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소더버그

 

''' 역대 칸 영화제'''
[image]
'''황금종려상'''
''' 제41회
(1988년) '''

''' 제42회
(1989년) '''

''' 제43회
(1990년) '''
빌레 아우구스트
(정복자 펠레)

'''스티븐 소더버그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데이비드 린치
(광란의 사랑)

'''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image]
'''감독상'''
''' 제72회
(2000년) '''

''' 제73회
(2001년) '''

''' 제74회
(2002년) '''
샘 멘데스
(아메리칸 뷰티)

'''스티븐 소더버그'''
('''트래픽''')

론 하워드
(뷰티풀 마인드)

'''Steven Soderbergh'''
[image]
'''본명'''
스티븐 앤드류 소더버그 (Steven Andrew Soderbergh)
'''국적'''
미국 [image]
'''출생'''
1963년 1월 14일, 미국 조지아 애틀랜타
'''종교'''
무종교(무신론)
'''직업'''
영화감독, 영화 촬영 감독, 시나리오 작가, 프로듀서, 편집자
'''활동'''
1981년 -
'''배우자'''
베스티 브랜틀리 (1989~1994), 1녀
줄스 애스너 (2003~)
1. 개요
2. 생애
3. 연출 작품


1. 개요


미국의 영화 감독.[1]
1990년대 선댄스 영화제 세대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무려 '''26살에 칸 영화제 역대 최연소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세계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인디와 메인을 오가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군을 연출해오고 있으며, 비록 과거에 비해 그 유명세는 많이 죽었지만 할리우드 주류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촬영, 편집, 제작, 연출을 동시에 해내는 인간은 거의 없다.

2. 생애


시작부터 터졌다. 1989년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칸 영화제에서 26살 최연소 나이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2] 현재까지 스티븐 소더버그의 최연소 황금종려상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이 수상은 당시에도 찬반양론이 거세었다. 당시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이던 빔 벤더스 감독과 개인적으로 알던 사이였고 상당한 수작이긴 하지만 신인감독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으로도 충분한 작품을 벤더스가 너무 과하게 점수를 줬다는 의견도 많았다. 게다가 수상 당시 멈블코어[3]로 대표되는 미국 인디영화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시기이기도 했고[4] 십여년 주기로 돌아오는 깐느의 20대 천재 감독 만들기(...)에 제대로 걸린 운좋은 케이스란 의견도 있을 정도였다.
아무튼 수많은 거장들이 평생을 바쳐도 일생 한번 타볼까 말까하는 일을 스물 여섯에 이뤘지만, 아직 자신의 색깔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꼭대기에 올라서 그런지 방황을 많이 했다.[5] 이후 20-30대를 갈팡질팡하며 예술적 허세로 가득한 후속작들을 계속해서 내놓다가[6] 할리우드 영화를 미니멀하고 효율적으로 찍어내는 길로 들어서서 다시 부활한다.
자기 작품 촬영과 편집을 자기가 혼자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촬영이야 자기가 직접 하는 감독들도 더럿 있고 아예 촬영감독 없이 자기가 직접 맡기도 하지만, 상업영화에서 감독이 편집권까지 쥐는 건 정말로 흔치 않다. 대부분은 감독이 촬영을 마친 후에 많이 지쳐서, 아니면 제작사 측에서 감독이 폭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본과 지시에 따라서 편집자에게 편집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소더버그 김독은 워낙에 무자비할 정도로 효율적인 편집으로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라 그런지 제작사 측에서도 편집권을 주는 데에 큰 반감이 없는 듯 하다. 실제로 아무리 애를 써도 러닝타임이 안 깎일 때 소더버그에게 SOS를 타진하는 영화인들이 꽤 많은데, 일례로 스파이크 존즈그녀를 편집하던 당시 도저히 러닝타임이 150분 밑으로 나오질 않아서 스티븐 소더버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90분짜리 컷을 던져줬다는 에피소드가 있다.[7] 참고로 크레딧에는 예명을 사용해서 촬영감독 이름은 피터 앤드류스(아버지 이름), 편집자 이름은 메리 앤 버나드[(어머니 이름)으로 올라온다.
굉장한 다작 감독이다. 1-2년 단위로 영화를 계속 내놓는 스타일. 초창기에도 2-3년 단위로 영화를 내놓을 정도로 2009년부터는 홍상수처럼 1년에 2편 개봉하고 그랬다. 심지어 헝거 게임 세컨드 유닛 감독으로도 뛰기도 했다. 영화제에서도 사랑하는 감독인지라 3대 영화제라 일컬어지는 베를린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 칸 영화제에 모두 초청받은 경력이 있다. 2000년에는 트래픽과 에린 브로코비치로 동시에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결국 감독상은 트래픽으로 수상했다. 더불어 에린 브로코비치는 5100만 달러로 만들어 전세계에서 2억 6천만 달러 흥행을 거둬들였고 트래픽도 4600만 달러로 만들어 2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하며 흥행성,에술성을 가진 감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오션스 일레븐은 8450만 달러로 만들어 전세계에서 4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조지 클루니를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이다. <ER>로 얼굴 반반한 스타가 된 조지 클루니는 <배트맨과 로빈>, <피스메이커>같은 영화사상 최악의 쓰레기들(...)에 출연하다가 할리우드 입봉을 노리던 소더버그와 <조지 클루니의 표적>을 찍으며 인연을 맺었고, <오션스 일레븐>으로 세계적인 섹시 아이콘이 되었다. 뒤이어 조지와 소더버그는 섹션 에이트라는 제작사를 설립하여 할리우드 주류 시스템 안에서 정치적이고 스마트한 영화를 제작하며 윈윈했다. <시리아나>, <솔라리스> 등 조지 클루니가 섹시 스타를 넘어 스마트한 정치적 인물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소더버그의 힘이 크다.
2011년 '앞으로 2작품만 하고 은퇴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후에도 꽤 많은 작품이 나오긴 했지만(…). 2013년에 <사이드 이펙트>를 감독한 뒤 이 영화만 개봉하면 바로 은퇴하겠다고 했고, 이후 <쇼를 사랑한 남자>를 마지막으로 진짜 은퇴한 듯. 은퇴 기자회견에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감독들을 끔찍하게 대우하고 있으며, 상업영화 시스템 안에서 영화 만드는 일에 흥미를 잃었다'고 밝혔다.
은퇴를 발표한 시점인 2013년 샌프란시스코 국제 영화제에서 할리우드 스튜디오 영화 시스템의 현황과 그 안에서 작가주의 영화가 자리할 곳이 점점 적어지는 것에 대해 역설한 영화의 현황 스피치는 굉장히 명연설로 평가 받고있다. 링크(영문)
허나 나중에 '좀 쉬고 싶다는게 정확할지도.'라고 한 걸 보면 진짜 은퇴는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역시나 "은퇴" 기간동안 미국의 프리미엄 영화 채널인 시네맥스와 손을 잡고 신나게 의학 사극 드라마 더 닉을 총 20부작으로 제작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소더버그는 은퇴는 커녕 상업영화판에서 못하던 짓들을 아주 신나게 던져 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호평을 받으며 깔끔하게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전반적으로 첨단 기술이나 새로운 영화 제작 방식에 호의적인 감독이라, 디지털 영화 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감독이기도 하다.
2011년에 한 호주 여성과의 혼외정사로 사생아를 낳아 친자확인소송에 휘말려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내와 노력하고 있으며 태어난 딸의 경제적 양육을 위해 최선을 다할 거라고 발표.
그리고 2016년, 마침내 복귀를 발표했다.# 복귀작의 이름은 <로건 럭키>. 이외에도 여러 신작들이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2018년에는 공포영화 <언세인>을 연출했다. 평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376만 달러로 만들어 전세계에서 1400만 달러가 넘는 흥행 성공을 거둬들였다. 역시나 촬영도 직접하였다. 특이하게도 아이폰으로 촬영하였다.
2019년 <높이 나는 새>를 세상에 내놓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다. 스포츠 에이전트 소재 영화인데 이 또한 아이폰으로 촬영 하였다.
복귀작이었던 '로건 럭키'와 '언세인'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마케팅에서 벗어나 타깃 관객층을 중심으로한 세부적인 마케팅 전략[8]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 와이드릴리즈되는 영화의 마케팅비 부담[9]을 줄이고자 노력했으나 두 영화 모두 기대 이하의 미지근한 흥행성적표[10]를 받게되자 자신의 실험이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이런 일화만 봐도 영화 내외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는 감독임을 알 수 있다.
화려한 것도 잘 찍던 감독이었으나 <컨테이젼> 이후의 작품들은 모두 차가운 디지털 질감과 극도로 절제된 카메라 워크와 편집, 온갖 헐리웃 슈퍼스타들을 출연시켜놓곤 감정없는 사물처럼 연출하는 등 소더버그 특유의 미니멀한 스타일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본인은 이런 자신의 스타일에 굉장히 만족스러워 하는 듯.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이후를 대비하는 미국감독조합(DGA)의 특별 위원회 수장이 되었다고 한다. # 번역 과학적 고증과 시뮬레이션을 토대로 판데믹 속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높게 평가받은 컨테이젼의 감독이, 할리우드의 영화감독들이 일을 재개할 때에 맞춰서 취해야 할 안전 대책의 총책임자가 된 것. 이 연장선상에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연출자로 맡게되었다.

3. 연출 작품


  • 1989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 1991년 카프카
  • 1993년 언덕의 왕
  • 1995년 지하세계
  • 1996년 그레이 아나토미
  • 1996년 스키조폴리스
  • 1998년 조지 클루니의 표적
  • 1999년 라이미
  • 2000년 에린 브로코비치
  • 2000년 트래픽
  • 2001년 오션스 일레븐
  • 2002년 전면 누드
  • 2002년 솔라리스
  • 2004년 에로스 : 왕가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공동 연출한 단편 옴니버스. 그중 꿈 속의 여인이라는 에피소드를 연출.
  • 2004년 오션스 트웰브
  • 2005년 버블
  • 2006년 굿 저먼
  • 2007년 오션스 써틴
  • 2008년 (체 게바라를 다룬 영화이다)
  • 2009년 걸프렌드 익스피리언스
  • 2009년 인포먼트
  • 2011년 컨테이젼[11]
  • 2011년 헤이와이어
  • 2012년 매직 마이크
  • 2013년 사이드 이펙트
  • 2013년 쇼를 사랑한 남자
  • 2014~2015년 더 닉(제작)[12]
  • 2017년 로건 럭키
  • 2018년 언세인 - 아이폰으로 촬영
  • 2018년 오션스 에이트(제작)
  • 2019년 높이 나는 새 - 아이폰으로 촬영.
  • 2019년 시크릿 세탁소
  • 2020년 렛 뎀 올 토크(Let Them All Talk)
  • 미정 노 서든 무브
  • 미정 키미
[1] 소더버그(Soderbergh)라는 성 때문에 유대계로 오해 받지만 스웨덴, 아일랜드, 이탈리아계이며 감독 본인은 무신론자. Soderberg"h"는 스웨덴계이고(Söderberg, 쇠데르베리란 성씨가 영어식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유대인들의 성에 자주 붙는 -버그는 -Berg. 그마저도 이 버그를 성으로 쓴다고 100% 유태인은 아니다.[2] 종전 최연소 감독은 1966년 프랑스 영화 남과 여 감독인 클로드 를루슈. 29살 나이로 이 상을 받았다.[3]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떼로 나와 여기저기 걸어다니며 주절주절 대화를 늘어놓는 식의 영화.[4] 다만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가 칸 경쟁에 초청된 첫 미국 독립 영화는 아니다. 최초로 초청된 경쟁작은 1982년에 공개된 수잔 세이들만의 파편.[5] 공교롭게도 당시 수상 소감이 반농담식의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 였다...[6] 카프카나 스키조폴리스는 호불호가 갈리는 컬트 영화가 되었고, 비교적 솔직담백하게 만든 킹 오브 더 힐이나 독백 연기자로 유명한 스펄딩 그레이를 기용해 만든 그레이스 아나토미는 좋은 평가를 받는다. 스펄딩 그레이 배우하고는 이후 친하게 지냈는지 사후 And Everything Is Going Fine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헌정하기도 했다.[7] 이 편집본이 그대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이걸 기반으로 러닝타임을 120분대로 깎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한다.[8] 로건 럭키 때는 TV 광고의 비중을 줄이고, 디지털 홍보에 치중했으며 언세인 때는 반대로 했다고 한다.[9]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통상적인 와이드릴리즈 작품의 마케팅비는 최소 3,000만 달러 이상이 소요된다고 한다. 로건 럭키와 언세인은 마케팅비에 각각 이들의 2/3에 해당하는 2,000만 달러만 들였다.[10] 로건 럭키일 경우 2,90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북미포함 전세계 흥행 4,800만 달러를 거둬들이며 흥행에서 실패했다.[11] 2015년 대한민국 메르스 유행,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 등을 통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 영화이다. 신종 전염병 유행에 따른 인간의 공포와 사회적 혼란을 매우 실감나게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이다.[12] 이 당시 한 인터뷰가 영화에 싫증을 느껴 드라마계로 떠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