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생
1. 개요
1980년부터 1989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대학 학번으로 치면 98학번[1] ~09학번[2] 으로, 미적분을 배우지 않은 문과생 대부분이 여기에 들어가며,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정규 과목으로 배운 세대는 30대 이하이다. 또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마지막으로 사회탐구 영역과 과학탐구 영역을 동시에 치른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 세대부터 기존의 남초 학과들의 성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또한 교육 통계가 작성된 이후 가장 고등교육을 많이 접해 학력이 우수한 세대이다. 실제로 2008~2011년의 대학 진학률은 앞선 세대와 뒷 세대에 비해서 월등하게 높다.[3]
과거에는 본격적으로 기성세대에 돌입하는 단계라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평균 수명이 증가하고 졸업, 결혼, 취업, 출산 등의 큰 일을 겪는 시기가 전보다 늦어진 2010년대 중반부터는 30대 초반도 청년, 아가씨로 통하는 추세다.
2. 한국
2021년 현재 1980년생이 40~41세가 되었고, 1989년생은 30~31세이다. 2021년 기준 점차 부모 세대가 돼간다.[4] 또한 1980년대생은 2000년대 후반생[5] ~ 2020년대 초반생의 부모 세대이며 이들은 대부분 1950년대생~1960년대 초반생의 자녀이다. (7n학번~8n 초반 학번이라는 부가설명이 있었으나 50~60년대생은 대학 진학은 커녕 중고등학교 진학도 못 한 분들이 많으시다. 대학진학하신분들은 일부 엘리트들이다. 특히, 서울이나 지방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은 10여명의 남매 중 1명이라도 고등학교 졸업하면 뒷바라지 잘한 정도였다. 부모세대의 대학진학율은 약20%, 80년대 초중반생의 대학진학율은 약70~80%) 이 세대부터 대학생들이 졸업할 때 전과기록을 가지고 졸업하는 경우가 1% 미만으로 추락했다.
1980년~1981년생은 40~41세로 마흔의 나이가 되었으며 1982년~1984년생은 37~39세로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이며 1985년~1987년생은 34~36세로 좀 애매한 30대 중반, 그리고 1988년~1989년생은 32~33세로 30대 초중반을 보내는 중이다. 여성 기준으로는 1987년~1989년 출생 이후 여성 상당수가 기혼자이며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이 이 나이대에 있다.
국내에서 핵가족이 보편화된 게 이 시기로, 산아 제한이 급속도로 성행하고 저출산 사회로 진입한 때도 이 시기이다.[6]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고 했을 정도. 그래서인지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형제 수가 4명이상인 집안이 거의 없으며,[7] 외동이 흔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낙태 기술이 들어오고 남아 선호 사상때문에 여아낙태 붐이 시작된 것도 이시기이다.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돼 90년대 초에 절정에 달하고 2000년 중반에야 겨우 자연성비로 돌아왔다. 이때문에 1990~2000년대 남녀공학인 학교에서 반별로 보면 대부분 남자가 더 많은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여자가 없어서 남자끼리 짝을 짓는 경우가 보통 4~6쌍 정도가 흔했다.
물론 이제는 100세 시대로 50대부터 중년 취급이라 아직까지 이 정도 나이대는 젊은 층 맞다. 현재 50대 및 60대부터 본격적인 중년층으로 분류되는 게 요즘 시대로 평균수명이 급속히 늘어서 예전과는 다르다. 요즘 시대에는 한 세대 위인 1970년대 중후반 생도 젊은 층 취급을 받는다.[8]
전두환, 노태우 단 두 사람이 집권했던 민정당의 보수정권 하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세대들이다. 1980년 1월 1일생 ~ 1980년 8월 16일 이전 생까지만 최규하 정부 때 태어났다.
이후 1980년 9월 1일생 ~ 1988년 2월 24일 이전생들이 전두환 집권기 때 태어났고 1988년 2월 25일 ~ 1989년 12월 31생까지가 노태우 집권기 출신들이다. 이후 1980년대생들이 10대나 유년 시절에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를 겪었고 청소년이나 20대 시절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겪었다. 그러다가 20, 30대로 완전히 진입 후 다시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고 현재 30대~40대 초반으로 완벽히 진입한 지금은 문재인 정부를 겪고 있다.
베이비붐(1950년대생, 1960년대생)의 부모를 둔 세대이다.[9] 이들 중에선 상당수는 기혼자이며 자녀가 유아기나 초등학생 저학년인 사람이 많으나, 자녀가 초등학교 중~고학년, 중학생 심지어는 이미 고등학생이 된 자녀를 둔 부모도 있다.
이들 일명 '''이해찬 키드'''들의 경우는 막 성인이 되던 차에 IMF 외환위기가 터진 조금 안습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도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는 모토 하에 헛된 기대와 함께 널럴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02~04학번들이다. 2021년 기준으로 1983년~1985년 사이 일명 이해찬 키드들은 이제 더 이상 청년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세대이다.[10] TV에서 청년으로 등장하는 세대는 주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즉 1987년~1993년 출생자들로 1983년~1985년생은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한 중견으로 취급 받는다. 실제로 직장 등에서도 어느 정도는 짬이 찬 관리자 정도 직위다.
군경 및 소방공무원의 경우 군 장교단은 대위~소령 사이 계급, 부사관단은 상사 계급이 이 때 출생자들이다.[11] . 경찰공무원 중 간부후보생/ 경찰대학이 아닌 비간부 출신은 이 나이대에 경사 및 경위를 빠르면 달기 시작한다. 소방공무원도 최소 반장급이고 좀 빠르면 소방위로 119구조대 대장 등을 달기도 한다. 대학교의 경우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은 대개 이 때 사람들이며 1983년생 정도면 교수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 정도 나이면 꽤 젊은 교수 맞다. 여성의 경우는 사회진출이 빨라 빠르면 매니저 정도 직급을 달고는 있고 남자는 이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경우도 꽤 있다.
1985년생까지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이기도 한다. 이들은 당시 3세 ~ 8세(국민학교 2학년) 아동이었다.
또한 TBC 동양방송이라는 채널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는 세대들[12] 이자 3개의 KBS 채널을 태어나자마자 접했던[13] 세대들이다. TBC가 KBS에 합병되어 KBS 2TV로 바뀌었고 EBS가 독립 전이기 때문에 KBS 1TV와 2TV, 3TV를 시청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대[14] 에 가서야 SBS, 지역민방, 케이블TV, 위성방송을 접하게 된다.
청소년기[15] 에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 H.O.T., 젝스키스, S.E.S., 핑클로 대표되는 1세대 아이돌 그룹들에 열광했다. 심지어 농구대잔치 때 연세대와 고려대 등 대학팀 선수들에게도 열광했다. 거기에 국민영웅인 박찬호, 박세리의 활약을 누구보다도 많이 기억하는 세대고, 2002월드컵 같은 경우는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턴 한국에서 끼니를 자주 곯았던 부모세대에 비해 가장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라고들 하는데 사실 90년대에도 빈부격차, 도농격차가 커서 단칸방이나 슬레트집에 사는 가정이 많았다. 보온밥솥, 텔레비젼, 카메라가 없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 80년대생이 국민학생이던 90년대에도 여전히 가정형편 조사(+촌지 수금 사전조사)가 있었다. 다만, 분명 70년대보다는 절대적으로 향상된 것이 끼니를 거르는 아동이 많이 줄어들었고 무엇보다 호황이었기에 부모세대의 경제활동이 (지금과 비교해서 육체적,정신적으로 매우 고되었지만) 활발했다.
한창 3저 호황을 누리고 올림픽이 개최되던 시절에 태어났으며, 교양만화가 이원복 교수 견해에 따르면 "이전 세대가 겪던 배고픔과 가난을 모르고 경제성장의 풍요로움과 민주주의를 맘껏 누린 세대"이긴 하다.[16] 고 하지만 이원복 만화 내용이 그렇듯 100% 일반화시킬 수 없다. 아직 가정과 학교에서 군대문화가 뿌리깊게 남아있었기에 80년대생이 민주주의를 맘껏 누린 것은 아니며, 엄격한 규율과 통제, 일상적인 구타가 만연했다. 그래도 이전 세대에 비하면 모르는 것도 맞고 맘껏 누린 것도 맞긴 하다.
날 때부터 '일본 문화'를 일상적으로 접한 세대이기도 한데, 슈퍼 그랑죠, 피구왕 통키, 나디아, 시간탐험대, 꾸러기 수비대, 천사소녀 네티, 소년기사 라무, 선라이즈의 용자물들, 세일러문, 웨딩피치, 마법기사 레이어스, 모노노케 히메, 슈퍼전대, 울트라맨, 시공전사 스필반 등 그 외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특촬물들을 보고 자랐고 청소년기 들어선 부산항을 통해서 음성적으로 들어온 일본산 잡지나 음반, 게임 등지에까지 손을 대기도 했다. 초중딩 여자애들은 DanceDanceRevolution을 했다. 어린 세대가 울트라맨은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 이 세대는 울트라맨 80, 울트라맨 타로 등이 한국에 정식 수입 발매된 시기라 울트라맨을 잘 알며 추억하고 있다. 80년대 후반생 ~ 90년대 초반생은 피카츄, 90년대 후반 이후생은 뽀로로라면 이쪽은 꿈돌이를 추억한다.
1989년생을 제외하면 이들은 국민학생이었던 적이 있는 세대이다다. 국민학교였던 시절부터 초등학생 시절까지 일부는 교실 중앙에[17] 땔감을 연료로 쓰는 난로가 있었으며[18] 교내의 복도는 나무로 되어 있어 기름걸레, 왁스 묻힌 손걸레로 광을 내는 것이 주에 한 번은 있었다. 반 평균 40~60명, 학년 평균 10~12개 정도의 반을 가졌던 학창시절을 보냈고, 저학년의 경우 교실이 모자라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한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둘 다 다녔다. 보통 1983년생까진 국민학교, 1984~1988년생은 과도기, 1989년생부터는 초등학교다.
어릴때는 동네 놀이터에서 다방구, 얼음땡 등을 즐기고 골목에서 딱지와 줄팽이를 돌리던 세대이며 청소년기에는 방과후 오락실 및 피시방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즐겼다. 스트리트 파이터 2는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로 유명했다. 80년대생과 생년이 같은 네임드 과자들이 많았다. 다만, 도로나 철도 등이 현재보다 미비하여 당시 유통의 한계로 인하여 테레비에서 선전하는 신제품들을 지방도시에서 접하려면 2~3개월 기다려야 했다.
더불어 학창시절 12년을 통틀어서 스마트폰이 아닌 오락실과 PC방을 공유한 세대이다. 1992년 ~ 1997년 까진 오락실 이 대부분이다가 1997년 IMF 이후 1998년에 출시한 스타크래프트가 인기를 끌며 1998년 ~ 1999년도에 전국적으로 pc방이 유행하며 오락실과 경쟁을 거쳐 이후 2000년 초반엔 대세가 되었다.
1998년부터 시작된 pc게임의 전성기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한민국 인터넷의 1세대를 청소년기에 몸소 겪으며 수 많은 포털 등 사이트와 메신저의 흥망을 함께했던 이들이다.[19] 이와 함께 IT기업들이 기존의 물질로서의 재화가 아닌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여 순식간에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신흥 재벌이 되는 모습을[20] 학창시절에 보고 자란 이들로서 현재 인터넷을 활용한 사업을 벌이는 이들이 대부분 이 세대이다.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첫 세대이기도 하다. 휴대용 카세트와 mp3/CD플레이어를 거쳤고 디스켓이 CD로, 다시 USB로 변했으며 패미컴에서 가정용 PC나 콘솔 게임기 등으로의 변화를 겪었다. 1980년대생부터 본격적으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등장하게 된다. 70년대생인 신주영부터 시작해 1980년생인 쌈장 이기석, 그리고 이스포츠의 전설인 임요환 등이 나오기 시작한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1998년에 등장해서 그 당시 10대인 80년대생들이 즐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흔히 외계어로 불리는 인터넷 신조어를 처음 사용한 세대이다.
이들이 초등학교 무렵인 1992년~2001년에는 아직 1980년대의 대학 만능주의가 만연했었지만 중학교 무렵엔 대입경쟁과는 모순되게도 열린 교실[21] 이라는 모토하에 학생들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허나 이는 몇년만에 다시 대입만능론으로 회귀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시절에는 인문계와 실업계로 편을 가르며 실업계는 성적이 부족한 학생이나 가는곳으로 가르치는 풍토가 만연했다. 또한 많은 예체능계 신규 대학들이 설립/개편되었다. 더불어 고교 이후 인문계에선 맹목적인 대입만을 가르쳤으나 이미 90년대의 대학=대기업 취직이라는 공식은 깨진 상황, 10여년간 대학만을 가르친 공교육의 피해자가 되었다.
특히 80년대 후반생들은 90년대 극초반생들과 함께 수능 응시자 비율이 사상 최대에 달한 세대이기도 한다. 그 결과 이들은 전 세대 통틀어서 평균 학력이 가장 높은 세대가 되었다.
1989년생 한정으로 중학교가 의무교육이었다. 또한 수능등급제를 도입한 적이 있기도 하며, 다닐 당시 6년 내내 국민학생이 아닌 초등학생이였다.[22]
물론 민족주의적 성격도 지니기도 하지만 개인주의적 성격도 함께 지니기도 한다.
이 년대에 태어난 정치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데 진보정당/민주당계 정당에서는 김남국, 김광진 등이 있으며, 보수정당에서는 배현진, 이준석, 김수민, 손수조 등이 있다. 젊어서 그런지 그래도 대체적으로 스포트라이트는 어느정도 받는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 초선이다. 정치인으로는 북한의 김정은도 이연대 출생자이다.
2세대 아이돌 멤버들을 배출한 첫 세대이다.[23] 대표적으로 빅뱅, 소녀시대 멤버들 중 대다수가 이 연대 출생자들이다.[24]
'2017 시민희망인식조사' 결과 한국사회에서 전 연령대 중 가장 비관적인 세대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희망제작소는 "집단우울증을 의심할 만큼 모든 항목에서 만족도가 낮다"고 평가하기도 했다.기사
유명 인터넷 강의 강사들이 대부분 이 세대 출생이다. 이지영, 이다지, 손고운, 윤혜정, 조정식, 현우진, 고아름 등이 이들이다. 예외는 이기상, 배기범, 윤성훈, 조은정 정도로 대부분 1970년대생이다.
2.1. 학력
2015년 인구총조사 기준 해당 세대의 학력은 다음과 같다.
대졸이 고졸 이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OECD에서 1위를 차지한 것도 이 세대가 대학에 진학했을 때 부터이다. 기존에 남초 과이던 경영학과, 행정학과 등의 남초 색이 옅어졌고, 어문계열은 아예 여초 과로 바뀌었다. 이 세대가 처음 대학에 들어가기 시작한 2000년경부터는 남성과 여성 간에 대학진학률이 별 차이가 없었으며 2005년부터는 오히려 여자들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아졌다.#
2.2. 사회·정치적 성향
직장생활, 출산, 육아 등 본격적인 사회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삶에 와닿는 사회적 문제들을 직접 느끼는 시기이다. 1970년대생들과 더불어 화이트칼라에 많이 포진한 세대이기도 하다.[27] 1980년대생들은 직장에서 낮은 직위에 위치하는 경우가 보통이고 부동산 등의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재의 질서를 지키려고 하기보다는 복지 확대 등의 정책을 지지하게 되는 측면도 존재한다. 그리고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 1990년대생들과는 달리 대다수가 이미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신규 고용을 늘리고 실업률을 줄일 수 있는 고용유연화 정책보다는 고용을 줄이는 부작용이 있더라도 고용의 안정성을 높이는 고용안정 정책을 지지하는 경향도 있다. 또한 30대부터 육아를 시작하는 비중이 높아 진보 진영의 육아 지원 확대 정책을 지지할 유인 역시 크다.
그 이전세대처럼 민주화 운동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민주화 이후의 사회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2000년대 초반 대북화해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바로 아래 세대와는 북한 관련 여론조사에서 차이를 보인다. 1970년대생 다음으로 반미[28] , 반일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세대인데,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영토 문제, 역사 교과서 문제, 위안부 문제, 징용공 문제 등으로 인해 반감을 보이기도 한다.
1980년대 초반생의 경우 한때 지금 1970년대생과 함께 잠시 친중 성향을 보이기도 하였지만 사드 보복, 미세먼지 논란 등으로 많이 희석된 상황이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으로 아예 1990년대생과 같은 혐중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치성향 측면에서 1980년대 후반생은 1990년대생과, 1980년대 초 중반생들은 1970년대생과 유사한 성향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즉 1980년대 초중반생은 강성 민주당 성향을 보이지만 1980년대 후반은 1990년대생과 같이 상대적으로 정치혐오 무당층 성향을 보인다. 다만 국가통계포탈의 자료에 의하면, 출산율이 낮았던 80년대의 기준으로 따져도 유독 80년대 중후반의 출산율은 낮았기 때문에[29] 같은 1980년대생이라고 해도 80년대 중후반 출생자들은 80년대 초중반 출생자들의 영향력에 밀릴 수밖에 없다.
21대 총선에서는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세대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와 21대 총선의 출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이들은 성별에 관계없이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주요 지지 계층이다.
과거 17대 대선에서는 투표 자체를 포기하거나[30] 문국현과 이회창에게 표를 던졌지만[31] 이후 다시 민주당 강성 지지 성향으로 변했다. 19대 대선에서 이 세대는 문재인 후보에 60%에 달하는 몰표를 주었다.
다만 남성의 경우 같은 1980년대생 이어도 성향이 확연히 갈리는 편인데 1980년대 초, 중반생들은 더불어민주당으로 크게 몰린 반면 80년대 후반인 1988년생~ 1989년생 한정으로는 1990년대생과 마찬가지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세가 많이 낮았다.[32]
인터넷을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고 2000년대 전반에 걸쳐 '''초기 인터넷 문화를 직접적으로 주도했던 세대'''이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음 세대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쳤다.[33]
2000년대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자국이성에 대한 불만과 혐오를 최초로 보이기 시작했던 세대'''이다. 대표적으로 서로를 비하적으로 칭하던 '루저', '고추장남', '된장녀'[34] , '빠순이'등과 같은 용어들이 그 예이며 2010년대 이후 1980년대생에게 영향을 받은 1990년대생들은 눈에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자국이성 혐오가 강화된 편이다. 특히 이 쪽으로 가면 일베 용어로 공격을 받던 여자들이 메갈리아 및 워마드 등 극단주의 페미니즘을 만들어 성 대결 양상으로까지 치닫는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극단적 자국이성 혐오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반성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심각하게 지속되고 있으며 일말의 해결 가능성조차도 없어 보이는 상황이다.
1980년대 초, 중반 한정으로 1970년대생과 함께 북한에 대해 가장 호의적인 세대이다. 이들은 젊은 시절 햇볕정책을 지켜봤고 이에 대한 향수나, 이전 세대가 써먹던 반공에 대한 반발심으로 인한 민족주의의 강화로 인해 상대적으로 반북 감정이 크지 않고, 북한에 대한 평가도 비교적 긍정적인 세대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가운데, 2020년 들어 서울의 아파트를 가장 많이 산 세대로 떠올랐다. 주택담보대출도 30대가 가장 많이 받았으며, 자산 대비 부채 비중도 높아졌다. 빚을 내서라도 어떻게든 서울 아파트를 사는 데 올인해,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의미의 '''영끌'''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들의 하우스 푸어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3. 해외
미국에선 신세대인 1981년 이후 출생자들을 'Y세대'라 부르며 1994년 대중잡지 <New York>지가 처음으로 붙인 명칭이다. 이들은 부모의 이혼 등으로 인해 파괴된 가정에서 태어나 에이즈나 마약, 범죄, 폭력 등에 시달리거나 죽는 등, 바로 윗세대인 X세대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으며, 태어나자마자 안정감이 상실된 세계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년 5월 23일 <New York> 지에 의하면 불확실한 미래에 좌절하는 X세대와 달리 '열악한 환경은 노력해서 극복해야 한다'는 건강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있으며, 청소년기에 들어서는 성차별 척결, 인종차별 반대, 에이즈 퇴치 등 미래에 살아갈 사회를 정화하는 데 노력하는 선행을 보인다는 점이다.
교양 만화가이자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 이원복 교수는 <현대문명진단>에서 해당 세대의 노력에 대해 "인류 스스로 파멸에서 구제되려는 자생력일지 모른다"고 보았다.
일본에서 1980년대생 역시 '빙하기 세대' 및 '사토리 세대'에 속하지만, 원로 애니메이션 전문가 야마구치 야스오는 저서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세대명도 없고 집단으로 말하기 거시기한 세대'라고 칭했다. 1979년-1980년 이후 일본 사회가 평균화 사회에서 개성시대로 전환하면서 자아탐색, 자기발견이 주요 화제로 떠올랐으나, 이들의 부모들은 1990년대 들어 자식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자식들의 자기발견에 대해 모르고 '어떻게 하면 세상을 잘 살아가는가' 조차 가르칠 수 없었다. 버블경제 시절에는 나이가 제일 어렸던 세대이다. 다만 1980년도 초반생의 경우에는 80년대 말 그리고 90년대 초의 버블 붕괴 이전에 혜택을 받긴 했다.
그래서 1995년에 나온 애니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스토리상 난해함 속에서 1980년대생들의 청소년 시절 고뇌를 투영한 게 그 반증이다.
이 점은 똑같은 시기인 1994년, 1999년 출시되어 어린 시절 울트라 세븐을 시청하였던 시청자들의 추억팔이를 하던 평성 울트라 세븐 역시 똑같은데 평성세븐도 내용이 에반게리온만큼은 아니지만 꽤 난해하고 분위기가 음침하다. 더구나 난해한 내용은 1998년에 나온 정식 울트라맨 시리즈인 울트라맨 가이아도 마찬가지로 시대를 반영한 것이었다. 울트라맨 가이아는 애초 종말론이 소재이며 사실 저연령층이 보기에는 너무 분위기가 음침하고 스토리도 난해해 청소년층이나 성인이 된 올드팬들이 더 좋아했다.
홍콩에서는 영국령 홍콩 시기 마지막에 태어난 세대 중 하나이며 이들은 1990년대 중국으로 주권 반환 이전 영국령의 기억이 조금이나마 있다. 중국 반환 이후 태어나 영국령 시대를 겪어본 적 없는 1990년대 생들과 달리 중도층을 형성해서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과 초창기 범죄인 인도법 반대시위였던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6월 시위, 범죄인 인도법이 철회된 후 민간인권전선이 벌인 비폭력 대규모 시위 등에는 적극 참여했으나 폭력시위에는 참여를 꺼리고 오히려 어린 세대의 과격함과 홍콩 정부의 소통불능을 모두 비판하였다.
4. 같이 보기
[1] 조기입학, 조기졸업 포함.[2] N수생 포함.[3] 다만 이 통계에서는 고등교육 진학자의 경우 10년도 이전에는 대학 합격자, 11년도 이후는 대학 진학자 기준으로 작성되었다.[4] 그렇지만, 요즘 결혼이 필수라는 생각이 많이 약화되었고, 설령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가지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 그 밑세대인 1990년대생들은 1980년대생들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이미 통계청에도 나와 있듯이 결혼 건수, 출생자 수는 2018년 즈음을 기준으로 해서 줄어드는 형편이며, 이시기 20대 출산율이 급락하는게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5] 이들의 부모가 1980년~81년생인 경우가 많다.[6] 1982년생이 마지막 고출산 세대고, 1984년이 되면서 선진국들보다 낮은 출산율을 보였다.[7] 다만 1980년대 초반인 1980년-1983년생 한정으로는 4명 이상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며 특히 시골이라면 더욱 더 흔하다.[8] 최근엔 40대도 30대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다. 90년대 같으면 오히려 30대가 되어도 나이들어보이는 사람들이 많지만.[9] 참고로 1980년대 초반 당시 신부의 평균 결혼연령이 25세 안팎이었다.[10]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라서 더욱 그렇다.[11] 대한민국 육군을 기준으로는 막내급 원사들도 30대 후반인 1981년생이 나오기도 한다. 대한민국 해군은 진급이 좀 느린 편이라 원사급은 아직 없다.[12] 1980.1.1~11.30 출생자는 태어났을때 TBC가 있었지만 시청한 기억은 없을 것이다.[13] 1980년대 후반생은 기억하지 못한다.[14] 1980년대 초반생 한정[15] 1980년대 초반생 기준.[16]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편 '한국인의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참고.[17] 특히 시골학교들이 그랬다.[18]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그것을 떠올리면 맞다. IMF 당시에는 경제위기 핑계로.. 아예 한겨울 난방을 하지 않기도 했다.[19] 야후 코리아, 라이코스, 엠파스, 드림위즈 지니, 버디버디, 세이클럽에서 싸이월드 그리고 페이스북까지 겪는다![20] 야후, 구글, 다음, 네이버, 페이스북 등.[21] 소위 이해찬 시대. 이때 고등학생이던 80년대 초반 출생자들은 제대로 엿 먹었다.[22] 그로 인해서 1989년생은 같은 80년생이라도 90년대 초반생과 비슷해서 윗세대와 세대차를 느낄 수 있다.[23] 물론 1980년생인 가희, 1984년생인 산다라박 등도 있지만 소수다.[24] 특히 소녀시대는 9명 중 '''6명'''이 1989년 출생자이다.[25] 학사, 석사, 박사.[26] 초대졸도 여기에 포함된다.[27] 본래 화이트칼라는 고소득층에 속하므로 보수정당 지지 성향이 더 많았지만 2010년대 들어서 민주당 지지가 우세한 성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화이트칼라 계층에서도 부자가 아닌, 중산층에서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였다.[28] 대부분 공화당 대통령이 집권했을때 반미 성향이 강해지며, 미국 민주당 정권일 때는 상대적으로 친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도널드 트럼프는 북한에 그나마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반감이 덜하며 반대로 버락 오바마는 친일적인 태도를 보였다며 싫어하는 이들이 상당하다.[29] 80년대 중후반 출생자들은 80년대 초반 출생자들, 90년대 출생자보다도 숫자가 적다. 이는 80년대 정부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의 영향 탓이다.[30] 이 대선에서 20대 투표율은 46.6%에 그쳤다. 이후에도 18대 총선에서는 20대 투표율이 28.1%에 그치는 등 1980년대생들은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까지는 정치불신 성향을 많이 보였다.[31] 출구조사 결과에서 20대 1위는 42.5%를 득표한 이명박이었지만 문국현 15.9%, 이회창 15.7%로 상당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정동영의 경우 20.7%로 전 세대 중 가장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위의 낮은 투표율과 비슷하게 정치불신 성향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32] 그렇다고 국민의힘을 주로 지지하는것도 아니고 그냥 무당층이 많다.[33] 2003년 당시 한국의 인터넷 보급률은 약 60%로 아이슬란드에 이어 전세계 2위였고 2002년에 이미 초고속 인터넷 가입 가구 수가 천 만을 돌파하였다. 실질적으로 인터넷이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도 2000년대 초반부터인데 인터넷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 모두 1980년대생이 인터넷 문화를 주도하던 2000년대에 최초로 발견되었다. 이후 1990년대생과 2000년대생이 넷상에서 보여주는 문제점들은 이미 1980년대생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문제가 심화되었을 뿐이다. 대표적으로 악플 문화.[34] 이는 나중에 김치녀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