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키아 무함마드

 

1. 개요
2. 아스키아 무덤


1. 개요


아랍어: أسكيا محمد (아스키아 무함마드)
프랑스어: Askia Mohammed (아스키아 모아메드)
생몰: 1442년~1538년
재위: 1493년~1528년
송가이 제국의 아스키아 왕조의 초대 황제.
본명은 무함마드 투레(Muhammad Ture) 또는 마마두 투레(Mamadou Turé). 일명 아스키아 무함마드 1세(Askia Muhammad I), 아스키아 대제(Askia the Great) 등으로도 불린다. 본래 송가이인이 아니라 소닝케족으로 알려졌다.
송가이 제국 초기의 이슬람은 도시 지식층과 상인층에 널리 퍼져 있었지만 평민층은 아직 서아프리카 전통 신앙이 우세했다. 초대 군주인 손니 알리는 전통 신앙과 이슬람의 적당한 타협을 추구했지만, 2대 군주인 손니 바루(Sonni Bāru)는 무슬림들에게 불만을 일으켰다. 아스키아 무함마드는 손니 바루가 이슬람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1493년 안파오(Anfao) 전투에서 손니 왕조를 쓰러뜨리고 새 왕조를 개창했다.
쿠란을 법전으로 삼고 아랍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했으며, 무함마드 이븐 아브드 알 카림 알 마길리(Muḥammad ibn ʿAbd al-Karīm al-Maghīli)[1]를 고문으로 임명해 이슬람으로 종교 개혁을 했지만 워낙 과격했기 때문에 백성들의 반발을 샀다. 1495년에 메카성지순례를 갔다가 1497년에 귀국하면서 많은 학자들을 팀북투로 데려와 이슬람 문화를 발전시켰다.
군사적으로는 상비군, 카누 함대를 편성하고 각 분야마다 관리를 임명했다. '백인' 부대도 설치하였는데, 무어인, 투아레그인들로 구성하여 만딩카족의 낙타 기병 부대 사령관을 선발한 것으로 관리는 귀족 중에서 뽑아 자신의 친족들을 앉혔다. 1498년에 야텐가(Yatenga)의 모시인[2], 니제르하우사인들을 공격해 1502년에 굴복시켰다. 1500년에는 말리 제국을 침공하여 속국으로 삼았고, 1507년에 풀라족의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였으며, 1513년에는 나이지리아 북부의 카치나(Katsina)를 점령했다.
제국의 강역은 서쪽으로 대서양, 북서쪽으로 테가자(Teghaza)의 소금 광산, 남서쪽으로 벤두구(Bendougou), 남동쪽으로 부사(Bussa), 북동쪽으로 아가데즈(Agadez)까지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사하라를 통한 교역을 활발히 진행하고 젠네(Djenné), 팀북투, 우알라타(Oualata) 등을 교역, 종교의 학문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1528년 아들 아스키아 무사의 쿠데타로 쫓겨났다. 아스키아 무함마드가 죽자 계승자 다툼으로 인해 아스키아 왕조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문명 5에서는 송가이의 지도자로 나온다. 자세한 건 문명 5/등장 문명/송가이 항목 참고

2. 아스키아 무덤



'''유네스코 세계유산'''
[image]
이름
한국어
아스키아 무덤†[3]
영어
Tomb of Askia
아랍어
مدفن أسكيا
프랑스어
Tombeau des Askia
국가·위치
말리 가오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04년
등재기준
(ii)[4], (iii)[5], (iv)[6]
지정번호
1139
[image]
말리 동부 가오에는 아스키아 무함마드의 무덤이 남아있다. 이 무덤은 아스키아 무함마드가 메카에 순례를 다녀온 후 이슬람을 국교로 정하고 가오를 제국의 수도로 지정한 후 만들었다고 한다. 높이 17m의 피라미드형 건축물로 이밖에 평평한 지붕의 이슬람 사원(모스크) 두 채, 집회소 등이 함께 있다. 젠네에 있는 모스크처럼 이 무덤도 외벽에 나무 막대를 잔뜩 꽂아놨는데 회반죽을 덧칠해 보수할 때 발판 용도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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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440?~1505?, 알제리 틀렘센 출신의 이슬람 신학자. 유대교에 반대하여 유대인 탄압을 일삼았으며, 나이지리아 북부 하우사인의 도시 카노(Kano)에서 활동하면서 하우사인, 풀라인, 투아레그인 등 서아프리카인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2] 현재 부르키나파소의 주요 민족.[3]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4]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5]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6]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