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스 크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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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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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우테 부부
'''이름'''
안드레아스 크리거(Andreas Krieger)[1]
'''국적'''
독일[image]
'''출생'''
1966년 7월 20일, 동독
'''종목'''
육상
'''주종목'''
투포환
1. 소개
2. 선수 생활
2.1. 도핑 프로젝트의 희생양
3. 도핑 프로젝트의 결말
4. 총평
5. 관련 문서


1. 소개


동독의 여성 투포환 선수였다. 자신도 모른 채 투여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인해 몸이 망가지고 부상에 시달리다가 결국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힘들어 만 24세에 은퇴했다. 이후 성전환 수술을 받고 트랜스남성이 됐다. 다만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투여 이전에도 본인의 성 정체성은 남성이었다고 한다. 여성으로 살며 쓰던 이름은 하이디 크리거(Heidi Krieger)였다.

2. 선수 생활


크리거는 청소년 때부터 힘이 좋아 14세부터 투포환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동독에서 여자 투포환 유망주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하여 당시 동독 최고의 구단이었던 디나모 베를린 스포츠 클럽에 스카웃되어 그곳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국가대표로까지 발탁되었다. 그리고 20세였던 1986년 유럽 육상 선수권대회에서 하이디 크리거는 무려 21.1m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냈다. 그런데 크리거가 챔피언이 되고 불과 4년 밖에 지나지 않은 1990년에 돌연히 은퇴를 선언하였는데, 은퇴 시점이 만 24세였기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이유는 후술.

2.1. 도핑 프로젝트의 희생양


만 24세라는 나이에 돌연히 은퇴를 선언한 원인은 도핑 때문이었다. 당시 동독은 물론이고 공산권 국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스포츠를 통해 체제 선전을 한다는 것이다.[2] 즉,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수들을 쥐어짜서라도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증빙하기 위해 금메달을 따게 만드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도핑 프로젝트'''였다. 선수들에게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경기력 향상 약물(Performance-enhancing Drugs, PED)를 투약한 것이다. 이 때 투약된 선수들은 동독 전체 선수들의 '''95%'''에 달했으며, 만약 이 프로젝트에 협조하지 않는 선수들이 있으면 아예 선수 생활을 못하게 매장해버리기까지 했다.
당시 여자 투포환 선수들 중 에이스였던 하이디 크리거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독의 코치들은 하이디 크리거에게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주기적으로 투여했다. 물론 하이디 크리거는 이것이 스테로이드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코치들이 비타민이나 영양제 챙겨준다면서 권하는게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남성호르몬이 함유된 약물인데, 주기적으로 약물을 복용한 크리거의 몸은 부작용으로 인해 심각하게 망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20세라는 어린 나이에 금메달을 따고 신기록까지 세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크리거는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게 되었다. 우선 지속적으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맞다 보니, 그 안에 포함된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월경을 하지 않았고, 급기야는 배란이 아예 되지 않을 정도였다.[3] 신체 균형이 망가진 크리거는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끝까지 버티고 버텼지만 더 이상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망가져 버려, 결국 만 24세라는 나이에 은퇴를 선언해 버린 것이다.[4]
그러다 만 31세 때인 1997년에 성전환 수술 받았다. 이름도 하이디라는 여자 이름에서 안드레아스라는 남자 이름으로 바꾸고 남자로서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동독의 '''도핑 프로젝트'''의 희생양이 되었던 여자 수영 선수 우테 크라우제와 결혼했다.

3. 도핑 프로젝트의 결말


독일이 통일되고 정확히 10년이 지난 2000년, 구 동독 정권에서 이른바 '''도핑 프로젝트'''를 벌여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스테로이드를 주입해 왔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1970~1980년대 동독은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스포츠 대회에서 매우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왔는데[5] 종합 순위에서도 공산권 국가들이 집단 보이콧한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제외하고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5위, 1972 뮌헨 올림픽 3위, 1976 몬트리올 올림픽 2위, 1980 모스크바 올림픽 2위, 1988 서울 올림픽 2위를 차지했다.[6] 이것이 전부 도핑의 산물이었다는 것! 이렇게 스포츠의 정신을 위반하면서 어거지로 성적을 날조해 낸 이른바 '''도핑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죄다 구속되었고,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법정에서 선고된 가해자들의 형량은 고작 보호감찰 정도에 그쳤다. 다른 선수들도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인해 이미 뇌경색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람들도 많았는데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도 여자 선수들의 경우는 전부 불임이 되었고, 심근경색, 관절염, 당뇨 등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선수들도 많았다. 한마디로 체제 선전을 위해 선수들의 인생을 파괴해 버린 것인데 처벌은 그야말로 솜방망이인 셈이었다. 그러나 안드레아스 크리거는 인터뷰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4. 총평


안드레아스 크리거는 도핑 이전에도 본인의 성 정체성은 남성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다만 안드레아스 크리거가 다른 트랜스젠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전환 단계를 밟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후일 자신이 바라는 남성으로서의 삶과 지위를 인정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거는 성적지상주의에 매달린 국가에 의해 자신의 몸을 희생당한 피해자임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 크리거는 성전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못한 점을 크게 안타까워했다. 이는 신체적 자기 결정권을 명백히 박탈당한 것이다.
안드레아스 크리거의 사례는 구 동독 정권에서 얼마나 선수를 가혹하게 부렸는지, 또 어떤 존재로 생각했는지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로 평가받는다. 반강제적으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별을 바꾼 안드레아스 크리거 외에도 당시 도핑 프로젝트의 희생양이 되었던 선수들이 지금도 온갖 질병과 후유증에 시달린다. 결국 구 동독 정권에게 스포츠 선수는 '''올림픽 성적을 내는 로봇들'''일 뿐이었다. 사실 구 공산권 전체가 이랬고, 지금도 그런 나라가 있다.
한편, 이런 도핑 스캔들의 영향으로 트랜스젠더 선수들의 스포츠 참여는 철저히 배척되었다.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들은 생득적 어드밴티지를 가졌다며 문전박대당했고, 크리거의 예를 들며 트랜스젠더 남성 선수들에게 약쟁이의 오명을 뒤집어씌우기도 했다. HRT, GRS를 거친 이후에도 경기 출전이나 팀 입단을 거절당하는 예가 부지기수로, 이들은 경기에 출전해서 경쟁선수에게 욕 먹을 기회조차 박탈당해왔다. 심지어 캐스터 세메냐처럼 간성인임이 드러난 후에도 성별 논란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나마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트랜스젠더 선수에 대해 '''GRS 없이도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게 올림픽 남/여 종목에 출전할 수 있다'''는 IOC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며 IOC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여러 종목의 스포츠 분야에서도 개선의 실마리가 보인다는 점이 위안거리가 되었다.[7] 그리고 WADA 역시 운데카노산 테스토스테론[8], 에난트산 테스토스테론, 시피온산 테스토스테론, 스피로놀락톤[9] 등 트랜스젠더들이 투약하는 이성간 교차 호르몬 대체 요법에 쓰이는 규제 대상 약물에 대해서도 의무 기록, 진단서 제출에 의한 징계 예외 인정을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다. 크리거처럼 원치 않는 도핑에 희생된 선수들의 사연이 오히려 크리거와 같은 트랜스젠더 선수들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러한 편견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5. 관련 문서


[1] 여성이였을때의 이름은 하이디 크리거(Heidi Krieger)였다.[2] 쉬운 예로 지금의 북한을 보면 알 수 있다.[3] 독일 통일 후 동독의 여자 운동 선수들에게 도핑을 시킨 사실이 적힌 문건이 대거 발견되었는데, 하이디 크리거 외에도 월경불순을 호소하는 여자 선수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고 한다.[4] 또한 여성도 탈모 유전자와 체모 과다 생성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면, 남성 호르몬이 투여된 후 서로 반응하여 탈모가 생기거나 체모가 많아질 수도 있다. 남성 호르몬의 양만 많다고 탈모가 생기거나 체모가 많아지는 건 절대 아니지만, 유발하는 유전자와 반응한다면 비교적 적은 양이라도 탈모나 체모 생성을 일으킨다.[5] 이 약물 빨로 동독은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시작으로 1988 서울 올림픽까지 519개의 메달을 가져왔다.[6] 참고로 1976년부터 1988 올림픽까지 1위는 소련이었다. 뮌헨에서 3위를 차지한 것은 2위가 미국이였기 때문이다.[7] 안드레아스 크리거와 같은 트랜스남성 선수는 테스토스테론 수치에 무관하게 남성으로 출전할 수 있다. 트랜스여성 선수들은 10nmol/L(대략 2.88ng/ml) 이하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대회 전까지 최소 12+개월간 유지해야 하고, 이후로도 검사 때마다 그 수치를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12개월의 자격 정지 처분이 내려진다.[8] 한국에 흔히 알려진 약물은 네비도이다.[9]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안티안드로겐으로 투여되는 약물인데, 본디 이뇨제 성분이라 소변 배출을 용이하게 하기도 하고,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추는 효과도 있기에 테스토스테론을 비롯한 단백 동화 스테로이드 약물류처럼 얄짤없이 금지약물로 지정. 합성 에스트라디올, 프로게스테론 같은 여성의 난포/황체 호르몬 역시 호르몬 수치 조작에 쓰일 수 있기 때문에 단속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