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1980)

 

'''소이'''
'''이름'''
소이
'''본명'''
김소연
'''출생'''
1980년 11월 24일 (43세)
[image] 영국령 홍콩
'''국적'''
대한민국[image][1]
'''학력'''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 학사
고려대학교 미디어대학원 석사
'''가족'''
부모님[2], 언니 해이, 형부 조규찬, 6촌동생 폴킴
'''데뷔'''
1994년[3]
'''소속사'''
디엔브라더스
'''소속그룹'''
라즈베리필드
'''포지션'''
리더, 메인보컬
'''SNS'''

1. 소개
2. 라즈베리필드
3. 여담
4. 관련 문서


1. 소개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 티티마 활동 당시 포지션은 리더, 비쥬얼 담당, 예능 담당, 해외파.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홍콩에서 태어나고 미국, 대만, 중국, 홍콩 등 여러 나라에서 성장했으며 가수가 되기 위해 18살 때 귀국하였다. 때문에 외국어 구사 능력이 당시 아이돌들 중 최고급으로 영어중국어를 유창하게 한다. 그 탓에 Arirang TV의 개국 후 아리랑 TV의 VJ 등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했다. #
한국인인데 중국어를 쓰는 나라에 살면서 모든 수업과 대화는 영어로 하는 영국 국제학교를 다녔다.[4] 어린 나이에 본인이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영국인인지, 미국인인지도 모르고 그냥 환경에 적응했다고 한다. 정체성 혼란을 겪었으며 대한민국을 모국으로 여기고 가장 사랑하지만 때로는 정서적인 이질감이나 괴리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현재는 본인이 노마드(유목민, 세계인)라고 생각한다고 하였으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동시에 어디에도 속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인의 정체성을 말하였다.
성장기 시절에 여러 문화를 경험하며 자란 TCK이다.[5]
2002년 티티마가 해체되고, 2004년 방송된 MBC 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를 통해 연기를 시작한다.
티티마 데뷔 이전엔 S.E.S.의 멤버로 데뷔를 준비했었으나, 하나만 해도 고되고 벅찬 대학 입시 준비와 연습생 생활을 병행하다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원래 이수만과 프로듀서가 노래 잘하기로 소문났던 소이의 친언니를 찾으러 왔다가 친언니가 당시 숫기가 없어 동생을 내밀었고 관계자들이 소이를 오디션 한 뒤 마음에 들어해서 한국에 들어와 연습을 시작했다고 한다.
당초 S.E.S.는 이수만 대표가 4인조로 기획하고 있었고, SM의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기획된 팀이었기에 그 중 소이는 중국어 담당이었다. 그러나 대학 입시 준비로 인해 가수 준비 병행이 힘들다고 느낀 소이가 한달 여 정도 연습하다가 결국 그만두게 되고 3인조로 데뷔하게 된 것.[6] 2007년 야채파 멤버들과 절친노트에 출연했을 당시 우스갯소리로 "짤릴 거 같아서 제가 먼저 나왔어요"라고 언급했지만 농담조로 말한거고 원래는 '''유력한 S.E.S. 데뷔조 였다.'''
2017년 S.E.S.가 재결합하면서 촬영한 리얼리티를 보면 이수만이 원래 4인조로 기획될뻔한 일화를 언급하는데 이때 유진이 "그때 소이를 멤버로 많이 얘기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소이가 그만둘 당시에도 회사 관계자가 이제 대학이 중요한 시대는 지날 것이라며 말렸었다고.
이후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와 미디어대학원을 거쳤고, 단편영화 감독 등의 이력을 가지며 현재는 인디 밴드 라즈베리 필드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7] 2015년 초에는 고대신문과도 인터뷰를 한 바 있다.

2. 라즈베리필드


밴드명칭의 유래는 비틀즈의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Strawberry Fields Forever)"라는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 "라즈베리 필드(Raspberry field)"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소이는 딸기처럼 달콤하기만 한 세상보다는 산딸기처럼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양면적인 모습을 노래하며 소통과 위로를 주고받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한다.
2010년대부터는 1인 밴드[8] '''라즈베리필드'''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해에 첫 번째 데뷔싱글 <<토요일 오후에>>를 발표한다.
2013년에 발매한 정규 1집 Sweet & Bitter에 수록 된 Can You는 영어 버전과 한국어 버전 2곡이 수록되었다. 영어 버전에는 엘르가든의 호소미 타케시, 한국어 버전에는 조규찬이 피처링으로 참여하였다.

3. 여담


  • 언니 해이연세대학교 불문과 출신이며 자매가 서로 라이벌 학교를 다닌 셈.
  • 유진, , 간미연, 박지윤 등과 함께 '야채파'라는 모임에 속해있다.(야채파라는 이름은 각자가 야채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우로 전향한 현재는 공효진, 정려원, 손담비, 한예슬, 심은진 등과도 돈독하게 지내는 사이로 알려져 있으며 티티마의 멤버들과도 아직까지 서로 막역하게 지내는것으로 알려졌다.
  • 뛰어난 어학 능력 덕분에 종종 유명 외국 배우들의 인터뷰어로 활동할 때도 있다.
  • 생일이 같은 배우 김꽃비와 친해 생일 때가 되면 함께 파티를 열어 주변 지인들을 초대하기도 한다.(파티를 열 때마다 컨셉을 정하는데, 어글리 스웨터 파티를 열기도 했다.)
  • 2016년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 '프랑스 영화처럼'에서 워킹 데드에 출연해 유명한 스티븐 연과 함께 남녀주인공을 연기했다.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36차 경연에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해 참 외롭다와 같이 하울#s-6&J.ae의 'Perhaps Love'를 불렀으며, 이어 자우림의 'hey hey hey'를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참가 계기는 형부나 언니 등 집안에 음악가들이 많아서 자신감을 잃었지만 열심히 하면 재능이 없어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 2017년 전주 국제 영화제 경쟁작 부문에 출품된 영화 '폭력의 씨앗'에서 연기했으며, 해당 영화는 영화제에서 대상과 CGV 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을 수상했다.

4. 관련 문서


[1] 대한민국은 1998년 이전 출생자까지 부계주의 국적법을 적용하여 아버지가 한국 국적이면 출생국가와 상관없이 한국 국적을 부여했다. 홍콩 출생이지만 홍콩 국적이나 홍콩 영주권은 없다.[2] 19년 10월 6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3] 1999년 아이돌 걸그룹 티티마로 연예계에 데뷔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1994년 VJ로 연예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4] 인터뷰[5] Third Culture Kid (제3문화 아이)의 줄임말[6] 소이가 그만두게 된 뒤, 바다-유진-슈가 데뷔조 연습생으로 남아 있었는데 여전히 SM은 4인조로 데뷔하길 원했고, 이미 세 명이서 돈독하고 트리오(3인조)로 데뷔하길 원했던 S.E.S. 멤버들이 4인조로 데뷔하기를 원치 않아서 결국 3인조로 데뷔하게 됐다는 후문도 있다.[7] 멤버 '장준선'과 2명이 결성한 밴드였으나, 현재는 소이의 1인 밴드이다.[8] 기존 2인 밴드로 시작했으나, 멤버 장준선이 탈퇴하면서 1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