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로 비엘사

 



''' 마르셀로 비엘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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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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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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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유나이티드 FC'''
'''Leeds United Football Club'''
''' 이름 '''
'''마르셀로 비엘사'''
'''Marcelo Bielsa'''
''' 본명 '''
마르셀로 알베르토 비엘사 칼데라
Marcelo Alberto Bielsa Caldera
''' 출생 '''
1955년 7월 21일 (68세) /
아르헨티나 산타페주 로사리오 [1]
''' 국적 '''
아르헨티나
''' 신체 '''
184cm
''' 직업 '''
축구선수(수비수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뉴웰스 올드 보이스(1975~1977)
인스티투토 ACC(1978~1979)
아르헨티노 데 로사리오(1979~1980)
''' 감독 '''
뉴웰스 올드 보이스(1990~1992)
클루브 아틀라스(1992~1994)
클루브 아메리카(1995~1996)
벨레스 사르스필드(1997~1998)
RCD 에스파뇰(1998)
'''아르헨티나 대표팀(1998~2004)'''
'''칠레 대표팀(2007~2011)'''
아틀레틱 빌바오(2011~2013)
올랭피크 마르세유(2014~2015)
SS 라치오(2016)[2]
LOSC 릴(2017)
'''리즈 유나이티드 FC(2018~ )'''
''' 국가대표 '''
없음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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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373a3c> ''' 별명 '''
미치광이(El Loco)
교수님(El Profesor)


'''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감독 '''
아기레(2001)(2004)바실리(2007)
''' 하계 올림픽 남자 축구 우승 감독 '''
아코노(2000)(2004)바티스타(2008)
1. 개요
2. 축구인 생활
2.1. 감독
2.1.1. 아틀레틱 빌바오
2.1.1.1. 리그
2.1.1.2. 컵대회
2.1.1.3. 전술 스타일
2.1.2. 빌바오를 떠나다
2.1.3. 올랭피크 마르세유
2.1.4. SS 라치오: 3일천하
2.1.5. 릴 OSC
3. 이야깃거리
4. 수상 경력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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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엘사는 고집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절대로 자신이 추구하는 방법을 바꾸지 않을 거예요. 먼저 선수를 섞어가며 자신의 축구에 적합한 선수를 선택하는 방식을 취할 것입니다.”'''

오카다 다케시

아르헨티나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8년부터 리즈 유나이티드 FC 감독을 맡고 있다.
아르헨티나 감독들의 두 계보 중 메노티즘의 적장자로 꼽히며, 남미 최고의 전술가로 불린다. 별명은 '광인'이란 뜻의 'El Loco'다. 그가 처음 감독직을 시작했던 클럽인 아르헨티나의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는 본인들의 홈구장 이름을 마르셀로 비엘사 스타디움이라 부르고 있다.

2. 축구인 생활



2.1. 감독


[image]
그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을 맡았었는데, 2001년에는 올해의 국가대표 감독상을 받으면서 기분 좋게 2002 월드컵에 참가하였으며 또한 지역예선에서도 유례없는 승점 끝에 압도적 1위를 달성했으나 애초에 아르헨티나는 이때 모라토리엄중이라 나라에 돈이 없어서 월드컵 출전을 위한 선수단 이동비용도 지불하지 못해 선수들이 자비로 돈을 모아 참여하는 막장상태였다. 거기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스웨덴,나이지리아라는 죽음의 조에 편성되었으며, 잉글랜드 전에서는 마이클 오언헐리우드 액션에 걸려 데이비드 베컴에게 페널티 킥으로 1골을 먹고 그대로 0-1로 지고 말핬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32년만에 월드컵 1라운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참으로 한심한 기록을 달성하고 만다. 이때 답답한 경기에 벤치에 앉아있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면서 장면으로 상당히 많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대표팀 감독을 이어나가며 2004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하였고, 이어 같은 해에 있었던 아테네 올림픽에선 대표팀에게 금메달을 안긴다. 올림픽 이후 그는 대표팀에서 물러나며 6년간의 장기 집권을 끝낸다.
이후 3년간 휴식기를 가지던 그는 2007년 칠레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다. 그는 2010 FIFA 월드컵에서 칠레를 12년만에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고, 나아가 그는 칠레를 16강에 진출시키며 칠레 국민들의 영웅이 되었다. 그는 칠레 대표팀과 2015년까지 재계약을 맺었지만 이후 축구 협회의 내부사정과 얽혀 갈등을 맺은 끝에 2011년 2월에 대표팀을 떠난다. 이후 2011년 여름, 그는 인테르와 첼시 등 유럽 강호들의 구애를 뿌리치며 스페인의 아틀레틱 빌바오 감독직을 맡게 된다.

2.1.1. 아틀레틱 빌바오



2.1.1.1. 리그

그는 유럽의 여러 빅클럽들, 특히 인테르 밀란에게 많은 구애를 받았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아틀레틱 빌바오로 향한다. 전임 감독이었던 호아킨 카파로스 감독이 좋은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구단 내의 권력 싸움에 의해 경질당했고, 이후 비엘사가 부임하면서 사태가 빠르게 수습되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능력을 반신반의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유럽 무대 경험이 고작 98년도에 잠시 에스파뇰을 지휘했던 것 뿐이었다. 거기다 그의 확고하고 독특한 사상, 특이한 훈련법과 전술 등을 봤을 때 분명 의심의 눈초리를 사는 건 당연한 듯 보였다. 시즌은 시작되었고 첫경기[3] 에서 홈경기임에도 승격팀인 라요 바예카노와 비겼고 이후 리가 5경기 동안 2무 3패를 기록하며 아틀레틱 역사상 최악의 스타트를 기록한다.
최악의 부진을 보였던 아틀레틱은 서서히 비엘사의 방식에 적응해나가면서 무패행진을 달리게 된다. 9월 말까지 리그에서 승리가 없었던 그들은 10월 들어서 바스크 라이벌 레알 소시에다드 원정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리그 첫승을 신고하였고 이후 11월 말 그라나다에게 0:1으로 패하기 전까지 7경기 4승 3무 무패를 기록하는데, 그 중에는 바르셀로나와의 2:2 무승부도 포함되는 등 돌풍을 일으킨다. 그라나다에게 패한 이후 그들은 다시 한번 7경기 무패행진을 기록한다. 하지만 2012년 3월에 들어서 그들은 다시 부진에 빠지며 1승 1무 4패를 기록하며 10위권 밖으로 쳐졌으나, 4월에 들어 3승 1무로 무패를 거두며 4위인 말라가와 4점차인 6위를 기록하며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최종 성적은 4위 말라가에 승점 9점 뒤진 승점 49점으로 10위를 기록 전 시즌 승점 58점 6위보다 부진한 성적이었다

2.1.1.2. 컵대회

2011-12 시즌, 아틀레틱은 UEFA 유로파 리그코파 델 레이에서 역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유로파 리그에선 결승전에 오른 상태이며 상대는 같은 스페인 팀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다. 코파 델 레이에서 역시 결승전에 올랐는데 상대는 FC 바르셀로나다. 그리고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 그들은 좋은 경기력을 펼쳤음에도 결정력 부재로 인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패하고 만다. 하지만 이번 시즌 유로파 리그에서 보여준 그들의 경기력은 찬사를 받을 만 했다.
유로파 리그에서 그들은 여러 강호들을 물리쳤는데,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16강전은 비엘사와 아틀레틱이 스페인을 넘어 전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적인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덕분에 전세계의 많은 이들이 이 경기들을 시청했는데, 아틀레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1,2차전 모두 압승을 거두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준다. 그들은 경기 결과 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압도하였으며, 그들이 올드 트래포드에서 3:2 승리를 거둔 경기는 단연 하이라이트였다. 비엘사의 축구는 영국의 거인마저 때려잡으면서 대회 우승을 노리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절망을 안긴다.[4]

2.1.1.3. 전술 스타일

그는 공격 축구의 신봉자로서 웅크려있기 보다는 강한 전방 압박을 통해 볼을 따내는 것을 선호한다.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개념은 그의 전술에 있어서 핵심으로, 비엘사가 맡은 팀들은 모두 극도로 공격지향적인 움직임을 가져간다. 그는 또한 3-3-3-1을 즐겨 사용하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그는 이 전술로 아르헨티나에게 금메달을 안겼고 칠레를 월드컵 16강으로 이끌었다. 점유율을 지향하는 펩 과르디올라의 쓰리백 시스템과는 다르게, 그의 쓰리백은 점유율보단 빠르고 정확한 패스 연결로 최대한 빠르게 상대 박스까지 도달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종적인 패스를 자주 주문하며, 4인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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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orld Soccer
시즌 초 말라가와의 경기에서 들고 나온 쓰리백. 보통 3-3-1-3이라고 부르는 비엘사가 가장 선호하는 포메이션. 팀은 패배했다.
하지만 공격적인 스타일의 남미와는 다르게, 스타일이 다른 유럽에선 포백 시스템이 성행하고 있었다. 비엘사는 쓰리백과 포백 등의 여러 포메이션을 실험해나갔고, 그 와중에 팀은 시즌 초반까지 무승을 기록하게 된다. 이후 4-2-3-1을 주 포메이션으로 삼으면서 팀은 다시 정상궤도에 올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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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레틱 빌바오의 주 포메이션
비엘사는 이번 시즌들어서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하비 마르티네스를 센터백으로 보직을 변경시키면서 재미를 보고 있다. 향후 스페인 대표팀 내에서 부스케츠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전술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지네딘 지단의 유일한 대항마라는 그 아르헨티나를 갖고도 조별리그 조차 못뚫은 것이다. 나이지리아전은 특유의 공격축구로 나이지리아를 일방적으로 몰아가긴 했는데 잉글랜드는 나이지리아처럼 우직한 팀이 아니라 잔꾀와 속임수로 상대팀을 괴롭히는 영악한 팀이었다.[5] 게다가 스웨덴은 아르헨티나의 극단적인 공격력을 본 게 아니라 허술한 수비력을 보고 선제골을 넣어버렸고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공격력은 많이 무뎌졌다. 이것 때문에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가 바라본 비엘사의 감독으로서의 가치는 생각보다 많이 낮은 편이다.
이처럼 비엘사는 그 천하의 아르헨티나에게 '''최근 40년[6] 동안 유일한 조별리그 탈락'''을 안겨준 장본인이다! 게다가 비엘사 이후의 호세 페케르만, 디에고 마라도나, 알레한드로 사베야 모두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조1위를 찍어줬다. 물론 마라도나는 100% 운빨인데 메시에게 쫄아서 자기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 한국과 월드컵 전통의 동네북 그리스가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비엘사의 안티테제인 사베야는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결승전에 데려다 놓았다.'''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두 감독이 있는데 하나는 조별리그 탈락시켰고 다른 하나는 준우승을 안겨줬다. 누굴 쓸지는 당연한 것이다. 두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2.1.2. 빌바오를 떠나다


2013년 6월, 빌바오는 비엘사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팀의 공격수인 페르난도 요렌테의 불화설로 두번째 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여러 구단들이 관심을 보인다는 소문이 돈 가운데 브라질의 클럽 산투스 행이 유력했으나 산투스 FC와의 계약조건 이견으로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엘사는 장기계약을 원했으나 산투스는 1년 6개월을 제시한 탓이라고 한다.
이리되자 비엘사의 다음 행선지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이 되는게 아니냐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최강희가 사의를 표함에 따라 후임 감독 후보로 거론되는 중. 비엘사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한국 대표팀 감독 물망에 올랐지만 딕 아드보카트에게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장기계약을 선호하는 비엘사의 성향상 한국 축구협회가 그에게 최소 3~4년 이상을 맡길 수 있을 지는 미지수.[7] 게다가 빌바오 감독 시절에서도 나타난 것과 같이 최소한 비엘사가 자신의 팀 컬러대로 선수들이 움직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좀 있기 때문에 냄비근성의 한국 팬들의 아우성과 등쌀을 견딜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특히나 신임 감독은 데뷔하는 시점에 만나는 팀이 브라질과 이탈리아와 경기하면서 비록 졌지만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고 찬사를 받은 일본 국대와 경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최악인 한국과 분위기가 최상인 일본과의 경기에서 질 경우 받을 엄청난 원성도 문제다.
일단 홍명보가 내정되었다는 소식에 비엘사는 물건너 가는 걸로 여겨졌지만, 그가 대표팀 감독을 고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부에서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비엘사를 선임하고 아예 러시아 월드컵까지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정도.
하지만 현실은 그런거 없고, 2014년 5월 3일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와 2년 계약을 체결하며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2.1.3. 올랭피크 마르세유


마르세유에서 리그를 시작하고 두 경기에서 1무 1패를 기록하며 안 좋은 출발을 했으나 8월 24일부터 연승행진을 기록 중이다. 10월 5일 7연승을 구가하며 리그앙 선두를 달리고 있다. 특히 툴루즈에서 반짝했다가 망했다는 비아냥이나 듣던 앙드레 지냑을 살려냈다. 지냑은 10월 5일 현재 리그 9골을 기록 중이다. 13라운드까지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 시즌 6위로 마무리한 클럽을 우승 경쟁을 하는 팀으로 올려놓으며 무시무시한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탁월한 전술가의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중. 14/15 시즌을 4위로 마쳤다.
2015년 8월 8일 자진 사퇴하였다.

2.1.4. SS 라치오: 3일천하


2016년 7월 SS 라치오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복귀했다.
'''그런데 부임 후 이틀 만에 사임했다!''' 7월 6일에 선임돼서, 7월 8일에 사임했다.
디 마르지오의 보도에 따르면, 비엘사는 라치오와 계약을 체결해놓고 로마로 입국하지 않다가 계약 체결 직후 하루가 지날 무렵의 밤에 갑자기 라치오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가 갑자기 라치오 감독직을 거절한 이유는 알 수 없으며 라치오는 고소를 준비한다고 한다.
라치오에겐 참 어처구니 없는 게, 풋볼 이탈리아의 보도에 따르면, 비엘사는 자르델, 아예티, 임모빌레, 지아케리니 같은 라치오의 영입 리스트들을 "자신의 전술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사임했다고 한다. 치로 임모빌레의 경우, 2015-16 시즌 공격진이 극도로 부진했던 라치오가 특히 관심을 보이는 자원이었지만 비엘사는 이를 거절하고 알렉산드르 파투로 선회했다고. 그래놓고 갑자기 감독 안하겠다고 나와 버리다니...
우선은 타타 마르티노의 뒤를 이어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성사된다면 2004년 이후 12년만에 대표팀 감독에 복귀하는 것.
비엘사 측은 7월 5일까지 4명의 선수를 영입을 해 달라고 계약 전에 요청했으나 4명은 커녕 1명도 영입되지 않아서 일을 못 하겠다는 생각에 계약을 파기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라치오 측은 선수 영입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영입 요청을 받은 선수들과 협상 중이었는데 비엘사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의를 받고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주장하며 비엘사를 고소했다.
이러고 나서 아르헨티나 감독이라도 됐으면 모르겠으나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에드가르도 바우사를 감독으로 임명했다.[8]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의 논지에 의하면 알레한드로 사베야가 기껏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비를 안정화 시켜서 철벽수비로 다 만들어 놓았는데 그런 사베야와는 정반 대의 감독인 비엘사를 앉혀서 또 극단적 공격축구로 회귀해 팀의 수비력을 엉망으로 만들 것을 우려해서 비엘사에게 아르헨티나 국대 감독 자리를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비엘사,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이래 장장 32년 동안 아르헨티나가 8강에 못간 두 개의 월드컵 중 하나인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9] 당시의 감독이었다는 점도 비엘사를 불선임한 것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근데 그 조에서 우승도 못해본 코스타리카가 1등 했다
그리고 에드가르도 바우사 감독이 경질되고 후임 감독으로 호르헤 삼파올리가 선임되었다. 삼파올리의 경우는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을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시키는 등 신흥 강호로 만들어준 것으로 실력 인증을 제대로 했다.
결국 라치오는 감독 대행이던 시모네 인자기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후 인자기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결국 비엘사만 손해본 꼴.

2.1.5. 릴 OSC


2017년 5월 23일(한국시간) 릴 OSC에 부임하며 백수신세는 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7년 12월 16일 현재 릴은 18위로 강등권에서 허덕이고 있다.
결국 2017년 12월 16일 릴 감독 자리에서 경질되었다

2.1.6. 리즈 유나이티드


언제나처럼 희망고문만 하다가 2017-18 시즌도 망한 리즈 유나이티드가 2월에 임시감독으로 앉힌 폴 헤킹보텀 감독을 해임한 이후 차기 감독 후보 중 한 명(비엘사, 스티브 브루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마티아스 알메이다)으로 링크되었다. 루머가 한 달 정도 이어지다가 6월 15일에 2년 계약을 맺으면서 리즈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18-19시즌 리즈 유나이티드의 약진에 큰 공을 세우고 있다. 팀 내 다양한 자원들을 폭넓게 사용하고 있으며 90분 내내 강한 움직임과 선수들의 멘탈 관리를 중시하면서 경기력 자체가 작년보다 매우 올라왔다. 2019년 1월 14일 리즈 유나이티드를 1위로 이끌어서 리즈 팬들로부터는 그야말로 팀을 프리미어 리그로 올려줄 구세주로 떠올랐다.
2019년 1월에는 더비와의 경기에 앞서서 더비의 비공개 훈련을 몰래 염탐하다가 들켜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램파드 감독의 항의에 비엘사 감독 측은 구단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경기를 염탐하고 오도록 시켰음을 인정했고, 다른 경기에서도 비공개 훈련을 염탐했음을 인정하였다. 이로 인해 리그 사무국으로부터 20만 파운드의 벌금을 물게 되었다.
그러나 후반기에 경기력이 떨어지면서 연패를 했고, 결국 리그 3위로 마감,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얻는데 그쳤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스파이 게이트로 논란이 된 더비 카운티를 만나게 되었는데, 첫 경기 원정을 1:0으로 이겼으나 2차전 홈경기를 2:4로 패해 골득실차로 밀려 승격은 실패했다.
2019-20 시즌 이번에는 다시 2위를 유지하며 승격 가능성이 높아졌다. 37라운드 1위로 올라섰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리그 중단으로 한때 프리미어 리그가 취소되며 승격이 무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영국 정부와 FA의 강력한 의지로 6월, 프리미어 리그와 EFL 챔피언십이 재개되었고 38라운드에 1위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과 승점 동률, 3위 풀럼 FC과는 승점 7점차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현지 날짜 2020년 7월 17일 44라운드를 기점으로 리그 최소 2위를 확정지으며 리즈 유나이티드를 '''16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 시켰다! 이로써 비엘사 감독의 프리미어 리그 무대 데뷔도 확정되었다. 거기에 7월 18일, 우승 경쟁 중이었던 브렌트포드 FC스토크 시티 FC에게 0:1로 패하면서 '''EFL 챔피언십 우승'''까지 거머쥐는 겹경사를 누렸다.
이후 1년 계약 연장을 하여 20/21 시즌에도 리즈를 지휘하게 되었다. 재밌게도 비엘사 감독의 커리어에서 한 클럽에서 3년차를 맞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구단주와 보드진이 비엘사를 신뢰하고, 비엘사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21 시즌 리그 첫 경기에서는 리버풀에게 4:3으로 패했지만 강력한 화력을 선보였고 이후 2연승을 질주했다. 심지어 4R 맨시티를 홈으로 불러들여 1-1로 승점을 얻어냈다. 하지만 이후 5R 울버햄튼 전에서 주도하던 경기를 1:0으로 내주게 되어 매우 안타깝게 되었다. 이후 6라운드에서 돌풍을 이어가던 아스톤 빌라를 무려 3:0으로 무너뜨려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였으나, 7R 레스터 시티 에게 4:1 대패하여 리그 12위에 머무르게 되었다.
전술적으로는 훌륭하나 현재 리즈의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골 결정력. 공격을 좋아하는 축구팬에게 비엘사의 전술은 그 어떤 프리미어 리그 감독들보다도 매력적이지만 선수들의 골 결정력 때문에 항상 발목을 잡는다. 또한 필립스의 유무가 팀 경기력에 엄청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불안요소다. 당장 필립스가 2주 동안 부상으로 결장하자 레스터와 크리스탈 팰리스한테 4:1로 대패했다. 또한 첼시 원정에서도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났는데, 초반 강한 전방 압박으로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다가도 후반 체력이 방전되자 시종일관 밀리는 것이 불안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리그 14R 맨유 전에서는 6:2로 대패했지만 경기력이 참담한 수준까지는 아니었고 오히려 연속으로 실점하면서도 계속해서 공격을 가하는 등의 괜찮은 경기력을 보였다.
그리고 리그 15R 번리 전에서 패트릭 뱀포드의 페널티킥 선제골을 끝까지 지켜 클린시트를 기록하였다.
이후 리그 16R 빅 샘 감독의 WBA에게 5:0 대승을 거두었다.
리그 17R 토트넘전에서는 손흥민의 토트넘 커리어 통산 100호골 제물이 되었다.
그리고 FA컵 64강에서 4부 리그 크롤리 타운에게 3:0으로 완패했다.
최근 23전 10승 2무 11패로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를 보여주고 있다.

3. 이야깃거리


  • 세계적인 명장들이 존경하는 감독이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호르헤 삼파올리, 디에고 시메오네, 헤라르도 마르티노 등이 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며[10], 심지어 지네딘 지단은 지도자 자격증 취득 과정을 밟는 동안 비엘사의 훈련에 참관해 조언을 구했다. 펩 과르디올라는 비엘사를 "세계 최고의 감독"이자 "내가 축구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 훈련시 선수 개개인의 움직임과 위치를 깐깐하게 지시하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화이트보드를 놓고 장시간 강의를 하는 교수님 스타일로 유명하다. 선수에게 전술적 요구를 많이 하는 편이기에 비엘사식 축구가 완전히 입혀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편.
  • 토털사커 철학을 물려받은 감독으로서 유기적인 움직임을 중시한다. 평소 "선수들은 시계의 부품이다. 각각의 부품이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시계바늘이 돌아가기 시작한다."라는 철학을 고수 중이다. 이러한 이유로 튀는 선수들과 트러블이 좀 있는 편이다.
  • 과거 이지적인 이미지의 미중년이었으나 환갑이 되어가면서 후덕해진 체형과 탈모로 역변했다.
  • 노안이 온 이후에는 안경을 꼭 착용하는 편인데 계속 쓰고 있는 것이 귀찮은지 안경다리에 끈을 매달아 목걸이처럼 걸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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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피엄청 좋아한다. 경기 중 벤치에서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마르세유 감독 부임 이후에는 아이스박스에 올려놓은 커피를 모르고 깔고 앉아 당황하는 모습이 잡히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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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의 커피 짤에서도 나오듯이, 경기장에 있을 때 감독석에 앉기보다 주변의 아이스박스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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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는 물 들어올때 노 젓는다는 식으로 2번째 사진에 나온 비엘사가 앉아있곤 하던 파란색의 리즈 엠블럼 달린 버킷을 80파운드에 한정 판매하기도 할 정도.
  • 마르세유 감독직을 맡기 전까진 스페인어권에서만 커리어를 보냈고 영어권은 리즈가 첫 직장이라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한다. 리즈가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 후 몇몇 리즈 팬들이 집까지 찾아와 축하해주었으나, 언어 문제로 긴 대화는 못하고 사진 찍고, 싸인으로 화답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리즈에서 인터뷰를 할 때는 스페인어로 하고, 영어 통역이 따로 있다. #
  • 집안에서는 본인 혼자만 축구인으로, 집안 사람들이 다들 엄청난 엘리트들이다. 아버지는 법관, 형 라파엘은 아르헨티나 외무부 장관을 지낸 적 있고 현재는 칠레 주재 아르헨티나 대사이며, 여동생 마리아는 건축가 출신으로 전 아르헨티나 국토개발부 장관이었다.

4. 수상 경력


  • 뉴웰스 올드 보이스
    • 프리메라 디비시온 데 아르헨티나 우승 : 1991 아페르투라[11], 1992 클라우수라[12]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 : 1992
  •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 아틀레틱 빌바오
  • 리즈 유나이티드 FC

5. 둘러보기



[1] 앙헬 디마리아, 마우로 이카르디, 리오넬 메시와 동향[2] 2016년 7월 6일부터 2016년 7월 8일까지, 무려 3일만에 감독직을 사퇴했다.[3] 스페인 선수협의 파업 문제로 라리가 개막이 1주 연기되었다.[4] 이 때, 아틀레틱에서 맹활약하던 안데르 에레라는 3년 뒤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가 되었다. 사실 에레라는 2년 뒤에도 갈 수 있었지만 당시 맨유의 단장이 에드 우드워드로 바뀌면서 딜을 제대로 하지 못 해 이적을 못 했었다. 에레라 본인도 맨유행에 관심이 있었는데도 가지 못 했었지만 한 시즌을 아틀레틱에서 다시 맹활약하고 결국 맨유로 이적했다.[5] 실제로 잉글랜드는 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엄청 영악하게 이겼는데 나머지 두 팀과는 무승부를 기록했다. [6]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는 아르헨티나가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유일한 월드컵이다. 그 이후의 아르헨티나가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한 유일한 월드컵이 2002년 월드컵이다. 이 정도면 왜 비엘사를 아르헨티나 국대에서 꺼려하는지 이해가 가고 남는다. 실력은 둘째 치고 운이 매우 나쁜 감독이라 안쓰는 것인데 같은 이유로 옆동네에서도 모아시르 바르보사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결승전에서 역전패, 그것도 절대로 패하면 안 되는 상대에게 패하는 바람에 '''완벽하게 매장당했다.'''[7] 실제로는 보드진이나 선수들과의 마찰 때문에 중도에 계약 해지하고 나와 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기억해 둘 것은 2016년 현재 기준으로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 중 한 사이클(4년) 이상 재임한 마지막 감독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 뒤에 맡은 감독 중 가장 긴 게 거의 딱 3년 재임한 알레한드로 사베야다.[8] 2002년 월드컵 때 조별 리그 탈락 + 절대 패하면 안 되는 상대에게 패했으니 불선임은 당연하다. 당장 모아시르 바르보사 골키퍼도 준우승을 거두고도 영구제명 당하고 조국 국민들 전체의 조롱과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 바르보사는 브라질이 절대 패하면 안 되는 우루과이에게 패해서, 비엘사는 아르헨티나가 절대 패하면 안 되는 잉글랜드에게 패해서 국가대표에서는 사실상 봉인 상태가 되었다.[9] 나머지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 그래도 그건 16강이라도 갔지만 비엘사는... 안습.[10] 특히 시메오네와 포체티노는 비엘사가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맡던 시절에 선수 시절을 보낸 경력이 있다.[11] 7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전기 리그[12] 1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후기 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