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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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수남(徐守男)
출생
1943년 2월 25일 (81세)
경기도 경성부 창신정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
본관
이천 서씨
국적
[image] 대한민국
신체
187cm[1], 76kg
학력
서울창신초등학교 (전학)# → 발산초등학교# (졸업)
이리동중학교 (졸업)
서울공업고등학교 (화학과 / 졸업)
한양대학교 (화학 / 학사)
병역
[image] 대한민국 해병대 204기
가족
슬하 3녀
종교
개신교(예장통합)[2]
외부 링크

1. 생애
2.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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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어린 시절이 좀 어두운 편이다. 그는 1943년 2월 25일 경기도 경성부 창신정(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에서 아버지 서사문과 어머니 박순금의 3대 독자,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고 100일이 지나고 사망하였기에[3], 홀어머니와 단둘이 같이 지낸다.
1949년 서울창신국민학교에 입학했다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통사리 동화마을의 할머니 집에 맡겨졌고#@, 이 곳에서 살면서 발산국민학교와 이리동중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졸업 후 다시 상경하여 어머니와 살 수 있게 되었고 서울공업고등학교 화학과를 다녔다.
한양대학교 화학과 졸업 후 MBC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프로그램에서 하청일과 함께 "서수남, 하청일" 콤비로 본격적으로 데뷔하였다. 1969년, 동물 소리를 흉내낸 "동물농장"[4]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1964년 서수남이 결성한 4인조 아리랑 브라더스[5][6]의 곡이었다. 이 그룹에서 두 명이 빠져 서수남 하청일 듀엣이 된 것.) 이후 1971년 <팔도유람>이라는 곡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1973년에 발표한 <수다쟁이>라는 곡은 당시 코믹송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었으며[7] 1975년에는 <과수원 길>이라는 곡이 유행하며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다.[8]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던 현직 수녀 가수 싱잉 넌(Singing Nun)의 "도미니크"도 번안해 불렀다.
사실 서-하 듀오는 지금으로 보면 컬투와 비슷한 개그와 노래를 동시에 하는 코믹 듀오였고, 무대에서도 노래만이 아니라 개그도 같이 선보이는 형태였다. 동요와 코믹송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70년대 어린이날 행사에 단골로 나왔으며, 옷차림도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특이한 것을 자주 입었다. 키가 큰 서수남은 카우보이 모자에 체크무늬 셔츠와 조끼 차림을 즐겨 했고[9], 상대적으로 단신인 하청일은 청바지 재질의 멜빵바지를 많이 입었다. 장충체육관이나 어린이회관 무지개 극장에서 등에서 열린 어린이 행사에도 모습을 볼수 있었다. 듀엣 전성기 지난 이후엔 서수남은 솔로 활동을 하거나 보컬 클리닉을 운영하였고, 하청일은 의외로 전혀 상관 없는 야구 평론, 해설 쪽으로 진로를 잡아 활동하였다.[10]
개그 콤비 출신인 만큼 입담이 좋으며, 인기 있었을 때엔 코미디 프로는 물론 드라마에도 나왔으며, 특히 KBS1 <가족오락관>에선 1980년대 중반부터 2009년 종영시까지 거의 단골로 출연했다. 2010년대 현재도 방송에 나오면 녹슬지 않은 입담을 보여준다.

2. 기타


  • 대단히 장신으로, 키가 187cm로 그 당시 기준으로도 2020년대 기준으로도 매우 큰 편이다. 지금으로 치면 194cm 정도로 보면 된다. 서-하 듀오 시절 때 두 사람의 키 차이가 많이 나서 하청일이 단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청일의 신장도 175cm로 1940년대생 남성 평균 키(168cm 전후)보다 훨씬 큰 키였다. 하청일의 신장은 지금으로 치면 180cm 정도로 보면 된다. 그러나 서수남 이 분 키가 넘사벽으로 커서 하청일이 단신 취급받았을 뿐이다. 2020년 80살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기 때문에 187cm로 조금 줄었지만 젊은 시절(30대)에는 190cm 였으며 그 당시의 190cm라면 지금의 200cm 정도 된다고 보면 되는데 서-하 듀오 시절 당시 서수남은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장신 연예인이었다. 지금은 그 자리를 서장훈이 가져갔다. 물론 서장훈은 농구선수 출신인지라 2m가 넘을 수밖에 없긴 했다.
  • 위 항목 사진에서도 어느 정도 알수 있는데, 얼굴이 좀 길긴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상당히 잘 생긴 미남이었다. 큰 키에 음성도 좋고...(콤비였던 하청일도 코믹 이미지에 묻혀서 그렇지, 흰 피부에 선이 굵은 미남이었다.) 덕분에 주부 대상 행사에서 기타를 들고 진행과 노래를 하면 환호성이 대단했다. 노래 교실[11]을 운영할 때도 인기가 좋았다고.
  • 1970년대 초반 결혼하여 딸 셋을 얻고 행복하게 잘 살다가 2003년이혼했다.[12]

[1] 나이를 많이 먹어서 줄어든 키이며 젊었을 당시에는 190cm였다.[2] 평창동 예능교회 장로.[3] 부친 서사문은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계동리 출신으로 서수남의 조부 때부터 대대로 이어온 한학자 집안의 사람이었는데,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4] 원곡은 미국의 포크그룹인 브라더스 포의 노래인 DO ADORE HER를 번안한것.[5] 한국의 브라더스 포를 꿈꾸며 국내 최초로 뉴웨이브 장르의 시도를 하였던 컨츄리 포크 그룹. 먼저 중앙대에 재학중이었던 하청일을 만나고 서수남 자신이 소속된 대한합창단 단원인 박창학, 서울대학교의 음대생이자 칠성 사이다 사장의 아들인 최용삼이 합류했었다. 하지만 녹음하기 직전에 각자의 개인사정으로 박창학과 최용삼은 탈퇴하고 이들의 자리에 중앙대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석우장과 천정팔로 교체가 되었다.[6] 최근 근황에 따르면 천정팔은 이미 2000년대 초반 심장마비로 타계했고 석우장은 미국 LA에서 원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하청일은 가수를 그만두고 야구용품 업체를 차렸으나 경영난으로 야구용품 업체가 부도난후 미국에서 살고있다고 한다.[7] 번안곡이었다. 당시 국내엔 저작권법이란 게 아예 없었다.[8] 서수남 하청일 듀오의 자작곡이 아니라, 원래 있던 동요를 불러 인기를 끈 것이다. 즉 교과서에 실린 게 먼저이다.[9] 쉽게, 토이스토리의 우디 복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10] 하청일은 야구 리포터,스포츠 용품 사업을 하다가 외환위기 즈음 경제난으로 미국으로 이민갔다. 가서 사업에 성공했고 활발하게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11] 유튜브에서 <서수남의 TV 노래교실>을 검색해 보자.[12] 아내가 돌연 가출을 해 잠적했는데, 부채가 10억 가까이 됐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