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타케 요시시게
佐竹義重(さたけよししげ)
(1547.03.07 ~ 1612.05.19)
일본 전국시대 히타치의 센고쿠 다이묘다. 사타케가 18대 당주로 사타케 요시아키의 장남이자 사타케 요시노부의 아버지다.
1562년 아버지 요시아키가 은거하면서 당주가 되지만 실권은 여전히 아버지가 쥐고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당주 노릇을 한 것은 1565년 아버지 사망 이후. 아버지때 부터 동맹을 맺은 우에스기 겐신과 연대를 강화하며 오오타 우지하루를 압박, 1569년 테하이사카 합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오오타성을 점령한다.
하지만 이러한 세력확대는 간토의 호죠 우지마사와의 대립을 불러 일으킨다. 호죠 우지마사가 아시나 모리우지, 유키 하루토모와 동맹을 맺어 공격해오자 이를 격퇴한다. 그리고 시라카와 유키씨와 이와키씨, 나스씨와 강화를 맺고 호죠가에 붙은 오오타 우지하루를 또 격파한다. 하지만 이러한 활발한 세력확대로 호죠 우지마사와 아시나 모리우지의 양면공격을 받게 되어 곤경에 빠지게 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우츠노미야가와 손을 잡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결국 1583년 메마지리 합전에서 패배하고 나가마게성까지 빼앗겨 호죠가와 강화를 맺게 된다.
이무렵 아시나 모리우지가 죽으면서 아시나가가 후계자 문제로 내분에 빠지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그리고 때마침 오슈에서 밀고 내려오는 다테 마사무네와 대립하게 된다. 아시나가와 동맹을 맺고 다테군과 싸워 유리한 상황을 만들지만 가신의 불온한 움직임때문에 철퇴, 요시시게는 아들 요시히로를 아시나가에 양자로 보내며 마사무네와 대립한다. 1588년 여러 다이묘들과 연합하여 다테군과 싸워 압도적인 병력으로 밀어붙였으나 각 다이묘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자중지란을 벌이다 이와키 츠네타카의 중재로 마사무네와 화목하고 철군한다.[1]
1589년 아들인 아시나 요시히로가 스리아게하라 합전에서 마사무네에게 대패, 무츠의 여러 다이묘들이 다테군에 붙고 만다. 때문에 사타케가는 남쪽의 호죠 우지나오와 북쪽의 다테 마사무네에게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멸망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결국 요시시게는 아들 사타케 요시노부에게 당주 자리를 넘겨주고 은거하게 된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다와라 정벌로 간신히 멸망의 위기에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히데요시로부터 히타치 54만석을 영지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1591년 2월에는 남방 33관이라 칭해지던 무장들을 오오타 성에 초대해 몰살시켰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지게 되자 당주이자 아들인 요시노부는 이시다 미츠나리편에, 자신은 도쿠가와 이에야스편에 서면서 가문은 내분에 빠지게 된다.[2] 결국 이러한 애매한 태도 때문에 구보타(久保田, 현재의 아키타현) 20만석으로 감봉조치 되고 만다. 본래 이에야스는 요시시게와의 교분때문에 데와 1국으로 조치를 끝내려 했으나 혼다 마사노부와 혼다 마사즈미부자가 반국으로 감봉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렇게 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혼다 마사즈미가 모반사건으로 사타케령 데와 요코테로 유배되었는데 이는 이 일로 마사즈미에게 원한을 가진 사타케가가 그에게 온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라는 막부의 계산 때문이었다. 1612년 사냥도중 낙마하여 사망한다. 향년 66세.
용맹한 성격으로 오니 요시시게, 간토 제일이라는 별명을 지녔다. 특히 오니 요시시게라는 별명때문에 초상화는 갑옷과 투구 밖에 그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호조 우지마사와 싸울 때 적의 수가 많자 아군의 병사들을 고무하기 위해 앞장서서 적진으로 들어가 7명을 쓰러뜨리면서 이 싸움으로 인해 간토 제일, 귀신 요시시게라는 별명을 얻었다.
호죠에 대항하기 위해 다케다와 동맹을 맺을 때 다케다 신겐과 신라사부로 미나모토노 요시미츠[3] 의 적류인지 논쟁을 벌였고 신겐이 신라사부로 요시미츠를 조상으로 두면서 다케다는 요시미츠의 적류로 그의 칼, 갑옷이 있고 사타케는 적통인 다케다보다 아래이니 실례가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요시시게는 사타케의 시조인 요시나리는 요시미츠의 적남이었지만 요시미츠의 형인 요시츠나가 자식이 없기에 양자가 된 것이라면서 다케다의 시조인 요시키요는 이 때문에 요시미츠를 계승한 것이라 했다. 요시츠나는 요시미츠의 둘째 형이고 요시나리는 요시키요의 형이기에 어떤 가문이 더 적류라 할 수 있을지 분명하다면서 무례하지 않다고 했다.
또한 신겐이 우츠노미야 등의 요청으로 관동에 출병할 때 관동의 무장들이 신겐에게 진상품을 줬고 우츠노미야 히로츠나에게는 말이 진상되었는데, 신겐이 그 말을 가지고 싶어했지만 히로츠나는 사타케 가문에게 받은 것으로 우츠노미야 령에는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신겐이 요시시게에게 말을 달라고 했고 요시시게는 대꾸하지 못했다고 한다.
첫 출전 때 우에스기 겐신으로부터 비젠사부로구니무네 태도를 받았는데, 겐신이 이 칼을 은퇴한 후에 지팡이로 쓸 생각을 했지만 자신의 무략을 잇는 것은 당신 뿐이라 생각해 요시시게에게 물려줬다고 한다. 요시시게가 은거한 후에 그 칼을 요시노부에게 물려줬지만 요시노부는 쓰기에는 길다고 여겨 칼 끝을 깎아 허리에 차는 호신용 칼로 하자 요시시게는 칼의 영혼을 잃어버렸다면서 한탄했다고 한다.
요시시게는 항상 전장과 같은 마음을 가신에게 요구해 귀신 요시시게라 불렸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잠옷인 채로 가신이 칼을 두고 있는 곳에 가서 칼을 빼서 손질 상태를 확인했으며, 단도라도 손질이 나쁜 칼날이 무너지고 있다고 야단을 맞았기에 가신들은 항상 무구의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칼에 만드는 모양이 보기에 나쁘더라도 이를 문제삼지 않고 손질이 좋은 사람을 상을 줬으며, 주변의 시동들도 신용하지 않아 시동이 깔아놓은 이불의 위치를 매일 한밤 중에 바꾸고 문에는 빗장을 걸면서 몇 장의 장지를 세워 어디에 누워있는지 모르게 했다. 어느날 망을 보는 사람이 급환으로 약을 청하자 요시시게는 문 안에서 칼 끝으로 약을 걸어서 건넸다고 한다.
통솔 94 무력 86 지력 88 정치 89에 귀창 특기를 지닌 A급 다이묘.
창조 에서는 통무지정순으로 87/90/79/83 이며 A급인 것은 여전하다. 전법은 '반도타로(판동태랑,坂東太郎)' 로서 주변 적의 움직임을 묶어두고 본인은 강화시키는 것으로 난전을 피해 도망가는 적을 상대할 때 꽤나 유용하다. 어느 시나리오에서나 사타케 가문의 주변으로는 고만고만한 다이묘들이 즐비해 있으나 최대의 적은 이번작에서 오다에 못지 않은 최강급이 된 호죠가문. 역사대로 삼국동맹 가문을 제외하고 우에스기나 사토미 및 관동 쩌리 다이묘들과 동맹을 맺어 호죠를 압박할 것인가, 혹은 발전이 미약한 지역이라도 일찌감치 동북으로 진출하여 세력을 성장시킬 것인가는 플레이어의 재량에 달려있다. AI가 잡는 사타케 가문은 십중팔구 관동을 다 먹어버린 호죠에 무너질 때가 많다.
블리치의 아이젠 소스케의 패러디[4] 였으나 3편에서는 여성화되었다. 레즈비언으로 아시나 모리타카에게 하악거리는데 이는 실제 요시시게가 미남자였던 모리타카에게 한눈에 반했다는 설화에서 유래... 쓸데없이 고증이 잘됐다. 하지만 4편부터는 다시 남성화되었다.
3편의 지방 영주 NPC 중 한명. 성우는 키무라 마사후미. 속성은 화염 → 없음. 일인칭은 셋샤(拙者).[5]
호칭은 염망일철(念岩一徹). 특이한 점이 있다면 '''"서툴러서"'''라는 입버릇이 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등장신 역시 서투른 티가 난다. 분위기 잡고 걸어오다가 '''화면에 부딪힌다.''' 참고로 저 투구는 실제 사타케 요시시게가 사용하던 투구를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한다.
그가 등장하는 스테이지인 쿠보타 완고전은 3편 전체를 통틀어 최저 난이도이며 특별은상 조건도 그냥 모든 진 점령, 전 무장 격파이기 때문에 둘 다 획득하기 매우 쉽다. 따라서 초보자가 스타트를 끊기에 좋은 스테이지이다. 사타케 군은 사타케 훈련소에서 강하게 단련된 거인들이 많지만 역시나 서투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덩치만 클 뿐 거의 위협이 안 되는 피라미들일 뿐이다.
보스인 사타케 요시시게는 지방 영주 중에서는 유일하게 중량급에 가깝다. 클리어하기는 매우 쉽지만 다른 지방 영주들에 비해 공격력이 높기 때문에 고난이도에서는 의외로 강적이 될 때가 있다. 게다가 그 무식한 힘 때문인지 검극을 붙어보면 일반 플레이어 캐릭터급으로 검극 능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 무장의 검극 공격력은 캐릭터별로 약, 중, 강, 최강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지방영주들은 약 혹은 중인 반면 사타케 요시시게는 혼자서 강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검극을 붙었을 때 방심은 금물이다.
전국 바사라 3 연의 발매와 함께 인기투표가 진행되었는데, 영웅외전때까지 꼴찌를 지키고 있던 혼간지 켄뇨를 1표 차이로 밀어내고 꼴찌를 달성하는 위엄을 과시했다.
전능력치가 70~80을 오가는 만능형 다이묘다. 기능도 전투, 내정 양쪽으로 잘 받쳐준다. 문제는 본인을 제외하면 쓸모있는 부하가 적어서 CPU가 잡았을때는 호죠한테 치이거나 북쪽의 다테에게 치여 망하는게 보통. CPU는 내정을 잘 안하는데 거성인 오오타성의 크기가 큰 편이 아니라 병력도 잘 모으질 못하기 때문이다.
(1547.03.07 ~ 1612.05.19)
1. 개요
일본 전국시대 히타치의 센고쿠 다이묘다. 사타케가 18대 당주로 사타케 요시아키의 장남이자 사타케 요시노부의 아버지다.
2. 생애
1562년 아버지 요시아키가 은거하면서 당주가 되지만 실권은 여전히 아버지가 쥐고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당주 노릇을 한 것은 1565년 아버지 사망 이후. 아버지때 부터 동맹을 맺은 우에스기 겐신과 연대를 강화하며 오오타 우지하루를 압박, 1569년 테하이사카 합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오오타성을 점령한다.
하지만 이러한 세력확대는 간토의 호죠 우지마사와의 대립을 불러 일으킨다. 호죠 우지마사가 아시나 모리우지, 유키 하루토모와 동맹을 맺어 공격해오자 이를 격퇴한다. 그리고 시라카와 유키씨와 이와키씨, 나스씨와 강화를 맺고 호죠가에 붙은 오오타 우지하루를 또 격파한다. 하지만 이러한 활발한 세력확대로 호죠 우지마사와 아시나 모리우지의 양면공격을 받게 되어 곤경에 빠지게 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우츠노미야가와 손을 잡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결국 1583년 메마지리 합전에서 패배하고 나가마게성까지 빼앗겨 호죠가와 강화를 맺게 된다.
이무렵 아시나 모리우지가 죽으면서 아시나가가 후계자 문제로 내분에 빠지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그리고 때마침 오슈에서 밀고 내려오는 다테 마사무네와 대립하게 된다. 아시나가와 동맹을 맺고 다테군과 싸워 유리한 상황을 만들지만 가신의 불온한 움직임때문에 철퇴, 요시시게는 아들 요시히로를 아시나가에 양자로 보내며 마사무네와 대립한다. 1588년 여러 다이묘들과 연합하여 다테군과 싸워 압도적인 병력으로 밀어붙였으나 각 다이묘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자중지란을 벌이다 이와키 츠네타카의 중재로 마사무네와 화목하고 철군한다.[1]
1589년 아들인 아시나 요시히로가 스리아게하라 합전에서 마사무네에게 대패, 무츠의 여러 다이묘들이 다테군에 붙고 만다. 때문에 사타케가는 남쪽의 호죠 우지나오와 북쪽의 다테 마사무네에게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멸망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결국 요시시게는 아들 사타케 요시노부에게 당주 자리를 넘겨주고 은거하게 된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다와라 정벌로 간신히 멸망의 위기에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히데요시로부터 히타치 54만석을 영지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1591년 2월에는 남방 33관이라 칭해지던 무장들을 오오타 성에 초대해 몰살시켰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지게 되자 당주이자 아들인 요시노부는 이시다 미츠나리편에, 자신은 도쿠가와 이에야스편에 서면서 가문은 내분에 빠지게 된다.[2] 결국 이러한 애매한 태도 때문에 구보타(久保田, 현재의 아키타현) 20만석으로 감봉조치 되고 만다. 본래 이에야스는 요시시게와의 교분때문에 데와 1국으로 조치를 끝내려 했으나 혼다 마사노부와 혼다 마사즈미부자가 반국으로 감봉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렇게 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혼다 마사즈미가 모반사건으로 사타케령 데와 요코테로 유배되었는데 이는 이 일로 마사즈미에게 원한을 가진 사타케가가 그에게 온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라는 막부의 계산 때문이었다. 1612년 사냥도중 낙마하여 사망한다. 향년 66세.
용맹한 성격으로 오니 요시시게, 간토 제일이라는 별명을 지녔다. 특히 오니 요시시게라는 별명때문에 초상화는 갑옷과 투구 밖에 그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호조 우지마사와 싸울 때 적의 수가 많자 아군의 병사들을 고무하기 위해 앞장서서 적진으로 들어가 7명을 쓰러뜨리면서 이 싸움으로 인해 간토 제일, 귀신 요시시게라는 별명을 얻었다.
호죠에 대항하기 위해 다케다와 동맹을 맺을 때 다케다 신겐과 신라사부로 미나모토노 요시미츠[3] 의 적류인지 논쟁을 벌였고 신겐이 신라사부로 요시미츠를 조상으로 두면서 다케다는 요시미츠의 적류로 그의 칼, 갑옷이 있고 사타케는 적통인 다케다보다 아래이니 실례가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요시시게는 사타케의 시조인 요시나리는 요시미츠의 적남이었지만 요시미츠의 형인 요시츠나가 자식이 없기에 양자가 된 것이라면서 다케다의 시조인 요시키요는 이 때문에 요시미츠를 계승한 것이라 했다. 요시츠나는 요시미츠의 둘째 형이고 요시나리는 요시키요의 형이기에 어떤 가문이 더 적류라 할 수 있을지 분명하다면서 무례하지 않다고 했다.
또한 신겐이 우츠노미야 등의 요청으로 관동에 출병할 때 관동의 무장들이 신겐에게 진상품을 줬고 우츠노미야 히로츠나에게는 말이 진상되었는데, 신겐이 그 말을 가지고 싶어했지만 히로츠나는 사타케 가문에게 받은 것으로 우츠노미야 령에는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신겐이 요시시게에게 말을 달라고 했고 요시시게는 대꾸하지 못했다고 한다.
첫 출전 때 우에스기 겐신으로부터 비젠사부로구니무네 태도를 받았는데, 겐신이 이 칼을 은퇴한 후에 지팡이로 쓸 생각을 했지만 자신의 무략을 잇는 것은 당신 뿐이라 생각해 요시시게에게 물려줬다고 한다. 요시시게가 은거한 후에 그 칼을 요시노부에게 물려줬지만 요시노부는 쓰기에는 길다고 여겨 칼 끝을 깎아 허리에 차는 호신용 칼로 하자 요시시게는 칼의 영혼을 잃어버렸다면서 한탄했다고 한다.
요시시게는 항상 전장과 같은 마음을 가신에게 요구해 귀신 요시시게라 불렸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잠옷인 채로 가신이 칼을 두고 있는 곳에 가서 칼을 빼서 손질 상태를 확인했으며, 단도라도 손질이 나쁜 칼날이 무너지고 있다고 야단을 맞았기에 가신들은 항상 무구의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칼에 만드는 모양이 보기에 나쁘더라도 이를 문제삼지 않고 손질이 좋은 사람을 상을 줬으며, 주변의 시동들도 신용하지 않아 시동이 깔아놓은 이불의 위치를 매일 한밤 중에 바꾸고 문에는 빗장을 걸면서 몇 장의 장지를 세워 어디에 누워있는지 모르게 했다. 어느날 망을 보는 사람이 급환으로 약을 청하자 요시시게는 문 안에서 칼 끝으로 약을 걸어서 건넸다고 한다.
3. 창작물에서
3.1.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통솔 94 무력 86 지력 88 정치 89에 귀창 특기를 지닌 A급 다이묘.
창조 에서는 통무지정순으로 87/90/79/83 이며 A급인 것은 여전하다. 전법은 '반도타로(판동태랑,坂東太郎)' 로서 주변 적의 움직임을 묶어두고 본인은 강화시키는 것으로 난전을 피해 도망가는 적을 상대할 때 꽤나 유용하다. 어느 시나리오에서나 사타케 가문의 주변으로는 고만고만한 다이묘들이 즐비해 있으나 최대의 적은 이번작에서 오다에 못지 않은 최강급이 된 호죠가문. 역사대로 삼국동맹 가문을 제외하고 우에스기나 사토미 및 관동 쩌리 다이묘들과 동맹을 맺어 호죠를 압박할 것인가, 혹은 발전이 미약한 지역이라도 일찌감치 동북으로 진출하여 세력을 성장시킬 것인가는 플레이어의 재량에 달려있다. AI가 잡는 사타케 가문은 십중팔구 관동을 다 먹어버린 호죠에 무너질 때가 많다.
3.2. 센고쿠히메
블리치의 아이젠 소스케의 패러디[4] 였으나 3편에서는 여성화되었다. 레즈비언으로 아시나 모리타카에게 하악거리는데 이는 실제 요시시게가 미남자였던 모리타카에게 한눈에 반했다는 설화에서 유래... 쓸데없이 고증이 잘됐다. 하지만 4편부터는 다시 남성화되었다.
3.3. 전국 바사라 3
3편의 지방 영주 NPC 중 한명. 성우는 키무라 마사후미. 속성은 화염 → 없음. 일인칭은 셋샤(拙者).[5]
호칭은 염망일철(念岩一徹). 특이한 점이 있다면 '''"서툴러서"'''라는 입버릇이 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등장신 역시 서투른 티가 난다. 분위기 잡고 걸어오다가 '''화면에 부딪힌다.''' 참고로 저 투구는 실제 사타케 요시시게가 사용하던 투구를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한다.
그가 등장하는 스테이지인 쿠보타 완고전은 3편 전체를 통틀어 최저 난이도이며 특별은상 조건도 그냥 모든 진 점령, 전 무장 격파이기 때문에 둘 다 획득하기 매우 쉽다. 따라서 초보자가 스타트를 끊기에 좋은 스테이지이다. 사타케 군은 사타케 훈련소에서 강하게 단련된 거인들이 많지만 역시나 서투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덩치만 클 뿐 거의 위협이 안 되는 피라미들일 뿐이다.
보스인 사타케 요시시게는 지방 영주 중에서는 유일하게 중량급에 가깝다. 클리어하기는 매우 쉽지만 다른 지방 영주들에 비해 공격력이 높기 때문에 고난이도에서는 의외로 강적이 될 때가 있다. 게다가 그 무식한 힘 때문인지 검극을 붙어보면 일반 플레이어 캐릭터급으로 검극 능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 무장의 검극 공격력은 캐릭터별로 약, 중, 강, 최강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지방영주들은 약 혹은 중인 반면 사타케 요시시게는 혼자서 강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검극을 붙었을 때 방심은 금물이다.
전국 바사라 3 연의 발매와 함께 인기투표가 진행되었는데, 영웅외전때까지 꼴찌를 지키고 있던 혼간지 켄뇨를 1표 차이로 밀어내고 꼴찌를 달성하는 위엄을 과시했다.
3.4. 태합입지전
전능력치가 70~80을 오가는 만능형 다이묘다. 기능도 전투, 내정 양쪽으로 잘 받쳐준다. 문제는 본인을 제외하면 쓸모있는 부하가 적어서 CPU가 잡았을때는 호죠한테 치이거나 북쪽의 다테에게 치여 망하는게 보통. CPU는 내정을 잘 안하는데 거성인 오오타성의 크기가 큰 편이 아니라 병력도 잘 모으질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