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오락관
1. 소개와 변천사
- KBS의 오락 프로그램으로, 1984년 4월 3일을 시작으로 무려 25년이라는 역사와 총 1237회 방송 분량을 끝으로 2009년 4월 18일까지 방영되었다. 주 진행자는 허참. 여성 진행자는 수차례 바뀌어 무려 21명 이나 되는데도 막방까지 허참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교통사고로 인해 딱 한 번 방송 펑크낸 적은 있다고 한다.
-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시초. 다만, 초창기에는 열심히 대결해서 최종 점수를 확인하는 그런 구도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버라이어티 A 정도에 가까운 프로그램이었다가 8개월만에 널리 알려져 있는 대결 구도로 바뀌었다. 이후 연예인을 출연시키기 시작한 후 시청률이 급격히 올라 시청률 35%를 찍었었다. 시대가 시대임을 감안하고 일일연속극, 뉴스 시간대와도 맞물렸던 걸 감안하면 엄청난 시청률. 1991년부터 1994년까진 저녁 8시 전후, 1994년부터 1998년 봄까지 저녁 8시 30분 전후에 편성되었으며, 1998년 봄부터 2000년 봄까지는 8시 50~55분에 편성되었다. 그러다가 2000년 봄, 여름 개편으로 인해 프라임 타임 시간대에 2편의 드라마와 인간극장을 편성함에 따라 저녁 7시에 편성되었다.
- 그러다가 2000년 가을, 가족오락관은 KBS 2TV에서 KBS 1TV로 채널을 이동해서 토요일 프라임 시간대인 오후 6시에 편성되어 다른 오락 프로그램과 경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자릿수 시청률을 유지했지만, 1150회 정도를 시점으로 급격히 중장년층 시청자를 위주로 한 진행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시청률이 6~7%대까지 서서히 떨어졌고, 급기야 2009년 봄 개편 때에는 가족이 시청할 수 없는 오후 5시 10분으로 시간이 바뀌기에 이른다. 결국 2009년 4월 18일 방송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허참은 다시 가족오락관을 KBS 2TV로 편성시켜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지만, 타깃이 타깃이다 보니...
- 사실 가족오락관의 시청률 저하와 그로 인한 종영에는 점수 비공개로 인한 대결 구도의 긴장감 감소,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패널 구성, 진부한 코너 구성, 무한도전과 1박 2일, 패밀리가 떴다 등과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로의 방송 환경 변화 등을 들 수 있는데, 어느 정도 KBS가 관리만 해 줬다면 살아나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긴 했다. 실제로 성 대결 구도에서 소녀시대, 카라 등의 젊고 어린 연예인들을 출연시켰고, 이게 신의 한 수가 되었는지 8% 선의 준수한 시청률을 보이면서 다시금 살아날 듯한 조짐이 보였다. 하지만 2009년 봄 개편 때 윗선에서 제대로 된 예고 하나 없이 갑자기 시간을 오후 5시 10분으로 바꾸면서 시청률이 반토막났고, 결국 네 번의 방송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말이 좋아서 종영이지 윗선에 의해 일방적으로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다. 즉, 폐지당한 것인데 스포츠팀으로 치면 감독이 경질되서 쫓겨난 것이다.
2. 오프닝 곡
- 1992년 ~ 1995년 상반기: Digital Emotion - Get Up Action
- 1995년 ~ 1996년 상반기: DJ DOC - 머피의 법칙
- 1996년 상반기 ~ 1996년 10월: 클론 - 쿵따리 샤바라
- 1996년 10월 ~ 1998년 3월: 터보 - 트위스트 킹
- 1998년 3월 ~ 1999년 상반기: Bellini - Samba de Janeiro
- 1999년 상반기: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 Pandora's Box
- 1999년 하반기 ~ 2009년: Dr. Bombay - My Sitar
3. 변천사
3.1. 1980년대 초반
- 1983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최초 편성되었으며, 1984년 4월 3일 첫 방송을 시작하여 KBS2 화요일 7시에 80분간 방송되었다.
- 형식은 주로 게임보다는 현재의 토크쇼 형식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게임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 MC는 현재와 달리 앉아서, 주로 연예인보다는 스포츠 스타, 사회 각층 인사 등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3.2. 1980년대 중후반~1990년대
- 이때부터는 주로 연예인들을 초대하여 널리 알려져 있는 대로 진행하게 되었으며 잘 알려진 게임들의 대부분이 이때 만들어졌다. 한때 중반 30%대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3.3. 2000년대 초반
- 2000년에는 수요일에서 목요일, 토요일로 바꿔서 진행되었다. 2000년 10월 개편으로 KBS1 오후 6시부터 60분간 방송하는 것으로 시간대를 옮겼으며, 당시 심의실의 심의로 뿅망치 게임, 내 여자의 남자 등이 사라졌다. 가족오락관 25年 게임 변천사…"뿅망치부터 이구동성까지"
3.4. 2000년대 중반
-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그렇다 할 인기 게임들을 거의 내놓지는 못했고 1100회대에는 기존 게임들을 다시 선보였다.
3.5. 2008년 ~ 2009년 4월 18일
- 10%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던 가족오락관은 2006년 이후로 시청률 하락세를 보였으며, 2008년 가을 개편 때에는 시작 시간이 7시 10분으로 변경되었고 2009년 3월부터는 포맷도 완전히 바뀌었다. 그럼에도 시청률이 호전되지 않은 것이 종영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 하지만 실제로는 허참 본인이 무 자르듯이 프로그램을 없애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을 했고, 실제로 종영되기 7주 전인 2009년 2월 28일에 다음 주 토요일 저녁 7시 10분이라고 자막을 내보냈는데, 갑자기 3월부터 시간을 오후 5시 10분으로 바꾼 것도 석연치 않았다. 게시판에는 정연주 전 사장 해임 사태를 비롯한 정부를 비판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는데 삭제가 되어 있었다. 딱봐도 대놓고 폐지 당한 것이다. 쫓겨난거나 다름없다.
- 2009년 3월 21일부터는 포맷을 대규모로 변경했으며, 스태프는 카메라 감독을 제외하고 모두 교체되었고, 코너 또한 '따로 또 같이'를 제외하고 모든 코너들이 교체되었다.
- 양원경, 배기성, 이종원 등을 고정으로 섭외했고, 팀도 혼성으로 나누었다.
4. 역대 MC
'''남자 MC인 허참은 이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끝까지 진행을 담당했다'''.
'''허참과 파트너가 된 여성 MC 21명 명단'''.[1][2]
- 오유경[3] (1984.04.03.~1985.01.22) - 패널: 1994.05.22. 2002.07.20. 2003.05.31. 2005.07.30. 2006.03.25. 2007.04.07.
- 정소녀[4][5] (1985.01.29~1987.09.29 / 1990.10.02) - 패널: 1990.07.24. 1994.05.22. 1996.10.30. 2008.01.05.
- 장혜영[6] (1987.10.6 ~ 1988. 10. 25)
- 최영미 (1988.11.01 ~ 1989. 05.30)
- 김경희[7] (일자 미상 ~ 일자 미상)
- 김자영 (1989.10.31 ~ 1991. 10.01) - 패널: 1998.04.22.
- 김혜영 (1991.10.08.~1992. 09.28. / 1995.05.11[8] ) - 패널: 1994.05.22. 1996.04.24. 1998.04.22. 2008.07.26.
- 전혜진 (1991 미스코리아 유림) (1992.10.05.~1994.10.07.) - 패널: 1994.05.22.[9] 1998.04.22.
- 이유리 (1994 미스코리아 선, 20세의 나이로 진행, 최연소 ) (1994.10.14.~1995.05.04)
- 장서희 (1995.05.18 ~ 1995.08.30[10] ) - 패널: 1998.04.22.
- 오현정 (1995.09.06.~1996.02.14. / 1997.03.05.~1997.05.28.[11] )
- 진양혜 (1996.10.09)[12]
- 오영실 (1996.02.21.~1997.02.26 / 1999.07.21.~1999.07.28.[13] ) - 패널: 1998.04.22. 2006.07.01. 2006.09.23. 2007.02.03. 2007.05.19. 2007.09.22. 2008.01.05. 2008.07.12.
- 손미나 (1997.06.04.~1999.07.14. / 1999.08.04.~2001.11.03.)[14] - 패널: 2005.09.03. 2008.01.05.
- 변우영 (2001.11.17.~2002.03.30. / 2003.04.26[15] ) - 패널: 2001.03.10.
- 박미선 (2002.2.12)[16]
- 윤지영 (2002.04.06.~2003.04.19 / 2003.05.03.~2003.06.21.) - 패널: 2004.05.08. 2004.11.27. 2006.06.03.
- 박주아 (2003.06.28~2005.10.22) - 패널: 2002.08.03. 2002.09.21. 2007.07.28.
- 박사임 (2005.11.05.~2006.03.11.) - 패널: 2004.01.10. 2005.07.02.
- 이정민 (2006.03.18.~2006.11.18.) - 패널: 2007.04.21. 2008.01.05.
- 김새롬 (2006.11.25.~2007.11.03.) - 패널: 2005.10.15. 2005.11.26. 2006.04.01. 2006.06.24. 2008.01.05.
- 김보민 (2007.11.10.~2008.03.29.) - 패널: 2004.06.05. 2005.02.26. 2005.09.24. 2005.12.31. 2006.03.11.
- 이선영 (2008.04.05.~2009.04.18.) - 패널: 2006.09.16. 2007.05.05.(무승부)
5. 역대 방송시간
6. 점수
[image]'''"가족오락관 최종점수, 몇 대~~~ 몇!!!"'''
- 방송이 진행된 지 8년이 넘었던 1992년에 이미 여성팀이 많이 이긴다는 멘트가 나왔을 정도로 쭉 여성팀이 한 수 위였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 실제로 여성팀이 좀 더 자주 이긴 것은 사실이다. 남성팀 vs 여성팀 대결 구도가 1년에 50회 정도라고 보면 보통은 남성팀이 20승, 여성팀이 30승 가까이 하였다. 물론 무승부로 끝나는 경우들도 있었다. 다만 2004년과 2008년에는 남성팀의 전적이 앞섰으며(2004년 25승 2무 vs 20승 2무, 2008년 28승 2무 vs 20승 2무.), 2006년에는 18승 1무 vs 21승 1무로 대등했다. 2006년에는 특별기획이 다른 연도에 비해 많았고, 남성팀 vs 여성팀 대결 횟수는 다른 연도에 비해 적은 40회였다. 이렇게 여성팀이 이기는 경우가 하도 많았던 탓에 일부 남성 시청자들 중에서는 '지나친 여성팀 우대 프로그램'이라면서 이 프로그램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막이래쇼에도 같은 논란이 있었고... 이에 대해 여성팀은 상호간의 팀웍도 잘 맞았던 반면 남성팀은 잦은 불협화음에 중구난방 그 자체였으니 아무래도 여성팀한테 점수를 좀 더 줄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허참이 간혹 노골적으로 여성팀에 유리하게 판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최종점수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남성 시청자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예컨대 2003년 방송에 출연한 이혁재가 "허참이 항상 여성팀에 유리하게 진행해서 허참 말을 듣지 않았다"는 발언을 했을 정도로 허참의 여성팀 편애는 유명했다. # 그래서인지 종영한지 10년이 넘어갔음에도 KBS가 유튜브에 올리는 과거 영상의 댓글창에 판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댓글러들이 여전히 출현할 정도로 이 판정 문제는 가족오락관을 대표하는 영원한 이슈로 남아 버렸다.
- 양 팀의 점수판은 세트장에 좌우 대칭으로 달려 있다. 이전까지는 디지털 점수판을 사용했고, 게임 도중에라도 화면 속에서 점수를 볼 수 있었지만, 2004년 초부터는 더 이상 점수가 게임 도중에는 공개되지 않도록 바뀌었다.
- 각 게임마다 1점부터 100점까지의 다양한 점수가 미리 설정되어 있고, 이 점수를 모두 합산한 점수가 최종점수가 된다.
- 중간점수는 MC가 중간점수를 확인할 때 점수판에 적혀져 있는 점수가 중간점수다.
- 2004년 초부터는 이후 게임 도중 중간점수를 공개하지 않도록 조정되면서 중간점수는 더 이상 확인할 수가 없게 되었다.
- 마지막 게임이 끝나면 주부 방청객에게 인사를 한 다음 최종점수를 확인하기 전 가족오락관 하면 떠올려질 정도로 친숙한 구호인 "몇 대 몇~!"을 외치면서 최종 점수를 확인하게 된다.
- 만약 동점일 경우에는 공동 우승으로 처리되며, 1990년대에는 눈싸움으로 끝장승부를 본 적도 있다. 이후에는 막판 뒤집기 게임을 벌여서 승패를 가린 적도 있었다.[17]
- 685회(1997년 12월 24일 방송분)에서는 970:980으로 여성팀이 앞선 뒤, 30점을 가져오는 보너스 게임으로 30초 동안 케이크에 촛불 붙이기를 했다. 그 결과 남성팀이 촛불을 많이 붙였는데, 숨겨둔 반전으로 촛불을 빨리 끄는 팀이 승리하는 것이었고, 여성팀이 승리했다.[18] #
- 과거에는 최종점수가 800점대나 900점대, 심지어는 1000점대까지 나온 적도 있었으며, 해가 지날수록 최종점수의 점수대가 점점 축소되었다.
- 역대 최다 점수 차가 났던 회차는 737회(1999년 1월 13일 방송분)인데, 남성팀이 무려 940:0이라는 후덜덜한 점수 차로 대승했다. 이는 뒤집기 게임 때문이다. 당시 중반부와 막판 이렇게 두 번 했는데, 중반부에 여성팀이 스톱을 외치는 순간 -500에서 멈추면서 0점이 되었고, 막판에 남성팀의 점수가 가산된 반면 여성팀은 또 -500에서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 가끔 몇 대 몇 구호를 외치는 것을 양팀 주장들에게 맡기거나 양팀 팀원 중 한명에게 맡긴 적도 있다.
- 가끔씩은 남 vs 여 구도가 아닌, 혼성팀의 구도도 있었으며, 800회와 1000회에는 가수 vs 개그맨 vs 탤런트 3파전으로 진행했다.
6.1. 점수판의 역대 형태
- 초창기: 점수 체계 없음
- 1980년대 중후반: 녹색 배경의 작은 디지털 점수판.
- 1991년 12월 31일: 검은 배경에 대형 빨간 디지털 점수판
- 1980년대 후반 ~ 1993년: 큰 디지털 점수판 (숫자 3개가 들어갈 수 있고, 각 자리마다 0~9만 출력할 수 있음.)
- 1993년 ~ 2003년 8월: 작은 플립형 디지털 점수판 (숫자 3개가 들어갈 수 있고, 각 자리마다 0~9만 출력할 수 있음. 가족오락관하면 떠오르는 점수판이 이것이며, 2000년 올림픽 특집에서 남성팀 점수가 1000점이 넘어가버려 천의 자리가 0이 되어버린 것으로 계산되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음. 또한, 1000점이 넘어가면 999로 표시하기도 했음)
- 960회 ~ 980회(2004 설 특집), 1054회 ~ 1078회: 작은 디지털 점수판. 도중에 점수를 가리고 가족오락관 로고가 출력되었다.
- 981회 ~ 1053회: 대형 LCD 모니터에 점수를 디지털 풍의 폰트를 사용해서 점수를 출력했다.
- 1079회 ~ 1187회: 대형 LCD 모니터에 점수를 디지털 풍의 폰트를 사용해서 점수를 출력했다.
- 1188회 ~ 1237회: 소형 LCD 모니터에 점수를 기울어진 디지털 풍의 폰트를 사용해서 점수를 출력했다.
7. 역대 게임
8. 에피소드
8.1. 보조진행자 출신 연예인
- 신토불이, 99.9 등으로 유명한 트로트 가수 배일호는 이 프로그램의 FD 겸 보조진행자로 활동하다가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여 스타가 되었다.
- MC 겸 리포터이자 트로트 가수 조영구도 이 프로그램의 FD 겸 보조진행자로 활동하다가 리포터로 데뷔했다. 당시 허참이 본인까지 잘 챙겨줘서 "나도 허참처럼 유명 MC가 되어야 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한다.
8.2. 가족오락관을 통해 유명해진 사례
- 가족오락관을 거쳐간 연예인은 대부분 진정한 A급 연예인으로 거듭난 사례가 많이 있다. 조용필, 유재석, 김혜수, 고현정, 이효리, 싸이, 고수, 비 등이 대표적이며,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배우 송재호, 최민식도 가족오락관에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자주 나오던 출연자였다. 또한 오니즈카, 가츠 등 간지나는 사나이 전문 성우인 성완경도 출연하는 등 방송계의 이름있는 인물들은 신인 시절에 높은 확률로 출연했다.
- 2013년에 MBC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로 뒤늦게 연예계에서 빛을 본 샘 해밍턴도 인기가 별로 없던 2007~2008년에 가족오락관에 총 네 번이나 출연했다. 그 뒤 진짜 사나이에서 참수리 고속정 방향타 수동조절 시 선원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통신 훈련이 마치 가족오락관의 '고요속의 외침'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점을 착안해서 제작진이 샘의 가족오락관 출연분(2008년 9월 27일 방송분)을 KBS에서 자료화면으로 퍼와서 확실하게 인증했다.
8.3. 그 외의 일화
- 가족오락관에 나오지 못해서 제일 후회가 되는 연예인은 JK김동욱일 것이다. 그는 2005년 11월 쯤 첫 예능 프로그램 출연 녹화였던 가족오락관과 스타 골든벨 일정이 겹쳐 있어서 가족오락관을 버리고 대신 스타 골든벨을 통해 처음으로 예능에 도전했지만, 워낙 임팩트가 없었던 터라 결과는... 그 후로 그는 예능 증후군으로 7년 간 속병을 앓은 적이 있었다. [19]
- 예전 토크박스에서 김학래가 언급한 얘기 중에 하나다. 개그맨 김한석과 관련된 얘기였는데, 김한석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할 때는 주변인으로 자주 나와 개그맨과 리포터를 전전하면서 활동했었다. 그 뒤 사랑의 스튜디오 객원MC로 뜨고 나서 가족오락관이라는 프로그램에 섭외 전화를 받았는데 가족오락관 녹화하는 시간이 코미디 프로그램 회의하는 시간하고 겹쳤던 것이다. 그렇다고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임하룡에게 "저 오늘 친구 병문안 있어가지고 병원 좀 갔다오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임하룡이 "안돼! 인마!"하고 단칼에 거절하자 김한석이 "제 친구가요, 교통사고가 나가지고 다리를 다쳤거든요. 친구 좀 도와주겠습니다."라고 얘기했더니 '그래, 그럼 갔다 와!'라고 허락해서 '가족오락관'의 녹화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어느 개그맨이 그가 나오는 방송분을 우연히 보는 바람에 6개월 출연 정지를 먹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카더라. 그 당시에 같이 출연했던 연예인이 이범수와 장진영이었다.
9. 그 외
- 가족오락관 하면 떠오르는 것이 주부 방청객이다. 초창기에는 가족이 방청객으로 왔기 때문에 남녀노소 방청석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어느샌가 주부 방청객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주부 방청객은 30명 이상의 단체가 방청신청을 하고 제작진이 순서대로 초청하는 형식이었다. 대부분 아파트 부녀회나 학교 어머니회였는데, 워낙 인기가 많다보니 길게는 방청신청한 지 1년이 지나서야 초청받기도 했다고 한다. 방청객이 출연자 뒤에 있어서 얼굴이 나오는데다 어느 정도 코너에 참가하는 프로그램이 많았던 특성상 바로 방송에 투입되면 서로 뻘쭘해지는 문제가 있어서 방송 전에 레크리에이션 진행자(박해상)를 통해 노래 부르고 놀고 하면서 방청객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띄워놓고 나서 녹화를 시작했다. 관련 기사 1998년에는 IMF로 힘든 아버님들을 격려하기 위해 제작진에서 모 회사의 회사원들을 남성팀 방청객으로 특별 초청한 적이 있으며, 2007년에는 모 항공사에서 방청신청하여 남녀 직원들이 여성팀 방청객으로 초청된 적이 있었다.
- 종영 이후에 MBC의 일일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79회에서 허참이 특별출연해서 '가족오락관'을 펼친 바 있다.
- 2011년 1월부터 이 프로그램을 젊은 분위기로 리메이크한 상상오락관이 방영됐지만 4개월만에 종영되었다.
- 2012년 5월에 JTBC 신화방송에서 신(新) 가족오락관이라는 이름으로 패러디했으며, 허참이 직접 출연하여 MC를 맡았다. 여자 파트너 박지윤.
- 2013년 추석 특집 때 맘마미아 맘마오락관으로 리메이킹되었다.
- 2014년 2월 16일에는 1박 2일에서 패러디했으며, 허참이 직접 출연하여 MC를 맡았다. 여자 파트너는 이슬기.
- 디시에서는 어느 떡밥을 화제로 이야기하다가 중간에 말이 와전되어서 엉뚱한 이야기로 전개되면 가족오락관 드립이 종종 나오는 경우가 있다. 가족오락관의 전설적인 코너 '고요속의 외침'에서 유래된 드립이다.
- 투니버스에서 매주 월~금 밤 8~10시에 동명의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물론 이 KBS 프로그램과의 연관성은 없으며 주로 가족과 관련된 테마로 된 만화들 중 방송분을 임의로 선정해서 방영했다. 2018년에는 tvN <코미디빅리그>에서 '가족오락가락관'으로 패러디됐다.
- 프로그램을 종영한 지 10년이 되는 2019년에는 허참을 비롯한 주요 진행자들이 11월 11일 아침마당에 출연해 이야기를 나눴다. 또한 플레이어에서 예능 박물관 특집의 한 코너로 가족오락관을 패러디한 웃지마! 가족오락관을 선보였다. 이때 특별 MC로 허참과 오영실이 출연했다. 거기서 보면 거진 수빈이 하드캐리했다.
- 1990년대부터 2002년 중반까지, 2006년 후반부터 2009년까지 시청자 퀴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소정의 선물을 증정했다. 1990~1997년에는 우편 접수(주소: 우)150-606[20]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61호 가족오락관)로, 1997년~2002년에는 ARS로, 2006~2009년에는 가족오락관 홈페이지 시청자 퀴즈 메뉴를 통해 진행했다.
- KBS아카이브 유튜브 채널 '옛날티비'와 KBS 퀴즈 매니아에서 가족오락관의 옛날 방송분 중 일부를 서비스하고 있다. #
- 2006년에는 도전 1000곡의 형식을 빌린 노래 특집을 여름 특집, 추석 특집으로 두 번 진행했다. 이는 가족오락관 메인 작가가 도전 1000곡의 메인 작가를 겸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1] 특집에 임시진행까지 포함하면 23명[2] 우연히도 14대 여자 MC부터는 진행 이전에도 패널로 나온적이 있다.(윤지영 아나운서와 이정민 아나운서는 제외)[3] KBS 아나운서와 동명이인.[4] 1987년 허참 교통사고로 인해 단독진행 1회.[5] 허참과의 최장기간 6년 진행은 쇼쇼쇼 진행분 포함.[6] 1987 미스코리아 르망, 장은영(1992 미스코리아 선)의 언니[7] 결혼과 동시에 이 프로그램과 아나운서를 그만 둠.[8] 미스코리아 이유리가 갑자기 방송을 하기 싫다며 벌어진 돌발 상황인데 이로 인해 후임 장서희가 올 때까지 1회차분을 임시 진행했다.[9] 10주년 특집기간[10] 여자 진행자 중 최단기간 진행/ 아무래도 드라마 촬영과 겹치다 보니 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하지 못했을꺼라 추정.[11] 오영실이 육아문제 및 가사 사정으로 인해 프로그램 그만두고 손미나가 입사 전이라 공백기간까지 임시 진행했다.[12] 오영실 사정으로 인하여 대리 진행[13] KBS 파업으로 인해 대신 진행했다.[14] 여자 진행자 중 최장기간 진행.(약 4년 5개월)[15] 윤지영 아나운서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대신 진행했다.[16] 설특집 왕건오락관의 진행을 맡았다.[17] 복불복 게임의 일종으로 점수가 가산될 수도 있고 감점될 수도 있다. 스크롤로 +500점부터 -500점까지의 숫자들이 돌아가는데 스톱을 외치면 스톱될 당시의 숫자가 뜬다. 이 숫자 앞의 부호가 +이면 그만큼 점수가 가산되고 -이면 그만큼 점수가 감점된다. 이 게임 때문에 737회(1999년 1월 13일 방송분)에서는 여성팀의 최종점수가 0점이었다. 아래 참조.[18] 당시 손미나가 보너스 게임 설명을 하던 중 허참이 "거기까지"라고 했던 것을 보면, 제작진과 MC들만 사전에 보너스 게임 방식을 알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점수판에서는 올라간 점수가 반영되지 않았다. 이 때는 여성팀이 1010점이 되었으나 당시 점수판이 천 단위가 적용되지 않아서 999점으로 떠야 하는데 왜인지 그 점수가 올라가지 않았다.[19] 그 뒤 JK김동욱은 2011년부터 울산방송의 음악프로그램 '열린예술무대 뒤란'을 진행하게 되었다.[20] 2021년 현재: 07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