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버밍

 


1. 개요
2. 역사
3. 공정
4. 현황
4.1. 악용
4.1.1. 목록


1. 개요


Embalming
시체의 간단한 화장에서부터 방부 처리, 또는 사고 등으로 훼손된 시신을 복원 처리하는 기술. 동사형인 Embalm 자체가 '(시체에) 방부 처리를 하다'라는 뜻이다. '''시체에 있는 를 빼내고''' 혈관에 방부액(포르말린)을 채워 넣는 작업이 수반된다. 다른 말로는 유체보존기술(遺體保存技術), 시체방부처리(死體防腐處理), 사체위생보전(遺體衛生保全)이라고도 한다. 매장이 기본인 미국에서는 사체로부터 감염증이 만연하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도 있다. 다만 미국에서도 인도계, 일본계 등 아시아계들이 장례를 화장하는 걸 택하는데 영향을 받아 요새는 화장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엠버밍의 수요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2. 역사


기술의 유래는 고대 이집트미라 제조 기술이 근원이다. 6-7세기를 무대로 한 아라비안나이트의 한 에피소드에도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미녀의 시신이 수은 등을 쓴 보존 기술로 마치 살아 있는 듯 보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보존 기술이 유럽으로도 전파되었고 이후 유럽에서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기 이후로 왕실 장례법에서 이런 미이라 제조술을 응용하여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그 예로 합스부르크 왕가는 왕이나 왕실 인물이 죽게 되면 내장과 심장을 적출하여 따로 성당들에 보관하고 시신은 약품 등으로 간단한 방부 처리를 하여 3~4중 이상의 관에 봉하여 카푸친 성당의 황실 묘역에 안장하였다. 그 외에도 귀족 또는 저명인사들의 장례를 치를 때도 장기를 적출하고 시신을 방부액에 절여 관에 봉안하는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그 예로 올리버 크롬웰은 장례 때 방부 처리가 상당히 잘 되어 있었는데, 이후 찰스 2세에 의해 관이 파내어지고 효수를 당할 때 도끼로 30번이나 내려쳐서 목을 겨우 잘라냈을 정도로 시신이 잘 절여져 있었다.
이후 서부개척시대에 이르러 엠버밍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다시 한번 발전하게 된다. 당시 미국은 광활한 미개척지에서 개척이나 모험에 종사하다 객사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데다 아직 교통 요건도 미비했던 때라서 고향으로 운반할 때까지의 시신의 장기간 보존이 절실했다. 거기다 미국 초기의 잦은 전쟁으로 인해 전상(戰傷)으로 훼손된 시신이 많이 생겨나자 시신의 복원과 보존, 그리고 부패로 인한 질병 발생의 방지를 목적으로 적용되어 점차 민간에 퍼져나갔다.
초기에는 일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장의사들이 개별적으로 고안해낸 방부액 등을 사용하여 간혹 난잡하게 처리되는 일도 많았으며, 이러한 사례가 몇 건 폭로가 되자 결국 미국에서 시신위생처리사와 장의사들의 자격을 위한 규칙과 법령을 만들게 되었다. 이후 대중에게 엠버밍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하여 민간에서의 수요도 급증하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장의사들이 '''손님 유치'''를 목적으로 신기술 개발에 열을 올린 결과 엠버밍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또한 엠버밍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도 각지에서 생겨나 그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3. 공정


장의 전문 기술자나 일반의 면허를 취득한 의료종사자에 의해서, 화학적·외과학문적으로 사체가 처리된다. 현대의 유체보존기술은 구체적으로는 이하의 방법으로 행해지고 있다.
  1. 전신을 소독 및 세정한다.
  2. 사체의 표정을 정돈해 필요에 따라서 자르거나 깎는 등의 처리를 실시한다.
  3. 사체를 절개(주로 경부 등)하여 동맥을 통해 체내에 방부제를 주입한다. 동시에 정맥에서 혈액을 배출한다.
  4. 복부에 약 1cm의 구멍을 뚫어 거기로부터 강관을 찔러 흉강·복강부에 남은 체액이나, 부패를 일으키기 쉬운 소화기관 내의 잔존물을 흡입해 제거한다. 또 동시에 그러한 부분에도 방부제를 주입한다.
  5. 절개한 부위를 봉합해, 사고 등으로 손상된 부분이 있는 경우에는 그 부분도 복원한다. 이 때 절개한 부분에는 테이프 등을 붙여 눈에 띄지 않게 한다.
  6. 재차 전신·모발을 세정해 유족이 의뢰한 의상을 입히고 표정을 다시 정돈한 다음 납관한다.
이렇게 처리된 사체는 주입되는 약제의 농도나 양에 의해 며칠~2주간 정도까지는 상온에서 보존이 가능하다. 또 이 이상으로 철저하게 처리하면 보존 가능 기간을 더욱 늘릴 수 있다. 방부제 교환 등 정기적인 유지보수를 실시하면 생전의 모습으로 보존 전시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1]

4. 현황


근래 연구 보고에 따르면 사람은 고인의 시신을 매장 혹은 화장 전에 한 번 더 접견하게 되면 고인의 죽음에 대해 '납득'하게 됨으로서 사별(死別)로 인한 슬픔, 두려움 등의 스트레스가 상당 부분 해소된다고 한다. 서양과 일본에서 관뚜껑 열어놓고 장례식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비슷하게 한국에서는 안치 다음날 입관할 때 얼굴을 덮기 전에 유족들에게 접견안내를 한다.
서양과 일본에선 상기한 대로 고인의 시신을 접하는 문화가 발달해서 시체 보존 처리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지만, 한국, 중국, 중동권은 시신에 손을 대는 것에 대한 전통적인 터부 및 홍보 부족으로 인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저런 일본에서도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야 엠버밍 학교가 세워졌다.
한국에선 1960년대에 미군을 통해 엠버밍 기술이 보급되어 나름대로 상당한 기술 경험을 쌓았으나, 인식 부족 및 제도 미비, 그리고 면허 제도의 부재로 인해 공인받기가 힘들어서 해외 유명 장의 업체와 보증 계약을 맺어 시행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주로 한국에서 사망한 외국인 시신의 처리가 대부분이다. 엠버밍은 부검과 다르게 시신을 좀 더 보기 좋게(?) 만드는 작업이라지만, 피를 빼내는 작업이 수반되기 때문에 유족에 따라서는 그것이 꺼림칙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등지에서 사망했을 경우 엠버밍 처리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1909년에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처단된 이토 히로부미의 시체는 하얼빈 만철병원 영안실에서 엠버밍을 거쳤고, 1997년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당시 한국인 희생자들의 시신 인도가 늦어진 것도 이 때문이며, 유명인사 중에선 1982년에 사망한 권투선수 김득구, 2019년에 사망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며, 2009년에 사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도 봉하마을 마을회관에 임시 안치될 당시 냉동시설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엠버밍을 했다. 게다가 매장을 통한 안장이면 더 그렇기도 하고. 그래서 해외에서 사망한 경우 매장을 하는 집안이라도 화장으로 장례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며, 현지에서 화장하여 국내로 유골을 운구하려는 경우 엠버밍이 생략되기도 한다.

4.1. 악용


일부 국가에선 이 기술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특히 '''공산주의 국가'''들에게서 이러한 경향이 자주 드러나는데, 소련블라디미르 레닌이나 중국마오쩌둥, 북한김일성김정일, 베트남호치민의 시신이 엠버밍을 받았다. 스탈린도 사망 직후에는 엠버밍되어 레닌 영묘에 합장되어 있다 격하 운동 후 화장되어 크렘린 벽 묘지로 이장되었다. 이후 이들의 시신은 일반에 전시되어 참배를 받는데, 보면 알겠지만 이 인물들의 태반은 바로 그 공산주의 국가의 국부와 그 후계자에 해당하는 인물들이다. 즉, 국부의 숭배를 통해 지배층의 권위 제고와 그를 통한 권력 장악을 확고히 하려는 데에 있다. 이쯤 되면 사실상 종교의 영역.
다만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생전에 이런 취급을 거의 원치 않았다. 레닌은 돌아가신 어머니 곁에 자신을 묻어주길 원했고, 마오쩌둥호치민은 자신의 시체를 화장한 후 자국 영토 곳곳에 뿌려주기를 원했으며, 김일성은 혁명열사릉에 있는 항일 빨치산 동지들의 무덤 곁에 자신을 묻어주길 원했다. 극히 예외적으로, '''김정일은 이 취급을 자청했다.''' 물론 김정일 본인이 진짜 이런 취급을 받기를 원해서 자청한 것은 아닐 것이고,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를 그렇게 했듯 자신을 신격화시켜서 써먹으라는 뜻이었을 확률이 높긴 하다.
이것의 원조인 레닌의 경우 슬슬 매장하자는 의견이 강해지고 있다. 레닌 스스로도 그의 어머니 근처에 묻히길 바란 점도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구체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베트남이나 중국, 북한과 달리 러시아는 일당독재 공산주의를 1989년에 포기하였고 레닌의 작품인 소련이라는 국체 자체도 1991년에 무너졌기에 레닌을 그저 역사의 위인으로서 존경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기 때문. 늦게 배운 놈들이 더하다고 사실 소련 시대에조차 레닌을 지금의 중국이나 북한에서 하는 것처럼 신처럼 받드는 정도까지는 아니었기도 하다. 당연히 러시아 연방 공산당은 결사반대하고 있는데 러시아에서 공산당은 명색이 제1야당이지만 푸틴이 집권 한 이래로 우파정당인 통합러시아당과는 세력 차이가 너무도 크기때문에 연금타먹는 노인들이 지지하는 당이라는 이미지가 있을정도로 세력이 약하다. 그러나 레닌 묘가 이미 소련 시절부터 유명한 관광 명소인지라 관광업계는 물론 사실상 국가 세금으로 운용되는 엠버밍 기술의 광고판이기 때문에[2] 러시아 엠버밍 업체의 반발이 거세다. 그래서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사적 소유가 부활한 지 30년이 되었음에도 '''자본주의'''적인 이유로 아직까지 레닌의 이장은 요원해 보인다. 현대 엠버밍의 최초 타이틀도 가지고 있기도 하고...

4.1.1. 목록




[1] 링크[2] 실재 북한이나 베트남도 러시아 엠버밍 업체가 연간 15억원이라는 높은 금액을 쏠쏠하게 받아가면서 시체를 유지중이다. 기타 돈많은 졸부들의 문의도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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