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UFO 격추미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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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의 묘사를 바탕으로 그려진 상상도.
1. 개요
2. 상세


1. 개요


1976년 10월 14일 오후 6시에서 8시 사이 서울특별시 강북 일대에서 있었던 미확인비행물체(UFO)[1] 근접 조우 사건.
해당 비행물체가 청와대 상공에 진입했기 때문에 '''청와대 상공 UFO 사건'''으로도 불린다. 특이한 것은 대한민국 국군이 비행물체 격추를 시도했다는 점으로,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로스앤젤레스 전투와 같이 UFO 근접 조우에 무력을 사용한 사례로 남아있다.

2. 상세


14일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 시민들은 서울 상공을 수놓은 십여 개의 괴비행체를 발견한다. 해당 물체는 조명처럼 밝은 빛을 내고 있었으며, 일정한 속도로 반원형의 대열을 맞추어 천천히 남하했다. 거대한 한 개의 비행물체의 발 같기도 했고, 누구는 북한에서 내려보낸 전투기 편대라고 생각했다. 당시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던 이수만은 실시간으로 제보를 받고 라디오 멘트로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해당 비행물체는 약 1-2시간 서울 상공에 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시각 수도방위사령부 산하 방공여단에서도 해당 비행물체를 포착, '''격추 태세에 들어갔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북한과 강경한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불과 2개월 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난 준전시상태에, 1달 전에 소련 공군 소속 비행사가 일본 홋카이도 방공망을 뚫고 하코다테 공항에 착륙한 하코다테 공항 MiG-25 망명 사건 사례가 있었으며, 며칠 전에는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사망하는 등 동북아의 긴장이 고조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 속 오후 7시 즈음 KM167A3 20mm 발칸포로 추정되는 대공포가 불을 뿜었고, 곧 시민들은 주황색 예광탄이 하늘을 가르고 UFO에 십자포화를 퍼붓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해당 물체는 낮은 속도로 저고도 비행중이었음에도 이상하리만치 격추되지 않았고, 회피기동하기는커녕 대열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밝은 조명을 비추고 있었다는 것이 미스터리다. 해당 UFO는 국군의 공격에 딱히 반격하지도 않아서 전투로 이어지지 않았고 결국 수십 분 간의 격추 시도 끝에 해당 물체가 북서쪽으로 물러남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대공포탄이 다시 지상으로 낙하하면서 도비탄에 서울 시민 1명이 사망하고 31명이 부상한 인명피해가 났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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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국회 상임위 국방위원회에서는 보잉 707의 항로 이탈이라 보고되었다.
사진은 구 벨기에 트랜스유러피안 항공의 보잉 707기.
이튿날 다수의 일간지는 해당 소식을 보도했다. (당시 기사) 국회에서는 국방위원회가 소집되었으며, 여기에서 국방부, 교통부는 노스웨스트 항공보잉 707 (902호편) 화물 전세기 1대가 청와대 상공 비행금지구역으로 들어와서 위협사격을 가한 거라고 발표하였다.참조[2] 하지만 시민들의 목격담을 보면 절대 보잉 707은 아니었다고 한다. 외국 국적의 민항 화물기가 비행제한구역[3] 내에서 장시간 비행을 한다는 상황 자체가 있기 힘든 상황이고, 스텔스기도 아니고 요란한 회피기동 없이 국군의 대공사격을 받고도 피해가 없었다는 것은 더더욱 미스터리. 보잉 707의 경우 최대 속도가 마하 0.8을 넘지 못하고, 일반적인 순항 속도는 그보다도 더 낮다.[4] 만일 정말로 위 국방위 발표가 사실이라면 표적 오인이라는 면에서는 (민항기가 격추되지 않아서) 다행이고, 군사 작전이라는 면에서는 엄청나게 실패한 것[5]이다. 또한 더 심각한 것은 유탄에 민간인이 맞아 인명 피해가 났다는 것과, 관련 사실이 의외로 민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위의 두 가설을 제외하면, 로스엔젤레스 UFO 교전 사건처럼 전쟁 공포로 인한 집단 히스테리일 가능성이 높다. 상술했듯 당시 국내외 정세가 뒤숭숭했기 때문에[6] 공포감과 불안감으로 조성된 히스테리가 집단적으로 퍼진 것이다.
2020년 10월에 그것이 알고싶다가 이 사건에 대한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2020년 11월 7일에 창사특집으로 방영되었는데, 사건 해석의 초점은 사건 자체보다 이에 대한 정부의 은폐에 맞춰졌다.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군사작전이었던 데다, 그것도 청와대와 직접 관련이 있었고 민간인 피해까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관련 정부 기록이 남은 것이 전무하며, 보도자료도 오락가락할 뿐 아니라 목격자 증언과 정부 발표(및 정부 통제를 거친 언론 기사)가 다르며, 피해자 집계조차 정확하지 않은 점, 또한 매우 공교롭게도 UFO사건을 많은 언론들이 대서특필한 그 사건 다음날 미국발 유신정권의 재미교포 시찰 폭로, 일명 코리아게이트가 터진 점을 지적했다.

[1] 당연히 사전적 정의(미확인된 비행 물체).[2] 해당 블로그는 회의주의적 입장으로 UFO 목격담을 신뢰하지 않으며, 정부측 해명을 수긍하고 있다.[3] 서울 시내, 특히 중구를 중심으로 북부 서울은 거의 대부분이 비행제한구역이다.[4] 다만 일반적인 대형 항공기는 6~10km의 고도에서 비행하기 때문에 소구경 기관포인 KM163의 20mm 발칸포탄으론 격추가 힘들다. 저정도 고도에서 날고있는 적을 잡으려면 76mm 이상의 대구경 대공포나 대공미상일은 돼야 한다.[5] 민항기를 탐지, 식별하지 못하고 사격했다는 점에서 이미 대참사이며, 적기라고 판명하고 격추를 시도했으나 격추를 실패 한 것 또한 전투수행능력 상 대참사이다. 물론 민항기를 격추하지 못 한게 천만 다행이긴 하지만.[6] 국내적으론 1976년이면 유신체제가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할 시기이다. 그 해 3월에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함석헌, 문익환, 김대중, 백기완 등등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이 격렬해지기 시작한 걸 보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