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훤

 


1. 개요
2. 생애
3. 미디어


1. 개요


후삼국시대도적이었던 기훤양길의 장수.

2. 생애


현존하는 기록에 2번 등장하는데 삼국사기 궁예 열전에서 申煊, 삼국사기 신라본기 효공왕 4년조에서는 莘萱으로 나온다. 한자 표기가 다르지만 동일 인물로 보는 편이다.[1]
891년 원래 죽주의 도적 기훤의 부하였는데 그 때 원회와 함께 궁예와 친하게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궁예가 기훤에게서 벗어나 양길에게로 갈 때에 같이 갔는지, 계속 기훤 휘하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입증할만한 기록이 없다.
899년 비뇌성 전투로 양길이 패배해 거의 몰락하고 900년 궁예는 왕건을 시켜 청주시, 충주시, 괴산군 등지의 양길군 잔당을 토벌하게 했는데 이때 여기를 지키고 있던 신훤(莘萱), 청길(淸吉)도 궁예군에 항복한다고 나온다. 다른 한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의 경기도 안성인 죽주에 있던 기훤의 부하 장수였다가 어떻게 국원(현재의 충주) 혹은 서원(현재의 청주) 혹은 괴산의 지도자급 인물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없다.[2]

3. 미디어


'''네 이놈 도적 양길아, 내 칼을 받아라! 이랴!'''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등장. 배우는 박승호. 원회와 함께 원래 기훤의 부하였으며 궁예 일행과 함께하면서 궁예에게 감화된다. 기훤의 폭정과 비현실적인 전쟁 계획에 질린 신훤과 원회는 밤중에 기훤을 살해하고 죽주를 궁예에게 바친다. 이후 궁예가 양길 휘하에 들어가자 신훤, 원회도 함께했으나 궁예 휘하에 환선길, 이흔암, 복지겸, 홍유, 배현경 등 기라성같은 장수들이 들어오면서 이들의 비중은 줄어버린다. 초반에 죽을 조연 캐릭터라서 이리 대우한 모양이다.
철원성 전투~후고구려 건국 시점까지 등장이 거의 없다가 비뇌성 전투에서 신훤이 양길과 일기토를 벌이다 끔살당하고 원회도 양길에게 당하여 신훤의 뒤를 따르게 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줄을 잘못 서 양길의 곁을 지키다 새파랗게 어린 왕건에게 치욕적 패배를 당하고 사망한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미화된 셈.

[1] 각 사료의 원문과 해석은 이러하다. 箕萱侮慢不禮 善宗鬱悒不自安 潛結箕萱麾下元會申煊等爲友(기훤이 업신여기며 예로써 대우하지 않자 선종은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하여 기훤의 휘하인 원회(元會), 신훤(申煊) 등과 비밀리에 결탁하여 벗을 삼았다.) / 四年 冬十月 國原菁州槐壤賊帥淸吉莘萱等 擧城投於弓裔(4년(서기 900) 겨울 10월, 국원(國原)ㆍ청주(菁州)ㆍ괴양(槐壤)의 도적 두목 청길(淸吉)과 신훤(莘萱) 등이 궁예에게 성을 바치고 투항하였다.)[2] 안성과 괴산이 아주 먼 거리인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