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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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키 스타디움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을 대표하는 명문 뉴욕 양키스의 홈 구장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야구장'''이다.
과거에는 베이브 루스가 지은 집(The House That Ruth Built)이었고, 현재는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지은 집(The House That George Built)이라 불리고 있다.[1]
2. 설명
뉴 양키 스타디움은 2008년 시즌까지 경기가 열리고 2009년 철거된 옛 양키 스타디움 바로 옆에 지어졌다. 건설 비용은 15억 달러, 한화로 약 1조 6500억 원에 달하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21번째로 비싼 건축물에 해당'''된다. 출처 이 무지막지한 건설 비용은 뉴욕 시와 뉴욕 양키스 구단이 각각 나눠서 부담했으며,[2] 뉴욕 양키스 측이 뉴욕 시와 40년간 장기 계약을 체결하면서 뉴욕 시에 임대료로 지불하는 금액은 연간 10달러, 한화로 만 원에 불과하다. ## 이 때문에 잠실 야구장 등 국내 스포츠 임대료와 관련된 부분에서 항상 언급되는 야구장이기도 하다.
2008 시즌에 올스타전을 비롯해 마지막으로 고별 경기를 가지고 2009 시즌부터 새로운 구장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양키스가 CC 사바시아와 버넷을 낚은 이유에는 새 구장에서 최고의 출발을 하기 위한 것도 있다. 다행히도 이해 뉴욕 양키스는 9년 만에 반지를 끼게 되었다.
그런데 새 구장은 엄청나게 홈런이 잘 터지는 구장이었다. 2009년도의 양키스 타자들은 개나 소나 20홈런을 넘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더 무서운 것은, 파크 팩터로 분석할 때 2009년 뉴 양키 스타디움은 미세하게 투수 친화적 성격이 더 강했다는 것이다(96.5). 다만 10년과 11년에는 확실하게 타자 친화 구장으로 자리잡았고(각각 117.7, 113.1), 그 이후로도 양키스 타선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홈런팩트가 강한 타자 친화구장으로 굳어졌다. 다른 구장에 비해 홈런이 월등하게 많이 양산되는 이유로는 낮은 펜스의 높이가 첫 번째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2루타 파크 팩터는 평균 이하지만 홈런 파크 팩터는 MLB에서 손꼽힐 정도이다. 다만 홈런을 제외한 장타가 많이 나오는 구장은 아니라서 종합적인 파크 팩터는 그렇게 까지 높게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저 스타디움보다도 아래에 위치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자주 있다.
이렇게 플라이 볼 피처에게 불친절한 양키 스타 디움의 특성상 여러 투수들이 홈런왕 레이스를 벌이며 흑역사를 쓰기도 했다. A.J. 버넷은 FA 대박도 터뜨리며 준수한 선발 투수로서 기량이 검증되었지만 양키스에서는 온갖 수모를 겪었고 탈출한 뒤 귀신 같이 반등했다. 심지어 양키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유망주 필 휴즈는 뉴 양키 스타디움에서 선발로 뛰면서 천조국의 유원상 소리를 듣다가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하고서야 홈런에 대한 큰 부담을 떨쳐내고 유망주 시절 받았던 기대에 준하는 성적을 냈다.
플라이볼 피처에게 불리한 이유, 그중에서도 우완투수에게 불리한 이유는 좌중간 담장이 상대적으로 깊은 방면에 우중간, 우측, 좌측 담장은 상대적으로 짧고 낮다는 점에 있다. 다른 구장이었으면 플라이볼이 될 타구가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베이브 루스 시대부터 이어져온 좌타자 천국의 구장색을 유지하는 구장 형태지만, 데릭 지터나 DJ 르메이휴처럼 밀어치기에 능한 중거리형 우타자, 애런 저지나 지안카를로 스탠튼 등 밀어서도 능히 큰 타구를 만드는 초대형 우타 슬러거들도 이득을 노려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우측 펜스가 직선으로 되어있어 2루타성 타구도 담장을 맞고 바로 튀어나와 1루타에 그치기도 한다.
3. 구 양키 스타디움(1923 ~ 2008)
1923년에 개장한 옛 양키 스타디움은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특수한 콘크리트로 건축되었으며, 야구장으로서는 보기 드문 7만여 명의 관중을 수용했던 구장이다.[3] 1970년대에 리모델링을 거쳐[4] 5만 명대로 관중 수용을 줄이긴 했지만, 여전히 메이저리그에서 큰 구장 중 하나였다. 외야 펜스는 베이브 루스의 홈런 생산을 위해 우측 펜스가 좌측 펜스보다 좀 짧다. 그렇다고 좌측 펜스 거리가 그리 먼 것도 아니다. 반면 외야는 꽤 넓은 편이었는데, 양키스에서 발 빠른 중견수를 선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새 양키 스타디움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우측 펜스가 짧은 덕분에, 뉴욕 양키스를 빛낸 타자들 중에는 좌타자가 많다. 베이브 루스, 루 게릭,[5] 요기 베라, 로저 매리스, 돈 매팅리 등. 미키 맨틀도 스위치 히터이긴 했지만 우타석 타율(.329)이 좌타석 타율(.281)보다 좋았음에도 좌타석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양키 스타디움의 짧은 우측 펜스를 활용하기 위해서 였다.
베이브 루스가 지은 집이라는 애칭이 있는데, 이는 베이브 루스의 영입 후 뉴욕 양키스가 뉴욕의 2인자, 3인자 신세에서 벗어나 뉴욕의 1인자이자 전 미국의 인기 팀이으로 발돋움했으며, 또한 그의 스타성과 그의 홈런으로 인해 몰려든 관중 수입으로 양키 스타디움을 지었다고 하여 "루스가 지은 집(The House That Ruth Built)"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위치는 뉴욕의 대표적인 빈민가 브롱크스. 본래 브롱스는 구 양키 스타디움이 지어질 때만 해도 살기좋은 백인 부촌이었는데, 48년 백인 거주구역의 집을 흑인에게 못 팔게 하는 인종차별행위가 금지되고 이런저런 사유로 흑인들이 점점 몰려들며 집값은 떨어지고, 백인들은 흑인을 피해 교외로 이사가며 지금은 치안 나쁘기로는 할렘보다도 더한 대표적인 뉴욕의 흑인 빈민가가 되었다. 하지만 본래 백인 부촌이었다가 빈민가 한복판이 된 이 절묘한 양키스타디움의 위치가 양키스가 뉴욕 1팀이 되는 것에 일조했는데, 본래 위치가 위치인만큼 백인 위주의 팬덤을 이룬 팀이었는데 흑인 빈민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흑인 팬까지 흡수, 그야말로 흑백을 가리지 않고 응원하는 인종대통합 팀이 된 것.[6] 게다가 그렇게 된 덕분(?)에 많은 흑인 힙합 뮤지션들이 자신의 정체성, 브롱스 출신임을 나타내기 위해 메츠가 아닌 뉴욕 양키스의 모자를 썼고 그 덕분에 양키스는 야구를 모르는 사람도 NY무늬는 아는 야구를 넘어 하나의 문화심벌이 되다시피 했으니 아이러니한 이야기.
철거된 자리에는 헤리티지 필드(Heritage Field)라는 간이 야구장이 들어섰다.
그 외에도 수많은 마이너 풋볼팀들이 잠시 거쳐가기도한 역사있는 구장이다. 그 팀들의 이름은 대부분이 뉴욕 양키스였다.
예전에는 미닛메이드 파크의 폴대를 연상케 하는 기념탑이 필드 위에 설치되어 있었다.
4. 뉴욕 시티 FC의 홈 구장
2015년부터 맨체스터 시티와 뉴욕 양키스가 공동 출자한 MLS 축구 팀인 뉴욕 시티 FC의 임시 홈 구장으로 사용된다. 뉴욕 시티 FC의 신축 구장이 건설될 때까지 사용된다고 한다.[7] 양키스의 홈 경기가 없는 날을 이용해 시티 FC의 홈 경기가 열린다.
참고로, 축구 경기가 열릴때의 필드 사이즈는 110x70 야드로 MLS 경기장 가운데에서 가장 작다.
5. 특징
- 기존의 양키 스타디움이 가지고 있던 특색들을 반영했으며, 이 때문에 좌우 폭, 중앙 펜스까지의 길이도 모두 이전 구장과 같다.
- 양키 스타디움의 정문인 4번 게이트의 문은 구 양키 스타디움의 것을 그대로 본따 만들었으며, 4번 게이트와 6번 게이트 사이에 존재하는 광장을 그레이트 홀(Great Hall)이라 부른다. 넓이가 무려 2,900㎡에 달한다.
- 경기장 내부에 스카이 박스를 겸한 고급 스위트 룸이 있는데 이 갯수가 무려 68개에 달한다.
5.1. 기타
-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먹거리로는 'Lobel's of New York'라는 구장 내에 마련된 정육점에서 만드는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와 쇠고기 샌드위치가 있고, 아예 고급 레스토랑까지 구비되어 있다.
- 외야 일부 좌석을 제외한 좌석은 쿠션이 설치된 고급좌석이다.
- 관중들의 열기가 높기도 유명하다. 구 양키 스타디움 외야석 39번 구역, 현 양키 스타디움 외야석 203구역에 자리하며 열광적인 응원을 하는 Bleacher Creatures라는 집단이 유명하고 굳이 이 무리에 속해있지 않더라도 홈팀이든 원정팀이든 상관없이 폭풍 야유를 한다. 플레이오프에 가면 더 심해지며, 맥주를 던지고 욕설을 하는 팬들이 심심치 않게 뉴스에 오른다.
5.2. 야구 외
- 2014년에 이 경기장에서 NHL 스타디움 클래식이 두 차례 열린다. 뉴저지 데블스 vs. 뉴욕 레인저스와 뉴욕 아일런더스 vs. 뉴욕 레인저스가 그것. 위치상으로는 뉴욕 레인저스의 홈이지만 레인저스가 우리 홈구장 아니면 모두 원정이라고 고집부린 덕에 모두 원정 경기 처리되었다.
6. 둘러보기
[1] 일부 팬들은 데릭 지터가 지은 집(The House That Jeter Built)이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2] 뉴욕 양키스 측이 8억~11억 달러(8000억원~1조 1천억원) 정도를 지불했다고 추정된다. 한편 뉴욕 시 측의 재원은 2012년 올림픽 유치를 대비해서 주 경기장을 짓기 위해서 적립해 놓은 기금으로부터 나왔다. 원래의 계획은 맨해튼의 허드슨 강가에 2012년 올림픽 주 경기장을 짓고 올림픽 후에 부분 개수를 거쳐서 NFL 뉴욕 제츠의 홈 구장으로 쓴다는 계획이었는데 런던과의 유치 경쟁에서 패하면서 계획은 물거품이 됐고, 적립해 놓은 기금은 올림픽 유치 실패를 대비한 플랜 B대로 이 구장과 시티 필드를 신축하는 재원으로 사용되었다.[3] 그 이상을 수용하던 구장이 있긴 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뉴욕 시절 홈 구장으로 썼던 폴로 그라운드는 무려 10만 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크고 아름다운 구장이었다.[4] 정확히는 1976년초에 리모델링을 하여 재개장을 했는데 기껏 리모델링 해놓고 그해 말에 크리스 챔블리스가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에서 우승 끝내기 홈런을 날린후 관중들이 난입하면서 일부가 훼손되어 다시 보수를 해야 했던 일이 있었다.[5] 개장 당시 콜럼비아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루 게릭은 1923년 양키 스타디움 개장 경기에 투수로 등판하여 17K를 기록했다.[6] 메츠 동네인 퀸즈도 빈민가이긴 한데 여긴 히스패닉 중심으로 아시안도 좀 섞인 다인종 빈민가라서, 히스패닉과 아시안 계열이 주 팬층인데 아무래도 흑인, 백인에 비해 숫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시카고의 경우 백인들의 팀 컵스와 흑인의 팀 화이트삭스로 팬덤이 나눠진 경향이 있는데, 양키스타디움의 절묘한 위치가 양키스와 메츠가 그런 구도로 나뉘지 못하게 막아준 것. 물론 뉴욕은 도시의 경제력이 무시무시하다보니 양키스가 절대다수를 먹어도 메츠도 먹고살만한 팀이긴 하다.[7] 전 뉴욕 양키스 버니 윌리엄스의 트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