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습

 

殮襲, washing and shrouding
1. 개요
2. 절차
3. 기타


1. 개요


장례식이나 입관(入棺) 전 죽은 자의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장례 절차.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것을 습, 그 후 시신을 염포로 싸는 것을 소렴, 입관 시 관의 빈 곳에 고인이 생전에 입던 옷을 채워 넣는 것을 대렴 이라고 한다. 나라마다 장례의식이 차이가 나도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건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관습.
과거에는 유족이 직접 했지만 오늘날에는 장례업체(장의사)가 담당하며, 군대의 경우 사망자 소속 부대 인사 수의용으로 전투복이나 속옷이 불출될 때도 군수 실무에서는 일종의 손망실 처리하고 있다. 행정병이나 군 병원 기간병(주로 영현병이나 의무병)이 담당한다[1]. 서구권에서는 종교 관계자가 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구권에서는 현재 종교 관계자가 하지 않는 일부 경우가 있을지라도 전문 장의사가 존재하는데, 한국처럼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이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주로 학생)이 시체닦이 아르바이트를 높은 보수를 받고 했다는 터무니 없는 루머가 있다(시체닦기 문서 참조). 물론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9조에서는 시신을 보관·안치·염습·운구 등을 할 때에는 시신을 위생적으로 관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위생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반드시 장례지도사가 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는 않았다.[2] 일부 종교계를 중심으로 염습 자원봉사라는 게 가능한 것도 이런 측면 때문. 그러나 염습 과정은 상당히 숙련을 요하는 작업인 데다가 유족이 참관하여 모든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특히 동아시아권은 장례를 매우 중요한 절차로 여겨, 염습을 유족이나 절차를 전문적으로 아는 이가 거행한다. 정식 장례를 치르는 사람을 검증되지도 않고 고인과 관계도 없는 일반인에게 맡기는 일은 통념상 있을 수가 없다는 것. 사고나 자살 등으로 영안실에 들어온 시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기고 간단하게 닦고 흰색 천을 씌워서 냉동칸에 넣는 것은 정식 장의사가 아니어도 불가능하진 않지만 아르바이트를 쓰는 일은 아니다.
과거 전염병이나 전쟁, 쓰나미 등 대규모 자연재해로 죽은 시체를 버리거나 집단으로 가매장[3]한다든가 아니면 시신이 너무 많이 부패하거나 많이 백골화되어서 염습하기에 버거운 경우라면 모를까, 현대 사회에서는 시신을 모아놨다가 한꺼번에 닦는 게 아니라 들어올 때마다 바로바로 작업하기 때문에 세간에 알려진 아르바이트는 애당초 성립할 수가 없는 이야기이다. 채산이 안 맞기 때문.
'정식 장의사'의 구분은 보건복지부에서 2012년 8월 5일부로 시행한 장례지도사 자격제도가 있기 전에는 애매모호한 개념이었다. 그전까지는 (사)한국장례업협회에서 발행하는 장례지도사 자격이 있었긴 하나 이는 엄밀하게 '국가가 인정한' 장례지도사 자격이란게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심지어 경력 30년차 장의사도 본인의 경력이나 자격을 증명할 어떤 수단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여 제대로 된 교육과정도 없었고, 도제식 비슷하게 현장에서 장의사가 지원자를 가르쳐가며 일하는 방식이었다는 것. 다만 일손이 부족해 '알바'를 고용해 시신을 다루는 일은 절대 없었다고 보면 된다. 말했다시피 도제식 비슷하게 가르쳤기 때문에 계속 데리고 일할 사람을 구하려 하지, 잠깐 일 시킬 알바를 고용하지는 않았다는 것.
염습 과정에서 고인의 시신을 가까운 곳에서 참관하므로 어린이나 노인, 심신미약인 자의 참관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4] 삼재[5]나 일곱수, 아홉수인 경우에도 마찬가지. 이 때문에 성기가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며, 특히 이슬람권에서는 그러한 성향이 짙다. 근래에는 미리 따로 속옷 등을 입히고 나서 염습을 진행하니 알몸이 드러나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6]
자살사고사의 시체는 염습하기 전에 먼저 부검이나 검시 절차를 겪는다.[7] 장의사들은 경찰에게 부검받은 시신을 차마 유가족에게 보일 수 없어 수의를 미리 전부 입힌 후, 입관할 때만 부르기도 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살과 사고사 자체가 유족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다.

2. 절차


1. 고인의 신체에서 '''팬티부터 양말까지 이란 옷은 전부 벗겨낸다'''. 정확히는 염습 전에 행해지는 수시라는 절차로, 시신의 안치를 위한 단계이다. 익사 등으로 시신이 불어나거나 사후경직 등으로 옷가지를 벗겨내기 어려운 경우에는 옷을 찢어버리거나 가위질하는 식으로 벗겨내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는 유가족이 가져가는 경우가 있었지만 현재는 위생법상 불가능하다. 사망 당시 입고 있던 옷(셔츠, 바지, 팬티, 런닝, 양말, 신발 등)은 전부 의료폐기물로 처리된다.[8]

2. 물과 알코올을 묻힌 수건으로 시신을 닦는다. 일반적으로는 염습대에서 옷을 벗긴 시신을 배수 장치가 달린 세척대로 옮겨 호스나 샤워기를 통해 머리부터 발 끝까지 씻어낸다. 대체로 목욕탕의 세신과 모양새가 비슷한데, 사망한지 시간이 얼마 경과하지 않은 시신의 경우엔 배설물이 새어 나오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배수가 용이한 경우엔 스테인레스 염습대에서 그대로 작업을 하기도 한다. 이후 물기를 닦은 뒤 알코올을 묻힌 거즈로 몸을 닦는데 이 때 3번을 병행하게 된다.

3. 고인의 오물이 새어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요도, 항문 등 충이(充耳) 작업을 한다. 그리고 시신 밑에 수의를 깔아 다음 단계에서 수의를 입히기 용이하게 준비 작업을 해놓는다.[9]

''' 이후 특수 기저귀나 속옷을 입힌다.'''[10]

4. 이튿날 유족들의 참관 하에 '''수의를 입힌다'''.[11]

1~3번 절차는 유족이 참관하기 전에 장의사 측에서 알아서 처리한다. 유족이 보통 참관하게 되는 염습 절차는 주로 4번.
한국의 경우 연령대에 상관없이 삼베로 된 수의를 입히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생긴 풍습이다. 전통적으로는 오히려 살아남은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상복 개념으로 삼베옷을 입었기 때문. 실제 우리식 수의는 고인이 생전에 즐겨입던 옷이나 생전 가지고 있던 옷 중 고급 옷 혹은 사망 당시 입고 계시던 옷을 입힌다.[12] 다만 현재는 대부분의 옷이 합성섬유 재질이기에 생분해가 용이한(=잘 썩는) 삼베옷을 편의상으로라도 입히는 경우가 많다. 고인이 어린이나 청소년인 경우 삼베수의 대신 평소 입던 평상복이나 교복으로 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고인이 어린이, 청소년, 청년 연령대일지라도 삼베 수의를 입히는 게 일반적. 보통 수의의 가격대는 제일 싼 것은 40만원이고, 제일 비싼 것은 400만원을 호가한다. 한번에 약 20~30가지 정도의 물품이 쓰인다.
서양의 경우 보통 수의는 남자의 경우 정장, 여자의 경우 원피스이다. 청소년 이하 연령대의 경우에는 평소에 즐겨입던 평상복을 입히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도 간혹 삼베옷 대신 정장으로 된 수의를 입히는 경우가 있으며, 군인이나 성직자 등 특수한 직업은 해당 직업의 복장을 입기도 한다. 국가 원수(대통령이나 등)의 경우에도 정장이나 제복 등을 입힌다.
다만 수의의 경우 한국식으로 할 경우 20~30가지의 물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미리 준비할 필요 없이 장례식장에서 전문 장례지도사의 지도를 받아 카달로그를 보고 고르면 된다. 한국식 수의 및 관련 물품은 장례식장에 이미 다 구비되어 있다. 다만 정장이나 드레스나 교복, 기타 평상복 등 서양식 복장으로 할 경우에 한해 생전에 정장이나 드레스 등을 입는 절차 및 겉옷/속옷이 동일하고 한국의 장례식장에는 그런 장례용품이 구비되지 않으므로 이 경우 수의로 사용할 겉옷과 팬티, 브래지어 등 속옷, 양말/스타킹, 신발 등은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군인이나 성직자 등 특수직 종사자의 경우에도 해당하는 수의를 반드시 챙겨야한다. 다만 염습을 주관하는 곳이 민간 장의사(대학병원, 장례식장 등)가 아니라 군부대(군병원)라면 군복(정복, 전투복), 교회라면 성직자 복장은 그쪽에서 알아서 구비하는 편이다. 군부대의 경우 군수과에서 알아서 준비해준다.

3. 기타


  • 흔히 하는 욕인 ' 먹어라!'가 '염 먹어라'에서 바뀐 것이란 주장도 있다. 이때의 '염'은 위에 적힌 오물을 막는 작업에 사용되는 솜 등을 지칭하는 말이다. 즉, 죽으라는 말.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중간 관정에 대한 이론이 있다. 엿 문서 참조.
  • 일본어에는 염습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이 없어서[13] 영어 유래 단어인 エンバーミング(Embalming)를 대신 쓴다.
  • 시체에선 부패의 진행 정도에 따라 분비물이 배출되기 때문에 절차의 3번은 매우 중요한 행위이다. 중2병 환자의 경우, 갓 죽은 시체나 깔끔한 죽음에 대한 환상이 있는데, 시신을 안치할 때 어째서 시신을 닦고 사용 시마다 냉동고를 특수 소독약으로[14] 소독하는지 생각해보면 깔끔한 죽음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죽기 전에 쌀 거 다 싸고 아무 것도 안 먹으면서 며칠 버티다가 아사한다면 모를까. 그리고 아사할 정도의 시신이라면 뱃가죽이 등에 붙어 버려셔 시신이 멀쩡해보이지 않을 것이다.[15] 자연사라 하더라도 영안실로 옮겨지는 시점에서 이미 소량의 대소변의 배출이 시작되며, 자살이나 교통사고 같은 변사자의 경우엔 조금 더 많은 양이 나온다. 배설물 외의 오물은 보기 힘든 편인데, 3일장의 경우 시신을 영상 0도보다 살짝 높은 수준의 냉동고에 보관하기 때문에 2~3일 정도로는 부패가 진행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16]
  • 염습에 대해 다룬 작품으로는 미국 드라마인 식스핏언더, 일본 영화 굿 바이(Good & Bye, 2008년) 등이 있다.

[1] 규정에 따르면 수의용으로 각 군마다 정해진 최상급 피복(통상 육군병의 경우 거의 전투복이나 해병대 및 공군병은 근무복, 해군 수병 및 각군 간부는 정복), 군용속옷, 양말 등이 따로 지급된다고 한다.[2] 애초 공인자격증이란 전문 지식/기술을 공적으로 인증하는 것일 뿐 자격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면허 받은 자 외에는 행위가 금지되는 면허증과 구분되는 점이다.[3] 입던 옷을 벗기고 시신을 닦는 등의 염습 절차를 생략하고 사망 당시 옷차림 그대로 시체 가방으로 감싼 다음에 땅에 파놓은 커다란 구덩이에 투척하는 형태로 치뤄지는 매장 형태.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 참사 때는 이런 식의 가매장이 많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 일본 당국은 쓰나미 희생자들을 저런 식으로 가매장하진 않았고 착용했던 의복을 벗겨내 검은 봉지에 담아낸 다음 염습을 하는 식으로 시신 수습을 하였다.[4] 2011년 대구 중학생 집단괴롭힘 자살사건 당시 그 중학생의 친형인 고등학생이 동생의 염습을 참관하려고 했으나 어머니를 비롯한 친지들이 강력하게 저지했는데, 염습 과정이 친형에게 큰 트라우마를 심어줄 것이라는 염려 때문인 듯.[5]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해, 자, 축) 소띠, 뱀띠, 닭띠가 들삼재, 눌삼재, 날삼재를 거친다. 이후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인, 묘, 진) 쥐띠, 용띠, 원숭이띠가, 2025년부터 2027년까지는 (사, 오, 미) 토끼띠, 양띠, 돼지띠가 삼재를 맞는다. 2028년에는 범띠, 말띠, 개띠가 삼재가 되고 이게 2030년까지 (신, 유, 술) 이어지고 2031년부터 2033년까지는 (해, 자, 축) 다시 소띠, 뱀띠, 닭띠가 삼재를 맞는다.[6] 서양식 복장을 입힐 경우 팬티 및 브래지어만 입힌 뒤 바로 겉옷을 입히고, 옷의 디자인에 따라 노브라 상태에서 바로 옷을 입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수의를 입히기 전까지는 유두와 배꼽 등 일부 신체 노출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수의를 미리 다 입힌 후 입관할 때만 부르기도 한다.[7] 게다가 경찰에 시신이 넘어가면 팬티도 안 걸친 알몸 상태로 검시 사진까지 촬영한다. 그리고 검시사진을 비롯한 변사자 관련 공문서는 관할 경찰서에 25년간 보존된다.[8] 2002년 위생관리법 개정 이후로도 부패한 변사체나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체에서 벗겨낸 것이 아닌 이상 그냥 유품으로 유족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9] 하지만 사고사 등으로 이송된 시신의 경우엔 보통은 시신의 안치가 끝난 후에야 유족들이 도착하기 때문에 생략한다. 노령이거나 젊더라도 지병으로 사망하는 등 임종 시기를 예측할 수 있는 경우 미리 수의를 준비하는 게 가능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유족이 도착하기도 전에 수의를 미리 준비해두는 것 자체가 강매나 다름 없기 때문. 수의의 가격이 중국산 수입제조차 '''최소 10만원 이상'''이다.[10] 절대 알몸으로 작업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양식 수의를 입히게 될 경우 입히게 되는 속옷이 팬티 및 브래지어가 전부라 상황에 따라 부분적으로 알몸으로 작업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남녀 불문하고 생식기관은 팬티로 거의 가려지나, 젖꼭지는 남성이거나, 여성이라도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수의를 입힐 경우 드러내야 할 수 있다.[11] 요즘은 4번 절차마저도 얼굴을 제외한 수의를 모두 입힌 후, 유족 참관하에 얼굴 부위만 수의로 감싸는 경우도 있다. 서양식으로 입히고자 하는 경우에는 수의를 입히기 전까지 알몸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라 수의까지 다 입힌 후 입관할 때 부르는 경우가 많다.[12] 지금 와서 이 방식을 적용한다면 사망 당시 입은 옷을 그대로 입힐 가능성은 거의 없고(사망 당시에 착용했던 의복은 팬티까지 모두 탈의되어 별도로 소각되거나 입관할 때 빈 공간 채워넣기 용도로 쓰인다), 다만 고인의 성향 등을 반영하여 평소에 좋아하던 옷들 중 가장 좋은 옷을 입히는 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13] '염'만을 이르는 단어는 湯潅(ゆかん), 清拭(せいしき)이 있고 '습'만을 이르는 단어는 死装束(しにしょうぞく)다.[14] EPA(미국 환경보호청)의 인증을 받은 물건을 사용할 것이 권장된다.[15] 시신의 입출입이 잦아 바쁜, 번화가 주변의 병원 영안실에서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소독을 한다.[16] 냉동고가 없었던 옛날에는 시신의 부패가 매우 빨리 시작되었으므로 부패액이 나오기 시작하기도 했다. 근세가 배경인 현대소설 중에 어느 작품을 보면 '관을 놓았던 자리가 젖어 있었다' 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하고 옛날에 상여꾼으로 참가했던 경험담 중에는 산을 오르면서 관이 기울자 썩은 물이 흘러내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냉동고의 사용이 보편화된 90년대 이후로는 전부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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