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세대

 

1. 개요
2. 특성
2.1. 급격한 변화를 겪은 세대
2.2. 저출산 세대의 시작과 성비 불균형
2.3. 청소년기부터 경쟁의 심화
2.4. 정치•외교적 태도
3. 관련 문서


1. 개요


한국전쟁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이다. X세대의 다음 세대로 19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에코는 영어 단어 echo에서 온 것으로 베이비 붐이 가져왔던 현상에 대한 메아리(echo)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저출산 시대를 시작하는 세대이다.[1]

2. 특성



2.1. 급격한 변화를 겪은 세대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따른 과실을 어렸을 때부터 향유했으며, 궁핍했던 경험을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난을 겪어본 기성 세대들과 문화적 괴리가 심해, 성장 과정에서 교육 정책의 혼선이 빚어지고[2] 사춘기 또는 대학생 시기에 외환위기라는 급격한 사회 변동을 겪으면서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정글자본주의가 몸에 배어서, 소위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3] 사회 전반적으로 극단적인 변화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 실력을 스스로 가장 중요시하는 특성이 있다. 점차 개인주의가 확산되는 와중에도 기성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군대 문화와 술자리 문화의 악습이 짙게 배어 있고, 학창 시절에는 카세트 워크맨브리프(속옷)의 영향권에 있었으며, 1990년대 초창기 아이돌 문화를 청소년기에 접한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현재의 미성년자들과 다르게 어린 시절에 카세트 테이프 등 아날로그 문화 또는 패미컴, PC통신, 모뎀 연결 인터넷 등 초창기 디지털 문화를 접했으며 PC통신 문화 이후 디시인사이드, 웃긴대학을 위시로 한 대한민국 인터넷 문화의 성립 및 변화의 주역이기도 하다. 2000년대 후반,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에코 부머(1979년~1985년생)의 다음 세대가 태어나고 있다. 또한 요즘 들어서 이 에코세대를 대상으로 한 추억 마케팅도 틈새시장에서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다.[4] 물론 이것들은 X세대의 추억 마케팅에 해당되기도 한다.

2.2. 저출산 세대의 시작과 성비 불균형


또한 정부 주도의 산아 제한이 한창 진행 중일 무렵의 출생자 세대이기도 하는데[5] 인구 수의 경우 출생 연도 별로 차이가 극심하다. 이른바 2차 베이비부머 세대로 불리는 에코 부머 세대는 수가 80만 명을 넘어가며 90만 명을 넘긴 경우도 있으나 이해찬 세대(1983년~1984년) 때부터 출생아 수는 급감하였고, G세대(1985년~1987년)의 막둥이인 1987년생[6]의 경우 출생아 수가 고작 62만 명으로 사실상 저출산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1998년생(63만 명)보다도 적다.
이 와중에 가장 큰 문제는 당시까지 남아 있던 남아선호사상과 급격히 발달한 의학이 짬뽕을 일으킨 '아이 골라낳기'였다. 예전 같았으면 '남자애가 나올 때까지 낳는다'에서 '검사 후 여자애임이 밝혀지면 지우고 새로 낳는다'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 문제는 주로 1986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출산율 감소를 확대했고 극심한 남녀 성비 불균형까지 일으켰다.

2.3. 청소년기부터 경쟁의 심화


이 뿐만 아니라 수능 초창기 + 본고사 폐지 + 널뛰기 수험생 숫자 + 대입제도의 혼란상(이해찬 세대의 경우)[7] + 급격하게 상승한 대학 진학률이 시너지를 일으켜 대학 졸업 이후 다시 취업난을 겪기 시작한 사실상 첫 세대이기도 하다.
실제로 말 그대로 '에코 세대'이기 때문에 베이비부머 세대의 인구증가에 영향을 받아 잠시간 이 세대의 인구 자체가 일시적으로 증가한 세대이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60만대로 완만하게 감소추세였던 인구는 출산율의 큰 변화 없이 91년도부터 95년까지 70만명대이다가 99년도까지 60만대 초반으로 완만히 에코세대가 끝나간다. 그리고 3년 뒤인 2002년도에는 바로 신생아 수 40만명 세대로 진입한다(...) 문제인 것은, 이들이 사회진출할 시기에 베이비부머들은 은퇴를 안함 + 사회 진출을 하려는 또래들은 엄청 많음 + 사회는 경제성장률 둔화로 준수축국면으로 들어감[8]설상가상의 상황이라는 것. 한 마디로 취업난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인구통계학적, 사회적 배경을 타고난 이들이다. 실제로 에코세대를 정점으로 그 이후는 베이비부머들이 슬슬 은퇴하기 시작하고 90년대 한 때 70만대를 찍었던 세대 인구 수가 가파르게 내려와(어느 정도로 가파르냐면, 1995년 기준 신생아수가 71만 5천명인데 그로부터 10년 후 05년생 신생아 수가 43만명이다.) 취업난이 조금이라도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고, 실제로 2006년부터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접어들고 저출산 문제로 시름하는 일본이 겪었던 일이다.
특히 에코세대는 관점에 따라 전세대인 86세대와 후세대인 에코붐 세대보다도 더한 상황에 놓여 있는데, 경제 호황 시기에 비교적 쉽게 취직하여 순조롭게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쌓았던 전자와 지독한 취업난을 마주하여 처음부터 포기하고 니트족, 욜로 등 다른 삶의 방식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난 후자와 다르게 이들은 부모세대를 따라 사회초년생 티를 벗고 사회에 정착해갈 즈음부터 후세대와 함께 고용불안과 직업 감소에 따른 경쟁이 더 심화되었다는 점이다.[9] 즉, 이들은 어려운 취업문을 뚫어서 정규직으로 취업하고 사회적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집, 자동차, 결혼 등 여러 초기비용을 들여갔는데,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자동화 등의 사회 변화로 기업들이 전반적인 T/O를 축소하여 명예퇴직 연령이 점점 낮아지면서 그만큼 상위 자리로 올라가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진 것. 거기다 이런 초기비용들도 시간이 갈수록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자비로 마련하기 쉽지 않아 보통 대출 등을 받아 마련하기 때문에[10] 그대로 주저앉으면 말 그대로 빚쟁이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2.4. 정치•외교적 태도


대북성향도 연령대에 비해서 제법 적대적으로 베이비 붐 세대들과 가장 많이 공유할 정도다. 적대적 대북관의 원인은 부모 세대의 영향과 함께 주로 미디어를 통해 경험한 북한의 참담한 실정과 대남도발 때문으로, 고난의 행군기의 북한의 실상을 각종 매체와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목격했으며, 햇볕정책을 통해 이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친숙함을 느낄 즈음 북핵, 서해교전 등을 포함한 지속적이고 잦은 대남도발로 인한 강한 배신감 등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소위 퍼주기 논리가 적극 작용한 바가 크다.[11] 이런 관계로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우리가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란 논리와 함께 그들을 억압하는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이다.
이로 인해 NL계열 운동권이 주장하는 반미 통일 노선에 대해서도 반감이 있는 동시, 되려 미선이 효순이 사건 같은 이슈에 적극 참여하는 등, 반미감정도 없지 않은 복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향도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월드컵의 개최와 4강 신화로 민족주의 감정이 고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학창 시절 경험한 역사바로세우기의 영향도 매우 크다.
또한 이 세대부터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적대적인, 안티페미니즘 성향을 뚜렷하게 띠는 남성들이 많아지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전 세대들과 달리 성장 과정에서부터 남녀간의 차별이 거의 없어진 세대인데다가 사회 각계에서는 오히려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더 많아졌음에도 아무런 보상이 없는 병역 의무를 남성들만이 지는 불합리함은 여전한데다가 여성들에게는 온갖 혜택이 돌아가는 반면 남성들은 사회적 혜택이나 배려가 전무한지라 이에 대한 반감을 갖는 남성들이 이 세대를 기점으로 확연하게 많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또한, 그와 반대로 이 연령대의 여성들 사이에서는 페미니즘 열풍이 유행처럼 불어서 앞의 남성들과는 다르게 생각하여 성별갈등을 보유한 세대가 되기도 했다.[12] 2016년 이후 다시 불어온 페미니즘 열풍, 미투운동, 몰래카메라 공론화, 소라넷 검거사건 등 에서 대학가를 버티고 있던 이들이 바로 90년대 출생 여성들로 상당수가 페미니즘과 비혼주의 등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기도 하다. 또한 메갈리아, 워마드 등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도 상당수가 90년대생들이다. 다만 페미니즘 열풍이 불 당시 해당 연령대의 여성들은 이미 상당수가 기혼자이기 때문에 이후세대인 90년대생들에 비하자면 그나마 덜 한 편이다. 이와는 별개로 비혼에 대해서는 이 세대부터의 여성들은 남성들과 거의 비슷한 사회적 성공에 대한 가치관을 주입받고 실제로 극심한 경쟁을 거쳐 꽤 높은 정도의 학력을 보유하게 된 세대이기 때문에 임출육 등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으로 본인이 커리어를 쌓기 위해 투자해온 것들이 부정당하는 것을 꺼려하면서 이들 중에 비혼주의로 가거나 비혼이 아니더라도 출산, 육아는 꺼리는 이들이 많아진 탓도 크다.

3. 관련 문서



[1] 1983년생부터 2.1명 이하로 감소[2] 대표적으로 6차 교육과정과 '이해찬 세대'[3] 그래서 이들 세대는 스스로를 '''IMF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4] UV 및 인디뮤지션 기린,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5] 1980년대에 제작됐던 공익광고 중에는 가족계획 실천을 권장하는 내용이 종종 나왔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축복 속에 자녀 하나 사랑으로 튼튼하게" 등의 구호도 이 때 등장했다.[6] 1987년생은 1992년생보다 11만 명이 적으며, 1982년생보다 22만 명이나 적다.[7] 2000학년도 대입 수능은 86만 명 정도가 응시하며 역대 최고치를 찍었으나 출생아 수가 점차 줄어들다가 1983년(2002학년도 대입 수능 응시자) 77만 명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여 1987년에는 62만 명까지 떨어지며 2006학년도 수능 응시자 수는 역대 최저치를 달성했다. 참고로 에코 부머 세대의 당시 인구는 83~87만 명 정도 된다.[8] 베이비부머 세대는 신생아 100만 시대로 절대수자체는 에코세대보다 훨씬 높았으나 그들이 사회진출할 때 즈음에는 한국경제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미친 듯한 확대 국면을 보이고 있던 상황으로,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취업난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9] 특히 이들이 취업적령기였던 2000년대는 1997년 외환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직후였다.[10] 특히 2020년에 들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인한 경제 침체와 문재인 정부의 빈번한 부동산 정책 변경이 겹치면서 이들 세대를 중심으로 아파트 공황 구매가 발생하고 있다. 비싼 집값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해 영끌 대출이란 말이 나올 정도.[11] 햇볕정책 이전부터 정주영회장의 소떼 방북 직후 일어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지속적으로 북한의 화전양면 전술이 적극적으로 전개된 것도 매우 크다.[12] 하지만 본격적인 성별갈등 세대는 바로 밑세대인 에코붐 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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