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프랑스 4590편 추락 사고

 


Vol 4590 Air France (Le vol 4590 d'Air France)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2000년 7월 25일
'''유형'''
기체 외부 파손으로 인한 화재
'''발생 위치'''
프랑스 발두아르 주 고네스
'''탑승 인원'''
승객 : 100명
승무원 : 9명
'''사망자'''
기체 내부 : '''전원 사망'''
기체 외부 : 4명
'''기종'''
Aérospatiale-BAC Concorde
'''항공사'''
에어 프랑스
'''테일넘버'''
F-BTSC
'''출발지'''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
'''도착지'''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관련 다큐멘터리인 (사상 최악의 참사)로 방영한 것이다.[1]
[image]
사고 바로 1달 전인 2000년 06월에 찍힌 기체.
1. 개요
2. 사고기/사고기편
3. 사고
3.1. 발단
3.2. 화재 발생
3.3. 대처
4. 원인
4.1. 콩코드의 설계 문제
5. 이후


1. 개요


2000년 에어 프랑스 소속 콩코드가 이륙 중 일어난 엔진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추락한 사고이다.
이는 콩코드의 유일한 추락 사고로 기록되어 있다.[2]

2. 사고기/사고기편


[image]

F-BTSC(203)은 1975년 1월 31일 첫 비행을 한 콩코드의 첫 양산기이다. F-BTSC는 양산기이지만 최종 연구용 기체의 도면으로 제작되어 인도 전 지속적으로 골격이 보완되었으며 이로 인해 향후 양산된 기체들보다 무겁다. 당시 사고기 F-BTSC는 원래 런치 커스터머가 될 팬 아메리칸 항공에 인도될 예정이었으나 조립 도중 팬암의 주문 취소로 1년 간 인증 및 설계 보완을 거친 뒤 1976년 1월 6일 에어 프랑스에 인도된 기체였다. 사고 전까지 3,978회의 비행을 하였고 11,989시간을 비행하였다. [3] 항공기 재난 영화 에어포트 79의 촬영에 이용된 기체이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수송한 적이 있었다. 또한 1976년 11월에 판매 촉진을 위해 김포공항에 착륙한 전적이 있다.
에어 프랑스 (AF) 4590편은 특별 편이었는데[4] 당시 독일 여행사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전세를 냈기 때문이었다.
당시 AF4590편의 조종사들은 1만 여 시간을 넘게 비행한 베테랑들이었으며, 기장 크리스티앙 마티는 1982년 최초로 대서양을 윈드 서핑으로 횡단한 이력이 있을 정도. 심지어 부기장이었던 장 마르코는 10035 시간의 비행 중 약 2700시간을 콩코드를 운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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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원인 중 하나인 쇳조각이 떨어저 나온 기체.
DC-10컨티넨탈 항공 (CO) 소속 N13067로 사고 당시 편명은 55편이었다. 1974년 3월 18일 첫 비행을 하여 그해 4월 19일 알리탈리아로 인도되었으며 1985년, 1990년 각각 이스턴 항공컨티넨탈 항공에 팔린 적이 있었다. 이 사고 이후에도 잘 운항하다가 2012년 스크랩되었다. CO55편은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까지 가는 정기편이었다.

3. 사고



3.1. 발단


당시 AF4590편은 파리 현지 시각 11시 12분 출발 준비를 시작하였고 12시에는 2번 엔진의 역추진 장치를 수리한다.13시에 승객 탑승이 시작된다.하지만 역추진 장치 고장으로 이륙이 늦어져 15시에 이륙하지 않는다.
결국 AF4590편은 4시 42분 이륙하게 되는데...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한 항공기의 비행 시작이었을 것이다.'''

3.2. 화재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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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콩코드가 이륙하던 26R 활주로에는 바로 직전 이륙한 컨티넨탈 항공 55편이 떨어뜨리고 간 장애물이 있었다. 장애물은 티타늄으로 제작된 엔진 덮개로 밝혀졌으며, 길이 43cm,폭 3cm의 부품이었다. 장애물이 떨어지는 것은 흔한 일일수 있는데, 하필이면 콩코드의 설계 문제가 일을 키우고 말았다.
후술하겠지만 콩코드는 무게 경량화 때문에 플랩과 스포일러(슬랫) 등을 설치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최대한 속도를 빠르게 내서 이륙해야 했는데, 이 경우 타이어가 잘못될 때 주변 부품들이 같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 이 사고의 경우 장애물을 밟은 왼쪽 타이어가 터져버리며 그 파장이 연료 탱크를 직격했다.
직격당한 연료 탱크는 폭발을 일으켰고, 화재가 발생하면서 엔진에도 이상이 생겼다. 연료 누출과 배기가스 유입으로 인해 왼쪽 1/2번 엔진의 출력이 낮아진 것이다.

3.3. 대처


당시 AF4590편은 막 이륙 결심 속도(V1)를 넘긴 상태로, 마티 기장은 이륙 가능 속도(Vr)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비행기를 이륙시켰다. 당시 상황에서 감속이나 착륙은 불가능했다.[5]
조종실에서는 관제탑의 통보로 화재가 발생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항공기관사 계기판에는 2번 엔진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가 점등되었다. 조종사들은 2번 엔진의 화재 스위치를 작동시키고 연료 공급을 정지했으나 계통 문제였을 뿐 실제로 엔진에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음이 사고 조사에서 밝혀졌다.
이륙 직후 속도는 200노트를 오락가락했는데,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조종실에서는 랜딩 기어를 올렸지만 계통 손상으로 랜딩 기어는 올라가지 않았다.
이후 조종사들은 회항 절차를 밟는데, 당시 가장 가까웠던 르부르제 공항으로 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왼쪽 엔진이 계통 손상으로 파워를 내지 못하고, 양력 불균형으로 인해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게다가 계속된 화재로 인해 왼쪽 날개가 녹아내리며 AF4590편은 좌측 100도까지 기울어졌다.
양력 불균형의 심화에 따라 마티 기장은 정상 작동하던 오른쪽 3/4번 엔진의 출력을 줄이지만, 양력을 잃어버린 콩코드는 실속을 하며 추락했다.
4시 44분, 결국 AF4590편은 파리 근교의 오텔리시모 호텔에 추락하고 말았다. 관제탑에 알린 마지막 교신은 르부르제 공항으로 가려 한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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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
이 사고로 기내에 탑승한 승객 100명과 승무원 9명이 '''전원 사망'''했으며, 비행기가 추락한 호텔에 있던 직원 4명이 사망했다.

4.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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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원인중 하나인 쇳조각.
주 원인은 AF4590편에 앞서 이륙한 DC-10인 CO55편의 엔진에서 쇳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을 AF4590편이 이륙 중 밟음으로써 타이어가 터졌고 그 파편이 튀면서 연료 탱크를 직격해 폭발이 발생, 이후 화재로 추락한 것이다.
사고 이후 블랙 박스를 회수하여 조사했을 때는 이륙 도중 연료 탱크에 원인 모를 화재가 일어났고, 이것이 역화하여 엔진이 폭발하였다는 사실만 밝혀졌을 뿐, 정확히 화재가 발생한 원인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활주로에서 발견된 3가지 단서를 통해 사고의 원인을 추측해내는데 성공했다. 활주로에서 발견된 것은 콩코드 이전에 이륙한 DC-10에서 떨어져 나온 티타늄제 L자형 부품 조각, 파열된 콩코드의 타이어 조각 일부, 콩코드의 연료 탱크 조각 일부였다.
이를 통해 영국, 프랑스 합동 조사단이 낸 결론은 고속주행하던 콩코드의 타이어가 티타늄제 부품을 밟고 절단되어 파열되었고, 파열된 타이어 조각들 중 두 조각이 연료 탱크와 전선을 강타했으며, 2개 중 4.8kg의 초대형 타이어 조각[6]이 강타한 연료 탱크에 구멍이 나서, 연료가 누출되었고, 이후 또다른 타이어 파편에 의해 끊어진 전선에서 스파크가 발생, 누출된 연료에 불이 붙었다는 것이었다.
다만 컨티넨탈 항공도 논리는 나름 있는게, 100명은 정원 초과의 과다적재[7] 상태였고 타이어 조각에 강타당해서 연료 탱크가 박살난다면 그런 약한 항공기가 멀쩡한 항공기냐는 식의 논리였다[8] 그래서 이후로는 타이어 조각이 연료 탱크를 부순게 아니라, 타이어 조각이 일으킨 파장이 원인이었다고 논리가 바뀌었다. 어쨌든 그래서인지 아니면 경영난인지는 몰라도 콩코드는 이후 좌석을 일부 빼냈다.
이외에도 설계 문제가 주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부 원인으로는 과적 등이 있었다.

4.1. 콩코드의 설계 문제


물체가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한다.[9] 보잉 2707이 설계를 계속 바꾼 이유도 무게 때문이었다.
콩코드도 이런 이유에서 경량화를 위해 없어도 되는 부품을 과감히 뺐는데, 빠진 부품 중에는 고양력 장치(플랩, 스포일러 등)도 있었다. 그 이전에 수평미익이 따로 없는 델타익 항공기에는 플랩이 있을 수가 없다. 에일러론을 내리면 기수도 같이 내려가서 이륙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다른 항공기들과 달리 지상에서 속도를 최대한 높여서 이륙해야 했다.
이 때 타이어에 문제가 생긴다면 주변의 연료 탱크 및 계통이 연쇄적으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많았다. 이 사고처럼 타이어가 파손될 경우 그 파편이 주변으로 튀면서 다른 부품들을 직격하여 큰 사고로 번지는 것이다.
경량화는 콩코드의 연료 탱크 및 조종계통이 충격에 취약한 이유이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된 준사고가 콩코드 취역 이후로 계속해서 터져나왔다.[10] 이 때문에 미국 NTSB는 부품을 강화하라고 프랑스영국에 권고했지만 이렇게 될 경우 콩코드의 무게가 올라가 빠른 속도를 낼 수 없었기에 개발사는 이를 무시했다.[11]

5. 이후


운항 정지를 받은 콩코드는 2001년 11월까지 전자 장치를 강화하고 신소재를 적용해 연료 탱크[12]나 타이어[13] 등의 부품들의 내구도를 강화해[14] 운항을 재개했다. 특히 영국항공은 예산을 들여 객실을 리모델링하고 좌석을 교체하는 등 나름 새 단장을 시켰다.
하지만 2001년 후반 9.11 테러아메리칸 항공 587편 추락 사고가 연속으로 일어나면서 항공 산업은 쇠퇴하였고 콩코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이제까지 개조해온 비용 문제에 항공산업 암흑기 도래, 낡아만 가는 기체의 유지보수비 증가 까지 합쳐 결국 콩코드는 2003년을 끝으로 운항을 종료하고 말았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컨티넨탈 항공에 사고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며 형사 소송을 제기, 콩코드 제작자들과 정비공들에게도 방조죄를 들어 소송을 걸었다.
결국 컨티넨탈 항공은 유죄, 20만 유로(2016년 현재 한화 약 2억 5천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고 에어 프랑스에 100만 유로(2016년 현재 한화 약 12억 원)를 지급하게 되었는데, 소송이 끝난 게 2010년 12월이었다.
이후 2012년 재심에서 컨티넨탈 항공은 무죄를 선고받지만 70만 유로(2016년 현재 한화 약 8억 7천만 원)를 배상금으로 에어프랑스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컨티넨탈 항공은 2011년에 유나이티드 항공에 인수된 상황.
이 사고로 '콩코드의 아버지'라 불리던 앙리 페리에와 관계자들이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

[1] 썸네일은 이륙 준비 중이었던 한 승객이 촬영한 사진이다.[2] 총 생산한 콩코드 중 보존/처리한 것을 제외하고 사고로 소실된 유일한 1대가 이 항공기이다.[3] 레지넘버 옆 203은 콩코드를 n호기 순으로 분류한 것이다. 001/002기체는 프로토타입 및 첫 비행에 사용됐으며 101/102기체는 연구용 기체로 201/202 형식 인증 테스트 및 완전한 설계를 만들어내는데 사용되었다. 영국항공은 첫 기체로 사고기의 다음 기체인 204기를 받았다. 6대의 연구용 기체는 202호만 1282시간을 기록했고 모두 1000시간 미만이다.[4] 당시 콩코드가 주로 투입되던 본편은 AF001/002편인데 이 역시 행선지가 같다.[5] 이미 기체가 V1을 넘기면 오류가 발생해도 이륙할 수밖에 없다. V1에서 급정지하게 되면 오버런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6] 당시 기술자들이 예측했던, 타이어가 터졌을시 생길 파편의 최대 무게는 1kg였다.[7] 실제로는 100명이 정원에는 거의 맞지만 문제는 수화물.[8] 사실, 항공기가 부품을 흘리는건 꽤나 흔하다. 당장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널부러져 있는 부품을 보자.[9] 물론 중량 대비 추력을 증가시키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쉬운지는 자명하다.[10] 특히 운행 초기에 타이어 펑크 사고가 났는데, 타이어 조각이 '''주익을 관통 해 버렸다.''' 좁은 창문 때문에 승객이 신고를 했음에도 객실 승무원이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결국 조종사가 해당 승객의 좌석에 와서 창문에 얼굴을 붙여서 관측한 후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만약 이를 모르고 그대로 음속 비행을 했다면 기체가 공중 분해될 수도 있었다. 해당 사고도 이륙 중 한 사진가에 의해 사진이 찍혔는데, 주익에서 제트 연료가 유출되고 있었다. 더 문제는 이 사고가 '''운행 첫날'''에 일어난 사고엿다. 즉, 이미 운행 극 초창기 부터 이 기체가 얼마나 민감하고 문제가 발생했을때 위험한 기체인지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는 뜻 이다.[11] 지금이야 경량 고강도 신소재가 많이 나오고 상용화도 많이 되었지만 콩코드가 개발되던 1960년대 신소재는 NASA의 전유물이었으며 NTSB가 권고사항을 보내던 1980년대 신소재는 엄청난 비용으로 인해 상용화도 덜 된 상태였다. 따라서 당시 강화를 하려면 이나 티타늄 같은 중량재를 사용해야 했고, 이 경우 콩코드의 속도가 줄어들어 마하를 넘는다는 메리트가 상실된다. 심각하게는 무거워서 이륙을 못 하게 될 수도 있었다.[12] 방탄 캐플라를 적용.[13] 미쉐린의 새 항공기 타이어를 장착, 팽팽한 고무줄보다 느슨히 당겨진 고무줄이 쉽게 잘리지 않는 점에서 착안한 저인장 타이어가 적용되었다. 이후 이 타이어는 콩코드뿐만 아니라 서방권 기체든 동구권 기체든 다른 항공기들에게도 제공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미쉐린의 주력.항공기 타이어 모델이다.[14] 1990년대 중후반부터 신소재가 점차 상용화된 덕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