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

 

1. 개요
2. 생애
3. 평가
4. 여담

[clearfix]

1. 개요


„Czas przejść do codziennej pracy, ożywionej wiarą i świadomością, że partia zespolona z klasą robotniczą i narodem poprowadzi Polskę po nowej drodze do socjalizmu”.
('노동 계급과 민족이 힘을 합친 당이 폴란드를 사회주의의 새로운 길로 인도할 것이라는 믿음과 의식으로 활기를 띠는 매일의 과업으로 옮겨갈 때입니다.')

1956년 10월 24일, 바르샤바 집회 연설. 전문. 녹음본.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Władysław Gomułka, 1905년 2월 6일 ~ 1982년 9월 1일)는 폴란드 인민 공화국 통일 노동당(공산당)의 서기장(1956년 ~ 1970년)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가명은 비에스와프(Wiesław), 펠릭스 두니아크(Feliks Duniak).

2. 생애


아버지가 폴란드 사회민주노동당 당원이라서 어려서부터 좌파 성향을 띄고 있었다. 1930년대 폴란드 반공독재정권에 대항하다가 1932년 파업을 주도하던 와중에 다리에 총상을 입고 4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년 후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탈옥한 이후로 소련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폴란드에서 그는 반나치 파르티잔에 참여했지만 이 과정에서 소련측에게 의심을 사기 시작했다. 폴란드나치 독일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에 공산화에 공을 세웠지만 공산화 이후에 강제적인 집단농장화에 반대하고 코민포름 결성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바람에 반 스탈린주의파로 낙인찍혀서 다시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고무우카가 감옥에 수감된 것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나중에 지도자 자리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재판 도중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는 바람에 1956년 당시 폴란드 수반이었던 볼레스와프 비에루트(Bolesław Bierut)의 사망과 함께 포즈난 항쟁 이후에 친소파의 입지가 급속히 약해진 틈을 타 '''인민들의 지지를 업고 서기장 자리에 올랐으며''' 집권 초기에 자유화 정책을 펼쳤다. 강제적인 집단농장화를 중단했으며, 급속한 탈스탈린화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옆 나라 헝가리에서 반소 시민봉기로 들어선 너지 임레 혁명정부가 중립화, 바르샤바 조약기구 탈퇴, 일당제 폐지를 발표하자 소련군이 침공해서 강제로 정권을 뒤엎고 시민봉기를 진압하는 헝가리 혁명이 터졌다. 반소노선에 대한 소련의 초강경 대응을 본 고무우카는 즉각 바르샤바 조약기구 잔류와 확고한 친소 노선을 천명해서 소련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탈스탈린화 정책을 계속 펼쳤다.
잘만 했으면 폴란드의 너지 임레 또는 요시프 브로즈 티토라는 평을 들을 수 있었던 인물. 그러나 1960년대 이후에 권위주의적 성향으로 변질했으며 자유화 정책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때는 소련에 순응하여 아예 체코슬로바키아에 군대를 내보내기까지 해서 노동자들로부터의 지지율도 하락일로를 달렸다.
1970년에 빌리 브란트와 협상을 해서 서독측으로부터 오데르-나이세 선을 인정받는 공적을 세우기는 했지만 그로부터 얼마후에 기습적으로 생필품 가격을 인상시키자 노동자들의 반발로 당내에서 입지가 약해지면서 결국 1970년 12월 20일 지도자 자리에서 사실상 쫓겨났다. 이후로 재향군인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가 1982년 9월 1일 바르샤바 근교에서 으로 사망했다.

3. 평가


현재 폴란드에서 전반적인 평가는 많은 이들의 환호속에서 등장해서 나름 유연한 행보로 성과를 거두었지만, 마지막에는 권위적이고 무능한 모습만을 보여줘서 결국 실망을 안겨준 지도자.
그나마 후임인 기에레크와 민주화 이후에 대통령에 당선된 전설적인 노조 지도자 레흐 바웬사도 결국에는 고무우카와 비슷한 길을 걸어[1] 서기장직과 대통령직에서 쓸쓸하게 물러났기 때문에 아주 나쁜 평을 듣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4. 여담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본 인물의 이름을 '블라디슬라프 고물카'로 표기했다. 1992년에 제정된 국립국어원의 폴란드어 표기법에 의해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로 정정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서적에선 고물카라고 언급됐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고물카로 표기됐다. 그러다보니 그 이름만큼은 확실하게 각인될 정도였다. 표기에 관한 내용은 Ł 참조.

[1] 기에레크는 집권 초기에 폴란드가 매년 9%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기에 기대를 많이 받았지만 이 경제성장이 외채에 기반한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 70년대 후반들어서 경제파탄 상태에 몰렸고, 레흐 바웬사는 대통령 당선 이후에 1000%의 초인플레이션과 10%대의 고 실업률 등 체제전환 과정에서 터진 경제적, 사회적인 문제점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바람에 재선에 실패하며 물러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