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아메리칸 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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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기 항공산업의 선구자이자 항공계의 제국[10] 과도 같은 위치를 차지했던 회사로, 미국을 대표하던 항공 회사이자 문화적 아이콘의 경지에 이른 브랜드였다. 팬 아메리칸 항공(Pan American World Airways)을 줄여서 팬암(Pan Am)[11] 이라 불렀다. 그러나 20세기를 주름잡았음에도 TWA와 같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항공사'''이다.
항공사 콜사인은 CLIPPER다. 이 콜사인 덕에 팬암 항공기는 테일넘버 대신에 Clipper 시리즈로 구분하기도 한다. 오히려 테일 넘버보다는 클리퍼로 부르는 사람이 훨씬 많아 그냥 클리퍼로 검색하는게 더 빠를 정도다. 예를 들어 Clipper Victor(N736PA), Clipper Maid of Seas, Clipper Celestial, Clipper Constitution, Clipper Empress of the Seas... 등등. 참고로 모두 사고에 연루되어 고철이 된 기체들이다. [12]
팬암은 '''"비행기를 이용한 대륙간 국제 여행"'''을 처음으로 실현해낸 항공사인데, 아메리카 대륙 최초로 국제선을 운항하고, 1930년대 초반에는 미국에서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제선을 개척하였으며, 30년대 중후반에는 세계 최초로 태평양 대서양 정기 횡단 노선을 개척하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세계 최초의 정기 세계일주 항공편을 만들고는 1960~70년대에 북극 및 남북극을 민항사 처음으로 운항했다. 기술 측면에서도 ATC, 제트기 미국 최초 도입, 안전 장비 기내에 비치, 객실내 경고등 고안, 프로펠러 엔진 브레이크 설계, 고고도 기상측정, 4발기 도입, 오토파일럿, INS, 광동체 점보기, 위성 전화를 세계 최초로 도입하고 1960~70년대에는 네바다 주에 핵엔진 연구소를 개별적으로 운영했다. 인적 및 자원관리에서도 세계 최초로 승무원 건강검진 및 수트의 의무화, 팬암 아카데미를 통한 승무원 및 파일럿 양성을 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 팬암 전 부문을 군 지원에 트립 사장이 동원해 초기 항공산업의 파일럿은 팬암 출신이며 현재 ATC와 같은 시스템도 팬암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팬암의 라디오 기술이 군 기술보다 앞서 미군의 라디오 통신 기술 또한 팬암의 ATC 기술에 기반을 둔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 민간 GIS 시스템이자 컴퓨터 예약 시스템인 PANAMAC을 도입하고 IATA를 공동 설립하는 등 항공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초반까지 존재했다가(Pan American World Airways, 1927~1991) 죽었다가, 살아났다가(Pan American Airways, 1996~1998) 다시 죽고, 또 되살아났지만(Pan Am Systems 산하 Pan American Airways, 1998~2004) 또 죽으며 사생아를 남기고, 또 살아났다가 (Boston-Maine Airway 산하 Pan Am Clipper Connections, 2004~2008) 죽었다가, 또 살아났다가 (World-Wide Consolidated Logistics, Inc 산하 Pan American Airways, 2010~2012) 또 죽었다가, 또 다시 살아났다가 (Pan American Airways Global Holdings 산하 Pan American Airways, 2012~2014) 죽은 미국의 항공사와 운영주체가 동일한, 두번째, 세번째 팬암의 도미니카 공화국 항로가 따로 떨어져 나온 Pan Am Dominica(2003~2012)와 그것이 2015년에 부활하며 생성된 PAWA Dominica(2015)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파란만장한 죽음과 부활을 영문 위키에서는 '여섯번의 부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정도.
참고로 팬암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이곳저곳에 남아있다. 현재 팬암의 로고와 색상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회사는 (Pan Am Systems)와 그 자회사이자 미국의 클래스 2 철도회사인 팬암 철도(Pan Am Railways)가 있다. 길포드 운수회사가 팬암의 상표와 컬러를 사들이고 항공사업을 벌이면서 Pan Am Systems으로 재탄생했다가 항공사업은 철폐되고 철도가 살아남은 상태다.
2. 항공계를 주름잡던 리즈 시절
Pan American World Airways 시절에는 그야말로 서방세계 최대, 최고의 항공사였다.[13]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여객과 화물 모두 서방세계 1위였던 항공사다. 전성기 시절, 노선망은 전 세계를 돌아 지구를 커버했고, 팬암이 파산한 이후 '''세계 그 어떠한 항공사도 팬암이 전성기 시절 보유한 노선망의 규모를 넘지 못했다'''.[14] 1989년 해외여행 자율화 전부터인 1983년 6월 ~ 1986년 초반 사이에 김포국제공항에도 당연히 취항하였고, 심지어는 냉전 시대에 모스크바와 동구권, 베이징, 상하이에까지 취항했을 정도였다. 또한 이 당시 항공업계에서 팬암은 미국 그 자체로 인식된, 그야말로 미국의 날개였다. 그래서 곧잘 테러리스트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미국의 여객항공산업이 아직 정부의 통제 하에 있던 시절의 덕을 많이 본 항공사로, 국제선에 관한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으며, 노스웨스트와 더불어 1950년대에 이미 태평양 노선을 보유했다. 항공기의 항속거리가 짧았던 시절부터 태평양 노선을 가진 덕분에 도쿄와 홍콩에서의 이원권[15] 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를 활용하여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각 도시에도 거미줄같은 노선망을 구축했다. 이것도 모자라서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럽 각지는 물론이고 서베를린으로 가는 항공편도 운항했다.[16]
그래서 미국의 항공 매니아들은 아직도 팬암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일개 항공사를 뛰어넘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고 항공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의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기까지 한 듯 하다.
3. 역사
팬 아메리칸 항공/역사 문서로.
4. 운항 국가
4.1. 대한민국 취항
대한민국에서 1989년 해외여행 자율화가 시작되기 한참 전인 1983년 6월 18일부터 김포국제공항에 취항을 하던 항공사였으나[17][18] , 해외여행 자율화가 채 시작되지도 않은 1986년에 서울(김포) 노선에서 철수했다. 그래서 미국의 상징이었다는 네임 밸류에 비해, 최근의 항덕들에게조차 아무런 기억이 없는 항공사일 가능성이 높다. 팬암에 대한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당신은 이미 30대 중후반을 넘긴 고도의 항덕이다.
당시 한국 취항 TV광고[19]
(남 NA) : 미국으로 가십니까? 이제 미국 여행이라면 팬암입니다.(팬~암~♬)
매일 미국으로 가는 항공, 팬암.
하와이, LA, 샌프란시스코, 뉴욕. 그리고 다른 주요 도시와 남미까지 단 한번의 수속으로 즐겁고 편안하게 모십니다.
미국을 잘 아는 항공 팬암(팬~암~♬)
(여 NA) : 팬암만의 세계를 경험해 보세요.
80년대 팀스피리트 훈련 등 대형 훈련이 있을 경우 오산 공군기지등을 통해 미군들을 수송한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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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당시의 잡지[20] 광고.
일본 이원권이 있는 관계로 대한민국에는 김포 - 나리타 연결노선을 운항했으며, 록히드의 L-1011을 투입했다. 초기에는 주 3회 운항하다가 이후 매일 운항한 듯. 광고에 기재되어 있는 시간표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리타에서 LA, 뉴욕,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워싱턴 D.C.(나중에 추가) 노선 등을 연결하는 환승 장사를 했다. 그래서 신문광고에는 "동경을 거쳐 모십니다", "동경에서부터 747로"라는 문구가 있었다. [21]
1985년 2월에는 김포 - 샌프란시스코 직항을 신설하였다.
그러나 경영난으로 유나이티드 항공에 태평양 횡단 노선 및 이원권을 매각하면서 1986년 초에 대한민국에서 철수했고, 대신 유나이티드 항공이 이 시기에 대한민국에 입성했다.
이전에도 6.25 전쟁과 전세 편으로 서울(김포)과 부산(김해)에 취항하였다.
5. 미디어
미국의 시대물을 다룬 영상매체에서 비행기 타는 장면이 들어가면 거의 단골로 등장한다.
-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주인공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걸 타고 사기치고 다닌다.[22]
- 007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도 자기 나라 항공사 놔두고 팬암만 타고 다니기도 했다.
-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팬암 로고를 단 우주선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영화가 개봉되던 1968년에, 거의 미국 자체 수준의 이미지로 잘 나가고 있던 회사가 배경인 2001년에서 딱 10년 전에 망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그래도 결국 죽었다 살았다를 두번 더 반복하면서 최종적으로 2001년에는 국내 영세 항공사로나마 살아있기는 했다. 더 이상 World Airways가 아니었을 뿐. 이 영화 이후 70년대에 그려진 일러스트레이션에서는 우주선이 팬암의 로고를 달고 있는 모습이 종종 등장했다.
- 블레이드 러너에 잠시 로고가 등장한다. 해당 문서의 사진에서도 확인 가능. 영화의 배경은 2019년이다. 심지어 2018년 개봉한 30년 후를 다루고 있는 속편인 블레이드 러너 2049에도 등장한다. 블레이드 러너가 개봉시에 처참하게 망했던 탓에 영화에 간판이 등장했던 기업들까지 휘청거리거나 망했다는 '블레이드 러너의 저주'라는 말이 떠돌았는데, 팬암은 그 속설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었다. 하지만 팬암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이미 블레이드 러너가 개봉하기 전부터 팬암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 영화 사이공 탈출(Last Flight Out)은 베트남전 막바지 남베트남이 함락되기 직전 남아있던 사람들이 팬암의 마지막 항공편을 통해 베트남을 탈출하는 긴박한 실화를 다룬 TV 단편이다. 제임스 얼 존스가 팬암의 베트남 지사장 역으로 나온다. 1995년 경 SBS에서 '사이공 탈출'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했었다. 관련 실화/영어
- 공각 기동대 실사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에도 잠시 로고가 등장한다. 블레이드 러너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초반부에서 로만 폴란스키와 샤론 테이트 부부가 런던에서 돌아올 때, 그리고 이후 주인공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가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돌아올 때 팬암 747기를 타고 온다.
- 미국 언더그라운드 록 밴드인 실버 애플스 2집 Contact 앨범 커버에 팬암 항공기 조종석이 나왔는데, 팬암에서 너고소해 밴드가 해체되고 말았다.
5.1. 드라마화
2011년 9월 25일부터 2012년 2월 19일까지 미국 ABC에서 1960년대 일명 "제트에이지" 때의 바로 이 팬암의 위용과 그 곳에서 일하는 조종사들과 젊은 스튜어디스들의 삶을 소재로 한 시대극 "'''Pan Am'''"을 방영했다. 총 14부작. 홈페이지
주된 평가는 시대 재현 자체는 잘했지만 실제 역사의 사건들과의 링크와 첩보 플롯은 아무래도 억지스럽다는 평이다. 파일럿(...)부터 약간 막장드라마의 스멜도 난다. 그래도 항덕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23]
주연중 네임드는 크리스티나 리치 혼자였다가 로라 역의 마고 로비가 이 드라마 이후 뜨고 있다. 이 때문에 CG와 의상, 세트 등등에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다른 네임드 배우를 섭외할 수 없었다는 얘기가 신빙성있게 들린다(…). 연기자들의 연기력은 나쁘지 않으니 오히려 제작사 입장에서는 다행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 리치가 맡은 매기 역은 사무장이다(…). 케이트 역의 켈리 가너는 위에도 언급된 에비에이터에 조연으로 나온다. 기장 딘은 폭풍우속에서 카이탁 국제공항에 착륙하는 먼치킨이며, [24][25] 부기장 테드 역시 해군 테스트 파일럿 출신에 빽도 빵빵하다. 케이트는 CIA에 선택될 정도로 능력있고 로라는 라이프 잡지의 표지모델이 되었으며 매기는 15개 나라 말로 맥주를 주문할 수 있다(…). 먼치킨들만 탄 비행기에서 제일 안습인 캐릭터는 콜레뜨[26] 이다.
방송기간 동안 시청률이 정말 꾸준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항덕들은 종영되지만은 않기를 바랐으며, 소니가 워낙 투자한 돈이 많아서 그럴 일 없다는게 중론이었다(…). 그리고 워낙 타임슬롯 자체가 셌다. CSI : Miami, 워킹 데드, 그리고 '''선데이 나잇 풋볼'''.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인지(...) 아이튠즈 스토어를 통해 2011년까지의 방영분인 에피소드 9까지 무료로 배포한적도 있었으나, 결국 6월 20일 ABC가 시청률 저조로 종영시켰다
항덕들이 많이 봐서인지 영국항공 광고도 나왔다.
국내에서도 채널A를 통해서 방송되었다. 국내 방영 홈페이지
6. 관련 문서
- 테네리페 참사
- 팬암 103편 폭파 사건(일명 로커비 테러)
- 팬암 73편 납치 사건
- PFLP 동시다발 하이재킹 사건[27]
- 캐치 미 이프 유 캔: 주인공이 팬암 파일럿을 사칭.
- 블레이드 러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먼 미래에도 팬암이 살아있다!
7. 사진들
[1] 약칭 Pan Am(팬암) [2] IATA 창설 기업이다.[3] 참고로 BCC는 first sequence가 20부터 시작하는데 20번은 바로 보잉 자체 코드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BCC 전체 1번을 가졌다는 의미. 한때 보잉의 계열사였던 유나이티드 항공도 22번인 것을 고려하면 당시 팬암의 위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4]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바로 이 시기가 연말로 접어들어 대규모의 소비가 이루어지는 대목 기간이었다. 바로 앞의 블랙 프라이데이로 시작되는 쇼핑 황금기에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않는 세모가 가까운 때였기 때문에 이로 인해 실직해야 했던 직원들은 그야말로 눈물의 연말연시를 보내야 했다. [폐업당시] A B [5] 팬암이 두 SST 모두를 처음으로 구매했지만 팬암의 취소를 시작으로 영국항공과 에어프랑스를 제외하고 몇 일 이내로 경제성 문제로 모두 취소한다, 사실 에어프랑스와 영국항공도 자국에서 개발하지 않았다면 불확실성을 감내하며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6] 사실 이 회사가 사라지던 당시까지만 해도 항공 동맹의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첫 항공 동맹인 스타얼라이언스가 결성된 해는 팬암이 폐업하고 6년이나 지난 뒤인 1997년 5월의 일이었다.[폐업] 당시[7] "당신은 경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조금 의역해 보자면, "당신은 이보다 더 좋은 경험을 하실 수는 없습니다.", "최고를 경험하실 것입니다" 정도 되겠다.[8] 디 플뤼겐 베를린. 독일어로 “베를린의 날개”라는 뜻이며 1980년대에 한해 독일 내에서만 사용되었다.[9] 80년대부터 폐업까지 쓰인 슬로건인 '''You Can't Beat The Experience. Pan Am'''은 영상 17초 즈음에서부터 들을 수 있다. [10] 괜히 이런 별명이 붙여진 것이 아니다.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중동항공도 팬암의 자회사였고, 남미에서 가장 큰 항공 그룹인 아비앙카 항공 외에도 아에로멕시코, 멕시카나 항공, 바리그, 쿠바나 항공, 코파 항공등 대부분의 중남미 항공사들이 팬암과 운항국가간의 합작법인 형태나 팬암이 운영하던 노선을 부여받아 탄생하였다. 현재 아시아에서 브랜드 벨류와 수송인원이 가장 높고 많은 중국 3대 항공사의 전신인 중국민항도 중국의 공산화 전까지 팬암과 중국정부간의 합작법인이었다. 이때 대만분 지분이 빠져나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때 군수물자를 나르던 플라잉 타이거로 인수되었으며 후에 현재 전세계 최대 화물 항공사인 FedEx Express가 된다. 이후에도 파산시기 현재 유럽에서 가장 큰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와 미국의 3대 플래그 캐리어인 유나이티드 항공, 델타항공, 아메리칸 항공과 그에 인수되었지만 한때 미국 양대 플래그 캐리어였던 TWA에도 인수되었다. 또한 파산 23년 후 팬암의 교육기관이었던 팬암아카데미는 일본 최대 항공사인 전일본공수에 인수된다.[11] 실제 미국에선 팬 에이-엠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음[12] 비슷하게 영국항공의 콜사인도 Speedbird이며, 영국항공과 그 전신인 BOAC의 별명으로도 쓰인다.[13] 세계 1위는 아니었다. 소련의 국영 항공사로 소련 국내선을 독점한 아에로플로트가 넘사벽의 세계 1위였다.[14] 2010년 델타 항공이 자회사였던 노스웨스트 항공을 꿀꺽하면서 이 당시 팬암의 노선망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델타 항공 2016년 12월 기준 자체 운항은 57개국, 코드셰어 포함 88개국, 유나이티드 항공은 2016년 상반기 기준 코드셰어 73개국,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를 운영하는 에미레이트 항공이 2016년 상반기 기준 코드셰어 포함 81개국, 팬암은 1968년 최전성기 시절 자체 운항 86개국.[15] 두 나라 사이의 항공 협정에서 협정 상대국 내의 지점에서 다시 제3국으로 연장하여 운항할 수 있는 권리. 이 이원권은 1985년 말 팬암의 태평양 횡단 노선을 인수한 유나이티드 항공에 계승되었다.[16] 동독 영공에는 서독 항공기가 민항기 조차 진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루프트한자 대신 팬암이나 에어 프랑스 등의 외항사들이 서베를린행 서독 국내선을 운항하는 웃기는 일이 40년 간 이어졌다. 이 때 서베를린 서비스를 위해 미국에 설립한 유령회사 하나가 나중에 크게 성장하다가 39년 뒤에 파산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17] 가끔씩 TV 광고나 신문에 전면 광고까지 하기도 했다. 아무나 비행기를 못 타던 그 시절의 대한민국에서…. 당시 비행기를 탈 정도이면 해외 출장을 다니는 사람이거나, 대단한 부유층 내지는 권력자 뿐이었다. 이후 어느 정도 자유화가 되기는 했지만 이 역시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다. 지금처럼 몇 만원이면 여권이 발급되고 해외 어디나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고작해야 30년을 겨우 넘었다. 그래서 당시 국내에서는 이를 대리만족하는 시설들이 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18] 취항 시기도 유럽 항공사 최초로 입성한 에어 프랑스보다 1달 빠르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현재도 운항하고 있다는 점.[19] 이후 1986년 초에 한국 노선에서 철수하게 되면서 한국에서 방영된 팬암의 TV광고와 바로 아래의 잡지 광고, 심지어는 아래에 언급한 신문 광고조차 결국에는 처음이자 마지막 광고가 되었다.[20] 신문은 갱지를 사용하기에 저렇게 종이 색이 밝을 수 없다. 후면에도 상당히 큰 글자로 광고가 있는 것으로 보아 잡지가 맞다.[21] 잘 읽어보면 '''동경'''에서부터 747이다. 거짓말이 아니긴 하다.[22] 재밌게도 디캐프리오는 <에비에이터>에서는 팬암과 싸우는 항공사 (그리고 영화사) 사장인 하워드 휴스를 연기하게 된다.[23] 최초 한글 자막을 어떤 항덕이 만들어서 디씨인사이드 항공 갤러리에 최초로 올렸다. 기타미국드라마 갤러리에서는 대단히 신기해하는 중이다. [24] 사실 먼치킨이라고 띄워주기도 좀 그런게, 측풍이 너무 심해 활주로 옆 바다로 기체가 떨어질 뻔했다. 100명이 넘는 승객을 태운 비행기의 기장으로서 상당히 무모한 행동을 한 셈. 당장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보통 이렇게 기상이 지나치게 악화된 경우 부기장의 건의에 따라 복행하든지, 또는 다른 공항에 착륙했어야 했다. 적어도 부기장보고 닥치고 가만 있으라고 할 상황은 분명 아니다.[25] 더군다나 7화에서는 부기장과 기관사가 잠시 조종실을 떠난 사이에 여승무원인 콜레뜨를 부기장 자리에 앉히고 조종간을 넘기기까지 한다! 이쯤되면 심각한 안전불감증이라고밖에 할 말이.. [26]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포함한 4개 국어를 할 수 있는데도! 하지만 어리숙한 로라, 드센 성격 덕에 종종 실수를 하는 매기, 동생에게 콤플렉스를 가진 케이트에 비해 가장 무난하고 성숙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27] 납치된 기체들 중 하나가 팬암의 747이었다. 이후 납치범들에 의해 납치된 다른 기체들과 함께 폭파됨[28] 이 당시에는 이미 파산하기 직전이었다.[29] B747의 첫 시드니 운항에 찍힌 사진이다. [30] 착륙하는 항공기는 보잉 747, 유도로에 있는 항공기는 보잉 707으로 추정되는 기종이다. 꼬리날개의 형상으로 보아 DC-8과는 다르다.[31] 사진 속 비행기는 DC-8이다. [32] 해당 항공기는 보잉 707이다. [33] 해당 기종은 DC-10으로, 팬암의 DC-10은 1980년에 합병한 내셔널 항공에서 가져온 것이다.[34] 해당 기종은 L-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