기, 링 포스트 쪽으로 다리를 끌고 가서 냅다 때려박기 등등. 그렇게 집요하게 다리만 공격하다가 피겨 포 레그락으로 마무리하는 패턴이었다.
이런 식의 경기 스타일은 상대 선수의 체급을 무시할 수 있게 되어 매치업을 잘 타지 않게 된다. 게다가 화려한 기술들이 배제되니 부상 위험도 적은 편.[29]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경기를 하면서도 관중들에게는 야비하게 보일 수 있어서, 몰입감과 스토리 텔링면에서 탁월하다는 게 포인트. 괜히 최고의 악역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의 경기 스타일의 가장 큰 특징은 위의 경기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한 기술 몇 개만으로도 경기를 완성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이나 경기의 흐름을 잘 잡고 관중들을 몰입시킬수 있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의미이다. 위에서도 비록 레스너가 이기긴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캐릭터를 자랑하던 레스너가 매니저 폴 헤이먼까지 대동하고도 플레어의 끝없는 반칙과 더러운 플레이에 완전히 고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끝없는 변칙성 공격에 상대도 상당히 헤매게 되고 경기 양상도 정말 흥미진진해진다.
실제로 언더테이커와 대결에서 찹, 킥, 피겨 포 레그락 세 기술만으로 20분 간의 경기를 소화한 적도 있으며, 대부분의 경기가 나오는 기술이 5~6개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다.[30]
무엇보다도 '''어떤 선수와 경기를 가져도 평타 이상은 보장이 된다는 것이 큰 장점.''' 타 선수들은 상성이 잘 맞지 않는 상대와 경기하게 되면 루즈한 경기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플레어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상대가 좀 루즈하게 간다 싶으면 반칙을 쓰던 찹을 난사하던 어떻게든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오죽하면 '''빗자루와 레슬링을 할 수 있는 경지'''라는 극찬까지 받을 정도. 하지만 브렛 하트는 "릭 플레언 오직 한가지 스타일로 밖에 경기 하지 못한다"고 깠는데 일리는 있는 말이다.[31] 그렇지만 브렛과 릭 둘 다 '''헐크 호건의 스타일은 깐다'''. 브렛은 호건이 근육덩어리의 지루한 인간이라고 깠고, 릭은 자서전에서 WWF는 15분 정도의 경기만 부킹을 했는데, 이건 헐크 호건이 15분 이상 경기를 못해서 그 기준을 다른 선수들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오웬 하트 같은 선수들은 30분씩이나 경기를 할수 있고 팬들을 만족시킬수 있다고 언급, 호건을 실력없는 인간이라고 깐 셈. 다만 나중에 브렛이 인터뷰에서 얘기한 바에 따르면 플레어는 레슬링 실력이 없는게 아니라 1970년대 방식을 계속 고수한 것 때문에 최고라는 말에는 약간 의문이 간다고 얘기했다. 물론 그의 열정적인 카리스마 덕분에 최고의 레슬러라고 사람들이 부른다고 평가했다. 그와 함께 WWF 입성후 빈스가 시키는데로 안해서 갈등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사실 그와 경기하면 승패와 상관 없이 '릭 플레어 스타일'을 많이 따르게 되는데, 이것은 릭 플레어가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니다. 선역vs악역 경기에서 릭 플레어 스타일의 경기는 하나의 안정적으로 완성된 구도이며, 관중들 또한 경기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도권 공방을 통해 점점 몰입도를 높여나가는 그의 경기 운영 스타일은 트리플 H의 경기 스타일의 모태가 되었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의 악역 시절 트리플 H는 그야말로 '''릭 플레어 빙의 모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릭 플레어의 야비한 경기 스타일을 기가 막히게 따라했다. 게다가 트리플 H가 체격이 꽤 크다 보니 릭 플레어에게선 나올 수 없는 묵직한 무게감이 더해져 '릭 플레어 강화판'이란 말까지 나왔었다.
당연히 수많은 레슬러들한테 존경을 받고 있으며, 타지리나 케인, 언더테이커같은 데뷔 10년이 넘는 베테랑들도 플레어의 경기를 관람하며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애쓸 정도. 타지리의 말에 따르면 경기의 흐름을 읽는데 누구보다도 탁월하며 무엇보다 낙법에 능숙한 점이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제프 제럿, 돌프 지글러 등의 선수는 탈색한 금발에 섹슈얼 스텝 등 그의 기믹을 그대로 따라하기도 했다. 제프 제럿은 아예 피겨 포 레그락을 피니시로 썼던 적도 있다. 프로레슬링계에 몸담을 때 부터 플레어를 동경하고 존경했던 트리플 H는 아예 데뷔 시절의 헤어 스타일을 전성기의 릭 플레어의 그것을 그대로 따라했으며, 이후 WWE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자존심이 많이 죽어있던 플레어를 격려하는데 힘을 썼고, 플레어와 스승과 제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을 전수받으며 진정한 업계의 거물로 자리매김했다. WCW에서 릭 플레어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던 에릭 비숍과 스캇 스타이너가 나중에 WWE에 온 뒤로는 그를 함부로 무시할 수 없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트리플 H가 릭 플레어 뒤에 떡 하고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플레어는 WCW에서 쩔쩔매던 모습과는 달리 아주 자신있게 스캇 스타이너에게 맞섰고 그의 WWE 정착을 도우려 하기도 했다. [32]
플레어 특유의 엉덩이부터 비스듬한 각도로 떨어지는 백바디 드롭 낙법은 타지리가 "언제나 같은 자세로 낙법을 한다"며 감탄할 정도의 명품 낙법이지만, 실제로는 비행기 사고의 후유증으로 등으로 떨어지는 범프를 할 수 없게 되어 채택한 고육지책에 가깝다. 플레어의 경기를 유심히 보면 정말 집착으로 보일 정도로 옆으로 떨어지는 낙법을 고집하는데, 이게 다 척추 부상 때문이다.
6. 광란의 귀공자?
일본에서의 별명은 '''광란의 귀공자'''. 얼굴에 피가 나서 흐르기 시작하면 특유의 금발에 피가 배어들어 더욱 시뻘겋게 변하고, 그 상태에서 날뛰며 온갖 반칙을 해대는 모습에 붙은 별명이다. 사실 거의 매경기마다 안면에 피칠갑을 해대며 처절하게 싸우던 플레이 스타일을 대변하는 별명. 플레어 자체가 젊었을 적엔 워낙 미남자였기 때문에 귀공자라는 별명이 붙어도 어색하지는 않지만...이 '광란의 귀공자'라는 별명은 후에 만화 근육맨에서 로빈마스크의 별명으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서 딴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만화 은혼의 등장인물 가츠라 고타로의 별명도 광란의 귀공자이다.
사실 WWE 대부분의 출혈 장면은 블러드 잡[33] 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인데, 릭 플레어는 이에 정말 능통한걸로 유명하다. 한참 타이틀을 먹으며 리즈시절을 거쳤을 때는 매고 있던 타이틀까지 피칠갑이 되면서 비장함마저 들기도 한다...
WWE에서는 일본만큼 피칠갑 경기는 하지 않지만 워낙 목소리가 굵고 큰데다 꼭 경기를 하지 않더라도 마이크웍하다보면 가뜩이나 백발이라 더 돋보이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Woooo와 사자후를 퍼붓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를테면 2001년 WCW, ECW 인베이전 각본이 끝난 직후 빈스 맥마흔과 WWE 공동 오너 각본을 시작하기 위해 WWE에 컴백했을 때의 영상.
스티브 오스틴에게 벨트를 넘겨줄때의 썩은 미소가 압권이다.
또는 WCW의 마지막 먼데이 나이트로 인트로에서 하던 연설 영상.
7. 레슬링 외 활동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3 업라이징에서는 연합국 장군 역으로 캐스팅 되기도 했다. 여전히 "Wooooooo"라는 환성을 지르는 모습. 또한 EA에서 프로모션 영상을 공개할때 같이 공개한 '릭 플레어 vs 소비에트 군용 불곰' 동영상도 있다.
그의 딸과 아들이 샬럿의 공립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학교에서 매년 하는 "홈 커밍" 행사에 출연해서 상대 학교 마스코트를 레슬링 기술로 골로 보내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물론 그의 딸이 졸업하고, 아들이 문제를 일으켜 사립 고등학교로 전학 한 이후로는 그런거 없다. 거기다 이혼크리(총 3회)까지 겹쳐서 최근 돈 문제에 시달리다보니 WWE 대신 ROH나 TNA에서 구르는 등 상당히 안습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라이벌이던 헐크 호건처럼 말이다.
릭 플레어의 말로는 WWE에서의 은퇴는 WWE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불명. 그러나 여타 레슬링 단체와는 차원이 다른 매주 1~3경기에 가까운 빡빡한 스케줄을 뛰어야하는 WWE 특성상 40대가 넘어가는 레슬러에게 풀타임 스케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은퇴를 종용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특히나 언더테이커나 숀 마이클스와는 달리 WWE 순혈이 아닌 레슬러라면 더더욱. WWE밖만 넘어가도 50대를 넘겨도 경기를 갖는 레슬러들은 의외로 꽤 있다. 릭 플레어처럼 자기관리를 잘 한 선수라면 더더욱.
2012년, 포 호스맨 멤버들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는데, TNA 소속인데도 WWE 명예의 전당에 오를수 있는건 WWE와 TNA가 상호간 합의를 봐서 가능한 것. 아무래도 WWE에서의 활약상도 크니까 이것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 때 문제가 발생하니, 당시 부상으로 TNA에서 쉬고 있던 플레어는 WWE에서 명예의 전당 제의를 받으면서 TNA와 계약을 깨고 돈을 더 많이 주는 WWE와 파트타임 혹은 레전드 계약을 맺으려 물밑 접촉을 했다. 이 접촉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 WWE로 넘어간 TNA 전(前) 직원임이 밝혀지자 TNA는 내부기밀 유출과 불공정조항 위반으로 그 전 직원과 WWE에 소송을 걸었다. 소송이 취소되기는 했으나 이미 김이 빠져버렸고 플레어는 20주년 RAW 특별출연이나 딸 샬럿(본명 애쉴리 플레어)의 NXT 데뷔에만 모습을 비췄다. 그리고 2013년 8월 WWE 2K14 홍보 쇼케이스에서 술에 취한 듯한 상태로 원맨쇼(…)를 벌이면서 WWE에서도 제대로 찍혀버렸다.[34] 허나 워낙 전설이기도 하고 공헌도가 크다보니 WWE 로얄럼블(2014) 킥오프에도 나오는 등 어떻게든 수습한 모양이다.
여담인데 랩퍼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지 릭 플레어의 프로모를 샘플링한 노래가 자주 발표되고 있다. 예시 1 - 원본, 예시 2 - 원본, 예시 3 - 원본
엉클 그랜파에 게스트 출연했다. 레슬링 에피소드에서 인터뷰어로 나왔는데 피자 스티브가 자신을 따라하자 결국 먹어버렸다...더빙판은 릭 플레어 특유의 "wooo~!"의 느낌을 잘 살리지 못했다.
8.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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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례 결혼해 모두 이혼으로 끝났다. 첫번째 부인에게서 딸 메건과 아들 데이비드가 태어났고, 두번째 부인에게서 딸 애쉴리와 아들 리드가 태어났다. 장남 데이비드는 WCW에서 활동하다 이후 WWF와 계약을 맺지만 데뷔에는 실패했고, 이후 TNA와 독립단체에서 활동하다가 2009년 은퇴했다. 차남 리드도 WCW에서 데뷔해 이후 독립단체와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다가 2013년 약물 오남용으로 25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35] . 다만 샬럿으로 데뷔한 차녀 애쉴리가 디바스 레볼루션 각본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여성 챔피언 전선에서 전설적인 행보를 보였다. 덕분에 샬럿의 매니저로 링에 자주 출연했다. 샬럿이 유명해진 이후 국내에선 플레어 옹, 어르신, 아버님, 장인어른이란 별명으로 통하는 중. 큰아들 데이비드는 인성 문제는 없었으나 실력이 떨어졌고, 작은아들 리드는 실력은 좋았으나 인성 문제가 심하다는 소리가 나돌아다닌다.
- 전설로 유명하지만 안 좋은 의미로도(...) 전설적인데 그것은 바로 술버릇. 그 악명높은 Plane Ride from Hell에서도 술에 취해서 성희롱을 포함한 난동을 부린 인물 중 하나로 이것 때문에 WWE는 합의금을 물어줘야 했다. 이후에도 사고를 치는 경우가 잦았다. 친구인 숀 마이클스도 릭을 존경하는 동시에 "릭의 친구라면 그의 안 좋은 버릇도 감당해야 된다"며 두번째 자서전(크리스찬으로 개심하고 브렛과 화해한 이후의 자서전)에서 난감해하기도 했다.
- 이 밖에도 경기를 진행하면서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기 보다 자신의 애드립을 아무런 상의없이 넣기도 해서 주변 사람들을 당혹하게 하는데 에볼루션 시절에도 이런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 후배인 트리플 H와 바티스타, 랜디 오턴이 "저 양반 왜 저러냐?"라는 식으로 당황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고...어떻게 보면 브렛 하트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 1975년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척추 3곳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은 연료 부족.당시 레슬러 2명은 끝내 복귀하지 못했으나 릭 플레어는 3개월만에 기적적으로 링에 복귀한다. 단 이 부상으로 인해 준수했던 신체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거친 브롤러 스타일이었던 릭 플레어는 경기 스타일도 바꾸어야만 했다. 이 부상으로 은퇴때까지 고통에 시달린건 물론이고 쓰러지는 접수때 등을 이용한 접수가 불가능해졌다. 릭 플레어만의 특유의 기술 접수법은 이런 사연에서 나온것...커리어가 조기에 끝날뻔 한데다 부상 이후 몸에 큰 제약이 생긴 이후에도 이렇게 까지 오래 선수생활을 했다는것 자체가 대단한 일.[36]
- 경력이 경력인만큼 정말 온갖 챔피언 타이틀이란 타이틀은 다 섭렵하였지만 의외로 WWE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은 딱 한번, 그것도 상당히 늦은 2005년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획득하였다. 당시에 플레어는 악역 스테이블 에볼루션의 멤버였고[37]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이던 칼리토 역시 악역으로 '악역VS악역'이라는 흔히 보기 힘든 대결구도였지만 이미 릭 플레어는 살아있는 전설이나 마찬가지인 인물이었고 칼리토 역시 당시 WWE 내에서 어그로를 끌기로는 손가락 안에 꼽히던 선수였기에 자연스레 플레어가 선역 포지션으로 활동하게 된다.[38] 물론 선역이 되었다고 해서 플레어 옹 특유의 경기 스타일이 어디 가는건 아니다보니(...) 오히려 악역이던 칼리토보다 더 악독하고 더러운 경기운영을 선보이며 왜 이 사람이 'The dirtiest player in the game'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인터컨티넨탈 타이틀 획득으로 본인의 트리플 크라운 달성은 물론 최고령 챔피언 기록도 덤으로 생겼다.
- 한국시간 2017년 8월 15일, 장 폐색으로 인한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에 입원했다. 당시엔 건강상태가 예상보다 많이 심각해 위독하다는 뉴스가 많았는데 다행히 회복했다. 그런데 자신이 죽었다는 헛소문이 떠도는터라 2017년 9월 2일 아직 안 죽었다 XX놈들아(...) 티셔츠를 입고 생존인증을 하셨다. 11월에는 팟캐스트 쇼에 초청되어 퇴원 및 건강 회복에 관한 근황과 수술이 장 일부를 제거한 큰 일이었다는 사실을 공개했고, 과거 사이가 좋지 않았다가 나이 먹고 화해한 헐크 호건이 2번이나 병문안을 와줘서 엄청 감동 받았다는 썰도 풀었다. 11월 14일엔 샬럿에서 열린 스맥다운 라이브 현장을 방문해 딸 샬럿의 챔피언 등극을 축하해주었다.
- 젊은 시절. 그러니까 네이쳐 보이 기믹을 얻기 전까지는 선배이자 NWA 시절 아치 에너미였던 더스티 로즈를 매우 존경해서 그의 남부식 말투까지 따라했다고 한다. 그러나 로즈가 그러면 대성하기 힘들다고 조언해준 덕분에 기믹을 익히 알려진 네이쳐 보이로 변경했다.
- 21 Savage, Offset, Metro Boomin의 Ric Flair Drip 뮤직비디오에 직접 출연했다.
- 파이어 프로레슬링 시리즈중 하나인 슈퍼 파이어 프로레슬링 스페셜의 스토리 모드 최종보스인 딕 슬렌더는 릭 플레어를 모델로 한 캐릭터이다.
- 스캇 스타이너는 WCW 시절 릭 플레어를 악착같이 괴롭혔다. 원래 스캇 스타이너와 그의 형 릭 스타이너는 WCW 백스테이지에서 알아주는 망나니이기도 했지만 똑같이 릭 플레어를 싫어하던 케빈 내시조차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 싶어 말릴만큼 링 안팎에서 릭 플레어를 괴롭혔다.[39] WCW 시절 릭 플레어는 나이가 많기도 했지만 WCW 부사장이던 에릭 비숍부터가 릭 플레어를 갈궜기에 스캇에게는 아주 만만한 먹잇감이나 마찬가지였다.(정작 스캇은 권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릭 플레어를 괴롭히기를 즐겼을 뿐이다.) 그러나 WCW가 망하며 WWE에 흡수당하고 난 뒤에는 스캇이 릭에게 행패를 부리지 못하는데, 본인의 몸 상태가 WCW 시절에 미치지 못할만큼 망가져있고, 악행을 일삼을 수 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 형 릭 스타이너와 같이 다녀서 실제 싸움실력 이상으로 상대를 기죽게 만드는 효과를 봤지만 WWE에서는 형이 없어서 홀로 깽판치기 어렵기도 한 데다가 WWE 백스테이지에 알아주는 싸움꾼들이 즐비하기도 했지만[40] 빈스 맥마흔의 사위이자 백스테이지에서 알아주는 정치판 만렙인 트리플 H가 릭 플레어를 깍듯이 모셨기에 릭 플레어를 건드렸다가는 그날로 매장당하는 건 시간문제였고, 입지가 스캇보다 훨씬 탄탄하고, 리스펙을 더 많이 받는 숀 마이클스도 릭을 지지해줬으니 스캇은 WWE에서의 말기만큼은 분노조절 잘하였다. 어쨌든 WWE에서 스캇 스타이너와 각본을 문제없이 진행하면서 릭 플레어가 대인배로 보이는 효과가 나왔다. # 게다가 RAW에 있었을 적 WCW의 앙숙인 비숍과 케빈 내시도 같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더욱 더 부각되는 점이다.
- 스캇 스타이너가 왜 저렇게 집요할 정도로 릭 플레어를 괴롭힌 일에 대해서는 훗날에서야 다른 레슬러들의 인터뷰로 겨우 밝혀졌는데, 두 선수의 경기 스타일이 다른데다가 수뇌부에서 스타이너 브라더스의 해체 이후 스캇을 싱글 레슬러로 푸쉬를 주려고 플레어와 합을 맞췄는데, 스캇이 조금만 파워하우스로 경기를 이끌어나가면 릭이 그걸 전부 끊어버렸다고 한다.[41] 이후 릭과 같은 스테이블의 안 앤더슨도 부커진이 스캇을 밀어주는데 릭 플레어가 그걸 상당히 방해하면서, 자신은 아직 보여줄게 많은 레슬러라는 것을 피력해 스캇의 성장을 막았다고 한다. 저런 릭의 모습이 스캇에게는 자신의 성장을 묻어버리려고 한다고 여기고 더러운 성깔머리가 폭발한 것이었으며, 스캇 스타이너항목에서 나온 슛[42] 인 50살 처먹은 노인네가 나와가지고는 자긴 아직 팔팔하다는거야! 라며 릭 플레어를 깠던 내용은 정말 스캇의 생각이었다는 것.
- 지금이야 프로레슬링 역사의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을 받지만, 현역시절에는 수많은 프로레슬러와 사이가 험악했다. 브렛 하트와는 골든 제너레이션 시절부터 앙숙이었고,[43] , 스캇 스타이너는 일방적으로 플레어를 괴롭혔다. 헐크 호건역시 릭과 사이가 안 좋아 WCW 시절부터 서로를 욕하면서 백스테이지부터 물고뜯었다. 호건과 같이 활동한 스캇 홀과 케빈 내시의 nWo 멤버들 역시도 릭과의 관계가 최악인데 내쉬의 경우는 릭이 WWF시절부터 재능없는 놈이라고 디스해서 개인적인 원한도 있었다. 마초맨과 에릭 비숍과의 사이도 좋지 못해 대체 백스테이지에서 무슨 일이 있기에 인간관계가 저렇게 틀어졌는지 의문일 정도. 다만 트리플 H, 숀 마이클스, 더스티 로즈, 스팅, 존 시나등은 깍듯하게 릭 플레어를 존중해서 사이가 좋은 사람과 나쁜사람의 경계가 확실하다.
- 최근 인터뷰에서 더 락의 주도로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나올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현재는 논의의 단계이지만 WWE 측에서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하니 긍정적으로 봐도 괜찮을 것으로 보인다.
9. 둘러보기
[1] 실제로 로우 블로를 사용해서 핀을 따내기도 하고 '''워낙''' 로우 블로의 달인인지라 진 피니쉬 취급받는다.[2] 초대 챔피언[3] 깃털로 장식된 화려한 가운을 입고 등장할 때 연호하는 챈트. 릭 플레어의 상징. 경기 중에도 플레어가 찹을 사용할 때마다 관중들이 이 챈트를 외친다.[4] 미니 타이탄트론에 유일하게 챔피언 횟수가 적혀 나오는 인물이다.[5] 데뷔 극초반에는 다이빙 니 드롭을 피니시로 쓰기도 하였다.[6] 이 별명은 WWWF 초대챔피언 "버디 로저스"의 닉네임이었다. 릭 플레어는 어릴적 바디 로져스를 우상으로 삼아서 그의 기술을 따라하면서 이 호칭이 붙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이 아니며 버디 로저스가 플레어와의 경기 이후 은퇴하면서 물려준 것이다.[7] WCW에서는 플레어를 8회 WCW 챔피언으로 인정해줬지만 WWE가 WCW의 모든 권리를 인수한 후 그 중 두번의 챔피언쉽 변동을 인정하지 않았다.[8] NWA가 처음에는 북미 단체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 멕시코, 유럽 등 각 대륙에서도 가맹 단체가 나와서 하나 밖에 없는 그리고 당연히 미국에 있어야 하는 월드 챔피언이 해외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벨트, 유나이티드 내셔널 벨트 등 비슷한 수준의 벨트를 여럿 만들어 버리기도 했고, 또 하나의 벨트가 여러 단체에서 단지 다른 지역 버전이란 이름으로 사용되는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다.[9] 저 둘은 릭 플레어를 꺾고 NWA 월드 챔피언에도 오른다.[10] 사실 중간에 몇번 이동이 있었지만 NWA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11] 이에 NWA는 플레어를 고소했지만 플레어는 역으로 벨트에 내는 보증금 25000 달러를 이유로 들며 합당한 벨트의 소유주라고 주장해 맞섰다.[12] 최초로 악역선수가 우승한 럼블이며, 90년대까지 챔피언에 오른 선수들 중 유일하게 키가 6피트가 되지 않는 선수이다.[13] WWF는 플레어가 큰 무대에서 타이틀을 내주길 바랬지만 플레어가 부상 때문에 서둘러 수술을 받아야했기에 하우스쇼에서 바뀌게 된다. 브렛이 회고하기를 경기를 앞두고 릭과 빈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며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자 자신이 뭔가 잘못한 줄 알았다고 한다.[14] 월드 챔피언의 해외 버전용으로 제휴 단체를 위한 용도라 보면 된다.[15] 이는 WWE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인 15만 명이 관람한 경기가 되었다. 이 경기는 강제 동원된 관객이라는 이야기 때문에 논란이 많지만, 엄밀히 말하면 북한을 비롯한 과거 공산권 국가들은 공연이나 운동경기 입장권이 무료인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공산국가에서 운동선수나 문화 예술은 공익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이것이 북한에서 프로 경기가 근본적으로 생겨나지 못하는 이유. 이러한 이유로 외국의 프로모터들이 평양에서 락 페스티벌이나 기타 상업적인 이벤트를 열려다가 무산되는 경우가 꽤 있다. 기본적으로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부서에서 '''약 5억 달러''' 정도를 행사 진행비용으로 요구하는데 일방적으로 돈을 꼴아박아야 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 프로모터 입장에서는 이런걸 왜 하겠나.[16] 플레어는 2013년 인터뷰에서 이 당시 여권을 몰수당하고, 감시원이 계속 따라붙고, 김일성을 칭찬하는 발언을 강제로 하는 등, 상당히 겁나는 경험을 했다고 회고했다. 기사[17] 크리스 제리코의 회상에 따르면 이후 로스터들을 모아놓고, 플레어도 훅 갔으니 니들도 까불면 X될줄 알아라 하면서 위협을 했다고 한다.[18] WCW의 오너였던 셰인, ECW의 오너였던 스테파니 남매가 가지고 있던 주식을 구매했다는 각본이다.[19] 오스틴이 링 밖으로 다리를 뻗어서 로프 브레이크로 카운트로 멈춰야 했으나 플레어가 이를 보지 못 하고 그대로 3 카운트를 했다.[20] 아마겟돈 2003 다음날 RAW에서 에볼루션 멤버들이 네 개의 타이틀을 맞닿으며 자축하는 장면이다.[21] 은퇴식 당일 화려하게 치뤘고 모든 선수들이 링 밖에 나와 그를 연호했으며, 방송 영상에는 안 나왔지만 언더테이커와 빈스 맥맨까지 나와 그를 기렸다.[22] 릭 플레어가 펀트 킥으로 강타하는 부분은 조명이 꺼지면서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릭 플레어가 나이도 있고, 예전에도 한번 건강 이상을 겪었기에 진짜가 아니라 릭 옹의 연기로 대신했을 것으로 보인다.[23] 이 때에도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 행해졌다. 타격음을 자세하게 들으면 뭔가 칩 같은게 있는 테이블을 치는 소리로 들린다. 즉 이 때에도 체어샷을 위장했다는 말. [24] 일본 만화에서 4자 굳히기로 번역한다.[25] 더 락이나 돌프 지글러 등 많은 선수들이 따라한 적이 있다.[26] 이럴 경우 방심한 상대가 접근하는 순간 로우 블로나 눈찌르기를 내지르는 패턴을 많이 보여주었다.[27] 경기 스타일때문에 주목받진 않지만, 오버 접수도 잘한다.[28] 다리를 접어 아토믹 드롭처럼 자신의 무릎에 떨어뜨리는 기술.[29] 실제로 플레어는 커리어 내내 링에서 큰 부상을 당한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커리어를 길게 가져갈 수 있었는데, WWE의 은퇴 경기였던 레슬매니아에서의 vs 숀 마이클스가 무려 한국 나이로 59세에 가진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 나이에도 출중한 경기력을 보여주셨으니 괜히 전설이 아닌 셈. 오히려 플레어가 말년에 몸이 상한 이유는 비행기 사고의 후유증, 술을 좋아하는 등 생활습관의 문제, 여러 차례의 이혼에서 온 스트레스 등에 있다.[30] 숀 마이클스와의 은퇴전이라든가 매우 중요한 경기에서는 기술수가 좀 늘어난다. 이는 그만큼 관중들한테 어필할 필요가 있기 때문.[31] 둘은 매우 사이가 안 좋았고, 서로가 서로를 신나게 까던 사이다. 이후 2014년에 들어서며 화해하고, 서로를 인정해주고 있다.[32] 트리플 H가 그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고 싶다면 2002년 언포기븐을 보면 드러나는데, 각본상 대립관계를 빚던 릭 플레어가 슬래지 해머를 들고 상대인 랍 밴 댐을 공격해 트리플 H를 도와줘서 그의 승리를 이끌어 준 뒤, 직접 빅 골드를 수여해주며 포옹을 하는데 각본을 떠나서 진심으로 감동받은 트리플 H의 모습을 볼 수 있다.[33] 어느정도 출혈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되면 자신이나 레퍼리가 면도칼이나 날카로운 바늘 등으로 상처를 내는 작업, 저 사진의 이마 부분을 잘보면 이마가 성치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34] 얼마후 벌어진 짐 로스의 WWE 퇴직은 당시 기자회견의 현장관리를 못한 책임을 물은 것이라는 뒷소문이 널리 퍼졌다.[35] 리드의 경우 생전에도 폭행, 음주운전, 헤로인 소지 혐의로 체포되는 등 문제를 일으킨 적이 많았다.[36] 2005년 트리플 H와 대립했을 때도 이를 직접 언급했다.[37] 다만 이 시점에선 랜디 오턴과 바티스타는 트리플 H를 배신하고 에볼루션을 탈퇴한 상태였고 트리플 H 역시 바티스타와의 챔피언쉽에서 패배하면서 휴식기를 가지고 있던 상태라 사실상 플레어가 유일한 활동 멤버였다.(칼리토와의 대립 역시 혼자 남게 된 플레어를 칼리토가 조롱하며 시비를 건 것이 원인이었다.) 이후 얼마뒤에 복귀한 트리플 H도 릭 플레어를 배신하면서 자연스레 에볼루션은 해체된다.[38] 위에도 적었다시피 이후 복귀한 트리플 H가 플레어를 배신하고 서로 대립하게 되면서 플레어는 완전히 선역으로 돌아서게 된다.[39] 케빈 내시와 스캇 스타이너는 고향 친구이기도 하기에 꽤나 친분이 있었지만 성격이 개망나니인 스캇에겐 절친이고 뭐고 없었기에 자신을 말리는 내시도 흠씬 두들겨팼다. 그럼에도 케빈 내쉬가 친하게 지내려는 사람에게는 친화력이 좋은편이기에 지금까지도 친구로 남아있다.[40] 물론 WCW 때도 하쿠나 할렘 히트(부커 T와 스티비 레이), 노먼 스마일리 같은 현피 강자들이 있기는 했다. 노먼에게는 시비를 걸었다가 털리고, 하쿠와 할렘 히트는 알아서 피해다녔으며 빌 골드버그와 빅 쇼, 쟈니 스템볼리, 크리스 벤와, 론 시몬스한테는 역시 피해다녔는지 부딪힌적이 없었으며 그레고리 헴즈의 경우 현피 실력이 좋았지만 스캇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친해 원만히 지낸데 비해 크리스 제리코는 스캇보다 강력한 현피강자였으나 WCW 당시 스캇보다 입지가 낮아서 함부로 스캇과 싸움을 할 수도 없었다. 마치 WWE에서 존 모리슨이 JBL의 횡포에 신인시절엔 찍힐까봐 반항을 못했으나 입지가 생긴뒤엔 반항을 하여 횡포에서 벗어난것과 비슷하다고 볼수있다.[41] 랜스 스톰의 인터뷰 "From my vantage point as a guy who has wrestled both of these guys, and seen a ton of their work, I think it's a little bit of both. I think the biggest problem was that they had very contradictory styles. Scotty had been getting over with a more physical style of match that involved some Steiner specific moves, like the Tilt-a-whirl Slam, The Tiger Driver, The Frankensteiner, etc. These moves were a big part of what fans liked about Scott Steiner, and Ric has the bumps he likes to take and is used to running a match his way. Whenever the match felt like it was starting to pick up for Scotty, Ric would cut him off. There were several instances where you could tell Steiner was trying to set up his trademark offense and Ric would block it or shut it down. Ric also dominated a much larger portion of this match than I think any match I've seen him in before. This may have been subconscious, because he was feeling the pressure of the office wanting his run on top to come to an end and wanting to prove them wrong." "(전략)..... 사실 제가 보기에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스타일이 대조적이었다는 점이에요. 스캇은 Tilt-a-whirl Slam, The Tiger Driver, The Frankensteiner, etc. 같은 같은 엄청난 피지컬 무브를 보여주고 있었죠. 이런 무브가 팬들이 스캇 스타이너를 좋아하는 큰 이유기도 했구요. 그리고 릭은 그가 좋아하는 범프가 있었고, 그것으로 경기를 운영해나가는데 능숙했죠. 스캇이 자신의 경기를 가져간다고 보여질때 릭은 그걸 끊어버렸어요. 스캇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 격인 공격을 셋팅하면 릭이 그것을 막거나 폐쇄했던 사례를 몇가지 들 수 있습니다. 그런 경기에선 릭은 그의 다른 경기에서 보여지던 경기들보다 더 많은 부분을 장악해갔어요. 그게 그의 잠재의식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그는 그가 끝났다는 압박을 사무실에서 받고 있었고,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을테니까요."[42] 각본없이 멋대로 나오는 프로레슬러의 실제상황[43] 브렛 하트 항목에도 있지만, 서로의 프로레슬링 스타일부터 오웬 하트에 죽음에 대한 문제 등으로 최악의 관계에서 화해한 것은 몇년 되지 않았다[44] 역대 최초의 WWE 명예의 전당 2회 수상자로, 2012년은 포 호스맨으로서 헌액되었다.[★] A B 오른쪽이 도전자, 밑줄이 승리자[45] 더블 카운트아웃[46] 시간초과 무승부[47] 역대 최다 스타케이드 메인 이벤터(10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