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네 인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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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6년부터 SS 라치오 감독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엔 형에 가려졌으나[3] 감독이 된 후에는 그 그늘을 벗고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차세대 명장으로 손꼽히는 감독이다.
라치오의 정식 감독이 된 후, 라치오의 성적을 꾸준히 상승시켜 18-19 시즌에는 유로파 리그 진출에 성공했고 19-20 시즌에는 리그 4위로 '''라치오를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켰다.'''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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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팀인 피아첸자 유소년 출신으로 1993-94 시즌 피아첸자 1군에서 첫 경기를 소화했다. 이후 1994-95 시즌 카르피 FC를 시작으로, 1995-96 시즌 노바라 칼초, 1996-97 시즌 루메짜네, 1997-98 시즌 브레셀로로 임대를 다니며 하부리그를 전전했고, 1998-99 시즌이 되어서야 원 소속팀 피아첸자로 복귀할 수 있었다. 당시 피아첸자는 세리에 A에서 나름 잘 버티고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었고 하부리그로 임대될때마다 나름 많은 골을 기록한 인자기를 즉시전력으로 판단하고 복귀시킨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세리에 A 초짜인 시모네 인자기는 30경기에 나서 15골을 몰아넣는 대 활약을 펼친다.
2.1. SS 라치오
이러한 활약으로 피아첸자는 11위의 호성적으로 잔류에 성공했고, 인자기의 활약을 지켜본 빅클럽인 SS 라치오에서 인자기를 바로 영입해간다. 당시 SS 라치오에는 칠레 공격수 마르셀로 살라스와 크로아티아 공격수 알렌 보크시치가 버티고 있던 화력이 좋은 팀이었으나 라치오 이적 후에도 그는 나름 로테이션으로 자주 나올 수 있었고 22경기 7골이라는 조커로써 준수한 성적을 올린다. 거기에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라치오의 주전 공격수로 출장하며 11경기 9골이라는 최고의 득점력을 자랑했다. 이 때 생애 처음 이탈리아 대표팀에도 선발된다. 게다가 SS 라치오가 리그와 컵 더블을 달성하면서 선수생활에 있어 인자기는 최고의 시즌을 맞이했다. 특히 2000년 3월 14일 올림피크 마르세유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선 '''1경기 4골'''을 홀로 달성하며 마르코 반 바스텐이 가지고 있던 한경기 최다골 기록 타이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시모네 인자기는 내리막길에 너무 일찍 접어든다. 이후 리그에서 첫 시즌 기록인 7골을 넘긴 적이 없었고, 코파 이탈리아와 대룩컵 대회를 합쳐도 시즌 10골을 달성한 적이 2003-04 시즌 딱 한번에 불과했으니 자연스럽게 주전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2004-05 시즌에는 삼프도리아 공격수 파비오 바짜니와 유럽에선 보기 힘든 '''6개월 선수 맞임대'''를 통해 UC 삼프도리아의 유니폼을 잠시 입기도 했고, 2007-08 시즌에는 당시만 해도 리그 중하위권이던 아탈란타 BC로 다시 한번 임대를 떠나 19경기에 나서지만 그마저도 전부 교체출장에, 1골도 기록하지 못하며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후 라치오로 복귀해 두 시즌을 더 뛰고 2009-10 시즌이 끝나고 34살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통산 프로 기록은 327경기 90골에 세리에 A에선 195경기 43골을 기록했다. 유럽 대회에선 42경기 20골을 잡아내 유럽대회에서 더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3. 국가대표
피아첸자 유소년 시절이던 1993년 이탈리아 19세 이하 대표팀으로 처음 발탁되었고, 1994년까지 U-19 대표팀으로 4경기 1골을 기록했다.
한창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1999-2000 시즌 진행중이던 2000년 3월 디노 조프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이 처음으로 발탁해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3월 29일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스테파노 피오레와 교체되어 들어가 30분가량을 소화했다. 당시 선발로 형인 필리포 인자기가 뛰고 있었기에 형제가 공격진에 같이 뛰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유로 2000 이후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체제에서 2번의 출장을 더 기록해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총 3경기 출장을 기록했고 아쉽게도 득점을 기록하진 못했다.
4. 지도자 경력
2010년 은퇴 직후 10년 넘게 선수로 몸담아온 SS 라치오의 프리마베라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6년간 클럽 유소년을 담당하던 그는 당시 1군 감독 스테파노 피올리의 경질로 인해 공석이 된 1군 감독직의 '''임시 감독'''으로써 선임되어 남은 시즌을 담당하게 되었고, 7경기 4승 3패라는 준수한 성적을 이끌어 2016년 여름 SS 라치오의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본래 클럽이 마르셀로 비엘사를 차기 감독으로 계약한 상황이었지만, '''선임 3일만에''' 비엘사가 감독직을 던지고 나가버려 클럽은 인자기에게 정식 감독제안을 했고, 이를 인자기가 받아들여 1년짜리 계약에 서명했다.
2016-17 시즌 그는 SS 라치오를 리그 5위와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에 올리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고,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클럽을 떠난 상황에서 대체자로 영입한 치로 임모빌레가 그야말로 초대박이 나는 등 초짜 감독 치고 괜찮은 리빌딩까지 이끌어내 성공적인 감독 데뷔 시즌을 치렀다. 이후 2017-18 시즌에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으로 산뜻하게 출발했고, 인터 밀란과 상대전적에서 아깝게 밀린 리그 5위에 UEFA 유로파리그 8강, 코파 이탈리아 4강을 이끌며 라치오를 다시 강팀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호평을 받는다. 2020년까지 계약 연장은 덤이다.
2018-19 시즌 리그는 8위로 부진했지만, 코파 이탈리아 우승으로 다음 시즌 UEFA 유로파리그 조별리그에 진출했고, 2019-20 시즌에는 드디어 리그 4위를 기록해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브레이크 이후 재개된 리그에서 7월 초 1무 4패를 기록해 위기에 빠졌으나 이를 잘 수습하고 챔스 직행 순위를 지켜낸 것은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전까지 리그 '''20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유벤투스의 강력한 우승 대항마로 달려왔었던 시즌이기에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도 또 한번 달성하면서 그래도 타이틀은 하나 건졌다.
특히 인자기 감독은 라치오를 맡은 뒤 그동안 현대축구의 주류에서 밀려나있던 투톱 시스템을 제대로 잘 써먹는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3-5-2 시스템을 주로 활용하며 라치오의 화력을 확 끌어올린 점이 특징이다. 인자기 감독의 전술의 가장 큰 수혜자로 평가받는 치로 임모빌레는 라치오 이적 후 그야말로 세리에 A 최고 수준의 공격수로 우뚝섰고, 2019-20 시즌에는 유러피언 골든슈까지 수상하는 골행진을 벌여 시즌 36골을 기록, 세리에 A 한시즌 최다골 타이기록까지 작성했다. 또한 치로 임모빌레와 같이 영입된 루이스 알베르토는 첫 시즌 적응기를 거친 뒤 이후 인자기 감독의 전술에 제대로 녹아들며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와 같이 킬패스를 뿌려댔고, 라치오의 속도감 있는 역습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자원으로 성장했다. 두 공격적인 중앙 미드필더를 보좌하는 루카스 레이바의 영입도 인자기 감독 아래서 일어난 것으로, 라치오 스포츠디렉터이자 전 팀동료 이글리 타레와의 합도 좋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모네 인자기 감독 아래 SS 라치오는 역전승을 많이 기록하는 팀으로 거듭나며 인자기 감독이 팀 장악력까지 있음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시모네 인자기 감독의 전술을 전통적인 이탈리아의 '''트레콰르티스타'''의 진화형 전술로써 유럽내에서 각광을 받고있다. 선수 영입도 돈 안쓰기로 유명한 클라우디오 로티토 하의 제한된 예산에서 이뤄낸 것으로 선수를 보는 능력도 갖춘 것으로 보인다.
형 필리포 인자기가 AC 밀란과 볼로냐 FC에서 연달아 실패하면서 선수시절 비교당했던 것과는 완전 반대의 감독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4]
2020년 SS 라치오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비수 김민재의 영입전에 뛰어들면서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감독이다.
5. 여담
- 유독 인테르와의 악연이 많다.
- 선수 시절 마지막 시즌 무슨 일이 있더라도 AS 로마의 리그우승은 결코 볼 수 없다는 라치오 홈팬들[5] 이 원정 온 인테르를 응원하고, 심지어 라치오 선수들이 잘하면 야유를 했다. 결국 라치오 선수들은 의욕을 잃어 2:0으로 패배했고 시모네는 그 후 이 당시 너무나도 기분이 나빴다고 회고했다.
- 감독 데뷔 후에는 2018년 한동안 리그 폐막전이자 챔스 진출 결정전이던 인테르전 이후 트라우마가 생긴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라치오는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고 있던 상태에서 믿었던 수비수 스테판 더 프레이가 페널티킥 동점골을 내줬고 이후 분위기가 인테르 쪽으로 흘러가버리다 패해 챔스 진출이 좌절되었다. [6] 게다가 저 더 프레이는 이후 그 인테르로 자유계약으로 가 버렸다. 그리하여 안 좋은 상황이 생기면 인테르전을 언급하곤 한다. "난 지난 시즌 인테르를 압도했던 라치오를 다시 봐서 행복했지만...""저번 시즌을 큰 실망 속에 마감했고 그 때의 아픔은 아직도 여전하다."
- 형 필리포의 인지도가 워낙 높다보니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시모네 인자기를 줄인 심자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5.1. 가족
그 유명한 필리포 인자기의 동생으로 외모도 상당히 닮았다. [7] 허나 선수 시절에는 언제나 형의 그늘에 가려졌다. 본인도 국가대표에 들 정도로 뛰어난 선수이긴 했으나, 형이 너무나 뛰어나서 선수 시절만 하더라도 형의 이름으로 유명한 선수 취급을 받았다. 심지어 선수 시절 플레이 스타일도 형의 하위호환에 가까웠던 바람에 더더욱 형의 그늘에 가려지는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은퇴도 형보다 더 빨리 했으나 그 동안 축구지도자 과정을 착실히 공부해 감독으로 성장하였다. 반면 형은 사실상 갑작스레 감독이 되었으니 당연히 서툴 수밖에. 그래서 AC 밀란을 거하게 말아먹었다는 책임을 지고 경질되었다. 그러나 필리포도 밑에서부터 다시 시작해 볼로냐 F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래서 형제 감독의 세리에 A 대결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 2019년 상반기, 필리포 인자기는 동생의 팀과 자신의 옛 팀 AC 밀란이 함께 챔스에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시모네에게는 아들이 셋 있는데 삼촌인 필리포에게 예쁨을 받는 사진이 상당히 많다. 셋째아들 안드레아 인자기는 2020년 8월 9일 태어나서 열심히 갱신되고 있다.
6. 수상 기록
6.1. 선수
- 노바라 칼초
- 세리에 C2 : 1995-96
- SS 라치오
- 세리에 A : 1999-2000
- 코파 이탈리아 (3) : 1999-2000, 2003-04. 2008-09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2) : 2000, 2009
- UEFA 슈퍼컵 : 1999
6.2. 감독
- SS 라치오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 : 2017, 2019
- 코파 이탈리아 : 2018-19
[1] /inˈtsaːɡi/[2] 중앙 공격수[3] 심지어 포지션, 플레이스타일마저 형과 비슷했다. 실력은 키만 빼면 형의 하위호환.[4] 다만 필리포 인자기도 2019-20 시즌 세리에 B 베네벤토 감독으로 승격을 이뤄내면서 어느 정도 명예회복에 성공하였다.[5] 사실 원인 제공은 로마 팬들이 했다. 2010년 초 로마에 25년만에 눈이 왔는데 이걸 갖고 로마 팬들이 25년 전 로마에 눈이 내렸을 때 라치오가 강등당했던 역사가 반복될지 궁금하다며 라치오를 놀렸다. 그래서 그 해 로마 더비에서는 유독 무기들이 많이 압수됐는데, 심지어 경찰인 척하고 상대팀 팬을 테러하려던 이도 있었다.[6] 사실 골득실만 보면 라치오가 더 좋았지만 세리에는 승점이 같을 시 승자승이다. 라치오는 이전 인테르와의 경기에서 이기지 못했다.[7] 시모네가 키가 더 크고 좀 더 담백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