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칼리버
Excalibur / Caledfwlch
1. 개요
아서 왕 전설에서 아서 왕이 사용했다고 하는 검.
서양에서는 누구나 명검 하면 첫 번째로 떠올리는 검으로, 그야말로 전설의 무기의 대명사다.
2. 상세
전승상 칼리번(Caliburn), 칼레드불흐(Caledfwlch), 칼리부르누스, 콜브랜드 등 여러 이름이 있으며, 가장 대중적인 이름은 엑스칼리버다. 칼레드불흐란 이름을 보아 칼라드볼그의 전승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라틴어의 엑스-칼리부스(Ex-calibus)나 엑스 칼케 리베라투스(Ex calce liberatus)가 어원이라는 설도 있으며, 이 경우 '바위/철로부터 해방'이라는 의미를 가지나, 이는 엑스칼리버가 바위 또는 모루에서 뽑아냈다는 전설에 기초하여 역으로 어원을 추정한 것으로 보인다. 중세~르네상스기에는 주류 가설이었으나 현재는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가설이다.
아서 왕이 강력했던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강력한 아이템이다. 아더 왕이 아콜론과 싸울 때, 심술쟁이 모건이 엑스칼리버를 아콜론에게 주고 아서 왕에게는 가짜를 주자 아서가 발렸고, 결국 진짜 엑스칼리버를 빼앗고 나서야 겨우 이겼다. 칼뿐만 아니라 엑스칼리버의 칼집에도 신비한 마법이 서려 있어, 가진 자는 상처를 입어도 피를 흘리지 않는다.[1] 때문에 멀린은 칼보다 칼집을 중요시 여기라고 아더 왕에게 충고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모건에게 빼앗겨 다시 호수의 여왕에게 돌려주었고, 결국 아서 왕이 마지막 싸움에서 치명상을 입었을 때 칼 또한 아서 왕의 명령으로 호수의 여왕에게 돌아갔다.
아서 왕이 엑스칼리버를 손에 넣은 경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크게 둘로 갈린다. 하나는 바위 또는 무쇠 모루에 꽂혀 있는, 왕이 될 자만이 뽑을 수 있는 것을 뽑았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호수의 여인에게서 엑스칼리버를 받았다는 설이다. 그리고 이 두 전승이 혼합된 것도 있다. 일단 칼을 바위에서 뽑아 왕이 된 다음, 퍼시벌의 아버지인 펠리노어 왕과 한 결투 중 이 칼이 두동강이 나자 멀린의 주선으로 호수의 여인에게서 검을 받았다는 전승이 있다. 토마스 말로리 경의 《아서 왕의 죽음》이 이 경우로, 여기서는 두 자루의 검을 모두 '엑스칼리버'라 싸잡아 호칭했고 현재까지도 서구권에서는 둘 다 엑스칼리버라 부른다.
엑스칼리버를 뽑는 자만이 왕이 될 자격이 있다는 신탁은 아서 왕이 영웅적 존재임을 각인시키고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그의 왕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처럼 권력자나 종교적 인물에 대한 정당성, 필연성을 부여하는 전설적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군신화가 그 예이다.
3. 유래에 관한 논란
엑스칼리버는 <킬후흐와 올루웬>에서 칼레드불흐라는 이름으로 있었던 검인데 13세기에 프랑스 작가들에게서 바위에서 뽑았다와 호수의 요정에게 받았다는 두 가지 버전이 나왔다. 일단 바위에서 뽑았다는 판본이 조금 더 일찍 나온 것으로 보인다.[2]
참고로 현재 이 '바위에 박힌 검'과 가장 유사한 것이 '갈가노의 검'이란 것이다. 십자군 전쟁 당시 활약했던 이탈리아 기사 갈가노 구이도티[3] 가 대천사 미카엘의 말을 듣고 전쟁에서 보였던 광기와 살육을 회개하고 진정한 영웅이 자신의 칼을 뽑을 수 있다며 바위에 칼을 꽂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검의 성분을 조사한 결과 12세기로 추정되며, 그 자리에는 수도원[4] 이 세워져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칼은 여전히 뽑히지 않고있다. (구글링을 해보면 검이 꽂혀있는 바위의 모양이 다른 사진들이 많은데 토스카나에서 관광수익을 만들기 위해 만든 모조품일 경우가 많다.)
또한, 토마스 말로리의 <아서 왕의 죽음>에 나온 이야기를 보면 이러하다. 우서 왕 사후 브리튼이 혼란에 빠지자 이를 걱정한 사제들이 모여 기도하자 하늘에서 바위가 내려 왔는데 여기에 엑스칼리버가 꽂혀 있었으며, 검을 뽑는 자가 왕이 되라는 신탁이 나왔다. 이에 브리튼 전국의 내로라 하는 용사들이 검을 뽑기 위해 나섰지만 실패했으며, 다음번 검을 뽑을 자를 추려내기 위해 마상 창 시합이 열렸다. 어린 아서는 이 시합에 참가한 의형제인 케이가 검을 부러뜨리자 예비용 검을 찾으러 갔으나 찾을 수 없어서 마침 근처에 있던 바위에 꽂혀 있는 칼을 뽑았는데, 그것이 엑스칼리버였다. 하지만 귀족들이 인정하지 않았고 여러 번 다시 뽑았지만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귀족이 많아 전쟁을 치른다. 엑스칼리버를 들고 수백 명을 쓸어버리더니, 나중에 퍼시벌의 아버지인 펠리노어 왕과 벌인 결투 중 칼이 두동강이 나자 이후 나중에 값을 치르기로 하고 이름이 나오지 않는 호수의 여인에게 또 엑스칼리버를 받았다고 한다.
존 부어만의 영화《엑스칼리버》에서는 원래 아서의 아버지 우서 왕이 멀린의 주선으로 호수의 여왕으로 부터 받은 검. 이후 우서 왕이 적의 기습을 받아 죽게 되자 근처 바위에 엑스칼리버를 꽂아 버리고 "이것을 뽑는 놈이 다음 왕이다"라고 선언한다. 이후의 전개는 일반적인 아서 왕 이야기와 같다가, 아서가 랜슬롯과의 결투 중 처음으로 자신의 승부욕을 위해 검의 힘을 쓰게 되고 이 부정한 마음 때문에 검이 부서져버린 것으로 나온다. 물론 이를 후회하고 뉘우치자 호수의 여왕이 엑스칼리버를 고쳐주었다는 것으로 두 전설을 하나로 합쳤다.
클라이브 오웬이 주연한 영화 '킹 아서'에서는 아서 왕을 서로마 제국 말기 브리튼 주둔 로마군 지휘관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영화에 나오는 엑스칼리버도 로마군이 쓰던 글라디우스로 묘사된다. 관람객의 느낌으로는 이게 엑스칼리버라고? 라는 느낌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가이 리치 감독의 킹 아서 제왕의 검에서는 멀린이 몰래 마법사의 지팡이를 빼앗아 주조한것으로 나온다. 분명 나무재질로 되어있는 듯한 지팡이였는데 멀린이 몇번 내리치니 검이 되어버린다. 이후 브리튼의 왕 우서 펜드래건에게 전달되며 우서가 악독한 마법사 모드레드를 처단하고 나서 얼마 뒤 자신의 동생인 보티건에게 살해당하기 직전, 검을 던져 자신의 등에 꽂히게 한다. 우서는 그대로 석화되어 물 속으로 떨어지고 이것이 진정한 왕만이 뽑을 수 있는 엑스칼리버가 된다. 이후 아서가 뽑아내지만 운명을 거부하다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자 엑스칼리버의 힘이 개화해 각성하며 그야말로 무적의 검이 된다. 웬만한 무기는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부숴지고 사용자의 이동속도, 동체시력, 마법무시 같은 그야말로 최강의 스펙의 검으로 묘사된다.
4. 기타
상술했듯 전설의 무기, 그중에서도 칼의 대명사다 보니 "엄청 강력한 칼"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바위의 박힌 검을 뽑는다는 스토리는 서브컬쳐에서 다양하게 써먹히고 변형되어 왔는데, 예를 들어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검을 뽑든지, 아니면 바위의 검을 뽑지를 못하면 검이 박혀있는 바위 자체를 부숴서 빼가거나, 힘이 좀 된다면 그냥 바위 째로(...) 검을 들고 가는 등의 바리에이션도 존재한다.
기타 매체에서의 등장이나 모티브를 딴 가공의 무기들은 엑스칼리버(동음이의어) 문서 참조
5. 대중매체의 엑스칼리버
5.1. 뮤지컬
2019년에 6월부터 8월까지 상영된 뮤지컬 엑스칼리버는 찬란하게 빛나는 영웅들의 이야기로 설정되었다.
(사후 2020년 12월 7일에 온라인 공연 진행.)
5.2. 애니메이션
Fate 시리즈 에서는 알트리아 펜드레곤이 쓰는 무기로 설정되었다.
페어리 테일 에서 등장하는 그레이 풀버스터 의 스킬중 "콜드 엑스칼리버" 라는 스킬이 존재한다.
베이블레이드 버스트 1기때부터 샤쿠엔지 카이자(샤카)의 베이, 제노 엑스칼리버가 등장하였다. 다만, 베이블레이드 버스트 초제트 부터는 쟝 보가드(쟌)이 이를 계승하였다.
- 1세대 : 엑스칼리버 F. X (코믹스판)
- 2세대 : 제노 엑스칼리버 M.I (애니메이션 1기)
- 3세대 : 지크 엑스칼리버 1.Ir (애니메이션 2기)
- 4세대 : 버스터 엑스칼리버 1'.Sw / 1'D.Sw (애니메이션 3기[5] )
가면라이더 세이버 7화와 8화에서 토우마가 킹 엑스칼리버를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그 검은 킹 오브 아서라는 로봇으로 변형이 된다.
디지몬 시리즈의 홀리엔젤몬과 세라피몬 이 사용하는 검이 엑스칼리버이다
[1] 신화나 전설 특유의 모호한 부분으로 피를 흘리지 않는다는게 상처나 여러 부상을 비롯한 해를 입지 않는다는건지, 문자 그대로 피만 흘리지 않는다는 것인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2] 바위에서 뽑았다는 것은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초, 호수의 요정에게 받았다는것은 1230~1240년 정도로 추정된다.[3] 토스카나의 굉장히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미카엘을 만난 후 광야로 떠나 은수자의 삶을 살았다. 1185년 교황인 루시우스 3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른다.[4] 토스카나의 산 갈라노 수도원(Cappella di San Galgano a Montesiepi).[5] 27화 한정으로 샤쿠엔지 카이자(샤카)가 쟝 보가드(쟌)의 베이를 사용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