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파
逍遙派
무협소설 《천룡팔부》에 나오는 문파.
김용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게임 김용군협전의 후속작인 무림군협전과 협객풍운전에서 주인공이 입문하는 문파로도 등장한다.
소요파는《천룡팔부》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상당수 인물들의 내용전개와 배경에 관여되는 문파이다. 세 명의 주인공 가운데 단예와 허죽의 무공부터 소요파에서 나온 것이다. 천룡팔부의 몽환적이면서 초현실적인 마치 신선 설화 같은 느낌은 이 소요파에서 나온다. 단예가 무량파의 비무대회에 난입했다가 영취궁 휘하 문파의 침입[1] 에 휩싸여 봉변을 당한다. 간신히 종영의 도움을 받아 살아나 만겁곡으로 가는 길에 무량옥벽에 대한 전설을 우연히 듣는데, 무량옥벽에 신선과 같은 검초를 보여주던 그림자들의 정체가 바로 소요파의 제자들이었다. 그리고 무량옥벽 안에는 과거 무애자와 이추수가 살았던 아지트와 무림의 무공비급을 수집한 서고인 낭환복지 등이 존재했다. 그들이 낭환복지에 수집한 무공은 소림, 곤륜, 청성파를 비롯한 천하 각파의 무공들을 모아두었으나 소림파의 역근경, 개방의 항룡이십팔장, 대리 단씨의 일양지와 육맥신검을 모으지 못했다.[2]
《장자》 『소요유 편』에서 이름을 따온 도가 계통의 문파이며, 조사(창시인)는 소요자(逍遙子)다. 소요자는 일생동안 단 세 명의 제자를 두었다. 이들이 바로 소요파의 2대인 천산동모, 무애자, 이추수로서 소요자의 일신절기를 전수받았다.[3] 천산동모, 무애자, 이추수의 무공은 당대 천룡팔부 시대의 최강급으로, 그 무공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는 소요자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 수준이다. 소요파의 무공은 하나하나가 상당한 도가의 학문적 깊이를 반영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요결에서 장자의 소요유편 내용을 직접 언급하는 북명신공, 주역과 팔괘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능파미보, 불가의 무색무상과 궤를 같이하는 소무상공 등이 그렇다. 작품이 시작하기 오십년 전에 좌자목의 스승이 무량옥벽을 찾아왔다가 벽에 비치는 그림자의 검법을 하나라도 배우고 싶어서 죽을 때까지 계속 쳐다봤을 정도로 소요파 제자들의 무공은 비범하기 이를 데 없었다.[4]
소요파의 조사 소요자는 무공뿐만 아니라 각종 학문과 기예에 재능이 있으면서 외모까지 뛰어난 어린 선남선녀들을 문하로 받았다.[5] 소요 3인의 무공과 학문적 경지를 볼 때 이런 먼치킨들을 셋이나 찾은 소요자가 더 대단하다.
또한 장문인을 선출하는 방식이 항렬이 아니라 가장 무공이 강한 자가 장문을 승계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2대 장문은 둘째 제자인 무애자가 맡게 되었으며, 성품이 포악하기 짝이 없는 천산동모와 이추수도 순순히 승복했다. 무애자는 소성하와 정춘추 2명의 제자를 두었다. 소성하는 자질은 뛰어났으나 무애자가 금기서화, 의복성상, 공예잡학, 무천종식 등 갖가지 학문에 정통해 있어 사부의 뜻과 본인의 취향에 따라 무공 못지 않게 이런 학문들에 힘을 쓴다. 무공 외의 학문 성취는 스승만 못해도 뛰어난 경지였지만, 전대 사조만큼의 자질은 못 되어 무공까지 대성하지 못했다. 정춘추는 일찌감치 자신의 자질이 갖가지 학문까지 익힐 수 없다는 걸 실감했다. 이에 학문을 익히기 어렵다는 핑계를 대며 무공에만 전념하여 무공으로는 소성하를 훨씬 앞서게 된다.[6]
그런데 무애자가 3대 장문인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무공 뿐 아니라 다른 학문의 진경 또한 반영한다고 했다. 이에 장문을 이어받지 못할 것이 뻔한 정춘추는 무애자를 암습하여 절벽에서 떨어뜨리고 소성하마저 죽이려고 한다.[7] 소성하는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정춘추와 약조를 맺어 평생 입을 봉하고 칩거에 들어간다. 소성하는 원래 함곡팔우라는 제자 8인을 두었으나 이들까지 모두 파문시킨 후 새로 농아문이라는 문파를 창설해서 농아인들을 제자로 받아들인다. 원래 제자들인 함곡팔우는 소성하가 익힌 의복성상 금기서화를 비롯한 학문 중에 한 가지만을 이어받은 제자들이다. 그럼에도 해당 학문에서 천하제일로 명성을 알리고 있다. 다섯째 제자인 염왕적 설모화는 무림 제일의 명의로, 무림인들이 치료를 의뢰할 때마다 의뢰자 본인의 무공을 전수해야 한다는 규칙을 내세우고 있다.[8]
천산동모는 무애자와 사랑을 결국 이루지 못하여 세외로 떠나버린다. 영취궁 구천구부를 세워 상처 많은 여인들을 받아들여 일대 세력을 이루었고, 36동 72도주로 대표되는 세외 무림을 일통하였다. 천산동모의 성질이 워낙 포악해서 제자는 일절 없었으며 그저 노예들만 존재했다.(...)[9]
이추수는 서하국으로 떠나 황후로 봉해졌고, 작중에서는 황태비가 되었다. 서하 일품당을 만들어 고수들을 양성해 수하로 부리며 그녀가 키운 제자는 역시 없어보인다. 결국 3인의 제자 농사는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였으나 허죽이 이들 3인의 내공을 비롯한 진전을 이으며 영취궁에서 명맥을 이어간다.
소요파는 워낙 은밀하게 활동해서 작중 내에서 이름과 무공이라도 아는 인물은 극히 드물며 특히 중원 무림에서 활동하지 않았다. 사부인 소요자부터 신수판의 내용으로 보면, 중원에서 별로 활동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10] 소요 3인 모두 중원이 아닌 주로 세외에서 활동했다. 천산동모와 이추수는 중원 못지 않은 세외 세력을 형성했으나 모용복 같은 견문 넓은 고수마저 천산동모의 이름조차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활동했다.[11] 이추수는 당연히 서하국 황태비니 무림에 나설 리가 없으며, 무애자는 아예 죽은 사람이 되었었다. 무림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정춘추도 성수파를 만들어 주로 세외에 박혀 중원에 나오는 일은 드물어 해악이 적은 편이었다.[12] 반면 이들도 중원 무림에 대해서는 깊게 알지 못하였다. 천산동모는 소림사와 중원 무림 정세를 잘 몰랐으며 스스로 명문 정종이 아닌 세외 무림인으로 칭했다. 모용복에게 구출받았을 때, 누구인지 모르지만 사량발천근이 대단하다 칭찬했었다. 무애자는 소봉에 대해 '''근래에 나타난 대단한 무공을 가진 자''' 로 알고 있었다.
이는 소요파의 주요 규칙인 '''외부인이 문파의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죽여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규칙과 맞물러 신비한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외부인 중에 무명승과 구마지가 소요파에 대해 알고 있었다. 신수판에서는 모용세가 사람들도 정춘추와 인척 관계로 설정된 까닭에 소요파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변경된다.
작중에서 소요파 2대의 뒤끝은 모두 좋지 못했다. 무애자는 하반신을 크게 다쳐 앉은뱅이가 되었고[13] , 정춘추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진롱바둑을 열어 바둑을 깬 허죽에게 70년 동안 쌓은 북명신공의 내력을 격체전력 후 정춘추를 죽여달라는 부탁을 한 뒤 사망한다.
사자매들인 천산동모와 이추수는 어린 시절부터 같이 무공과 학문을 익히며 매우 사이가 좋았지만, 동모와 이추수 모두 장성함에 따라 잘 생긴 무애자에게 깊은 사랑을 느껴 그를 차지하기 위해 골몰했다. 천산동모와 이추수는 서로 연적이 되어 무애자로부터 상대를 떼어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추수는 천산동모의 연공을 방해해 주화입마시켜 영원히 어린아이의 체격으로 만든다. 천산동모는 보복으로 이추수의 얼굴을 칼로 그어 추한 얼굴을 만들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둘 다 실연을 당했으며[14] 무애자가 죽고 나서도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는 자신이라고 주장하며 혈투를 벌였다. 결국 서로 동귀어진하여 죽기 직전에 무애자가 사랑한 여자가 사실 이추수의 여동생임을 알아채리며 둘 다 허무하게 사망한다.
작중내의 모든 은원이 해소된 후 3대 장문은 허죽이 맡게 되고, 사백인 천산동모의 뒤를 이어 영취궁주가 된다. 무공적인 면에서 소요 3인의 내공을 격체전력으로 받았으며 나머지는 영취궁과 서하국에 남겨진 소요파 비급으로 수련했다. 소성하의 제자들인 함곡팔우 또한 일단 소요파 소속이긴 하지만 그 경지는 민망한 수준이다.[15]
워낙 은밀하게 활동하는 문파에 전수자인 허죽의 성격을 볼 때 3대에서 끝나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의외로 300년이 넘은 후대의 소오강호에서 임아행에 의해 언급되며, 임아행은 북명신공의 열화판인 흡성대법을 익혔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
구마지도 소무상공을 익혔는데, 소요파가 외부인이 문파 이름을 듣기만 해도 죽여야 한다는 기밀이 철저한 문파인데 어떻게 배운 건지는 구판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신수판에서는 작중 초반 구마지가 단예를 잡아오면서 만타산장에 들렀다가 단예를 놓치고, 어떻게든 모용박의 무공비급을 보려다가 왕부인의 집까지 가게 된다. 그곳에서 정춘추가 가지고 있는 소무상공 비급 중 한권을 제외한 나머지를 훔쳐 배워 수련하게 된 것이다.
소요파는 무엇보다 내공에서 사기적인 심법 3가지를 보유하고 있다.
전설 속의 반로환동을 실현하며 소요파의 불로불사 핵심인 천장지구불로장춘공[16] , 상대의 내공을 훔쳐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으며''' 자체 내공 심법마저 최고급인 북명신공, 불가의 무색무상의 경지와 비견되며 어떤 무공이든 속성 연마가 가능한 소무상공이 3대 신공이다. 3대 신공이 하나하나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사기이자 우둔한 자도 최절정 고수로 단시간 내에 만들어준다. 이 3대 신공을 한몸에 갖춘 소요자의 경지는 이해하기 힘든 수준.
다른 무공으로 경신술이자 최강의 회피기법인 능파미보, 권각술로는 천산육양장과 이를 응용해 천산동모가 만든 '''생사부''', 3로의 장법과 3로의 금나법으로 이루어진 천산절매수(天山折梅手)[17] , 장력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백홍장력(白虹掌力), 서하 수도인 흥경부의 구석구석까지 의사전달이 되며 소요파의 내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음공 전음수혼대법(傳音搜魂大法) 등이 있다. 소요파의 고유 검술 또한 천산동모와 이추수가 적극적으로 구사했던 것을 볼 때 존재한다.
이들 소요파 무공 가운데 북명신공은 300년 후의 시대인 《소오강호》에서 흡성대법의 연원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언급된다.[18]
단 이렇게 무공 하나하나가 사기적인 만큼 소요파의 내공심법은 다른 명문 정파 무공과는 크게 달라서, 내공 운행법이 다른 문파의 무공과 정반대이다. 애초에 중원 무림과 거리가 있는 문파지만, 이런 면은 약간 사파스러운 느낌도 난다. 그 때문에 일반 무림인들이 다른 일반적인 무공과 병행해서 연마하면 내공의 흐름이 어지럽혀져 주화입마에 달하는 위험성이 강하다고 한다. 소요파 무공을 수련할 때 최대 난관인 셈. 하지만 단예가 처음 소요파의 무공을 접할 때는 아는 무공이 하나도 없어서(...) 백지 상태에서 배우는 꼴이라 별 탈이 없었다. 허죽 같은 경우는 소림사에서 무공, 내공을 배웠지만 깊이가 얕아서 도리어 무애자가 작업하기에 수월했다. 아예 무애자한테 소림사 무공을 싹 포맷당하고 강제로 소요파 내공과 무공을 주입당하며 고수가 된다. 반면 구마지는 불완전한 소무상공을 고강한 무공과 해박한 지식으로 보강해가며 익혀 한층 더 강해졌지만 소림72절기와 융화를 실패하고 주화입마를 당하였다.
더욱이 3대 신공으로 대표되는 소요파의 상승 무공을 익힌 자는 무공에 함유된 특유의 내력의 성질 덕분에 천수를 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늙지 않는 몸을 갖게 된다. 1대 제자인 무애자를 비롯한 3명의 소요파 고수들은 모두 90여세에 달하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30~40대에서 심지어 어린아이의 모습까지 젊은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공을 넘어 도가의 양생술과 선술에 가까운 것이 소요파의 무공이다. 다만 내공이 심맥과 직결되어 있어 만약 내력을 제어하지 못하면 팔다리와 온몸을 이루는 뼈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충돌하는 탓에 배출이 되지 못하는데 그 과정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내공을 모두 소모해버리면 원래 나이대로 노화되고 나서 단시간 내에 사망한다.
구판에서 소요 3인의 사부로 소개된 소요자가 어떻게 불로불사의 비결을 얻었는지 추적하는 내용이 신수판에서 추가되었다. 토번과 대리국 사이의 고산지대의 어느 동굴은 들어간 자들은 불로불사를 얻어 젊음을 유지하게 되지만 속세로 나오는 순간 순식간에 늙어 죽었다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토착 부족민의 말로는 소요자라는 사람이 이 동굴에서 불로불사의 비결을 얻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하였다. 아마 동굴에서 힘을 얻은 소요자가 훗날 소요파를 창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단예와 왕어언 그리고 대리국 군대는 동굴에 접근하려 시도했으나 워낙 고산지대에 산세가 험해서 결국 동굴로 진입하는데 실패하고, 대신 무량옥동으로 다시 가서 불로불사의 비결을 얻고자 하였으나 허사였다.
무협소설 《천룡팔부》에 나오는 문파.
김용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게임 김용군협전의 후속작인 무림군협전과 협객풍운전에서 주인공이 입문하는 문파로도 등장한다.
1. 설명
소요파는《천룡팔부》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상당수 인물들의 내용전개와 배경에 관여되는 문파이다. 세 명의 주인공 가운데 단예와 허죽의 무공부터 소요파에서 나온 것이다. 천룡팔부의 몽환적이면서 초현실적인 마치 신선 설화 같은 느낌은 이 소요파에서 나온다. 단예가 무량파의 비무대회에 난입했다가 영취궁 휘하 문파의 침입[1] 에 휩싸여 봉변을 당한다. 간신히 종영의 도움을 받아 살아나 만겁곡으로 가는 길에 무량옥벽에 대한 전설을 우연히 듣는데, 무량옥벽에 신선과 같은 검초를 보여주던 그림자들의 정체가 바로 소요파의 제자들이었다. 그리고 무량옥벽 안에는 과거 무애자와 이추수가 살았던 아지트와 무림의 무공비급을 수집한 서고인 낭환복지 등이 존재했다. 그들이 낭환복지에 수집한 무공은 소림, 곤륜, 청성파를 비롯한 천하 각파의 무공들을 모아두었으나 소림파의 역근경, 개방의 항룡이십팔장, 대리 단씨의 일양지와 육맥신검을 모으지 못했다.[2]
《장자》 『소요유 편』에서 이름을 따온 도가 계통의 문파이며, 조사(창시인)는 소요자(逍遙子)다. 소요자는 일생동안 단 세 명의 제자를 두었다. 이들이 바로 소요파의 2대인 천산동모, 무애자, 이추수로서 소요자의 일신절기를 전수받았다.[3] 천산동모, 무애자, 이추수의 무공은 당대 천룡팔부 시대의 최강급으로, 그 무공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는 소요자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 수준이다. 소요파의 무공은 하나하나가 상당한 도가의 학문적 깊이를 반영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요결에서 장자의 소요유편 내용을 직접 언급하는 북명신공, 주역과 팔괘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능파미보, 불가의 무색무상과 궤를 같이하는 소무상공 등이 그렇다. 작품이 시작하기 오십년 전에 좌자목의 스승이 무량옥벽을 찾아왔다가 벽에 비치는 그림자의 검법을 하나라도 배우고 싶어서 죽을 때까지 계속 쳐다봤을 정도로 소요파 제자들의 무공은 비범하기 이를 데 없었다.[4]
소요파의 조사 소요자는 무공뿐만 아니라 각종 학문과 기예에 재능이 있으면서 외모까지 뛰어난 어린 선남선녀들을 문하로 받았다.[5] 소요 3인의 무공과 학문적 경지를 볼 때 이런 먼치킨들을 셋이나 찾은 소요자가 더 대단하다.
또한 장문인을 선출하는 방식이 항렬이 아니라 가장 무공이 강한 자가 장문을 승계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2대 장문은 둘째 제자인 무애자가 맡게 되었으며, 성품이 포악하기 짝이 없는 천산동모와 이추수도 순순히 승복했다. 무애자는 소성하와 정춘추 2명의 제자를 두었다. 소성하는 자질은 뛰어났으나 무애자가 금기서화, 의복성상, 공예잡학, 무천종식 등 갖가지 학문에 정통해 있어 사부의 뜻과 본인의 취향에 따라 무공 못지 않게 이런 학문들에 힘을 쓴다. 무공 외의 학문 성취는 스승만 못해도 뛰어난 경지였지만, 전대 사조만큼의 자질은 못 되어 무공까지 대성하지 못했다. 정춘추는 일찌감치 자신의 자질이 갖가지 학문까지 익힐 수 없다는 걸 실감했다. 이에 학문을 익히기 어렵다는 핑계를 대며 무공에만 전념하여 무공으로는 소성하를 훨씬 앞서게 된다.[6]
그런데 무애자가 3대 장문인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무공 뿐 아니라 다른 학문의 진경 또한 반영한다고 했다. 이에 장문을 이어받지 못할 것이 뻔한 정춘추는 무애자를 암습하여 절벽에서 떨어뜨리고 소성하마저 죽이려고 한다.[7] 소성하는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정춘추와 약조를 맺어 평생 입을 봉하고 칩거에 들어간다. 소성하는 원래 함곡팔우라는 제자 8인을 두었으나 이들까지 모두 파문시킨 후 새로 농아문이라는 문파를 창설해서 농아인들을 제자로 받아들인다. 원래 제자들인 함곡팔우는 소성하가 익힌 의복성상 금기서화를 비롯한 학문 중에 한 가지만을 이어받은 제자들이다. 그럼에도 해당 학문에서 천하제일로 명성을 알리고 있다. 다섯째 제자인 염왕적 설모화는 무림 제일의 명의로, 무림인들이 치료를 의뢰할 때마다 의뢰자 본인의 무공을 전수해야 한다는 규칙을 내세우고 있다.[8]
천산동모는 무애자와 사랑을 결국 이루지 못하여 세외로 떠나버린다. 영취궁 구천구부를 세워 상처 많은 여인들을 받아들여 일대 세력을 이루었고, 36동 72도주로 대표되는 세외 무림을 일통하였다. 천산동모의 성질이 워낙 포악해서 제자는 일절 없었으며 그저 노예들만 존재했다.(...)[9]
이추수는 서하국으로 떠나 황후로 봉해졌고, 작중에서는 황태비가 되었다. 서하 일품당을 만들어 고수들을 양성해 수하로 부리며 그녀가 키운 제자는 역시 없어보인다. 결국 3인의 제자 농사는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였으나 허죽이 이들 3인의 내공을 비롯한 진전을 이으며 영취궁에서 명맥을 이어간다.
소요파는 워낙 은밀하게 활동해서 작중 내에서 이름과 무공이라도 아는 인물은 극히 드물며 특히 중원 무림에서 활동하지 않았다. 사부인 소요자부터 신수판의 내용으로 보면, 중원에서 별로 활동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10] 소요 3인 모두 중원이 아닌 주로 세외에서 활동했다. 천산동모와 이추수는 중원 못지 않은 세외 세력을 형성했으나 모용복 같은 견문 넓은 고수마저 천산동모의 이름조차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활동했다.[11] 이추수는 당연히 서하국 황태비니 무림에 나설 리가 없으며, 무애자는 아예 죽은 사람이 되었었다. 무림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정춘추도 성수파를 만들어 주로 세외에 박혀 중원에 나오는 일은 드물어 해악이 적은 편이었다.[12] 반면 이들도 중원 무림에 대해서는 깊게 알지 못하였다. 천산동모는 소림사와 중원 무림 정세를 잘 몰랐으며 스스로 명문 정종이 아닌 세외 무림인으로 칭했다. 모용복에게 구출받았을 때, 누구인지 모르지만 사량발천근이 대단하다 칭찬했었다. 무애자는 소봉에 대해 '''근래에 나타난 대단한 무공을 가진 자''' 로 알고 있었다.
이는 소요파의 주요 규칙인 '''외부인이 문파의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죽여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규칙과 맞물러 신비한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외부인 중에 무명승과 구마지가 소요파에 대해 알고 있었다. 신수판에서는 모용세가 사람들도 정춘추와 인척 관계로 설정된 까닭에 소요파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변경된다.
작중에서 소요파 2대의 뒤끝은 모두 좋지 못했다. 무애자는 하반신을 크게 다쳐 앉은뱅이가 되었고[13] , 정춘추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진롱바둑을 열어 바둑을 깬 허죽에게 70년 동안 쌓은 북명신공의 내력을 격체전력 후 정춘추를 죽여달라는 부탁을 한 뒤 사망한다.
사자매들인 천산동모와 이추수는 어린 시절부터 같이 무공과 학문을 익히며 매우 사이가 좋았지만, 동모와 이추수 모두 장성함에 따라 잘 생긴 무애자에게 깊은 사랑을 느껴 그를 차지하기 위해 골몰했다. 천산동모와 이추수는 서로 연적이 되어 무애자로부터 상대를 떼어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추수는 천산동모의 연공을 방해해 주화입마시켜 영원히 어린아이의 체격으로 만든다. 천산동모는 보복으로 이추수의 얼굴을 칼로 그어 추한 얼굴을 만들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둘 다 실연을 당했으며[14] 무애자가 죽고 나서도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는 자신이라고 주장하며 혈투를 벌였다. 결국 서로 동귀어진하여 죽기 직전에 무애자가 사랑한 여자가 사실 이추수의 여동생임을 알아채리며 둘 다 허무하게 사망한다.
작중내의 모든 은원이 해소된 후 3대 장문은 허죽이 맡게 되고, 사백인 천산동모의 뒤를 이어 영취궁주가 된다. 무공적인 면에서 소요 3인의 내공을 격체전력으로 받았으며 나머지는 영취궁과 서하국에 남겨진 소요파 비급으로 수련했다. 소성하의 제자들인 함곡팔우 또한 일단 소요파 소속이긴 하지만 그 경지는 민망한 수준이다.[15]
워낙 은밀하게 활동하는 문파에 전수자인 허죽의 성격을 볼 때 3대에서 끝나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의외로 300년이 넘은 후대의 소오강호에서 임아행에 의해 언급되며, 임아행은 북명신공의 열화판인 흡성대법을 익혔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
구마지도 소무상공을 익혔는데, 소요파가 외부인이 문파 이름을 듣기만 해도 죽여야 한다는 기밀이 철저한 문파인데 어떻게 배운 건지는 구판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신수판에서는 작중 초반 구마지가 단예를 잡아오면서 만타산장에 들렀다가 단예를 놓치고, 어떻게든 모용박의 무공비급을 보려다가 왕부인의 집까지 가게 된다. 그곳에서 정춘추가 가지고 있는 소무상공 비급 중 한권을 제외한 나머지를 훔쳐 배워 수련하게 된 것이다.
2. 소요파의 무공
소요파는 무엇보다 내공에서 사기적인 심법 3가지를 보유하고 있다.
전설 속의 반로환동을 실현하며 소요파의 불로불사 핵심인 천장지구불로장춘공[16] , 상대의 내공을 훔쳐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으며''' 자체 내공 심법마저 최고급인 북명신공, 불가의 무색무상의 경지와 비견되며 어떤 무공이든 속성 연마가 가능한 소무상공이 3대 신공이다. 3대 신공이 하나하나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사기이자 우둔한 자도 최절정 고수로 단시간 내에 만들어준다. 이 3대 신공을 한몸에 갖춘 소요자의 경지는 이해하기 힘든 수준.
다른 무공으로 경신술이자 최강의 회피기법인 능파미보, 권각술로는 천산육양장과 이를 응용해 천산동모가 만든 '''생사부''', 3로의 장법과 3로의 금나법으로 이루어진 천산절매수(天山折梅手)[17] , 장력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백홍장력(白虹掌力), 서하 수도인 흥경부의 구석구석까지 의사전달이 되며 소요파의 내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음공 전음수혼대법(傳音搜魂大法) 등이 있다. 소요파의 고유 검술 또한 천산동모와 이추수가 적극적으로 구사했던 것을 볼 때 존재한다.
이들 소요파 무공 가운데 북명신공은 300년 후의 시대인 《소오강호》에서 흡성대법의 연원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언급된다.[18]
단 이렇게 무공 하나하나가 사기적인 만큼 소요파의 내공심법은 다른 명문 정파 무공과는 크게 달라서, 내공 운행법이 다른 문파의 무공과 정반대이다. 애초에 중원 무림과 거리가 있는 문파지만, 이런 면은 약간 사파스러운 느낌도 난다. 그 때문에 일반 무림인들이 다른 일반적인 무공과 병행해서 연마하면 내공의 흐름이 어지럽혀져 주화입마에 달하는 위험성이 강하다고 한다. 소요파 무공을 수련할 때 최대 난관인 셈. 하지만 단예가 처음 소요파의 무공을 접할 때는 아는 무공이 하나도 없어서(...) 백지 상태에서 배우는 꼴이라 별 탈이 없었다. 허죽 같은 경우는 소림사에서 무공, 내공을 배웠지만 깊이가 얕아서 도리어 무애자가 작업하기에 수월했다. 아예 무애자한테 소림사 무공을 싹 포맷당하고 강제로 소요파 내공과 무공을 주입당하며 고수가 된다. 반면 구마지는 불완전한 소무상공을 고강한 무공과 해박한 지식으로 보강해가며 익혀 한층 더 강해졌지만 소림72절기와 융화를 실패하고 주화입마를 당하였다.
더욱이 3대 신공으로 대표되는 소요파의 상승 무공을 익힌 자는 무공에 함유된 특유의 내력의 성질 덕분에 천수를 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늙지 않는 몸을 갖게 된다. 1대 제자인 무애자를 비롯한 3명의 소요파 고수들은 모두 90여세에 달하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30~40대에서 심지어 어린아이의 모습까지 젊은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공을 넘어 도가의 양생술과 선술에 가까운 것이 소요파의 무공이다. 다만 내공이 심맥과 직결되어 있어 만약 내력을 제어하지 못하면 팔다리와 온몸을 이루는 뼈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충돌하는 탓에 배출이 되지 못하는데 그 과정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내공을 모두 소모해버리면 원래 나이대로 노화되고 나서 단시간 내에 사망한다.
3. 소요자의 정체
구판에서 소요 3인의 사부로 소개된 소요자가 어떻게 불로불사의 비결을 얻었는지 추적하는 내용이 신수판에서 추가되었다. 토번과 대리국 사이의 고산지대의 어느 동굴은 들어간 자들은 불로불사를 얻어 젊음을 유지하게 되지만 속세로 나오는 순간 순식간에 늙어 죽었다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토착 부족민의 말로는 소요자라는 사람이 이 동굴에서 불로불사의 비결을 얻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하였다. 아마 동굴에서 힘을 얻은 소요자가 훗날 소요파를 창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단예와 왕어언 그리고 대리국 군대는 동굴에 접근하려 시도했으나 워낙 고산지대에 산세가 험해서 결국 동굴로 진입하는데 실패하고, 대신 무량옥동으로 다시 가서 불로불사의 비결을 얻고자 하였으나 허사였다.
[1] 영취궁과 무량파를 굴복시킨 방회 모두 소요파의 일원인 천산동모의 부하들이었다.[2] 이외에 구마지의 화염도(전승 방식이 구두라서 비급을 남길 수 없다)나 모용가의 두전성이도 모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3] 기본 무공과 권각무기술은 공통적으로 배웠으나 내공 심법은 천산동모가 천장지구불로장춘공을, 무애자가 북명신공을, 이추수가 소무상공을 각기 나뉘어 전수받았다.[4] 소요파의 검법은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지만, 기초식인 천산절매수를 기반으로 신속하고 빠른 검술로 보인다. 천산동모와 이추수는 검을 적극적으로 썼으며 동모는 검으로 이추수의 얼굴을 망가뜨리고, 이추수는 천산동모의 손가락과 다리를 비수로 절단했다.[5] 소요파의 제자들은 모두 외모가 훌륭했다. 천산동모와 이추수는 말할 것 없고, 무애자 또한 대단한 미남이었다. 심지어는 정춘추와 소성하조차 옥골선풍의 외모로, 정춘추는 처음 본 사람들이 신선이라 생각해서 호감을 가질 정도였다. 진롱바둑 때문에 얼떨결에 장문인이 된 허죽만이 대놓고 추남이다. 무애자는 대놓고 허죽의 외모를 타박했으며 동모 역시 마찬가지. 이추수는 허죽의 외모를 못 생겼다고 비웃었다.(잘생긴 남자를 워낙 대놓고 밝혔지만)[6] 소성하의 증언으로는 몰래 소요파의 무공만 아니라 타 문파의 사악한 무공을 익혔다고 나온다.[7] 개정판에서는 이추수가 내연 관계를 맺은 정춘추와 공모하여 무애자를 암습하여 빈사 상태로 만든다.[8] 무늬만 파문이지 함곡팔우는 끝까지 소성하의 충성스러운 제자로 남았다. 설모화가 무공을 수집하는 이유 역시 정춘추를 꺾기 위해서였다. 허나 이들은 한 가지만 집중했지만 사부인 소성하보다 해당 학문에서 떨어지고, 무공은 말할 것 없이 정춘추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해서 성수파에게 사로잡힌다. 스승인 소성하는 무애자의 발끝에 못 미치며 정춘추에게 전혀 상대가 못되 죽임을 당한다. 결국 소성하, 정춘추를 비롯한 후대는 소요파의 상승 무공을 전혀 전수받지 못하고 허죽이 명맥을 잇는다.[9] 물론 동모가 조금이라도 가르친 영취궁 여인들의 실력은 상당해서 오파파는 소림사 방장인 현자도 감탄하게 했고, 영취궁 여인들을 본 소림 승려들은 결코 약한 실력이 아니다라 생각했다.[10] 후술될 소요자가 얻었다는 불로불사의 전설은 토번과 대리 사이의 험준한 고산지대, 아마 곤륜산맥이나 히말라야 인근의 고산지대가 배경이다.[11] 천산동모는 수하인 36동 72도주도 그녀의 외모를 모를 정도로 철저히 은신하며 다녔다. 설령 얼굴을 보려고 시도하면 악랄하게 입을 막아버렸다.[12] 실제 성수해(星宿海)의 위치는 곤륜산 남족의 청해성 청해호 인근 혹은 곤륜산 남쪽의 티베트 고원에서 호수들이 별처럼 모여 있는 지대 중 가장 높은 지대로 추정된다. 황하의 발원지로 지목된다. 신수판에서 강남 소주의 만타산장에 딸인 왕부인을 보려 자주 나오기는 했지만 은밀하게 왕래했다.[13] 허죽이 소성하가 지키는 오두막 내부에 들어가자 한 괴인이 벽에 매달려 다닌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하반신을 못 쓰는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거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성하에 의지하여 지냈다.[14] 심지어 원래부터 무애자가 사랑한 사람은 이추수의 여동생이었다.[15] 헌데 무시무시하게도 그 민망한 수준이 제자마다 차이가 있지만, 소림사 방장과 사형제이자 최고 주력 고수들인 현자 항렬 고승들과 비슷하거나 아래 수준이다. 총변선생 소성하는 소림사 현자 항렬 중 상위 클래스인 현자, 현난과 대적할 무공을 가지고 있다. 다만 정춘추라는 대적을 상대하기 크게 역부족일 뿐.[16] 판본별로 이름이 자주 바뀌었다. 《천룡팔부》 초판에서는 천상지하유아독존공(天上地下唯我獨尊功), 2판에서는 팔황육합유아독존공(八荒六合唯我獨尊功). 3판에서는 천장지구불로장춘공이 되었고, 한국에는 주로 2판의 명칭으로 알려졌다.[17] 천산동모가 익힌 소요파가 자랑하는 절기 중 하나다. 제1로 장법의 구결은 한 구절이 7글자로, 총 12구절의 84자 글자다. 구결을 외우는 것은 사실 진기를 조절하는 요령이다. 천산절매수 자체는 비록 6로 뿐이나, 소요파 무학의 정수 자체가 담겨져 있어서 장법과 금나수 안에 검법과 도법, 편법, 창법, 조법, 부법 등등 제반 무기들의 절초가 함축되어 있어서 초식 자체가 절묘하면서 변화무쌍한 편이다. 그렇기에, 천산동모가 허죽에게 말하기를 죽을 때까지 완벽하게 배우지는 못하겠으나, 장차 내공이 점점 고강해지고 견식이 쌓이게 된다면 '''천하에 존재하는 그 어떠한 무공 초식도 이 6로의 절매수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게 될 거라고 한다.'''[18] 소오강호 신수판에서는 의외로 단예가 북명신공을 후대에 전수시켰다고 나온다. 원래 단예는 북명신공을 사악하다 여겨 폐기하려다 소요파 선배의 유고를 읽고 마음을 돌린다. 무공은 쓰는 자의 심성에 따라 달라진다 생각하여 후대에 북명신공을 물려준다. 하지만 단지흥은 이러면 어떻게 되는지 의심스럽다. 다만 후대에 전수가 제대로 안 된 탓인지 치명적 결함이 있는 흡성대법으로 변모했으며 소오강호에서는 거의 명맥이 끊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