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1. 소개
1969년 3월 17일에 처음 편성되었으며 무려 '''53년째 방송 중'''인 MBC 표준FM의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MBC 라디오가 AM 전용에서 표준FM 동시 송출로 바뀐 게 1987년(서울)에서 1999년(전국 송출) 동안이니까 사실상 MBC 라디오의 한 역사를 쓰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제목은 문화방송 신입사원이었던 장명호[6] 가 지은 것으로 1969년 당시 상금 2만원[7] 을 걸고 사내 공모를 하였는데 장명호의 안이 당선된 것이다.[8]
별밤을 방송하는 DJ를 '''별밤지기'''라고 한다. 이는 이문세 DJ 시절 한 청취자가 '등대지기'라는 말에서 창안하여 엽서로 제안한 것으로 이문세가 수용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상상이 잘 안 가지만, 처음 편성 당시에는 청소년 교양진작 차원의 명사와의 대담 프로그램이었다고 하며 첫방송할 때를 기준으로 방송시간도 매일 방송이 아닌,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오후 11시부터 11시 15분까지 고작 '''15분'''짜리 방송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지금은 매일 밤 10시에서 자정까지 2시간 방송중이다. 초대 별밤지기는 오남열 전 아나운서. 2대 별밤지기는 장학퀴즈 진행자(1973~1990)로도 유명했던 '''차인태'''[9] 전 경기대학교 교수.
3대 별밤지기로 당시부터 유명 DJ였던 이종환이 들어서면서 음악 방송으로 전환했다. 유명한 별밤지기로는 김기덕과 이문세가 있으며, 특히 이문세는 무려 11년[10] 동안 별밤지기로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적어도 30대 후반 위로는 '''별밤지기라고 하면 우선 이문세'''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고 그 자신의 애착도 상당하다.
당시 이문세의 별명은 '''밤의 문교부 장관'''이었다.[11][12] 그 외에 별밤지기를 거쳐간 사람 중 유명인으로는 조영남, 서세원, 이수만, 이적, 이휘재 등이 있다.[13] 이하 역대 별밤지기는 하단에 기재돼 있으니 참조하시길.
과거 젊은 층의 청취율은 본좌급에 속했다. 지금이야 인터넷 등의 매체가 확산되어 과거의 영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다시듣기가 없던 시절에는 '''테이프로 녹음한 방송 내용을 리어카에서 팔 정도'''였다.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의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뒤 학생들의 귀가버스에서는 아주 높은 확률로 이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피곤에 지친 학생들의 삶의 활력소가 되었던 셈.
그리고 매해 여름 공개방송을 했는데, 특별히 추첨된 시청자들을 초대하여 1박 2일동안 즐기며 지내는 여름캠프와 같이 라디오 중계도 했다. 1991년 공개방송에서는 이제는 고인이 된 신해철을 비롯하여 가수 이상우나 이승환을 비롯한 당시 인기 가수들이 여럿 나와 웃기는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팝송 제목 대기에서 이경규가 <The World Playing>이라는 제목을 말하였기에 모두 "처음 듣는데 그거 대체 무슨 뜻이죠?" 라고 아리송해하자 "이 세상 놀다보면."이라고 엉터리 노래라고 답변하여 아주 폭소가 터지기도 했었다...
여기서 여고생 나레이터로 활동하던 여고생이 바로 성우 윤미나였다. 이 당시, 430:1 이라는 어머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나레이터가 됐다고 한다. 이 당시 나레이터로 활동하던 게 인연이 된 윤미나는 성우가 아닌 아나운서를 꿈꿨다고 한다. 자세한 건 윤미나 문서를 참고할 것. 참조로 그 선배 여고생 나레이터는 KBS 소속의 성우 김희선과 MBC 소속의 김아영. 결국 그 3명 모두 성우로 방송계에 정식 데뷔가 된 셈.
전 별밤지기인 박경림과 옥주현은 별밤을 통해 먼저 인지도를 쌓고 연예계에 데뷔하여 별밤지기가 된 케이스다. 박경림은 이문세가 별밤지기일 시절 '돌발소녀'라는 기믹으로 등장해 이름을 차츰 알리기 시작했고, 옥주현은 별밤의 장수 꼭지 중 하나인 '별밤 뽐내기'의 연 장원 출신으로 가창력을 인정받아 대성기획에 스카웃되어 핑클의 메인 보컬이 되었다. 그 외에도 이기찬, 리아, 이수영, 신용재, 려욱, 바버렛츠, 안신애 등이 "별밤 뽐내기"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21세기에 들어서는 그럴 일이 별로 없으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무명이었던 연예인들이 별밤에서 인지도를 쌓으며 인기를 얻은 케이스가 많다. 예를 들면 1980년대 중후반의 이경규[14][15] 라든지, 1990년대 중후반의 컬트삼총사[16][17] 라든지.
2. 코너[18][19]
- 매일코너 ㅡ 사연과 신청곡, 내일의 bgm 꺼내들어요, 하루 틈
- 월 - 나라가 허락한 Latte 퀴즈...★(with 박문치)
- 화 - 영업합니다 시즌2 (with 이원석)
- 수 - 뮤직 훵키타운
- 목 - 아무노래
- 금 - 깨끗하고 어두운 곳 (with 양재웅)
- 토 - 우리 삶이 음악이 된다면 (with 권순관)
- 일 - 고전이 빛나는 밤
3. 특징
오프닝곡은 전 별밤지기 김기덕이 직접 고른 Franck Pourcel의 Merci Cherie를 쓰고 있다. 제목보다 멜로디가 익숙한 오프닝곡이다.들으러가기
40여년 동안 이 곡을 쓰고 있는데 2000년대 초 이 곡을 리메이크한 음악을 오프닝으로 썼다가 다시 원곡으로 돌아온 에피소드가 있다. 한편, 지역국별로 다르나 충주MBC에서 1990년대 중반에 이 곡을 편곡한 것을 오프닝으로 쓰다가, 별밤 분위기가 안 난다는 항의가 들어와 다시 원곡으로 바꿨다고. 부산MBC 별밤의 경우, 1990년대 후반에 El Bosco 소년 합창단의 Nirvana라는 곡 앞부분을 오프닝으로 이용했다. 대전MBC는 2004년~2005년경 오프닝곡으로 스티브 바라캇의 Rainbow Bridge를 썼다.[20]
별밤의 리즈 시절이던 이문세의 별밤 시기에는 유독 독특하고 유명한 에피소드가 많다. 그만큼 이 시절의 별밤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초절정 인기 프로그램이었다는 증거.
일단 별밤지기 이문세가 직접 부른 2부 오프닝 로고송이 있었다. 1부 오프닝곡은 앞서 언급한 Merci Cherie였고 11시에 시작되는 2부 오프닝 때 이 노래가 나왔다. 히든 싱어와 공감토크쇼 놀러와 별밤 40주년 특집 편에서 이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했다.
이 노래를 실제 라디오에서 들어봤다면 그들은 2015년 현재 30~40대로 성장한 이들이다.[21] 들어보자. 가사는 이렇다.
+ 추가 : '산들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26대 별밤지기 산들이 해당 로고송을 녹음했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대신 '산들의 별이 빛나는 밤에'로 바뀜)
현재는 DJ 강타와 일요일 고정게스트 피아니스트 송광식이 함께 작업하고 강타가 직접 부른 강타의 별이 빛나는 밤에 버전의 로고송이 송출되고 있다. 로고송은 2부 시작 전에 송출되는 발랄한 보사노바풍의2부 로고송과 3부 시작 전에 송출되는 재즈풍의 3부 로고송 두 가지 버전이 있다.[22][23]창밖의 별들도 외로워~ 노래 부르는 밤~
다정스런 그대와 얘기 나누고 싶어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2016년 6월 23일부터 2017년 1월 24일까지는 초대 게스트가 3부 로고송 나올 때 직접 로고송을 부르기도 했다. 생방송 라이브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실력파 가수들도 상당히 긴장하며 불렀으며, 나이가 어린 게스트들은 이 노래 자체를 잘 몰라 더듬거리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현재는 녹음된 로고송만 송출되고 있다. 토니 안, 김흥국, 안세하, 여자친구, 아이비, 브아솔 영준, 김반장, 백지영, 권진아&샘김, 레이디 제인, 김민종&김수로, 레드벨벳, 2PM 준호&택연, 인피니트, 벤, 이예준&김나영, 산들, 규현, 김필, 조우종, 정승환, 유준상, 헤이즈, 제아&천둥, 볼빨간사춘기, 신동, 이동우, 서현 버전이 있다.[24]
별밤 방송 중 2부에 생일축하 사연이 나올 때면 별도의 축하곡이 있었다. 이것도 이문세가 직접 불러준 뒤에 생일축하 사연을 소개하는 형식이었는데... '''이 노래가 실제 앨범에 들어가기도 했다.''' 2002년 발매된 14집의 '추카해요'가 바로 그 곡이다. 가사 중간에도 '별이 빛나는 이 밤에'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노래까지도 라디오에서 실제 들어 본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진정한 별밤가족이다!!
별밤의 상징 중 하나는 매주 일요일에 진행하던 공개방송이었다. 이 역시 이문세가 별밤지기를 맡던 시절에 가장 흥했으며 이문세 본인도 공개방송 현장에서 별밤 공개방송이 가장 애착이 가는 코너라고 회상한 바 있다. 이 당시 공개방송은 중구 정동 MBC 라디오극장[25] 에서 주로 진행됐다.
또 별밤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잼콘서트'다. 당대 음악성 좋은 뮤지션들이 함께하는 콘서트로 이 역시 이문세가 별밤지기를 할 당시부터 시작했다. 원래 1989년에 '''별밤 20주년 기념 특별 콘서트'''로 기획된 일회성 콘서트였지만,[26] 이게 당연히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2000년까지 지속되었던 것. 그러나 2000년을 마지막으로 잠시 자취를 감추다 윤하가 별밤지기를 맡은 2011년에 장충체육관에서 잼콘서트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2011년 11월 25일 잼콘서트 'Reborn'은 잼밴드 멤버인 별밤지기 윤하, 김종서, 노민혁, 스윗소로우, 다비치, 성훈(브라운 아이드 소울), 박원, 알리, 일락의 활약 아래 3시간동안 진행되었다. 게스트로는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블락비, 킹스턴 루디스카, 포맨이 왔었지만.. 진짜는 바로 심수봉! 자신의 히트곡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와 여자이니까를 불렀고, 가장 압권은 블락비와 함께 부른 에픽하이의 우산! 그리고 드럼 솔로도 훌륭했다.[27]
별밤을 다시 듣거나 인터넷,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서 듣기 위해서는 'MBC 미니'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그리고 생방송 도중 DJ에게 하고싶은 말이나 사연을 보내고 싶다면 휴대폰 문자를 이용할 수 있다.[28]
강타의 별밤 끝곡은 항상 강타가 직접 선곡한 추천곡이 방송된다. 강타의 추천곡1, 강타의 추천곡2
대부분 팝송을 선곡하며, 재즈, 힙합, R&B, EDM, 락 등 폭 넓은 장르와 최신곡부터 오래된 곡까지 다양한 팝송을 들을 수 있다.
끝곡이 항상 팝송인 이유와 선곡하는 기준에 대한 청취자의 질문에 강타는 '팝송을 주로 선곡하는 이유는 국내가요는 이미 방송하면서 많이 틀기 때문이며,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선곡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평소에 듣던 노래 중 그냥 좋은 노래를 같이 듣고 싶어서 선곡한다'고 밝혔다.
강타의 별밤 때는 끝곡 소개 후 '지금까지 별밤지기 강타였습니다. 내일 봐요.' 라는 멘트로 방송을 마무리했다.
'내일 봐요'라는 멘트는 강타가 직접 생각해낸 멘트로, 별밤을 맡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 인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한 청취자의 말에 좌절하며 오래 고민하여 생각한 멘트였음을 밝혔고, 바꿔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었다.
2018년 7월 8일부로 강타의 별밤은 2여년만에 막을 내린다.
산들은 '다시 올게요.'라는 멘트로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29][마지막인사]
2019년 3월에는 별밤 50주년 전국투어 '1320㎞ 프로젝트: 별밤로드 끝까지 간다'를 진행했다.
2018년 10월 18일부터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전국의 중고등학교를 방문하는 교실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9년 4월 부터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과 함께 진행하고 있으며, 인스타라이브로 진행 후 편집을 거쳐 라디오 정규시간에 방송한다.
김이나는 별밤 끝곡 후 그날 방송에 기억에 남는 멘트를 얘기하고 '내일 마저 얘기해요.'로 끝난다.[30] 전 별밤지기였던 산들의 엔딩 멘트가 너무 인상 깊어서 이런 엔딩 멘트를 청취자들에게 추천 받았는데 채택된 엔딩 멘트다. 청취자 애칭을 부엉이로 정했는데 김이나가 좋아하는 두번째 동물이고 본인에게도 청취자들에게도 모두 너무 긍정적이고 좋은 점이 많은 동물이라 심사숙고 끝에 고르게 됐다고.
DJ가 김이나로 변경된 이후 기존의 대표적인 젊은 층 겨냥 라디오에서 추억팔이 레트로 라디오로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최신 아이돌들이 게스트로 상당히 자주 출연하던 곳 중 하나였으나, 이제는 아이돌이 출연은 커녕 선곡조차도 거의 안되다시피 하는 수준이다. 대신 1970년대에서 80년대생들이 자라올 시절의 추억을 자극할 만한 선곡과 코너들, 그리고 게스트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러한 변경에 대해서는 평가가 그야말로 엇갈리고 있다. 호평하는 쪽에서는 라디오의 주 청취층인 30~40대를 겨냥해 잘 변경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하지만 비판 의견도 상당히 많은데, 그동안 이어져오던 대표 청소년 라디오라는 프로그램의 색깔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실제로 변경 이후 10~20대의 청취자들이 동시간대의 배성재의 TEN, 키스 더 라디오로 상당히 많이 넘어간 상태이며, 청취율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이다. 그리고 비슷한 컨셉으로 방송을 했던 백지영 역시 6개월만에 교체된 사례가 있어서,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봄 개편을 넘기지 못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4. 지역방송
별밤 시간대는 오래 전부터 지역방송 시간대여서, 지방에서 주말 공개 방송이나 특집 방송을 제외하면 서울 별밤 듣기가 거의 불가능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 8화 중에서 '''지방 살 때 이문세 별밤을 듣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던 것. 성능 좋은 라디오(ex '''소니''')를 이용해 900 kHz(본사 주파수)로 맞추면 들을 수는 있었겠지만... 남부 지역은 옆 주파수인 부산 KBS 1R(891 kHz)때문에 페이딩이 심하다.[31]
옛날에는 부산MBC에서 별밤 2부가 종료된 직후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의 귀가를 독려"하는 일명 통금방송(…)을 했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지역 별밤이 축소, 중지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2014년 9월 21일에 강릉/삼척MBC를 마지막으로 모든 지역별 자체 방송이 중지되고 그 다음날인 9월 22일부로 전국방송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부산MBC에서는 2018년 8월 20일부터 매주 월요일 밤 11시 별밤의 자체 편성이 부활하였으나, 2019년 9월 2일 방송분을 끝으로 종영되었다.
2019년 9월 2일부터는 춘천MBC에서 평일에 한해 자체 편성을 재개하였다. 진행자는 노지현 아나운서.
4.1. 지역별 자체방송 중지 시기
MBC경남[32] 을 제외한 모든 지역 계열사에서는 2000년대 중반까지 자체적으로 방송되었다. MBC경남만 유일하게 본사 릴레이 방송으로, 2000년대초 당시 옥주현이 진행하던 별밤을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가청권이었다.
2019년 9월 현재는 춘천MBC가 지역 계열사 중에서 유일하게 자체적으로 별밤을 제작하고 있다.[33]
- MBC경남(창원, 진주본부) - 창원(당시 마산MBC)은 1997년, 진주는 2000년[34][35][36]
- 대구MBC - 2010년 가을[37]
- 포항MBC - 2010년 10월 31일
- 안동MBC - 2010년 11월
- 목포MBC - 2011년 11월
- 울산MBC - 2012년 10월
- 원주MBC - 2013년 3월
- MBC충북(청주, 충주) - 2013년 10월[38][39]
- 광주MBC - 2014년 4월 13일[40]
- 여수MBC - 2014년 4월 13일[41][42]
- MBC강원영동(강릉, 삼척) - 2014년 9월 21일[43]
- 부산MBC - 2011년 2월 27일 중단되었다가 2018년 8월 20일 매주 월요일 밤 11시 주 1회로 방송이 재개되었으나, 2019년 9월 2일 종영되었다.
5. 역대 별밤지기
- 1대 - 오남열
- 2대 - 차인태
- 3대 - 이종환
- 4대 - 박원웅
- 5대 - 안병욱
- 6대 - 조영남
- 7대 - 오혜령
- 8대 - 고영수
- 9대 - 이필원
- 10대 - 김기덕
- 11대 - 문진호
- 12대 - 이수만[44]
- 13대 - 서세원
- 14대 - 이문세[45][46]
- 15대 - 이적
- 16대 - 이휘재
- 17대 - 박광현
- 18대 - 정성화, 박희진[47]
- 19대 - 옥주현
- 20대 - 박정아
- 21대 - 박경림 (2008년 3월 31일 - 2011년 5월 8일) [48][49]
- 22대 - 윤하 (2011년 5월 9일 - 2014년 11월 2일) [50]
- 23대 - 허경환 (2014년 11월 17일 - 2015년 11월 15일)
- 24대 - 백지영 (2015년 11월 16일 - 2016년 6월 5일)
- 25대 - 강타 (2016년 6월 22일 - 2018년 7월 8일[51]
- 26대 - 산들 (2018년 7월 9일 - 2020년 5월 10일)
- 27대 - 김이나 (2020년 5월 11일 - 현재 [52][53]
6. 경쟁 프로그램
- 김현빈의 해피타임 (인터넷 라디오 FM2U 밤 10:00~12:00)
- 유지원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54] (KBS 해피FM, 106.1MHz(서울/경기))
- 최백호의 낭만시대 (SBS 러브FM, 103.5MHz(서울/경기))
- 조은형의 가요세상 (wbs FM)
- 데이식스의 키스 더 라디오 (KBS Cool FM, 89.1MHz(서울/경기))[55]
-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 (MBC FM4U, 91.9MHz(서울/경기))
- 배성재의 TEN[22~23시] - 딘딘의 뮤직하이[23~01시] (SBS 파워FM, 107.7MHz(수도권))
- 허윤희의 꿈과 음악 사이에 (CBS 음악FM, 93.9MHz(서울))
- 달콤한 밤 황진하입니다 (TBS FM, 95.1MHz(서울/경기))
7. 여담
- 무한도전의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2 - 100빡빡이의 습격 촬영 당시 박명수가 이 프로그램의 스튜디오에 숨어들어간 바람에 자연스럽게 스튜디오의 모습이 TV 전파를 탄적이 있다.[56]
- 1996년 12월에 10,000회를 돌파하였다.
- 제 27대 별밤지기인 김이나의 별밤 첫방송에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이였던 제 14대[57] 별밤지기 이문세가 전화로 깜짝출연하였다. 김이나 본인은 전화 연결 전에 그냥 청취자 전화 연결로 알고 있었던 듯. 하지만 김이나는 이문세의 목소리를 듣고 1분도 안되어서 눈치챘으며, 전화 연결 도중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전화 연결로 나눈 대화로 따르면, 김이나가 라디오에 처음 게스트 신분으로 출연했던 프로그램은 오늘아침 이문세입니다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서로서로 팬인 사이라고.
- 옥주현이 김이나의 별밤에 나왔을 때 별밤 레전드 방송 사고에 대해 얘기를 했었다. 2002년 옥주현이 별밤지기였을 당시 박효신이 신곡 좋은 사람을 홍보하러 잠깐 들렀었는데 AR 대신 MR이 나왔고 그 MR에 맞춰 박효신이 즉석에서 CD삼킨 라이브를 보여줬던 일이 그 당시에 매우 화제가 됐었다. 그래서 옥주현이 출연하자 다시 얘기를 꺼낸 것인데 이에 옥주현은 클라스가 다른 박효신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
8. 둘러보기
[1] 8시 뉴스 20:00~20:10, 9시 뉴스 21:00~21:05[2] 10시 뉴스 22:00~22:05, 11시 뉴스 23:00~23:05[3] 2019년 9월 2일부터는 춘천MBC에 한해 평일 자체방송.[4]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사이트 참조[5] DJ 또는 게스트의 스케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경된다.[6] 훗날 MBC 경영이사, MBC에드컴 사장 직을 역임하였다.[7] 당시 신입사원 평균 월급이 4만원이었다.[8] 별이 빛나는 밤에 10000회 특집 마지막 퀴즈 2단계 문제 참조.[9] '''차인표 아니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차인태는 '''문화방송 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아나운서이다.''' 차인태가 퇴직한 후에도 손석희가 유명해지기 전까지 MBC의 아나운서 하면 1순위로 거론되었던 사람이 차인태였다.[10] 1996년 11월 어느 신문에 의하면 총 4,000회를 진행했다고 한다. 당시로 치자면 절반 가까이 되는 횟수를 진행했다는 말이 된다. 정기 휴가를 뺀 긴 공백기라 해도 결혼 때문에 비웠던게 거의 전부였을 정도.[11] 고별방송 중 한 여고생과의 전화연결에서 여고생이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이문세도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별밤지기를 물려받았던 이적이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다고.[12] 밤의 문교부장관으로 불릴 정도로 청소년층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문세가 떠나면서 MBC는 신승훈, 김건모 등 당대 최고의 톱스타에 심지어는 은퇴하고 미국에 은둔 중이던 서태지(!)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삼고초려 끝에 이적을 영입한다.[13] 지역 방송까지 따지자면, 배기완도 춘천MBC 재직 시절 별밤지기를 한 적이 있다.[14] 가끔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1980년대 말 녹음된 방송내용을 들으면 이경규가 한 꼭지의 패널(공개방송)로 등장했던 게 나온다. 1980년대 중후반 당시 이경규는 인지도가 약간 안습인 코미디언이었다. 당시 일주일에 한번 녹음방송하던 '별밤 공개방송'의 위상은 대단하여, 현재의 라디오 방송과는 다르게 '조용필'부터 '서태지와 아이들'까지 최고의 인기가수들이 나오는, 가장 영향력있는 꼭지였다. 별밤이 각 지역MBC 자체 방송을 하던 시절에도 공개방송만은 전국 송출이었을 정도. 개그맨 한 명이 나와 공개방송시 보조 진행을 했는데(이경규 전에 이성미 등), 이때 인기가 그만그만하던 이경규가 특유의 입담(그때의 컨셉은 '돈만 밝히는 이경규')으로 청소년들에게 이름을 많이 알렸고, 지금까지 이경규가 장수하게 된 계기는 몰래카메라 등이 아니라 '별밤'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당시 별밤의 위상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15] 1990년대 초반까지 코미디의 대세는 대본에 따라 철저한 연습 끝에 비공개 녹화해서 방송하는 꽁트였다. 꽁트연기로 심형래, 김형곤, 최양락 등이 당시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군림했을 때 이경규는 부족한 연기력으로 변방을 떠돌았다. 이때 연기가 필요없는 라디오 공개방송에서의 즉흥토크로 대박을 치면서 뜨기 시작한다. 매주 월요일이면 전날 방송된 별밤 공개방송에서 이경규 토크부문만 따로 녹음해서 길거리 리어카에서 팔 정도가 된다. 이때부터 MBC 일밤에서 주병진과 함께 토크 코미디 전성시대를 열게 된다.[16] 현재 컬투의 전신으로 정성한이 멤버로 있었다.[17] 이적이 별밤지기를 하던 1996~1997년에 개그 강의를 하는 듯한 컨셉인 '컬트 대학교'란 고정코너를 맡았는데, 그때 이미 지금의 컬투쇼 뺨치는 꽁트를 해냈다. 경규 옹의 포스에는 약간 밀렸지만, '컬트삼총사의 컬트 대학교' 테이프도 리어카에서 팔리곤 했다.[18]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사이트 참조[19] DJ 또는 게스트의 스케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경된다.[20] 이 당시 대전MBC 별밤은 현재도 표준FM에서 새벽 2시대 로컬방송을 진행하고, 각종 캠페인/영상 등에 나레이션을 넣고 있는 박경량 씨가 맡았다. 박경량 씨 톤이 차분한 편이라 이 당시 별밤에 나오는 노래들도 대체적으로 차분한 편이었다. 이는 2005년 가을개편으로 FM 오후 4시대 <가요산책>을 진행하던 박진희 아나운서(현 TBN DJ)가 들어오면서, 원래 시그널로 돌아왔고 청소년 참여도 많아지며 분위기가 괜찮아졌다. 그리고 박진희 아나운서는 대전MBC의 마지막 별밤지기가 되었다.[21] 이문세가 별밤지기로 활약한 시기는 1985년부터 1996년까지다.[22] 원래 3부 로고송을 먼저 작업하여 방송했으나, 작업 당사자인 강타가 '너무 늘어져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2부 로고송을 다시 만들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3부 로고송을 포함하여 두 가지 버전이 모두 방송되고 있다(..).[23] 화요일 고정게스트 제이레빗의 노래 '봄이 좋아'를 개사하여 부른 로고송 '밤이 좋아'가 1년 여 가량 2부 로고송으로 송출되었으며, 최근 강타 버전 2부 로고송과 번갈아가며 나오고 있다.[24]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사이트 참조[25] 현재 경향신문이 입주하고 있는 그 건물이다. 경향신문과 MBC가 한지붕 가족이던 시절 건물을 같이 쓰다가 1982년 MBC가 정동을 떠나 여의도로 사옥을 옮기면서 C공개홀로 사용됐던 장소를 라디오 전용 공개홀로 개조한 뒤 꽤 오랫동안 라디오 공개방송 전용 공간으로 썼다.[26] 응답하라 1988 9화에 이 내용이 등장한다.[27] 원래 심수봉은 미 8군에서 활동했었던 드러머 출신이다![28] 문자참여: #8001 정보이용료 SMS: 50원, MMS: 100원[29] 당연히도 마지막 방송 때 이 작별인사는 하지 않았다[마지막인사] 절 기억해주시고, 다음번에 더 좋은데서 인사드릴게요. 안녕히 계세요. (보이는 라디오가 끝날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보이는 라디오가 끝났다. [30] 전 라디오 김이나의 밤편지에선 "내일도 편지쓸게요."였다.[31] 2000년 이후라면 창원 990 kHz와 진주 1215 kHz로 들을 수도 있었지만 이 때부터는 어차피 자체방송이 아니라 서울 방송 릴레이로 전환되기 시작한 시기라 별 의미는 없다. 그리고 인터넷이 보편화된 요즘에는 PC나 스마트폰 스트리밍 앱으로 들으면 되니... 참고로 현재 MBC경남 창원송신소는 이전중에 있다.[32] 당시 마산MBC(990kHz, 98.9MHz)와 진주MBC(1215 kHz, 91.1/93.5MHz)[33] 2012년 10월 제작 중지하였다가 2019년 9월 2일부터 부활.[34] 응답하라 1994에서 언급되는 마산 별밤 진행자는 김혜란 씨. 2015년 기준으로 경력 30년이 훌쩍 넘은 지역 유명 라디오 DJ이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35] 응사 별밤 부분 마지막에 삼천포도 김혜란의 별밤을 들었을 것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삼천포는 마산MBC보다 진주MBC가 더 잘 들리기 때문에 만약 들었다면 진주 별밤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36] 대구 남서부권에서는 감악산(거창군) 주파수(93.5 MHz)로 본사 별밤을 잡을 수 있었으나, 문제는 감악산 표준FM 출력이 1 kW밖에 안 되어서 3 kW 출력의 음악FM(96.1 MHz)에 비해 수신률이 크게 떨어진다. 중파(990kHz, 1215kHz)는 밤에 반사가 되므로 잘나온다. 전국방송으로 전환된 지금은 모두 옛날 이야기.[37] 전 대구MBC 정오의 희망곡 DJ인 김소영이 이전에 DJ를 맡은 적이 있었다. 2010년 11월부터 2012년경까지 주말 별밤 시간대에 권오성의 해피타임이란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주말에도 본사 별밤을 방송 중이다. 현재 권오성 DJ는 주말 18시~20시에 "귀를 기울이면"을 진행하다가 16시~18시의 "FM 음악여행"으로 김혜숙 아나운서와 자리를 맞바꿔 진행 중이다.(이거 때문에, 지금은 종영된 "좋은 주말"은 대구에서는 3,4부만 방송했다.)[38] 청주 한정으로 과거 이 시간에 김병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오! 마이 라디오가 방송되었다. 제목이 유일하게 별밤이 아니다. 물론 이 전에는 별밤으로 방송했으며 김병재 아나운서와 이은하 아나운서(현 대전MBC FM모닝쇼 DJ)가 공동 진행했다. 로컬 별밤 중 유일한 남녀 공동 진행.[39] 응사에서는 빙그레가 공병호라는 진행자가 진행했다고 나온다.[40] 광주MBC는 2012년 7월 31일 문형식 씨가 진행하던 추억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종방하고 한동안 본사 방송을 재송출했다가 2013년 5월 홍진선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신설했지만, 2014년 봄 개편으로 다시 본사 별밤을 방송하고 있다.[41] 호남권에서 마지막까지 별밤 로컬방송을 제작했다.[42] 참고로 1994년 당시 별밤지기는 강현주 前 아나운서. 응사에서 순천 출신 해태와 여수 출신 윤진이가 들었다.[43] 백승주 아나운서가 KBS 입사 전 삼척MBC에서 별밤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44] SM엔터테인먼트의 그 사람 맞다. 더불어, 이 사람은 후임 별밤지기인 이문세와 평생 친구이며 그 두 사람과 유열까지 셋이서 마삼트리오의 구성원이며 이 세 사람은 아직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45] 1984년경부터 별밤지기를 했고 1996년 12월 2일 12년동안 지켜온 별밤지기에서 하차. 참고로 이날은 정확히 MBC가 창사 35주년이 되는 날이였다.[46] 당시 별밤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 있다. 무려 이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 교체를 주제로 한 TV 다큐(오늘날로 치면 VJ특공대 식의)가 편성되었던 것. 그가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흐느낄 때, 8대 DJ인 고영수가 스튜디오에서 그의 어깨를 두들겨주는 장면도 있었다. 링크가 걸린 유튜브 댓글을 보면 "무한도전 폐지보다 충격적이었다"는 멘트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이것이 절대 과장이 아니었던 것.[47] 별밤 최초의 남녀 공동 DJ. 다만 지역 자체방송에서는 이전에 공동 DJ로 방송한 곳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청주MBC.[48] 별밤이 끝나고 방송하는 심심타파를 진행할 시절부터 별밤지기 자리를 은근히 노리고 있었다. 도중에 잠시 출산으로 자리를 비웠는데, 이 때 한 달 동안 절친 이수영이 진행을 대신했다.[49] 참고로 박경림이 유독 별밤을 노렸던 이유는 이문세가 DJ이던 때로 돌아간다. 그의 연예인 입문을 하게 된 계기가 바로 별밤 출연이었기 때문. 유독 별밤을 "고향같이 여기는" 몇 안되는 사람중 한명이다. (한명은 역시 이문세 이고, 또 다른 사람이 이문세 이후 PD의 삼고초려로 가수 데뷔 직후 바로 별밤지기를 받았던 이적, 그리고 박경림과 윤하도 있다.) 대타로 뛰었던 이수영의 가수 데뷔 계기도 별밤 뽐내기 입상이었다. (다만 이쪽은 고정 게스트를 많이 한 대신 별밤지기를 하진 않았다.)[50] 후임 DJ가 선임될 때까지 딕펑스의 김태현, 씨스타의 소유, 윤보라가 임시 진행. 2016년 6월 6일 ~ 12일까지 임시 DJ로 한시적으로 복귀.[51] 강타가 24일까지 스케줄로 인해 자리를 비우는 관계로 6월 6일부터 6월 12일까지 22대 별밤지기인 윤하가 임시로 진행을 맡았고 13일 ~ 23일은 이수영이 맡았다. 2017년 12월 18일에는 FM4U의 푸른밤 전 DJ였던 종현이 사망하여 진행 무리라고 해서 일락이 대신 맡았다.[52] 별밤지기가 된 동시에 그녀가 현재 맡고 있는 밤편지는 폐지될 예정이다. 관련 기사 김이나의 밤편지였던 시간대는 둘러보기 탭에서 알 수 있듯이 IDOL RADIO가 원래 방송시간(오전 1시 ~ 2시)을 1시간 앞당겨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20년 9월 25일부로 IDOL RADIO는 시즌 종료를 맞아 휴식기에 들어갔고 그 빈자리는 IDOL 음악 프로그램 IDOL STATION이 채우고 있다.[53] 순수 작사가로서 별밤DJ는 최초[54]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이 시간에 방송되는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 중 역사가 가장 오래 됐다. 1964년 5월 9일 동양방송 라디오 개국일부터 방송됐으니 50년이 훌쩍 넘은 최장수 프로그램. 특히 1980년 11월 30일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동양방송의 마지막 라디오 방송으로 이 프로그램이 방영됐는데 당시 황인용 DJ가 울먹이면서 하던 클로징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1991년부터 1년여 간 잠시 폐지된 적이 있지만, 1992년 가을에 부활해 현재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55] 다만 T-DMB V-Radio방송인 U-KBS MUSIC에선 자체프로를 편성하므로 청취할 수 없다가 개편으로 가능.[22~23시] [23~01시] [56] 이때 윤하가 별밤지기였다. [57] 정작 이문세는 자신이 몇 대 별밤지기인지 기억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