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대구 중학생 집단괴롭힘 자살사건
1. 개요
2011년 12월 20일 오전 8시,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사는 덕원중학교해당 사건 위키백과 링크[1] 2학년인 15세 권○○ 학생이 집단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7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의 가장 유명한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사건으로 알려져있다. 소년은 길고 긴 유서를 남겼으며, 유서에 나오는 가해자들의 가혹행위가 너무 잔인해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이 사건 이후로 한국 사회는 학교폭력에 극히 민감하게 되었으며, 학교폭력 가해자가 미성년자일지라도 강경 처벌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그들은 권○○ 에게 "넥슨의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를 대신 해달라"고 강요해서 억지로 컴퓨터 게임을 시켰다. 가해자들은 권○○ 군의 돈을 빼앗아가려고 통장에서 돈을 강제로 인출했으며, 자신들의 숙제를 대신 시키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권○○ 군이 반항을 하면 수십 번씩 두들겨 패고 무릎을 꿇리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폭행과 모욕을 가했다.
또 희생된 권 군에게 온라인 게임을 자기들 대신 할 것을 강요함으로 인해서 가해자들이 집단괴롭힘을 가한게 가해자들이 게임에 중독돼서 그런 것으로 치부되어 선처가 요구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2. 조사
23일, 대구수성경찰서는 피해자 권○○ 군이 유서에서 가해자로 지목한 서원규(14)와 우재익(14)을 불러 조사를 하였다. 서원규 군과 우재익 군은 대체로 유서의 내용을 시인했으나, "장난으로 한 일인데 이렇게 되었다"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형사 미성년자가 [2] 아닌 만큼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한다. # 피해자 권○○ 군의 교우관계가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2-3명 정도 소수 가해자들이 권 군을 괴롭힌 곳은 학교 등 보다는 주로 권○○ 군의 집이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왕따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덕원중학교에서는 같은 해 7월에도 여학생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P양은 단짝 친구의 따돌림 문제를 알게 되어 문제 해결에 나섰으나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담임 교사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편지를 담임 교사의 책상에 두고 나왔다. 그러나 담임 교사는 단체 기합이라는 어설픈 방법으로 문제에 대응하였다. 자신 때문에 같은 반 학생들이 단체기합을 받아야 했다는 죄책감과 또래 집단의 눈총을 견디지 못해 P양은 자살했다.[3]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학교 관계자들은 "P양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얼버무렸다고 한다. 덕원중학교 이사회에서는 교장을 직위해제하였다.
우동기 대구시 교육감은 "대구 교육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며 반성의 뜻을 나타냈다. #[4]
휴대전화에 들어 있던 문자 메시지를 복원했는데, 더욱 끔찍한 정황이 나타났다. # 아카이브
자살한 권 군의 형은, 자신이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면서 자책하고 있다고 한다. #
교사인 어머니의 인터뷰도 올라왔다. #
아래는 권○○ 군의 유서이다. 어린 싹이 채 열매를 맺기도 전에 집단괴롭힘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피해자를 생각해보자.
3. 유서
이 유서만 봐도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잔혹하게 폭력을 행사했는지 알 수 있다. 심하면 자살이 아닌 폭행에 의한 타살로 과실치사죄가 적용되었을 뻔 했다.제가 그동안 말을 못하지만, 매일 라면이 없어지고, 먹을 게 없어지고, 갖가지가 없어진 이유가 있어요. 제 친구들이라고 했는데 서원규하고 우재익이라는 애들이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절 괴롭혔어요. 매일 라면을 먹거나 가져가고 쌀국수나, 용가리, 만두, 스프, 과자, 커피, 견과류, 치즈 같은 걸 매일 먹거나 가져갔어요.
3월 중순에 XXX라는 애가 같이 게임을 하자고 했는데 협박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매일 컴퓨터를 많이 하게 된 거에요. 그리고 그 게임에 쓴다고 제 통장의 돈까지 가져갔고,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 등수는 떨어지고, 2학기 때쯤 제가 일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그 애들이) 계속 돈을 달라고 해서 엄마한테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담배도 피우게 하고 오만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고, 빡지까지 써줬어요. 게다가 매일 우리 집에 와서 고 나중에는 XXX이라는 애하고 같이 저를 괴롭혔어요.
키우라는 양은 더 늘고, 폭행 정도도 늘고, 수업시간에는 공부하지 말고, 시험문제 다 찍고, 돈벌라 하고, 물로 고문하고, 모욕을 하고, 단소로 두들겨 패고, 우리 가족을 욕하고, 문제집을 공부 못하도록 다 가져가고, 학교에서도 몰래 따돌리고, 온갖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는 등 그런 짓을 했어요.
12월에 들어서 자살하자고 몇 번이나 결심을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생각나서 저를 막았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저도 정말 미치겠어요. 또 밀레 옷을 사라고 해서 자기가 가져가고, 매일 나는 그 녀석들 때문에 엄마한테 돈 달라하고, 화내고, 매일 게임하고, 공부 안하고, 말도 안 듣고 뭘 사달라는 등 계속 불효만 했어요. 전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너무 죄송했어요. 하지만 내가 사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 가족이었기에 쉽게 죽지는 못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몸은 성치 않아서 매일 피곤했고, 상처도 잘 낫지 않고, 병도 잘 낫지 않았어요. 또 요즘 들어 엄마한테 전화해서 언제 오냐는 전화를 했을 거에요. 그 녀석들이 저한테 시켜서 엄마가 언제 오냐고 물은 다음 오시기 전에 나갔어요.
저, 진짜 죄송해요. 물론 이 방법이 가장 불효이기도 하지만 제가 이대로 계속 살아있으면 오히려 살면서 더 불효를 끼칠 것 같아요. 남한테 말하려고 했지만 협박을 했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쯤에 김○○이나 윤○○이란 애들이 자세하게 설명해줄 거예요.
오늘은 12월 19일, 그 녀석들은 저에게 라디오를 들게 해서 무릎을 꿇리고 벌을 세웠어요. 그리고 5시 20분쯤 그 녀석들은 저를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놓고 손을 봉쇄한 다음 저를 폭행했어요. 또 제 몸에 칼등을 새기려고 했을 때 실패하자 제 오른쪽 팔에 불을 붙이려고 했어요. 그리고 할머니 칠순잔치 사진을 보고 우리 가족들을 욕했어요.''' 저는 참아보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걔들이 나가고 난 뒤, 저는 제 자신이 비통했어요. 사실 알고 보면 매일 화내시지만 마음씨 착한 우리아빠, 나에게 베푸는 건 아낌도 없는 우리엄마, 나에게 잘 대해주는 우리 형을 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거예요.
제가 일찍 철들지만 않았어도 저는 아마 여기 없었을 거에요. 매일 장난기 심하게 하고 철이 안든 척 했지만, 속으로는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사랑했어요. 아마 제가하는 일은 엄청 큰 불효인지도 몰라요. 집에 먹을 게 없어졌거나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고 혼내실 때, 부모님을 원망하기보단 그 녀석들에게 당하고 살며 효도도 한번도 안한 제가 너무 얄밉고 원망스러웠어요. 제 이야기는 다 끝이 났네요. 그리고 마지막 부탁인데, 그 녀석들은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알고 있어요. 우리 집 도어키 번호 좀 바꿔주세요. 저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저희 가족을 기다릴게요.
12월 19일 전 엄마한테 무지하게 혼났어요. 저로서는 억울했지만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그 녀석들은 그날 짜증난다며 제 영어자습서를 찢고 3학년 때 수업하지 말라고 XXX은 한문, XXX는 수학책을 가져갔어요. 그리고 그날 '''제 라디오 선을 뽑아 제 목에 묶고 끌고 다니면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라 하였고''', 5시 20분쯤부터는 아까 한 이야기와 똑같아요.
저는 정말 엄마한테 죄송해서 자살도 하지 않았어요. 어제(12월 19일) 혼날 때의 엄마의 모습은 절 혼내고 계셨지만 속으로는 저를 걱정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부모님한테나 선생님, 경찰 등에게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걔들의 보복이 너무 두려웠어요. 대부분의 학교친구들은 저에게 잘 대해줬어요. 예를 들면 윤OO, 김OO, OOO, OOO, 최OO, 이OO, 장OO, 황OO, 최OO, 전OO, 이OO, 장OO, 이OO, 김OO, 남OO, 유OO 등 솔직히 거의 모두가 저에게 잘해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저는 매일매일 가족들 몰래 제 몸의 수많은 멍들을 보면서 한탄했어요.
항상 저를 아껴주시고 가끔 저에게 용돈도 주시는 아빠, 고맙습니다.
매일 제가 불효를 했지만 웃으면서 넘어가 주시고, 저를 너무나 잘 생각해주시는 엄마, 사랑합니다.
항상 그 녀석들이 먹을 걸 다 먹어도 나를 용서해주고, 나에게 잘해주던 우리 형, 고마워.
그리고 항상 나에게 잘 대해주던 내 친구들, 고마워.
또 학교에서 잘하는 게 없던 저를 잘 격려해주시는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바꿔주세요. 걔들이 알고 있어서 또 문 열고 저희 집에 들어올지도 몰라요.
모두들 안녕히 계세요.
아빠 매일 공부 안 하고 화만 내는 제가 걱정되셨죠? 죄송해요.
엄마 친구 데려온답시고 먹을 걸 먹게 해준 제가 바보스러웠죠? 죄송해요.
형. 매일 내가 얄밉게 굴고 짜증나게 했지? 미안해.
하지만, 내가 그런 이유는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란 걸 앞에서 밝혔으니 전 이제 여한이 없어요. 저는 원래 제가 진실을 말해서 우리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지만 제가 진실을 말해서 억울함과 우리가족 간의 오해와 다툼이 없어진 대신, 제 인생 아니 제 모든 것들을 포기했네요. 더 이상 가족들을 못 본다는 생각에 슬프지만 저는 오히려 그간의 오해가 다 풀려서 후련하기도 해요. 우리가족들, 제가 이제 앞으로 없어도 제 걱정 없이 앞으로 잘 살아가기를 빌게요.
저의 가족들이 행복하다면 저도 분명 행복할 거예요.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언젠가 우리는 한 곳에서 다시 만날 거예요. 아마도 저는 좋은 곳은 못갈 거 같지만 우리가족들은 꼭 좋은 곳을 갔으면 좋겠네요.
매일 남몰래 울고 제가 한 짓도 아닌데 억울하게 꾸중을 듣고 매일 괴롭힘 당하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그리고 제가 없다고 해서 슬퍼하시거나 저처럼 죽지 마세요. 저의 가족들이 슬프다면 저도 분명히 슬플 거예요. 부디 제가 없어도 행복하길 빌게요.
-우리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는 막내 ○○○ 올림-
P.S. 부모님께 한 번도 진지하게 사랑한다는 말 못 전했지만 지금 전할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이쯤되면 자살이 아닌 타살로 봐도 무방하다.
4.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들/사건의 심각성을 모르는 방관자들
4.1. 언론사의 무신경함과 고인 모욕
해당 사건과 일련의 집단괴롭힘에 대한 언급 혹은 TV 토론 등에서 몇몇 높으신 분들과 일부 언론에서 기사제목 혹은 내용에 '친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단지 같은 반이나 같은 학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친구'라고 표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피해자에게 있어서는 '''가해자는 절대로 친구가 아니다.''' 친구라는 말이 붙기 전에 그들은 간접적으로 한 사람을 살해한 범죄 조직이라 봐도 무방하다. 당장 친구의 사전적 정의를 확인해 보면 이게 왜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친구는 서로 돕는 관계인데, 가해자-피해자의 관계는 전혀 이렇지 않다.
이러한 것은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닌, 학교를 배경으로 한 사건을 언급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고질적이고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반에 있는 동급생 = 친구'라는 공식은 학교 내에서의 인간관계 및 구성을 도매금으로 묶어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인식이 학교폭력에 대해 무관심하고, 알면서도 '친구끼리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무심하게 여겨지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즉, 이 사회가 여태껏 학교폭력을 어떠한 시선으로 보아 왔고 보고 있는지가 저 '친구'라는 단어에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표현은 고인과 유족에 대한 명예훼손일 뿐만 아니라, 사건의 중대성을 왜곡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엄연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이며, 친구라는 표현으로 묶을 근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자살한 소년과 가해자 2~3명은 결코 친구 사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일방적인 피해자와 가해자일 뿐이다. 가해자들이 저지른 악행은 마음을 터놓고 사귀는 벗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유서 내용에도 피해자가 가해자들을 친구라고 부르는 부분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애초에 서로를 친구라 부르는 사이에서 이런 비극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지 않을지 생각하게 한다.
이 '친구' 오용의 여파 때문인지 피해자의 유골함을 찾은 가해자 중 한 명인 우모군이 사죄한답시고 남긴 메모 내용을 보면 시작부터 "여기 못난 친구 ○○가 왔어." 라고 시작해서 "못난 친구가"로 끝맺는다. 앞뒤 정황을 모르는 사람이 이 메모만 보면 친구끼리 장난이 지나쳐서 벌어진 비극쯤으로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이 효과를 노리고 친구도 아닌데 그렇게 편지를 썼을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있다. 후에 했던 짓을 보면 아무래도 노렸을 확률이 높다.
4.1.1. 교감과 교사들의 망언
이런 가운데 덕원중학교 교감은 '''자살한 애를 영웅만들 일 있냐'''라는 망언을 했다. 거기에 교사들은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불 구경 왔냐"고 화를 내는가 하면 "니들 자식이 당해봐야 알겠지"라면서 화를 내며 교무실을 나가버리는 교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기자들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학교에 찾아온 것은 돈을 벌기 위함이니 교사의 입장에서 학교 밖으로 내치려는 것이 맞을지는 모르나 기자들에게 한 고인드립성 발언은 교사로서 할 말의 수준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심지어 해당 교감은 덕원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덕원중학교 교감으로 부임한 첫해부터 저런 발언을 하였다.
# 이런 태도는 여전히 덕원중학교 교사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일부 기사에서는 이 학교 교사등이 피해학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어이 상실의 기사를 내보냈지만 정작 그들이 보이는 태도를 보면 죄책감은 커녕 피해자가 자살을 하는 바람에 사건이 드러나 이 때문에 자신들의 지위에 위협을 받고 여기 저기 불려다니게 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밖엔 안 보인다.
또한, 당시 교사들의 지시사항은 '국화 등 개인적인 추모 내용 전면 금지' 및 '기자들과의 접촉 일절 금지'였다. 그 이유는 학생들의 학업 분위기 조성, 학생들의 신상 보호였다. 그러나 학년 말이었던 점, 기자들이 신원 보호를 안 할리 없다는 점에서 그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다.
4.1.2. 권위 높은 사람들의 망언
권위 높은 사람들은 빵셔틀이 뭔지도 모르고 '''까짓 심부름 좀 시킬 수 있는거 아니냐'''는 태도를 보였다. 이 정도면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무시하는 쪽에 가깝다. 실제로 학교폭력사건의 상당수는 학교에서 관리자들이 자신들의 자리만 챙기려고 '피해자가 죽건 말건 학교가 무법천지가 되건 말건 무슨 상관이야. 내 자리만 지키면 그만이지’라는 투로 은폐하려 들다가 자살 등의 사태로 이어져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 경우가 대부분. 사건이 있은 후 각종 방송국에서 벌어진 학교폭력 관련 토론들에서도 이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학교폭력 사건들을 단지 친구들끼리 일어날 수 있는 안타까운 일로 치부하는 높으신 분들의 무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빵셔틀 뭐가 어때서” 현실을 모르는 의원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학교폭력에 관한 망언을 했다. 이 발언이 나온 곳은 국회 교과위 법안심사소위 회의다.
5. 후폭풍
이 사건 이후에 덕원중학교에 미친 후폭풍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이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서 덕원중학교는 거의 공황상태가 되었고, 이 점이 기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살한 중학생 다니던 덕원중학교는 공황상태
대구 '중학생 자살' 가해자 29일 영장
또한 가해자 서원규는 피해자에게, 해킹된 자신의 메이플스토리 계정을 키울 걸 요구하면서 이를 위해 협박, 폭행한 것이 드러나면서 한동안 게임 중독 문제로도 번질 기미를 보였다.[5] 그러나 이 사건 보도 이후에 학교폭력으로 인한 청소년들의 자살사건이 연이어 보도되면서(광주·청주서도 목숨 끊어… ‘모방자살’ 우려, 아파트서 중학생 목매 숨진 채 발견 등), 얼마 동안은 학교폭력 중지에 초점을 맞추는 듯했으나, 한달도 지나지 않아서 미디어 규제와 게임 과몰입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여론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여론을 뛰어넘어 밑에 '학생이라고 봐주지 않는다'는 제목의 링크와는 안맞게 가해학생들의 생기부피해를 주는것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10대의 자살 건수가 1년에 약 440여건인 점을 감안할 때(2009년)[6] 앞의 사건 보도로 인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확실한 점은 이 사건 이후로 청소년들의 자살사건에 대한 언론사들의 관심이 급증했으며, 이 사건들을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7]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태도가 변하였다. 사건 전에는 여성, 청소년 관련 부서에서 처리하였고 웬만하면 훈방조치하였던 사건을 반드시 근절해야 하는 민생치안현안으로 보고, 상습적인 교내외 폭력의 경우에는 구속수사[8] 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더니...[9]
경찰 “이제 학생이라고 안 봐준다”…‘학교 폭력과 전쟁’ 나서, 구속수사 확대
학교폭력과 전쟁! 가해학생 전학가면 못온다
사실 이 조치는 굉장히 때 늦은 조치다. 예를 들어 중학교 1학년 때 전학간 가해학생이 2학년 때 다시 돌아오는 상황은 그동안 수없이 많았고, 줄곧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럼 뭐 애를 감빵에 넣어 인생 조지란 거냐.", "너도 언제까지 피해자 노릇 할 거냐 작작해라."라는 분위기가 그동안 전반적으로 지속되어 왔다. 그런데 "너도 언제까지 피해자 노릇할거냐."라는 드립의 경우는 아무리 실드를 쳐줄래도 쳐주기가 곤란한 안하무인, 적반하장성 망언이다.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그로 인한 후유증은 평생 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5.1. 왜 반향이 큰가?
집단괴롭힘 때문에 벌어진 자살 사건은 사실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건들이 별다른 일 없이 묻혀버린 것과는 달리, 이 사건은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 까닭을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 실제로 이 반향에는 씁쓸하게도 한국 사회의 위선과 모순, 그리고 정치적 의도가 깊이 담겨 있다.
1. '''피해자가 남긴 유서가 제법 명문이고, 어른들이 생각하는 '착하고 어른스러운 아이'의 관념에 부합하고 있다는 점.'''
물론 집단괴롭힘은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가해자의 재미를 위해 벌어지는 것이므로 예외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수 있으며 실제 학교에서는 "조금 다르다고" 집단 괴롭힘을 일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로 동학년 D중학교에서는 아스퍼거 장애로 인해 괴롭힘 당하는 다른 아이도 있었을 정도로. 다만 일반적으로 집단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의 대다수가 장애가 있거나, 다문화가정의 아이라든가, 공부를 못하거나 신체적으로 열등하고 소위 싸움을 못하거나 사회성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 아이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이렇게 취약한 아이들이 약하기 때문에 보다 만만한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중산층 이상의 아이들과는 달리, 취약 계층의 아이들은 보호자의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어서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므로 오히려 이들이 더 심각하다.
그러나 정작 보호를 받아야 할 이런 아이들이 당하고 있을 때는 무감각했다는 점에서 착하고 공부 잘 하는 아이만이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한국 사회의 위선을 드러내고 있다. 즉 공부 못하면 보호받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암암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셧다운제 덕분에 피해학생이 게임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기사가 올라온 것을 시작으로[11] , 이 사건으로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문화관광부, 교육과학기술부를 이명박 정부가 밀어줌으로써 셧다운제 + 쿨링 오프제라는 헬게이트 코미디를 빚어내기에 이른다.[12]
3-1. 게임 만이 아니라 만화(웹툰)에도 책임을 돌리고 있다.
5.2. 사건 후에도 반성 없는 범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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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자살' 가해자들 뒤늦은 후회
대구 자살 중학생 급우들… 스트레스 장애 극심
위와 같이 "가해자들도 후회하고 있으며, 자살할 지도 몰랐고, 괴로워하니까 봐주자"는 식의 기사가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위의 기사들을 몽땅 뒤집어 엎는 소름끼치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들은 물고문을 가한지 며칠 뒤, 다시 물고문을 하려고 계획했는데...
이 사람들은 권 군의 자살 사실을 알고서도 죄책감을 갖기는커녕 키득거렸다.[13] 기사
기사내용에 나온 사진의 문자 내용만 봐도 이들이 일말의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고 받은 문자내용까지 통신사 서버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이것들이 흘린 눈물은 동정심을 모으기 위한 악어의 눈물에 불과했다.
이것으로 가해자들은 정신적이로든 정서적이로든 정상의 범위 내에 있지 않다는것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기사보도에 의하면, 가해 학생을 용서하려고 매일 기도한다던 피해 학생의 어머니도 아들이 물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할 말을 잃었으며, 이후로는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하라"고 입장을 바꾸었다.
10년 후 2021년 스포츠계, 연예게 학교폭력 고발 사건에 즈음하여 진행한 피해자 어머니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은 10년이 지난 2021년 현재까지도 단 한번도 사과하러 오지 않았다. 2021년은 이들이 이미 출소한 지 한참 지난 시점이며, 피해자 가족은 혹시 이들이 찾아와서 사죄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사도 가지 않았다고 하지만 끝내 진정한 의미의 사죄는 받지 못했다.
6. 구속 후 가해자들의 태도를 보는 사람들
구속 후 가해자들의 태도를 보는 관점이 크게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가해자들을 무슨 양심수라도 되는 듯이 비장하고 가련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보는 망언을 내놓고 있다. 때문에 "가해자 쪽으로부터 뇌물 먹은 게 아닌가" 하는 음모론성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건 뇌물의 사실 여부와는 상관 없이 피해 학생을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잘못된 보도 태도이다.
수감 ‘대구 자살 중학생’ 가해학생들 때늦은 눈물… 면회온 엄마에 “너무 미안해요” 불안한지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기도 한다. 후회해도 이미 엎지른 물인 것이다.
대구 ‘중학생 자살’ 가해자 유치장 생활 적응. TV도 보고 식사도 깨끗히 비워.
‘대구 중학생 자살’ 가해자들, 유치장 생활 보니… 심리적 안정 되찾아가.
어떤 블로그 작성자는 자신의 블로그에다가 ‘가해자들의 행위가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개선될 수 있는 한때의 실수였고 이 사건은 가해자들만의 잘못이 아닌 이 사회 시스템의 잘못도 있고 더해서 가해자에게도 평생동안 잊지 못할 상처가 될 테니 너무 가혹한 수준의 처벌을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적기도 했다. 이후 욕을 많이 먹어서인지 지금은 삭제된 상태.
7. 재판
주범에 대해서는 징역 장기 4년에 단기 3년, 공범에 대해서는 징역 장기 3년 6월에 단기 3년의 형을 구형했다. 죄질이 나빠 엄벌이 필요하다는 까닭으로 구형된 것으로 법정 최고형이다. # 하지만 징역 1년 6개월 이상의 판결을 받아 징병검사 없이 제2국민역으로 전환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터무니없이 형량이 낮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재판에 나와서 엄벌을 해줄 것을 재판부에 호소했다. #
주범의 변호인은 "책임회피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공소장에 자세히 나오는 것처럼 이번 사건은 소위 '짱'도 '일진'도 아닌 평범한 중학생이 저지른 일인 만큼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엄한 처벌보다는 교화와 교육이 더 중요시돼야 한다[14] "며 주범의 초교시절 교사가 제출한 탄원서와 함께 선처를 요청했다.
공범의 변호사는 "공범이 주범으로부터 폭행 등을 당하다 주범의 강요로 피해자를 괴롭히는데 가담한 만큼 이에 대한 정상참작이 필요하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결국 실형을 선고받았다. 주범은 장기 3년 6개월에 단기 2년 6개월, 공범은 장기 3년에 단기 2년. 형기 자체는 그리 길지 않다. # 그러나 일반적으로 소년범죄의 경우 웬만큼 심해도 집행유예나 보호처분이 나오는 것이 대세인 점에서 실형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며, 매우 무거운 축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다. 거기다가 소년원 송치도 아니고 징역...이지만, 전원 실형 2~3년을 받아버려서 군대가 면제됐다는 것도 사실이다. 저 정도 형량이면 군대 갔다온 셈쳐도 무방할 정도. 게다가 어린 나이에 받은 감방 생활은 티도 안 난다. 21살에 사람을 죽이고 살인의 최소 형량인 5년을 선고 받아 형량을 채우고 나온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을 보고 카페를 차려 살아 가기도 한다. 5년을 감방에서 보내긴 했지만 그래봤자 20대니까.
다만, 이 사건의 가해자들은 이사건으로 인해 유명세를 탔으니 취업은 커녕 알바 따기도 힘들것이다. 한마디로 인생 제대로 망친 셈이다.
2012년 8월 16일 학교법인과 학교장, 교감, 담임교사, 가해학생 부모 등을 상대로 유족들에게 3억 4천만~3억 6천만원씩 배상하라는 소송에서 원고에게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단 사망원인이 자살이기 때문에 배상책임은 저 금액의 40%라고 한다. #
8. 특이점
유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피해자 권모군의 교우관계와 학교생활은 좋은 편이었다. 이것은 소수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집을 장악하고 은밀하고 잔인하게 괴롭힌 케이스다. 피해자는 집이라는 최후의 피난처마저도 가해자에게 빼앗겼으며 가해자들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피해자를 끝도 없이 괴롭혔다. 피해자는 심리적 압박과 폭력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자격마저 박탈당한 셈. 그런 점에서 그 잔혹함과 수법이 매우 심각하다 하겠다.
피해자의 집이 주무대가 되다보니 주위에서는 권군의 피해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가해자들은 권군의 집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었다.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지 권군의 집에 들어와 권군을 괴롭힐 수 있었다. 친구 2명이 권군의 피해상황을 알고, 그 사실을 담임교사에게 알리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권군이 “나 맞아 죽는 거 보려느냐”며 말렸다고….관련기사 즉, 권군에게 있어 교사는 부모를 포함하여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사태를 키울 뿐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15]
부부교사인 부모님이 직장생활로 부재 중인 시간에 피해자 집에 일어났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자. 맞벌이가 보편화된 한국사회에서 나타난 학교폭력의 새로운 형태에 가정과 학교, 사회가 모두 경각심을 가져야겠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이것이 강력한 후폭풍으로 나타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9.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유포한 네티즌에 대해 수사
가해자 신상정보 유포자 수사 중 기사내용에 따르면 일명 '신상털기'를 하거나 가해 학생 등의 사진과 이름 등 신상정보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 유포한 네티즌 8명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이 수사가 경찰의 자발적인 수사인지 아니면 가해자 측에서 의뢰한 수사인지는 알 수가 없다.[16]
10. 네티즌들의 반응과 결론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와 비슷한 폭력을 한번쯤은 보거나, 심지어 심하면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때는 학교에서 이미 왕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17] 동급생을 장애인 취급하는 행위나 빵셔틀조차 일상화되어 있었다.
사건 이후의 가해자들의 태도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극히 일부 동정론도 있었으나, 그마저도 위의 가해자들의 사건 후 뻔뻔스러움의 극치를 달리는 인간 같잖은 반응이 나돌자 합심하여 가해자들을 까고 있다.
비슷한 시기인 12월 2일 대전광역시에서도 한 여고생이 동급생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아파트 14층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지적장애가 있는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고교생 16명에게 40시간 성교육 수강, 1년간 관찰이라는 사실상 무죄판결을 내려 대중들과 교육계에 두 배로 충격을 주었다.
대부분의 폭력을 휘두르는 세력은 방관자들에 의해서 더 커지고 잔인해진다. 방관자 역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폭력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이거나 가해자였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갑이 차여지고 나서야 잠깐 눈물을 쏟고 마는 가해자들이 보여주는 죄책감과 죄인식의 미흡함은 그 어떤 경고와 교화의 말도 무색하게 만들었고, 이 사건에서 보여진 윗분들의 인식과 권력을 지키기 위한 힘싸움,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집단괴롭힘과 타 문화의 배척 등으로 인해, 정작 진정으로 해결해야 할 학교폭력 척결에 짙은 음영을 드리우고 있다.
11. 사건 이후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지 채 1주일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덕원중학교 2학년에서는 다시 학교폭력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아스퍼거 장애가 있는 교우를 상대로 욕설 및 구타 등..... 그러나 새 학년이 된 이후부터 실질적인 물리적 폭력은 거의 없어졌다. 그 계기가 단순한 처벌의 엄중함 때문이라는 씁쓸함은 있지만.
사건이 있고 매년 학생들이 바뀌고 있던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이제는 학교에서 그 사실은 사실상 전혀 거론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은 모두 그 사건 당시 많이 어리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사건으로 인해서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이나 경각심의 수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중이다.
수성경찰서는 이후 '우리학교 경찰관'이라는, 학교 내에 청소년계 경관이 직접 방문해 학교폭력 예방활동을 하는 제도를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18] 2013년 현재 대구광역시의 "우리학교 경찰관" 제도는 '학교전담경찰' 제도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가해/피해학생을 대상으로 멘토&멘티 활동, 가해학생 대상의 선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도 꾸준히 경찰이 참석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제도가 전국 각지에서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경찰권이 학교 내부에 미치게 된 이후로 아직까지 큰 효과는 없지만 사건 발생률만 놓고 보면 실시 초기에 비해 어느 정도 감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약 75곳에 달하는 수성구의 초중고교를 직접 방문하여 관리하는 외근경찰은 단 4명이다.
피해학생의 어머니는 현재 전국 각지를 돌며 더 이상의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활동하는 중이다.
2017년 기준, 가해자들은 출소한 듯하다.
반면, 이런 집단 따돌림성 학교폭력 자살 사건과는 달리, 2015년 8월에는 청주에서 1999년생 여고생을 집단 따돌림성 학교폭력으로 자살하게 한 게 아닌 뇌사시켜서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피해자는 장기기증을 한 뒤, 16일에 사망했다.
그러다가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 등 여러 청소년에 의한 폭행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이제는 학교폭력을 넘어 아예 소년법을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12. 이 사건 이후 발전된 것이 있는가?
물론 이 사건에 대한 충격으로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뒤집어졌다. 학교폭력 실태에 대한 충격으로 이런저런 정책들이 도입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2012학년도부터 '부담임제'가 많은 학교에 도입되었고, 가시적인 정책들 말고도 관련 (주로 초청)강연, (공•비공식적인)교육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전국의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어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사건 얼마 후 벌어진 대전의 명문여고라는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여자고등학교 자살사건에서 가해자들이 어떠한 처벌도 안 받고 멀쩡하게 대학교에 입학했으며, 거의 모든 둔산여고 학부모, 학생, 교사들이 무조건 가해자들은 잘못 없다며 가해자 편만 드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정말 극히 민감해졌는지 심히 의문이 든다. 실제로 대전 서구 둔산여고 자살 사건은 이미 대전에서는 이제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수준. 가해자들은 경미한 제재나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 피해자는 억울한데 가해자는 너무나도 당당한 막장 상황이 또 다시 동일하게 벌어진 것. 학교가 명문이면 왕따, 괴롭힘, 폭력쯤은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는 게 국내 교육계와 학부모와 학생들의 인식이다.
사실 누가 학교폭력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해당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이다. 교사들이 아무리 살펴도 어느 학생은 조금 공격적이라거나, 어느 학생은 내성적이라는 수준 정도는 파악해도 누가 누구를 어떤식으로 괴롭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긴 힘들다. 그런데 평범한 학생들도 동조자 또는 방관자가 된다.
2명의 여고생이 대구 중학생 사건과 거의 똑같은 이유로 자살한 대전 D여고 사건이라 불리는 대전 둔산여고 사건만 해도 상당수 둔산여고 재학생들이 자살한 여학생이 불쌍하다며 이참에 학교폭력 등 괴롭힘을 추방하자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린 대전의 '여자고등학교' 중 최고의 명문인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냐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기사 올리는 신문사로 항의성 전화를 반복했다. 또 해당 내용을 포스팅하는 블로그나 카페에 항의성 댓글을 올리는 등 기분 나쁘다는 반응만 보였다. 학교 이미지 망친다며 무조건 은폐하려 들고 가해자 편에서 가해자를 변호하는 학생들도 상당수였다. 결국 가해자들도 어떠한 징계도 없이 평범하게 원하는 대학교 입학했다.
까놓고 말하자면 한 생명이 안타깝게 희생된 사건 이후 발전된 것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3년 후에는 군대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자살이냐 타살이냐의 차이일 뿐, 사이코패스스러운 괴롭힘과 피해자가 사망한 후에도 반성 안하는 가해자의 뻔뻔한 태도가 똑같다.
13. 전말
피해자 권모 군은 3월 중순부터 9개월 동안 서원규와 우재익, 그리고 또 다른 1명의 동급생[19] 총 3명의 가해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14. 도서
2012년 여름에 권군의 어머니 임모씨가 권군 자살 이후의 일들을 회고한 내용을 집필한 단행본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가 발간되었다. 책 소개
사건 당일, 사망한 아들을 천마아파트 225동 도로에 떨어진 교복차림의 추락사체의 형태로 직접 현장에서 목격한 것[20] 과 덕원중학교의 대응이 부적절했던 것[21] , 울부짖으며 염습 참관을 하려는 권군의 형을 어머니인 자신이 친지들과 함께 손수 저지한 것, 입관할 때 권군이 사망 당시 입었던 교복을 동봉한 것[22] , 화장 후 납골장소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 등 여러 에피소드 뿐만 아니라 권승민군의 자살 이후 연이어 학교폭력에 따른 자살사건이 터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 가해자 측과의 갈등, "애를 영웅 만드는 거 아니냐"는 주변의 비아냥을 겪은 경험과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쓰여져 있다.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이 사건을 암시하는 언급이 있다. 다만 작중에는 1998년경에 벌어진 사건으로 각색되어 있다.
대구에서 집단 괴롭힘을 받던 아이가 자살한 사건 기억하시죠? 아이 부모가 학교 교사라서 더 화제가 됐던. 아주머니가 물었다.[23]
여자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네. 라고 대답했다. 그 사건이 우리 영훈이 일 터지기 보름 전에 발생했어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 영훈이 사건이 터지기 일주일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의정부에서 여중생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서 자살했어요. 이 아이는 유서를 썼는데 글을 참 잘 썼어요. 아이 부모들이 그 유서를 언론사에 보내고 가해 학생들이랑 학교 교사를 형사 고발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이 가시겠죠. 학교 폭력 문제가 온 언론의,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거예요. 학교 폭력, 왕따, 일진. 그런 이야기가 아니면 기사가 안 되는 때였어요. 그리고 그때 우리 영훈이 사건이 터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