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령 버마

 



'''버마 식민지'''
'''Colony of Burma'''

대영제국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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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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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 1948년'''
'''분리 이전'''
'''멸망 이후'''
'''영국령 인도'''
'''버마 연방'''
'''국가'''
신이시여 국왕 폐하를 지켜주소서
'''위치'''
미얀마
'''수도'''
랑군
'''정치체제'''
군주제
'''국가원수'''
명목상: 황제
사실상: 부왕 겸 총독
'''언어'''
영어, 버마어
'''민족'''
영국인, 인도인, 버마족, 샨족, 카렌족, 싱할라족, 네팔인
'''종교'''
힌두교, 이슬람, 시크교, 불교
'''주요사건'''
1826년 성립
1937년 인도 제국에서 분리
1948년 미얀마로 독립
'''통화'''
영국령 버마 루피
1. 개요
2. 역사
3.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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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7년 버마인들이 영국으로부터 자치를 허용해달라 해서 만들어진 대영제국식민지이자, 영국 식민지 시대 전반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2. 역사


꼰바웅 왕조 시절 미얀마는 18세기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강력한 국가 중에 하나였으나, 지배층은 외국과의 교류를 많이 하지 않다 보니 서방의 식민침략 야욕에 대처할 수가 없었다. 당시 대영제국은 청나라 침략을 위해 미얀마를 전략 요충지로 봤는데, 마침 1820년대 초에 버마군이 국경 근처의 반란을 진압하자 그 지역 사람들이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영국령 식민지인 영국령 인도제국으로 탈출하자, 이들은 인도를 침략하게 된다.
이에 영국군은 미얀마에 선전포고를 내려 1824년부터 2년간 첫 전쟁을 벌여 물메인 지방을 뺏었고, 1852~1853년 2차 전쟁 때는 저지대 삼각주를, 1885년에는 고지대를 점령하면서 미얀마를 병합하여 인도 제국의 한 주로 편입했다가, 1937년부터 인도 제국에서 분할되어 별도로 통치했다.
식민지배 시절부터 영국은 먼저 왕정제와 신분제를 없앤 후, 옥좌를 인도 제국 콜카타박물관으로 뺏어갔다. 종족 간 생활권을 무시한 채 멋대로 국경선을 난자하는 한편 소수민족들에겐 자치권을 부여했고, 경찰과 군인 자리까지 줬다. 반면 주류민족인 버마족에겐 직접통치를 시행해 차별정책을 펴서 민족 간 갈등을 부추겼다. 또 인도인들을 대거 받아들여 경제까지 인도인이 장악하게 만들어서 랭군 전체 인구 중 2/3을 외지인이 장악했고, 이 중 53%가 인도인이며 국토 전체로 보자면 1931년 기준 전체 인구의 7%였다.
영국은 미얀마를 산업화하지 않고 버마족과 꺼인족을 시켜 삼각주 지역을 최대의 곡창 지대로 만들어 1930년대에 세계 쌀 수출국 1위로 만들었는데, 이는 여타 식민지가 그렇듯 이익은 영국이 챙겨먹었기에 경제 수탈의 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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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 산 (1915~1947)
우 누 (1907~1995)
네 윈 (1911~2002). 중국계 화교 출신.
1930년대 들어 전 국토에 민족주의가 성행해 독립운동의 기운이 불타올랐는데, 독립운동의 주축이 버마족들이라 소수민족들과 독립 방향을 두고 갈등이 빚어졌다. 버마족들은 불교와 사회주의, 반외세주의 3개 사상으로 무장한 특이한 구조를 만들어냈으며, 이들 중엔 일본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돌아온 아웅산과 우누, 네 윈 3인방을 중심으로 한 '30인의 동지(Thirty Comrades)'가 가장 유명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영국은 일본에게 미얀마를 빼앗겼으나, 1945년 5월 결국 일본군이 미얀마에서 완전 철수하면서 영국군이 돌아왔고, 영국 정부는 자신이 승전국이라는 이유로 독립을 시켜주지 않았다. 이에 반파시스트 인민민주동맹(APNLF)과 미얀마 공산당, 소수민족 연합 등이 독립투쟁을 벌였으나 독립 후 주도권 문제로 싸웠고, 이에 아웅 산이 영국 런던을 찾아가 영국 정부랑 협상을 벌여 독립을 승인받았다. 이에 따라 1948년 1월에 버마 연방으로 독립했다.

3. 출처


  • 먼나라 이웃나라 시즌2(지역/주제편) 17권: 동남아시아, 천년 문명의 신비에서 21세기 변화와 개혁의 주역으로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18. p37~41.