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세이버
兩手サーベル
1. 개요
일본군 장교용 군도인 19식 세이버의 파생형.
프로이센에서 돌아온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필두로 하는 독일 유학파들은 독일군의 임무형 전술을 비롯한 독일의 군사제도를 일본군에 도입, 정착시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의 군도도 1875년 채용된 8식 세이버에서 독일식 세이버의 제식을 따른 19식 세이버로 교체되어 1886년부터 채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군도가 이렇게 바뀌면서 당시 사무라이 출신이 많던 일본군의 일선 장교들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배워 온 일본 검술과는 맞지 않는 세이버에 대해서 불만이 상당히 많았다. 특히 한 손으로 사용하는 세이버의 운용법에 익숙해지지 못해서 왼손으로 칼날을 잡은 상태로 양손으로 일본도처럼 쓰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전쟁에 출정하는 장교들이 개인적으로 일본도를 들고 가서 실전에서 사용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당시의 서구화를 지향하던 일본의 분위기에서 일본도는 구시대의 유물이자 퇴물 취급받던 상황이었으나 실전에서의 요구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군부에서도 이를 묵인하는 상황이었다. [1] 결국 이런 배경에서 장교들이 전선에 나설 때 패용하는 이른바 실전 군도(칼날을 세워 싸움이 가능한 군도)는 외형만 19식과 동일하다면 달리 터치하지 않았고, 이런 풍조 속에서 일본도의 칼날과 세이버의 외장을 결합시키고 양손으로 쓸 수 있도록 손잡이를 길게 늘인 독특한 물건이 등장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통칭 '양손세이버(兩手サーベル)'라 불리는, 세계 도검 역사에 특기할 만한 독특한 양식의 물건이었던 것.
이런 배경 사정을 모르는 해외에서는 자기네들 식대로 양손 세이버를 M1886 Two hand Sabre라고 부르거나 기병들이 평범한 세이버인 19식 기병도를 사용하는 걸 보고서 M1886 보병장교도와 기병장교도를 따로 구분해 양손 세이버가 보병장교도 제식인 줄 잘못 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19식(M1886) 기본 제식은 따로 있고, 양손 세이버는 어디까지나 장교의 편의를 따라 허용된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다. 일본 기병들이 기병 전투의 특성상 한 손 세이버를 선호한 바 있으나, 기병은 물론 해군도 양손 세이버를 소지하고 다닌 것이 확인되기 때문에 결국 장교들의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 양손 세이버의 패용 여부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전에서 칼을 제일 많이 쓰는 육군이 양손 세이버를 가장 많이 썼으니 오해가 생긴 것을 달리 뭐라 할 수도 없지만...
2. 외형과 특징
양손 세이버는 육군뿐만 아니라 해군도 사용했기 때문에 각 군의 장교용 군도 제식에 맞춰 외장이 육군형과 해군형이 따로 있었다. 더불어 육군 내에서도 기병은 군도의 제식이 조금 달랐기 때문에 기병 제식이 따로 존재했다. 경찰들도 경찰도 제식 외장을 유지하며 양손 세이버를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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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용은 철제 칼집을 사용했으며 버튼식 잠금장치, 칼자루 등을 덮는 배금(背金:Backplate)에서 자루 쪽으로 내려오는 Ear 부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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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용은 목제 칼집에 군청색 가죽을 감고, 황동제 도장구를 끼웠다. 잠금 장치도 가드 한쪽이 접혀 칼집의 돌기에 끼워지는 Folding Guard방식. 배금은 있으나 Ear부위가 존재하지 않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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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용은 가드의 디자인과 칼자루의 백플레이트의 꽃무늬의 차이라는 기병용 장교도의 제식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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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용은 언뜻 육군용과 구별되지 않지만 손잡이의 제식이 달랐다. 식별요령은 경찰도 항목 참고.
칼날의 길이는 천차만별이었는데, 이는 장교들이 집안에서 소장하거나 따로 구입한 일본도의 칼날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에도시대에 만들어진 우치가타나의 칼날을 사용했기 때문에 날길이가 70cm를 넘는 것이 많지 않았으며, 대체적으로 2척 1촌~2척 3촌(63~69cm) 정도의 날길이를 가지는 것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2척 4~5촌(72~75cm) 정도의 날길이를 가진 현대의 일본도를 사용하던 사람들 눈에는 아주 짧아 보인다. 전통 일본도 칼날이 가장 많았지만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초급장교들은 현대식 강재와 기름 열처리를 사용해 제조한 공장제 칼날인 무라타도를 사용하기도 했다.
손잡이는 19식의 제식에 따른 세이버 손잡이이지만, 일본도처럼 쓰기 위해 손잡이가 늘어나는 바람에 전통적인 유럽식 세이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아주 커진 것은 아니며 손잡이 길이도 천차만별이지만 15cm 정도로 한 손 세이버와 큰 차이 없어 보이는 것부터 25cm 정도의 확연하게 긴 것들도 있었다. 19식이 나사 고정식인 데 비해 양손 세이버는 일본도 칼날을 사용하므로 일본도처럼 대나무 못을 끼워 고정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더해 전통 일본도처럼 가드와 손잡이, 칼날 사이에 셋빠(切羽)를 끼우기도 했기 때문에 일본도와 세이버가 융합된 듯한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만 손잡이가 아무리 길어도 전통 일본도의 손잡이보다는 짧았기(28cm 이상)때문에, 양손 세이버에 쓰이는 일본도 칼날은 경우에 따라 슴베를 절단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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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병대의 사진. 중앙의 장교는 기병 제식의 양손 세이버를 소지했으며, 옆의 하사관병은 평범한 세이버인 32식 기병도를 소지하고 있다.)
3. 평가
정작 쓰일 때에는 이렇다 할 호불호가 갈리지는 않았지만, 1934년 신군도로 변경되고 나서 재평가된다. 중일전쟁당시 북지나방면군 군도수리반 반장으로 근무했던 군무원이었던 나루세 칸지의 증언에 의하면 일본도 손잡이 양식을 가진 신군도에 비해, 황동제 보강판이 많이 붙은 구군도의 손잡이는 내구성이 매우 튼튼하고 쉽게 고장 나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때 쓰인 양손 세이버들 중 일부는 손잡이를 다시 98식 전도의 제식으로 바꿔서 계속해서 패용한 예가 존재하며, 양손 세이버 시절의 철제 칼집을 그대로 유지한 골동품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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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용 양손 세이버는 특히 해군육전대가 실전 사용을 했는데, 1933년 상해사변 당시 출동한 해군육전대는 나무 칼집과 황동 도장구 사이로 바닷물이 스며들어와 칼날에 녹이 슨다는 불만을 제기한 바 있으며, 이 때문에 해군육전대는 육군용 양손 세이버를 구입해다 사용하기도 했다. 사진에서 좌측의 두 사관은 패용 고리가 2개 달린 육군도를 쓰고 있다.
현재에는 구하기 어려운 편에 속하며, 따라서 가격도 신군도보다 좀 더 비싸다. 워낙 오래된 제식인 데다, 패전 이후 미군정 GHQ의 칼 사냥에 걸려 용광로로 들어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거의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수준이 된 8식이나 19식에 비한다면 가장 많이 남은 구군도로써, 현재 일본에서도 구군도라고 하면 바로 이 양손 세이버를 가리킨다고 한다.
4. 관련 항목
일본군도(日本軍刀)
구군도(旧軍刀)
신군도(新軍刀)
- 육군부사관도(陸軍下士官刀)
- 95식 군도(九五式下士官刀)
공업도/실용군도(工業刀/室用軍刀)
- 무라타도(村田刀) - 총기설계자 무라타 소장이 제조한 칼날
- 만철도/흥아일심도(滿鐵刀/興亞一心刀) - 남만주철도공사에서 제조한 칼날
- 미카사도(三笠刀) - 전함 미카사의 파괴된 포신으로 만든 칼날
- 조병도(造兵刀) - 육군조병창에서 생산된 칼날
- 진무도(振武刀) - 금속공학을 통한 타바드강(鋼)으로 만들어진 칼날
- 군수도(群水刀) - 군마수전사의 사장인 미야구치 타케히데가 만든 칼날
- 스테인리스도(耐錆鋼刀) -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칼날
일본군도를 사용하는 검술
[1] 당시 일본군에서는 징집된 하사관병과는 달리 장교들은 그런 사물에 대해서는 묵인하는 풍조가 있었다. 하사관병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장교들은 덕택에 사제 군복, 사제 개인장비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특별히 멋을 부리기도 했다. 사실 군도나 권총 등도 장교가 돈 내고 사야만 했으니... 이런 제식 일탈은 젊은 장교들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고 하며, 예를 들자면 기병용으로 규정된 쇠사슬 군도 벨트를 멋이 난다는 이유로 보병장교들이 너도나도 차고 다녔던 것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