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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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제15대 군주. 송목공(宋穆公)의 아들. 송민공, 송공유, 송환공의 아버지. 송양지인(宋襄之仁)으로 유명한 송양공(宋襄公)의 할아버지. 그는 아버지 송 목공의 유언으로 정나라에서 살게 되었다.
2. 생애
2.1. 탈법적인 즉위
송 상공 10년(기원전 710년), 송나라의 태재(太宰) 화독(華督)이 송상공을 시해하고 그를 맞아들이니 그가 바로 송 장공이다.
2.2. 즉위 후
송 장공 원년(기원전 709년), 화독은 고(郜)나라에서 보낸 큰 솥을 노환공에게 주고 제(齊)나라, 진(陳)나라, 정나라에 예물을 보내고 화독은 송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1]
2.3. 정나라와의 갈등
송 장공 9년(기원전 701년) 봄에 송장공은 제나라, 위(衛)나라, 정나라와 회맹했다. 여름에 정장공이 죽자 제중은 세자 홀을 정백으로 모시니 그가 바로 정소공이다. 정소공의 아우 공자 돌이 송나라 여자 옹씨가 어머니였기 때문에, 송 장공은 정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신으로 온 제족[2] 을 협박해 공자 돌을 세우라고 했다. 제족은 어쩔 수 없어서 공자 돌을 세워줬다. 그가 바로 정여공이다. 정 여공은 자신이 정나라의 백작이 되면 송장공에게 성과 예물을 주기로 약속했던 바가 있었다. 그러나 즉위하고 나서는 입을 쓱 닦았다.
송 장공 10년(기원전 700년) 여름, 노환공이 송나라와 정나라의 강화를 돕기 위해 중재에 나섰다. 가을에 그것을 실행했으나 송 장공은 그것을 역정을 내며 씹었다. 겨울에 구 땅에서 회맹했으나 송 장공은 약속한 물건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화 제의를 거절했다. 노 환공은 정 여공과 함께 송나라를 쳤다.
송 장공 11년(기원전 699년), 송 장공은 약속한 물건을 주지 않는 정나라와 노나라 연합군에 맞서고자 제나라, 위나라, 연나라와 함께 정나라와 싸웠으나 탈탈 털렸다.
송 장공 12년(기원전 698년) 겨울, 송 장공은 그 패배를 보복하기 위해 제나라, 채나라, 위(衛)나라, 진(陳)나라 등 4개 국과 연합해 정나라를 쳐 정나라의 동문에 이르러 그 문을 불사르고 신정성에 들어왔다. 그리고 동쪽 교외를 쳐서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정나라 궁전의 서까래를 약탈하는 굴욕 을 안겨주었다.[3] 정나라는 한번의 거한 패배로 말 그대로 영혼까지 탈탈 털린 것이다.
송 장공 13년(기원전 697년) 겨울, 송 장공, 노 환공, 위혜공, 진장공(陳莊公)이 이 땅에서 정나라를 치려 했다. 그러나 실패하여 각기 회군했다.
송 장공 14년(기원전 696년) 정월, 송 장공은 노 환공, 채 환후, 위 혜공과 조나라에서 만나 회맹하여, 함께 정나라를 칠 것을 맹세했다. 4월에 송나라, 노나라, 위나라, 진(陳)나라, 채나라와 함께 정나라를 쳤다.
송 장공 15년(기원전 695년), 송장공이 위나라와 함께 주(邾)나라를 쳤다.
송 장공 19년(기원전 692년) 12월 을유일, 송장공이 죽고 그 아들 자첩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송 민공이다.[4]
[1] 특히 정나라에서는 신세진 것에 대한 화답을 위해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2] 채중과 동일 인물[3] 그 서까래는 송나라의 노문이라는 성문을 장식하는데 썼다고 전해진다.[4] 송 후민공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