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사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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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신화에서의 등장
3. 이 이름을 사용한 것


1. 개요


'''スサノオ'''
일본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으로, 建速須佐之男命(타케하야스사노오노미코토). 素戔嗚(스사노오)라고 쓰기도 한다.[1]

2. 신화에서의 등장


일본 신화. 이자나기가 코를 씻을 때 탄생했다.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테라스, 츠쿠요미와 함께 일본 신화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삼귀자(三貴子미하시라노우즈노미코) 중 하나로 아마테라스가 태양, 츠쿠요미가 , 스사노오는 바다폭풍을 다스린다고 한다. 출신만 보면 아마츠카미가 당연할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오오쿠니누시와 엮여서 쿠니츠카미로도 분류된다.
기기신화, 즉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기록된 스사노오는 성격이 대단히 기묘한 신이다. 아마테라스의 동생이면서 이자나기/이자나미 부부신의 아들로서 격이 매우 높거니와, 오로치를 물리칠 정도로 힘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어린애와 같은 면이 매우 강하다. 《일본서기》 권1 제8단 일서 제4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 신인 이자나미가 황천에 간 뒤 어머니를 대신할 만한 존재인 누이를 찾아 자기 있을 곳을 버리고 천계 타카마가하라에 갔다. 하지만 아마테라스 또한 동생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를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하여 무장을 한 채 강가에서 맞이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스사노오의 말이 정말인지 확인하려고 주술적인 내기를 하였는데, 이 내기에서 아마테라스가 졌다. 그래서 아마테라스는 스사노오의 말을 인정하고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 뒤로 타카마가하라(高天原 하늘나라)에서 온갖 못된 짓을 하다가,[2] 베를 짜던 아마테라스를 다치게 하자[3] 아마테라스는 동굴에 숨었다. 신들이 가까스로 아마테라스를 밖으로 유인해냈으나... 스사노오는 그 대가로 수염과 손발톱을 뽑히고 신라의 소시모리(曽尸茂梨)에 떨어졌다고 기기신화(記紀: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기록된 신화)에 전한다. 스사노오는 천계에서 죄를 지어 쫓겨난 뒤 아들 이소타케루(五十猛) 신과 함께 먼저 신라의 소시모리(曽尸茂梨)란 곳에 강림했지만, 여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서 흙으로 만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가서 일본 땅 이즈모(出雲)에 도착했다고 하였다. 그후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했다.
기기신화에 따르면 그 뒤 토츠카노츠루기를 들고서 오로치와 싸우다 날이 나가서 다른 검인 아마노하바키리(天羽々斬)를 들고서 오로치를 물리치고 꼬리에서 꺼낸 검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는 다카마노하라에 바치는 등, 성숙한 영웅신적 모습을 보이지만... 자기 사위 오오쿠니누시[4]에게 딸을 주기 싫어 잔꾀를 쓰는 등 예전 모습도 여전히 있다. 나중에 결국 이자나미를 찾아 황천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일본의 옛 현지 기록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없다. 스사노오가 길을 가다가 땅 이름을 정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쪽이 일본 스사노오 신앙의 원형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즈모 지방에만 하더라도 스사노오 신앙의 권역이 있긴 하지만, 오오나무치(오오쿠니누시) 신앙이 더 폭넓고, 더 강했다[5].
기기신화는 '정치신화'라고 불릴 정도로 일본서기와 고사기가 성립될 당시 정치적 요소를 강력하게 담고 있어, 읽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 신화적 논리와 정치적 논리가 뒤섞였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일본 신화의 원형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
스사노오는 일본 신화의 가장 대표적인 영웅신이면서도 폭력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때문에 현대 만화/애니메이션 등의 대중문화에서는 매우 인기가 높다. 보통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중 최강 클래스에 속하며 등장했다 하면 보이는 대로 부수는 파괴신으로 묘사된다.
또한 스사노오는 상기한 대로 일본 신화의 가장 대표적인 영웅신으로 뇌신 타케미카즈치와 함께 일본 신화의 대표적인 무신·군신으로 통하기에, 타케미카즈치나 의 신 카구츠치 등과 더불어 일본 창작물에서는 강력한 캐릭터나 무기 등의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스사노오에게서 따온 이름이 붙은 캐릭터들 역시 대체로 상당히 강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일본서기와 고사기 등에는 스사노오와 행적이 비슷한 천일창의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와서 둘의 관련성에 주목하는 학자들도 있다. 특히 둘 다 신라와 관련성이 매우 높다 보니.. 그리하여 원래 '''신라의 신'''이라고 생각하였고, 일제강점기 때는 내선일체의 종교적 표상으로 조선에 신사를 세우는 등 이용도 당하였다. 대표 사례로, 강원도 춘천의 우두산을 스사노오가 강림한 소시모리로 간주하는 일본인들이 있었는데, 소시모리를 우두(牛頭), 즉 순우리말 소머리(또는 쇠머리)의 음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고대 한국어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긴 하지만 소시모리에서 시(尸)는 우시산울산과 같이, 한글이 없던 고대 향찰식 표기에서 尸는 받침발음을 표현하기 위한 보조 글자로 흔히 쓰였으므로 소머리로 유추하는 것 자체는 아주 무리한 발상은 아니었다.[6]
그래서 일본인들이 우두산 정상에 스사노오를 위한 신사를 세우고자 하였으나 총독부가 우두산=소시모리설에 부정적이라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신 인근에 있는 봉의산 강원신사에 스사노오를 합사했다. 지금은 강원신사가 있던 자리엔 세종호텔이 있다. 그 외에 소시모리를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로 보는 설도 있다.
지금도 이즈모 서쪽 옆동네 오다시 현지 바닷가에 산인 본선 이소타케역 인근에 가라카미시라기(韓神新羅, 한신 신라) 신사라는 신사가 있고, 여기서 '''구로'''라는 이름으로 마츠리 비슷한 행사를 한다. 현지 주민도 정확히 왜 신라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구로가 뭔지 정확히 모른다고......[7] 다만 명백히 한반도와 관련 있는 이름인 듯하기 때문에, 가라카미시라기 신사에 가면 일본어 안내판에서 한국과 관련된 이름일 가능성과 한일관계에 대해 써 있다. 거기서 머지 않은 곳 마을 앞바다에 가라시마(韓島)라는 작은 섬이 있고, 그 섬에 가라시마 신사도 있는 등, 이래저래 한국과 관련되었을 법한 지명이 상당히 많다. 구글 지도에 검색하면 다 나오고 한국인들이 가기 쉬운 서부 일본 지역이라 이즈모 쪽으로 여행을 간다면 찾아가보기도 어렵지 않다. 지금은 일제강점기 때처럼 내선일체의 증거랍시고 하는 건 아니라도 어쨌든 도래인과 관련이 깊은 지역으로 추한다.
신불융합(신토와 불교의 융합)된 뒤에는 우두천왕(牛頭天王)으로도 통했다. 사이메이 천황 2년(656) 고구려에서 온 사신 이리시오미(伊利之使主)가 왜국에 방문했을 때, 우두산의 스사노오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8] 이에 대한 해석으로 스사노오가 우두천황으로 신불융합된 것은 한반도계 도래인이 일본에 도착하고 나서라는 추정이 있다.
역사스페셜에서는 심지어 '연오랑 세오녀 일본의 신(神)이 되었나?' 편에서 연오랑과 세오녀가 스사노오의 모티브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링크 다만 학계에선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썰이다.

3. 이 이름을 사용한 것


[1] 스사노오를 신라의 차차웅엮기도 한다. 오로치를 베었을 때 쓴 검의 이름이 사'''한'''서검(蛇'''韓'''鋤劍: 오로치노 '''카라'''사히노 츠루기)인 등 신라와 연관성이 많다.[2] 논두렁을 허물고, 제사상에 똥을 뿌렸다.[3] 일본서기 본문에 따른 서술이다. 아마테라스가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짜고 있을 때, 지붕을 뚫고 가죽을 벗긴 말을 던졌다. 아마테라스가 이에 놀라 베틀에 몸이 다쳤다고 한다. 그런데 고사기에서는 아마테라스가 아니라 직녀(織女)가 북(옷감을 짜는 도구)에 음부(陰部)를 찔려 죽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본서기도 일서에는 아마테라스가 아니라 와카히루메노미코토(稚日女尊)라는 신이 베틀 북에 상처를 입고 죽었다고 나온다.[4] 이 신도 스사노오의 자식이다.[5] 고사기와 일본서기 등에서 오오쿠니누시가 스사노오의 자손으로 나오기 때문에 결국 스사노오 신화의 계보가 되기는 한다.[6] 물론 신라의 한 지명이라 써 있는데도 초기 신라에서 거리가 먼 춘천으로 비정한 것은 좀 무리하긴 했다.[7] 굴직현(屈直縣)=기량현(祈梁縣) 굴지(屈支)=기양(祈陽) 굴 주(呪) 옛말 빌다는 뜻의 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한다.[8] 八坂郷鎮座大神之記[9] 루비로 '스사노오'라고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